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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큰 믿음, 작은 믿음”
2026년 10월 3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8장 “큰 믿음, 작은 믿음”, 406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를 소개하시고,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8장에서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산 위에서 권위 있게 가르치신 주님이 이제 산 아래에서 그 권위를 능력으로 보여 주십니다. 먼저 8~10절 함께 읽겠습니다.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백 명 남짓한 병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입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관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요청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이 믿음은 올바른 권위를 제대로 아는 데서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평소 상관의 명령을 받고,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일상인 장교입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군사들이 움직이듯, 예수님 말씀 한마디에 병이 물러간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명령하실 권위가 예수님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예수님은 이 믿음을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진실로”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큰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의 권위 앞에 내 삶을 내어 드릴 때 비로소 칭찬받는 믿음이 됩니다. 그 결과 주님이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자 멀리있던 하인이 즉시 나았습니다.이어서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태는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바로 앞에서 주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어떤 지 말씀하셨습니다.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나선 제자들 앞에 큰 놀이 일어났습니다. ‘놀’로 옮긴 헬라어는 마태복음 다른 곳에서 지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다가 뿌리째 흔들리는 듯한 풍랑이었습니다.그 와중에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 위험 속의 단잠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짧은 기도는 그 뒤 모든 시대 교회가 풍랑 속에서 드려 온 기도가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복음에서 ‘믿음이 작은 자’라는 말은 제자들에게만 쓰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과 두려움이 뒤섞인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 결과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신약 원문에서는 ‘큰 고요’라고 묘사합니다. 큰 놀이 일던 바다에 큰 고요가 찾아왔습니다.앞서 살펴본 백부장의 모습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멀리 계셔도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바로 곁에 계셨는데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의 크기는 주님과 떨어진 거리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느냐로 정해집니다.주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기도한 일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반드시 우리 삶에 가장 위대한 은혜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풍랑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도 거센 비바람이 몰아닥칩니다. 건강과 자녀와 일터 문제가 인생의 배를 덮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주무시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우리와 한 배에 계십니다. 자녀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큰 풍랑을 큰 고요로 바꾸어 주시는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말씀을 이루시는 권능의 주 하나님, 백부장처럼 주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풍랑 앞에서 흔들릴 때에도 우리와 한 배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작은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오늘 하루 말씀 위에 서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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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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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구하고, 대접하고, 행하라”
2026년 10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7장 “구하고, 대접하고, 행하라”, 204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6장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켜야 할 경건과 일상을 알려 줍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일 염려를 맡기고 오늘 주신 은혜로 하루를 살라고 말씀 하십니다.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오늘 읽은 7장으로 마무리됩니다. 먼저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절에서 주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동사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한 번 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드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습니다. 둥근 돌은 떡덩이와, 뱀은 생선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식을 속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는 두말할 것 없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 말씀은 구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는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신실하심입니다.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그러므로 좋은 것을 받은 사람은 이제 좋은 것을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흔히 ‘황금률’이라 부르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 완성은 곧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듯, 이웃에게 좋은 것을 건네시기 바랍니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손길을 기억하시고 더 큰 은혜로 돌려주실 줄 믿습니다.이어서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산상설교의 마지막 비유입니다. 주님은 “나의 이 말”을 언급하십니다. 이제 바른 삶의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이 같아 보입니다. 차이는 폭풍이 올 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메마른 골짜기는 평소 물 한 방울 없다가도 큰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거센 물길로 변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칩니다. 반석 위의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래 위의 집을 두고는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십니다.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들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붑니다. 병이 찾아오고, 자녀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이 몰아칩니다. 그때 무너지지 않는 힘은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하는 데서 나옵니다. 오늘도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께 끊임없이 구하시길 바랍니다. 받은 은혜로 이웃을 먼저 대접하시길 바랍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당신이 하신 말씀을 위대한 희생과 사랑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시어, 말씀대로 사는 삶의 위대함을 눈부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하나님 나라 복음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더욱 섬기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씀의 반석 위에 세운 우리의 삶은 어떤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기도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못하여 모래 위에 집을 짓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믿고 날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옵소서. 받은 사랑으로 이웃을 먼저 대접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워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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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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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먼저, 그리고 오늘”
