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모드

본문, 제목 날짜
민수기 27장 “담대한 기도”
2026년 6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7장 “담대한 기도” 찬송가 365, 369장어제 읽은 민수기 26장은 두 번째 인구 조사를 기록합니다. 그 목적은 가나안 땅 분배입니다. 각 지파와 가문이 농사지을 땅을 나누는 과정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27장은 매우 도발적인 내용을 보여 줍니다.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 지파의 자손들 중 슬로브핫의 딸 다섯 명이 모세와 제사장 앞에 찾아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을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3 “우리 아버지는 광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여호와께 맞서 모였던 고라흐 무리에 들지는 않았고, 자신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4 아들이 없다고 아버지 이름을 가문 가운데서 빼내려 하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아버지가 차지했던 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아버지 형제분들 가운데 머물게 해 주십시오.”토지를 나누기 위한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는 남성 중심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나 아들, 혹은 남자 형제가 없는 여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삶의 기반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민수기 26장 1~2절에 따르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되었습니다.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기준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소는 모세가 혼자 있는 집무실이 아닙니다. 본문 27장 2절에 따르면 그곳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인 회막문 앞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7절 함께 읽겠습니다.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하나님은 불쾌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기도에 경청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수정하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오류를 인정하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처럼 말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장면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흔드는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시는 말씀과 행동은 역동적으로 달라집니다. 그 대상이 너무나 연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까이 다가오시며 당신을 낮추시는 주님의 모습은 시시각각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당돌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점잔을 빼면서 고상한 모습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마다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가장 치열한 문제들, 내면을 갉아 먹는 제일 힘겨운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안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과감히 그리고 솔직하게 토로해야 합니다. 담대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도에 귀 기울이시어, 우리 삶을 참으로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이 드리는 어떤 기도에도 언제나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저마다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를 주님께서 그 누구보다 잘 아실 줄 믿습니다. 험난한 아픔과 시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당돌한 기도를 드린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우리 역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전한 응답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24
민수기 26장 “인구 조사와 제비 뽑기”
2026년 6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6장 “인구 조사와 제비 뽑기” 찬송가 440, 442장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민수기”의 제목은 ‘백성의 숫자를 센 기록’이라는 의미입니다. 민수기의 시작인 1장부터 나오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러한 인구 조사가 오늘 읽은 26장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 자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 즉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지리라" 하신 약속이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출애굽 직후 실시했던,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인구 조사 결과는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 시행한 2차 조사의 결과는 601,730명입니다. 숫자로는 미세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온 후 바로 다음 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의 구원을 모독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출애굽 첫 번째 세대를 모두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광야 여정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숫자를 거의 비슷하게 지켜 주셨습니다.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광야의 척박함도 주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영영 버려진 것 같은 싸늘한 심판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사랑 마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고 지켜 가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두 번째 인구 조사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가나안 땅 분배입니다. 53~55절 함께 읽겠습니다.53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55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과 배려를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은 머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따라서 농사 지을 땅을 잘 나누는 게 민족 전체의 운명이 걸린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원칙으로 토지를 분배해야 합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인구 비례’와 ‘제비 뽑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키십니다. 땅의 크기는 사람 숫자로, 위치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셨습니다.우선 54절에 보면 인구 조사 결과에 따라 지파별 땅의 크기를 정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은 지파가 무리하게 좁은 땅에 사는 불편함을 이해하셨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적은 지파가 지나치게 넓은 땅을 받았을 때, 주변 지파의 시기심을 헤아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위치는 제비뽑기로 정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판단과 필요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일깨우는 은혜의 장치입니다. 삶의 현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다스림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셨습니다.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질서와 균형의 하나님입니다. 자녀들의 일상을 보살피십니다. 연약한 인간이 감당 못 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십니다. 고단한 형편을 배려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준엄한 다스림을 펼쳐 보이십니다.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사명을 보이십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복음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짊어지셨습니다.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아픈 몸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오르시어 당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마치 제비뽑기로 받은 마음에 들지 않는 땅처럼, 당황스럽고 불편한 부르심을 묵묵히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인생의 여정을 거쳐 하나님의 아름다운 언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새 희망을 열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셨음에도 백성을 지켜 보호하신 은혜의 손길을 높여 찬양합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더욱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나안 땅을 나눌 때에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시며 동시에 제비를 뽑게 하신 균형과 조화를 깨닫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23
민수기 25장 “하나님의 질투”
