毋意毋必毋固毋我(무의무필무고무아)논어 자한편을 읽다가 만난 문장이다.뻔한 듯한 이 여덟 글자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그 후, 목회자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경구로 삼았다.정배교회 부임 후 인근 동네를 다니며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다.그러다 화서 이항로 선생님의 후손을 만나 뵙고 이 글씨를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글을 받고 한동안 보관만 해 두었다.서예를 하시는 시찰회 목사님을 통해 마침내 표구를 제작했다.고민 끝에 목양실 출입구 옆에 붙였다.이 가르침이 내 목회 여정 가운데 작은 꽃 하나 피울 수 있길 소망한다. "사사로운 의견이 없으셨으며, 반드시 해야 된다는 것이 없으셨으며, 고집함이 없으셨으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으셨다.” - 이기동 옮김
교회력의 절정은 단연 부활절입니다. 담임목사로서 사순절을 지나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일은 여러모로 큰 부담입니다. 특히나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은 더욱 값지고 소중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짧은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고난주간 저녁기도회이번 고난주간에는 '저녁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나름의 작은 저항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온 결심을 실행했습니다. 무작정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른바 '특새' 자체를 깎아내릴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 담긴 어떤 관습 앞에 잠시 멈춰 서보고 싶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성숙한 교인들께서 제 뜻을 잘 이해하고 수용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교회의 핵심 가치인 '일상'과 '여백'을 지키며 경건하게 고난주간을 보냈습니다.협동직분자 임명그동안 출석만 하시던 분들께서 올해 들어 대부분 교인 등록을 마치셨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해당되시는 분들을 협동직분자로 임명했습니다. 묘하게도 임명받은 분 중 남자 세 분 모두 감리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받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어색하게 '권사님'이라 불렀습니다. 광고 시간에 이렇게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남자 권사'님은 안 계십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깊은 '소속감'을 느끼는 성도들이 늘어가는 것을 기쁨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참으로 뜻깊은 부활주일 예배였습니다.성찬성례전대학 시절부터 채플을 통해 예배 예전에 깊은 관심을 두어왔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전이 잘 갖춰진 교회를 찾아 주일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중 성찬식 때 세례나 입교를 받지 못해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어린이들을 배려하는 두 곳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시던 '중앙루터교회'와, '환대의 쿠키'를 준비했던 '성공회 주교좌성당'입니다.이번 부활주일 성찬식때 형식을 바꾸며 이 두 가지를 모두 도입했습니다. 전교인 모두 앞으로 나오게 하여 직접 빵을 떼어 드렸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안수하고 쿠키를 주었습니다몹시 뭉클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꿈꾸었던 성찬을 직접 집례하였습니다. 교회학교 자녀들을 비롯한 온 성도가 기쁨으로 동참했습니다. 작은 교회가 지닌 강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가장 합당한 곳으로 보내셨음을 거듭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여러 의미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부활주일을 보냈습니다. 이 뜻 깊은 날을 통해 참으로 행복한 목사임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대학 시절 기형도 시인이 쓴, "우리 동네 목사님"을 우연히 읽었다.시가 그리는 이야기 자체는 암울했다. 하지만 그 안에 묘사된 목사님의 진솔한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울림으로 남았다.이후 누군가 내게 목회자로서 꿈을 물을 때면 주저 없이 '동네 목사'라고 답하곤 했다.어느샌가 조금씩 흐려졌던 그 꿈을 정배교회에서 이루었다.담임목사로 부임 후 교회가 속한 정배 1리는 물론이고 주변 마을들을 다니며 인사를 다녔다.마침, 연말이어서 마을 총회와 노인회 총회에 분주하게 참석했다.그러면서 '정배교회 담임목사'라는 자리가 동네에서 지니는 위치와 무게감을 조금씩 느꼈다.오늘(12/24) 참석한,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정배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더욱 환연히 실감했다.내빈석에서 이장님들을 비롯한 마을 유지분들과 민망하게 나란히 앉았다.교회를 대표해 장학금 증서를 전달하러 단상에 올랐다.불현듯, 20여 년 전 읽었던 그때 그 시가 떠올랐다.나를 '동네 목사'로 부르시고 이곳에 보내신 은혜를 고백한다.동시에, 시와는 달리 쓸쓸함을 거둬내고 행복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소망한다.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찬송하는 법도 없이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인생은 불확실합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벌어질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감히 예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저에게 실망하실 겁니다.저는 말이 어눌해서 설교 때 원고에 많이 의존합니다. 낯가림이 있고, 많은 사람과 오래 시간을 보내는 걸 힘들어 해서 때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못 외어서 서운하게 느껴지실 때도 있을 겁니다. 또한 기발한 아이디어나 기획력이 부족해서 제 목회 방식이 뻔하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다만, 이런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정배교회 담임 목사로서 약속 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목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그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주변에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너무나 깊은 행복을 느낍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신실한 이끄심에 따라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진심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행복을 건강하게 지키고 가꾸고 전할 수 있도록, 정배리의 아름다운 풍광처럼 더욱 진솔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러한 삶과 인격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나누겠습니다. 부디, 우리 정배교회가 사람 냄새 나는, 생명력 넘치는 복음으로 가득한 공동체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