2026년 10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6장 “먼저, 그리고 오늘”, 382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5장 27~48절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새롭게 풀어 주신 말씀을 기록합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비추시는 아버지를 닮으라는 말씀입니다.이어지는 6장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경건과 일상을 다루십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 한가운데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이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면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하십니다.먼저 32~33절 함께 읽겠습니다.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25절부터 34절까지 ‘염려하다’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두려움이 섞인 걱정, 잠 못 이루게 하는 근심을 뜻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존이 걸린 문제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염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근심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먼저 보여 주십니다.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아버지를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솔로몬보다 아름답게 입히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는 하늘 아버지 이십니다. 따라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같은 내용을 표현할 때, 누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에만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하라’는 말도 아직 없는 나라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미 찾아온 하나님의 다스림을 삶의 중심에 모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의를 끊임없이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더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물론 손 놓고 기다리면 먹고 입는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도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우리도 땀 흘려 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더 많이 받는다는 거래 공식도 아닙니다. 주님이 금하시는 것은 수고가 아니라 염려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염려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 순서가 바로 서면 염려를 아버지의 손에 맡길 수 있습니다.이어서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주님은 염려의 범위를 내일로 넓히십니다. 사실 우리의 염려는 대부분 아직 오지 않은 날을 향합니다. 건강과 자녀와 노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농사와 일터의 앞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일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습니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내일도 거기 계십니다. 내일의 짐을 오늘 미리 질 필요가 없습니다.“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는 말씀은 삶의 괴로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날마다 괴로움이 있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다만 그 괴로움을 하루씩 감당하게 하십니다. 주기도문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의 만나처럼 오늘 필요한 은혜는 오늘 주십니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부활로 그 삶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여는 이 새벽,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내일의 염려는 내일을 다스리시는 아버지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신 하루를 감사로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넉넉히 채우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의 필요를 먼저 아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먹고 마시고 입는 일로 염려하며 순서를 잃어버린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오늘 주신 은혜로 하루를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염려 대신 감사가, 두려움 대신 믿음이 저희 삶을 채우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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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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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7~48절 “십 리를 동행하는 사랑”
2026년 10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5장 27~48절 “십 리를 동행하는 사랑”, 304장어제 읽은 5장 1~26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누리는 복과 그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빛은 감추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비추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27~48절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새롭게 풀어 주신 말씀을 기록합니다.먼저 41~42절 함께 읽겠습니다.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여기서 ‘억지로 가게 하다’는 당시 로마 군대 문화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은 식민지 백성에게 짐을 지워 길을 걷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장면에도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그렇게 걷는 오 리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굴욕적인 걸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리 뿐만 아니라 십 리를 동행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억울함을 억지로 삼키는게 아닙니다. 끌려가는 자리에서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오 리는 강요였지만, 나머지 오 리는 사랑입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42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제는 억지로 당하는 일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이웃의 요청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며 빌리려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무책임한 보증이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말고, 되받을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아끼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를 값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이어서 43~45절 함께 읽겠습니다.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예수님 당시 쿰란 공동체는 원수를 미워하라고 공공연히 가르쳤습니다. 듣는 이들에게 이웃은 동족 유대인이었고, 원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원수인 이방인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 그 시대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진리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남들을 짓밝고 올라 이기려는 세상과 전혀 다른 가르침이자 삶의 방식입니다.여기서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미운 사람까지 포함해 모두의 유익을 구하는 의지의 행동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사랑과 기도를 함께 말씀하십니다. 다만 이 말씀이 불의를 묵인하거나 악독한 폭력을 무작정 견디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움이 마지막 말이 되지 않게 하라는 교훈입니다.물론 현실은 냉혹합니다. 우리 삶에도 저마다 억지로 걷는 오 리 길이 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당신을 거역한 이들에게도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리십니다. 그 자비를 닮을 때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로 드러납니다.예수님께서 이 길을 먼저 걸으셨습니다. 주님은 골고다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그 위에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부활로 사랑이 미움보다 강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닮아 억지로 걷는 길에서 한 걸음 더 걸으시길 바랍니다. 도움을 구하는 이웃에게 손을 펴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온 세상을 덮는 위대한 사랑의 주 하나님억지로 걷는 길에서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오 리를 십 리로 걷는 넉넉한 사랑을 부어 주시옵소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힘을 주시고,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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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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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26절 “참된 복과 빛”
2026년 10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5장 1~26절 “참된 복과 빛”, 428장지난 주에 읽은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야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는 평범한 어부들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이들을 고치셨습니다.이어지는 5장부터 7장까지는 흔히 ‘산상설교’라 부르는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앉으시자 제자들이 나아왔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세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참뜻을 친히 풀어 주십니다. 그 첫마디가 바로 ‘팔복’입니다. 조금 길지만 3~10절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여기서 ‘복이 있다’는 말은 단순히 운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맛보기 시작한 사람이 마음 깊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복 있다고 부르신 사람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세상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의지할 데라고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이 말씀의 배경에는 이사야 61장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실 거라는 예언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3절과 10절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현재형으로 선언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기에, 형편은 여전히 고단해도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들의 것입니다. 동시에 위로와 기업과 하나님을 뵙는 일은 미래형으로 약속하십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룩한 역설입니다.따라서 팔복은 ‘이렇게 해야 복을 받는다’는 조건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선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 은혜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난과 슬픔의 자리에 계시다면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자리가 바로 주님께서 복을 선포하시는 곳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긍휼히 여기고 화평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이어서 14절 함께 읽겠습니다.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여기서 흥미로운 변화가 있습니다. 팔복은 ‘~하는 자’라는 3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11절에서 갑자기 “너희”로 바뀝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원어에서 이 ‘너희’를 일부러 강조합니다. 바로 팔복의 사람들, 가난하고 애통하며 박해받는 그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뜻입니다.또한 주님께서는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력해서 얻는 자격이 아닙니다. 은혜로 주어진 정체성입니다. 지난 주에 읽은 4장 16절은 갈릴리를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그 큰 빛이신 예수님께 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그러니 그 빛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산 위의 동네가 멀리서도 보이듯 드러납니다. 16절은 그 빛이 “착한 행실”로 드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나를 자랑하는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그 착한 행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형제를 향한 분노를 내려놓고,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빛을 비추라는 당부입니다.우리 정배교회도 중미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빛의 근원은 가장 가난하고 애통한 자리인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교회가 “빛의 여정”을 주제로 예배당을 정돈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활의 빛을 품고 오늘 하루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복 있는 자녀로 불러주시는 주 하나님빈손으로 나아온 저희에게 먼저 복을 선포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난과 슬픔의 자리에서도 이미 저희 것이 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큰 빛이신 주님을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긍휼과 화평의 착한 행실로 하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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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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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보시고 부르시다”
2026년 10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4장 “보시고 부르시다”, 449장어제 함께 묵상한 마태복음 3장은 세례자 요한의 강력한 회개 촉구를 보여줍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할 아무런 죄 없으시지만 요단강에서 요한의 손에 몸을 맡겨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철저한 겸손과 섬김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전히 드러나셨습니다.이어지는 마태복음 4장은 주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18~20절 함께 읽겠습니다.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0일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신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소중한 사명을 홀로 감당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랍비 수련생들이 스스로 스승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입니다. 당신이 주도적으로 제자를 찾아다니셨습니다. 이 때 주님이 제자를 선택하시는 이유를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던지고, 배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어부로서 보내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장 평범한 삶을 통해 드러난 자연스런 태도를 눈여겨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소명에 응답해 어마어마한 재산인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하는 모습만 보지 않으십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주목합니다. 초라하고 서툰 모습을 들여다 보십니다. 그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삼으십니다. 우리 역시 부르심에 응답해 인생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며 신실하게 나아가길 소망합니다.이어서 23~24절 함께 읽겠습니다.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예수님께서 행하신 세가지 주요 사역이 잘 드러납니다. 바로 ‘가르침’과 ‘복음 전파’와 ‘치유’입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주님의 이적이나 치유 보다 항상 ‘가르치심’을 앞에 배치합니다. 복음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야 병 고치는 예수님의 이적이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치유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정말로 신비로운 이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을 흥분시키는 이적보다 주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우선해야 합니다.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을 온전히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리석은 기복주의에서 벗어나, 인생의 여러 시련 속에서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더욱더 말씀 위에 굳게서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 복음의 온기를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약하고 연약한 이웃을 위해 섬김의 손길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눈여겨 보시고 모든 일생을 신실하게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말씀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 하나님거친 삶 한 복판으로 찾아와 제자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참된 가르침과 복음 전파와 치유를 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건강한 믿음과 소명을 품는 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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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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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사랑과 기쁨으로 향하는 길”
2026년 10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3장 “사랑과 기쁨으로 향하는 길”, 93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2장은 성탄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여줍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의 인도함을 받아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합당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반면에 헤롯 왕은 잔혹한 권력욕으로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하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에 천사를 보내어 애굽으로 피하게 하고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이어지는 3장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그를 향해 수많은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의 신발을 들 자격도 없다면서 철저한 겸손을 드러냅니다. 요한이 베푸는 물 세례는 상징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준비하는 예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참된 세례를 베푸십니다.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는 다스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한은 메시아를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주로 묘사합니다. 당시 종교 기득권들은 오만하게 구원을 독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자랑하며 스스로 알곡으로 여겼습니다. 전통과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눌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진정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율법으로 함부로 자신과 이웃을 정죄하지 않는 지 돌아봐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앞에 나아가 모든 판단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이어서 16~17절 함께 읽겠습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요한이 예고한 메시아가 마침내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만남은 주님이 몸소 세례 받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물속에 완전히 잠기셨다 올라오시는 이 행위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실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언이 울려 퍼졌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시에 나타난 성경에서 매우 드문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철저히 낮아지고 섬겼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찬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 길은 따뜻하고 눈부신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차갑고 힘겨운 여정입니다.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고된 나날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건져 올리실 손길을 의지하며 기꺼이 인생의 강물로 들어가야 합니다. 부활 생명을 의지하며 묵묵히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녀’로 부르실 줄 믿습니다.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본받아 섬김과 희생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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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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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 “나사렛 사람을 위한 경배”
2026년 10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2장 “나사렛 사람을 위한 경배”, 122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줍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첫 구절에서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소외 당한 여인 넷의 이름을 족보에 적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입니다. 이어지는 2장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후 펼쳐진 상황을 기록합니다. 먼저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동방에서 온 천문학자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준비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거룩한 사건 속에서 아기 예수님과 그 가족은 완전히 수동적인 모습으로 있습니다. 요셉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고, 마리아는 아무런 말이 없으며, 아기 예수님 역시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신화 속 인물처럼 이적을 행하거나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철저히 무력하고 조용한 아기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의 별을 움직이시고 이방의 박사들을 부르셔서 그 앞에 무릎 꿇게 하십니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들은 만왕의 왕께 드리는 고귀한 경배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메시아로 오신 주님의 정체성과 사역을 드러냅니다. ‘황금’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유향'은 주님의 대제사장적 희생 사역을, ‘몰약’은 장차 십자가에서 당하실 죽음을 암시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삶의 보배합을 열어 만왕의 왕이시며, 죄인을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이어서 22~23절 함께 읽겠습니다.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예수님의 탄생과 성장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돌아왔습니다. 이 모든 여정은 단순한 도망이 아닙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실 진정한, 새로운 출애굽을 드러냅니다.요셉은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꿈에서 본 계시대로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에 들어가 정착합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나사렛 사람’으로 불릴 거라는 구약 예언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무시하던 그 보잘것없는 동네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의 자기 낮춤과 겸손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언어 유희가 담겨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이새의 줄기에서 태어난 메시아로서 ‘가지’와 ‘나실인’이라는 의미가 비슷한 발음으로 함께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낮고 천한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 양평 서종면에 ‘정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저도 부임하기 전에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동네의 작은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위해 기뻐 받으시고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삶의 참된 주인이신 예수님께 오늘 하루도 저마다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시길 축원합니다.기도만왕의 왕이신 주 하나님이 땅에 한 아기로 오신 주님께 저희 삶의 보배합을 열어 드립니다. 헤롯과 같은 어리석은 탐욕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겸손으로 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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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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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구원과 임재”
2026년 10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1장 “구원과 임재”, 85장미리 말씀 드린바와 같이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마침 지난 9월 6일에 같은 본문으로 주일예배 설교를 했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그 핵심을 이 시간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마태복음을 비롯해 신약성경을 시작하는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계보”로 번역한 말은 ‘기원’, 즉 무언가의 근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족보를 가리킵니다. 그러면서 마태는 여러 이름을 나열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 14대, 포로기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를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매우 정교한 구성입니다.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얼마나 다윗처럼 강력한 존재인지를 뒷받침하는 힘 있는 조상들만을 언급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네 여인을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시킵니다. 바로 다말, 라합, 룻, 밧세바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족보에 여성의 이름이 오르는 것부터가 드문 일입니다. 거기다 이 네 명 모두 하나같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오히려 이 이름들을 족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 이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이름을 품기 합당한 삶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맥락 속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한 이름을 알려 줍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고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럼에도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녀가 낳을 아기의 이름을 지어 정식으로 자녀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요셉으로서는 너무나 큰 어려움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순종하며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그런데 ‘예수’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백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람들에게 불릴 이름을 천사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얼마든지 특별한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가장 평범한 이름을 선택하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참 사람이 되신 것과 같은 결단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뻔한 것으로 가장 놀라운 은혜를 이루셨습니다.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천사의 설명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바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라는 말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약속한 구원은 사람들이 기대한 구원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백성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당장 해결하기 원하는 삶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을 새롭게 하십니다.여기서 또 다른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을 더욱 생생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거듭 곱씹어야 할 생명의 진리입니다. 그 복음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 마음에 새기며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족보 속 네 여인과 같은 비참한 인생 속에 동행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위대한 구원을 마침내 이루십니다. 그 믿음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기도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는 하나님.저희의 죄를 구원하시고, 인생 한복판까지 걸어 들어오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앞에 무릎 꿇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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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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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장 “오직 주님만 섬기겠노라”
2026년 10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24장 “오직 주님만 섬기겠노라”, 212장*광고 다음주 월~화 목회자 정책세미나가 있습니다. 화요일 새벽은 자율적으로 기도 부탁드립니다.어제 읽은 여호수아 23장에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주님만을 사랑하라고 진심으로 당부하였습니다. 이어지는 24장은 여호수아서 전체의 마지막 장입니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을 세겜으로 불러 언약을 세웁니다. 14~15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여호수아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조상들의 역사를 돌이켜 보게 합니다. 지금까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돌보신 은혜를 강조합니다. 주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백성에게 베푸신 신실함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그들을 선택하여 자녀 삼으시고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마땅히 가나안의 우상이 아닌 오직 주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합니다.그런 까닭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결연한 선택을 촉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그러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이것은 곧 지금 우리를 향해 묻는 묵직한 물음표이기도 합니다. 물론 당장 눈앞에 가나안의 신상들은 없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 절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유혹하는 돈과 권력 앞에 흔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을 분별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나 개인은 물론이고 우리 가정이 오직 주님만 섬기기를 거듭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26~28절 함께 읽겠습니다.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여호수아는 백성과 맺은 언약의 조항들을 율법책에 철저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성소 옆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웠습니다. 이 돌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보여주는, 엄중한 ‘증거의 징표’를 의미합니다. 그 돌이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돌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들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인정하고 고백하였습니다.여러분의 삶에도 ‘증거의 돌’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거창한 물건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 깊이 모셔야 합니다. 그 거룩한 희생과 인내를 인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찬란하게 드러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참된 증거의 돌을 품고, 또한 증거의 돌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오늘까지 여호수아서를 마쳤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마태복음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구약 성경의 일정한 흐름을 함께 읽은 다음에는 신약을 묵상하며 신구약 성경을 번갈아 가며 설교할 예정입니다. 기도참되신 구원의 하나님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외친 여호수아의 다짐이 바로 저희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이 세상의 온갖 헛된 우상을 멀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만을 마음에 품기 원합니다. 가장 완전한 증거의 돌인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큰 슬픔으로 힘겨워하시는 이리브가 권사님을 하늘의 위로로 품어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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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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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3장 “조심하여 사랑하라”
2026년 10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23장 “조심하여 사랑하라”, 314장어제 읽은 여호수아 22장은 요단 동쪽 지파와 관련한 오해와 갈등 그리고 해결을 기록합니다.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던 동쪽 지파들이 요단 강가에 거대한 제단을 세웠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하나님을 반역한 것으로 파악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비느하스가 보낸 조사단이 동쪽 지파의 진심을 경청하고 다시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23장은 온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를 기록합니다.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의미를 백성에게 분명히 일깨웁니다. 이스라엘의 군사 능력의 성과가 아니라 주님께서 베푸신 승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군사 무장이 아닙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묵상하고, 그 말씀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온전한 순종입니다. 여기서 묵상이라는 말은 ‘웅얼거린다.’는 뜻입니다. 입으로 곱씹어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 역시 굳게 지켜야 할 거룩한 습관입니다. 무엇이 나를 진정 살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에 온전한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내 영혼 깊이 품어야 합니다. 성경을 즐겨 묵상해야 합니다. 단지 성경 문자에 얽매이는 게 아닙니다. 말씀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이 나를 사로잡도록, 어리석은 욕심과 감정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이어서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거둘 승리를 예고합니다. “한 사람이 천 명을 쫓는” 찬란한 영광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엄중하게 주의 시킵니다. 스스로 조심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도록 깨어 자기를 지켜 돌봐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인생을 거는 단호한 결단입니다. 이러한 요청 앞에 우리는 움츠러듭니다. 참사랑을 실천하기에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고 다시 사신 부활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사랑에 반응해야만 스스로 조심하며 진실로 주님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삶의 여러 시련 속에 본질을 잃어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거짓에 속으면 안 됩니다. 힘을 움켜쥐고 휘두르려는 어리석은 오답을 물리쳐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천 명을 쫓아낼 줄 믿습니다. 기도말씀으로 사랑의 길을 보이시는 주 하나님.인생의 전쟁에서 생명의 진리를 날마다 깊이 묵상하길 소망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곱씹으며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굳게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통해 더욱 깨어 자신을 살피길 구합니다. 주님 만을 진실로 사랑하며 따뜻한 온기로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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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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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2장 “함께 더욱 사랑”
2026년 10월 1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22장 “함께 더욱 사랑”, 220장어제 읽은 여호수아 21장은 레위 지파를 끝으로 가나안 땅 분배를 마친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 졌음을 선언합니다. 이어지는 22장은 전쟁을 마치고 요단강 동쪽으로 돌아가는 세 지파에 대한 기록입니다. 바로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의 절반입니다. 그들을 향해 여호수아는 이렇게 단단히 당부합니다. 4~5절 함께 읽겠습니다.4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이 세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될 때,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아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지파들을 위해 함께 무장하고 최전선에 서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형제들을 위해 헌신하며 모세와 여호수아 앞에서 했던 언약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충성과 수고를 크게 칭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안식을 누리도록 그들을 축복하여 돌려보냅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편 지파를 향해 거듭 당부합니다. 5절에 적힌 동사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친근히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치 강력한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하나님께 밀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주님의 백성이 평생 붙잡아야 할 중요한 삶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그 어떤 풍요와 빈곤, 성공과 실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긴밀하게 붙어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이어서 28~29절 함께 읽겠습니다.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요단 동쪽 지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요단 강가에 눈에 띄는 거대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단 서쪽 지파들은 동쪽 지파가 실로 성막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님 거역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로 인한 심판을 떠올리며 분노했습니다. 자칫 내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그러자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10명의 지피 지도자들이 요단 동쪽으로 찾아갑니다. 동쪽 세 지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제단은 번제나 소제를 드리기 위한 독립된 제단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이라는 지리적 장벽으로 훗날, 서쪽 지파 자손들이 동쪽 지파 자손들의 야훼 신앙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 때 자기들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세운 제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이 멈추고 감격스런 화해와 찬양으로 이어졌습니다. 동쪽 지파의 순수한 신앙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더욱 하나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삶에도 귀한 깨우침을 안겨 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약해 쉽게 오해하고 분노합니다. 불필요한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성도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섣불리 화를 나고 싸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먼저 다가가 귀 기울이여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기 위해 먼저 참고 물러설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참으로 친근히 지내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몸소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을 풍성히 이루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기도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 하나님.오직 주님의 말씀에 붙어있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성도 간에, 혹은 이웃 간에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날 선 비난을 거두고 복음 안에서 경청하며 화해를 이루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맡겨진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답게 살아가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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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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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1장 “마침내 이룬 안식”
2026년 10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21장 “마침내 이룬 안식”, 393장어제 읽은 여호수아 20장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도피성’에 대해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예외 없이 온 백성을 보호하는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억울한 피로 더럽히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21장은 여호수아 13장부터 시작한 가나안 땅 분배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 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지금까지 여러 차례 확인했듯이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과 달리 가나안 땅을 따로 얻지 못했습니다. 주 하나님 자신이 바로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지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받은 기업 중에서 성읍과 들녘 일부를 떼어 레위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은 그렇게 받은, 각 지파의 땅에 흩어 살면서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에 머물도록 섬기는 영적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을 알려줍니다. 레위 지파 외에 다른 지파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싶습니다. 레위인들에게 떼어줄 목초지가 너무나 아까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나눔이 오히려 그들을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하였습니다. 나누어준 땅에 사는 레위인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과 뜻을 가까이 하기 때문입니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철저히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을 따라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헌금 많이 하는 걸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내게 주신 돈과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내어드리시길 바랍니다. 예배 때 드리는 예물은 그 일부이자 연습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삶 속에서 나눔을 계속 이어가시길 축복합니다.이어서 44~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마침내 가나안 땅 분배를 마쳤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오랜 세월 이어진 신실한 언약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안식은 단순히 전쟁이 그친게 아닙니다. 조상들의 방랑, 이집트에서 겪은 노예살이, 그리고 40년에 걸친 고단한 광야 훈련을 완전히 끝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근본적이고도 지속적인 평안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이루어 졌습니다.참 이스라엘로서 진정한 소망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모든 사람은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며 여러 모양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모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언약의 증표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죽임당하신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참 생명과 희망이 우리 삶 가운데 찬란하게 완성될 그날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그 믿음 가운데 기꺼이 나누고 섬기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이루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언약을 다 이루시어 안식을 안겨주시는 주 하나님레위인들을 위해 나눈 성읍과 목초지처럼, 저희 삶에 선물로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의 뜻을 위해 기꺼이 내어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쟁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저희에게 마침내 허락하실 안식을 기대합니다. 말씀이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복음이 분명히 완성될 줄 믿습니다. 그 날을 향한 소망 가운데 오늘의 일상을 소중히 가꾸며 주위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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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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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장 “모두에게 열린 도피성”
2026년 10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20장 “모두에게 열린 도피성”, 70장지난 주에 읽은 여호수아 19장은 가나안 땅 분배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여호수아는 최고 지도자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기업을 받습니다. 그것도 험한 산지입니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이어지는 20장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약속의 땅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제도를 실천합니다. 바로 ‘도피성’제도입니다. 먼저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하나님은 실수로 누군가의 목숨을 해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도피성’을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세심한 돌봄입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는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더 이상 억울한 피흘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금지하셨습니다. 도피성으로 찾아온 사람을 지켜 보호하셨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도피성에 머물던 사람은 당시 대제사장이 죽고 나면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은혜를 입습니다. 이 때 대제사장의 죽음은 죄를 덮고 대신 짊어지는 속죄를 상징합니다. 그 결과 도망쳤던 사람은 단지 형벌을 면제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금 약속의 땅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도피성으로 확인합니다.이어서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도피성은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세 곳씩 고르게 배치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피성으로 향하는 도로는 언제나 넓게 정비되었습니다. 또한 길목마다 ‘도피성’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밤중에도 길을 잃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허울뿐인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담은 제도라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냅니다.이처럼 찬란한 사랑으로 가득한 도피성의 보호 대상을 주목해야 합니다. 생명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특정 민족이나 신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외국인들에게도 도피성의 문을 여셨습니다. 고대 사회 이방인들에게는 아무런 법적, 사회적 보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드넓은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영원한 도피성을 세우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주님 품에 안겨 구원을 받았습니다.동시에 구원받은 백성의 소명을 확인합니다. 실수로 저지른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따뜻한 돌봄의 손길을 건네야 합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나누고 편을 가르지 말고 넉넉히 품을 넓혀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사랑을 통해 이 시대의 도피성이 든든히 세워질 줄 믿습니다. 기도드넓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으시는 주 하나님약속의 땅 곳곳에 도피성을 세우시고, 성으로 향하는 길을 환하게 여신 찬란한 은혜를 말씀으로 거듭 확인합니다. 이 땅에 진정한 도피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삶과 정배교회를 통해 주님의 참된 돌보심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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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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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9장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 앞에서”
2026년 10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여호수아 19장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 앞에서”, 325장어제 함께 읽은 여호수아 18장은 아직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에 대해 기록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책망합니다. 그런 다음 지파별로 3명씩 총 21명을 모아 땅을 둘러보고 지도를 그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두고 제비를 뽑아 나누었습니다. 각 지파의 영토와 경계를 인간의 논리가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정하는 모습입니다.오늘 읽은 19장은 그 일곱 지파의 땅 분배 작업을 완료하는 내용을 기록합니다. 먼저 49~51절 함께 읽겠습니다.49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지파와 가문 별로 가나안 땅을 나누는 것을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상당한 긴장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이끄는 지도자 여호수아는 막중한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다면 얼마든지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땅을 약삭빠르게 먼저 차지하지 않았습니다.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이 모두 경계를 따라 땅 나누기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기업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정당한 권리를 내려놓고 욕심을 물리쳤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가 요구한 땅은 ‘딤낫 세라’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험준하고 황폐한 미개척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 왕의 왕이시지만,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내 이익을 따지기 전에 먼저 내려 놓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이어서 51절 함께 읽겠습니다. 51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약속의 땅 분배를 완수할 때 등장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바로 ‘제사장 엘르아살’, ‘눈의 아들 여호수아’ 그리고 ‘지파의 족장들’입니다. 각각 종교적·영적 권위, 정치·군사적 지도권, 각 지파 공동체를 대표합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실로 회막 문 앞에서 아름답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건강한 국가는 사회의 모든 요소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 비로소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개인과 가정 역시 건강한 균형 속에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침내 땅 나누는 일을 마쳤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이 긴 시간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보낸 고된 노예 생활과 40년에 거친 기나긴 광야 생활 과 가나안 땅에서 치른 치열한 전쟁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참된 안식의 터전이 온전히 마련되었습니다.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또 다른 이집트와 광야와 가나안을 거치며 고단한 삶의 여정을 이어갑니다. 그 언젠가 다시 오실 주님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단지 먼 미래의 일만이 아닙니다. 삶의 순간순간, 앞으로 다가올 평강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실 구원의 완성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 그 은혜의 조각을 발견하고 동참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공동체를 위해 양보하고 욕심을 비운 여호수아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의 희생을 발견합니다. 저희 또한 주님을 본받아 비우고 따르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삶의 모든 영역이 항상 주님 앞에 바로 서길 소망합니다. 그 언젠가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기대하며,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샬롬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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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