2026년 6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5장 “하나님의 질투” 찬송가 435, 436장민수기 22~24장은 모압 왕 발락과 주술사 발람의 이야기를 길게 기록합니다. 권력자가 큰 돈을 들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그 누구도 감히 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존귀한 백성인지 분명히 드러납니다.하지만 이어지는 25장은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욕망 앞에 이스라엘이 몹시 연약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렀을 때, 거기에 사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단순히 평범한 성인 남녀의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우 문란하고 방탕한, 성적 타락을 뜻합니다. 이러한 범죄는 단순히 성윤리만 무너뜨린게 아닙니다. 2절에 따르면 우상숭배로 이어졌습니다. 자기에게 쾌락을 안겨주는 여인들에 손에 끌려 이스라엘의 많은 남성이 모압의 신에게 절하고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몹시 진노 하십니다.얼핏 이런 장면이 오늘 우리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성범죄와 노골적인 우상숭배를 할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타락의 본질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아닌 것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는 실체를 분별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듣던 대로 주일 아침에 하는 TV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강력한 돈의 마성과 끊임없이 목마르게 하는 명예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모압 여인이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이 반복하는 죄악에 분노한 하나님은 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전염병이 퍼졌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충격에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 때,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 ‘시므리’라는 사람이 ‘고스비’라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죄가 지니는 무서운 속성을 확인합니다. 몹쓸 병이 돌아 사람들이 신음하고, 주님 앞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할 뿐입니다. 이런 끔찍한 죄악을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대신해 처단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질투’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신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단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이스라엘이 우상에게 마음을 뺏긴 모습이 격렬히 질투를 느끼셨습니다. 비느하스는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범죄한 사람들을 단호하게 처단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격정적으로 뛰는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진리를 확인합니다.따라서 오늘 본문에 담긴 엄숙한 심판의 뒷면에 있는 주님의 은혜를 거듭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화를 내며 죄를 벌하시려는 모습의 바탕에는 그만큼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지 벌을 피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벌벌 떨기만 한다면 그건 건강한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그 전에 주님의 드넓은 사랑을 먼저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에 반응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사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따스한 사랑으로 품으실 줄 믿습니다.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어느샌가 주위를 둘러싼 모압 여인들을 발견합니다. 죄악으로 유혹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경배하게 하려는 탐욕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저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살아가며 복음의 길을 걷는 신실한 자녀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13
민수기 24장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2026년 6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4장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찬송가 383, 384장민수기 22장과 23장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모압 왕 발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주술사 발람은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에 두려워 하였습니다. 발락의 기대와 달리 도리어 이스라엘을 향해 축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발락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발람에게 저주를 요구했습니다. 오늘 읽은 24장은 세 번째 제단을 쌓은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여줍니다. 이때, 브올산 꼭대기에 선 발람의 시선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분명 저주를 위해 고용된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광야의 먼지 속에 흩어진 무리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5, 6절 함께 읽겠습니다.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발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치 물 가의 백향목 같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은 전혀 아닙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 이곳저곳을 돌며 너무나 지친 상태입니다. 지금과 같은 목욕이나 미용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험한 여정을 지나며 땀과 먼지로 얼룩진 몰골입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그들을 향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람의 찬탄은 단지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겉모습 때문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편과 상황과 무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가득히 비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비루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었기에 물가의 나무들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무려 세 번이나 축복을 쏟아내는 발람에게 결국 모압왕 발락은 크게 분노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사로잡힌 발람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여기서 발람은 훗날 이스라엘에게서 나올 한 별과 한 지팡이를 언급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별은 광야에서 죽어가는 구세대가 아니라 약속의 땅에 발을 내디딜 새로운 백성을 향해 떠오르는 희망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계속해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숨을 거두는 심판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실하신 구원을 마침내 이루십니다. 단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이룰 자손들을 향해 이루실 놀라운 계획을 선언하였습니다.우리 역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안에 있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별이자 지팡이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는 참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위한 찬란한 뜻을 펼치고 기어이 완성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보낼 하루는 그 구원을 향한 소중한 과정입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자녀로 빚어가시는 손길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신실한 품 안에 안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은혜로우신 주 하나님사람들이 비웃더라도, 심지어 스스로 자신을 초라하게 여길 지라도, 그런 저희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아름답게 세워 가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찬란한 별과 지팡이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오늘 저희를 위한 신실한 언약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12
민수기 23장 “진실하신 하나님”
2026년 6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3장 “진실하신 하나님” 찬송가 413, 419장어제 읽은 민수기 22장은 이스라엘이 자기들 땅을 침범하자 두려워하는 모압 왕 발락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인정받는 주술사인 발람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합니다. 발람은 망설임 끝에 결국 발락에게로 향합니다. 발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신앙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만큼 단호하고 엄중하게 발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23장은 그 다음에 일어난 장면을 보여줍니다. 모압 왕 발락으로서는 몹시 기대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렵게 모신 발람이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를 퍼붓길 기대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제단을 마련하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엉뚱한 소리를 외칩니다. 7, 8절 함께 읽겠습니다.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권력자의 어떤 치밀한 계획도 결국 하나님의 뜻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발람을 붙잡은 주님의 다스림을 함부로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사람을 결코 세상이 저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지 않은 사람을 악인이 꾸짖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이 시대 진정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악한 사람들의 공격을 당합니다. 심장을 흔들리게 하는 악담을 듣기도 합니다. 지치고 주눅 들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그 어떤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더욱 담대하시길 소망합니다. 예상과 다른 발람의 예언에 발락은 당황해 합니다. 화를 내며 다른 곳으로 옮겨 두 번째 제단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드러난 주님의 성품을 주목해야 합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하나님은 거짓말 하지 않으십니다. 관련해서 민수기 1장에 기록된 인구 조사를 떠올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별과 모래와 같은 자손”이 생생히 이루어진 결과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겪은 수많은 좌절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분명히 이루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 진실한 사랑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안에 놀라운 은혜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가장 위대한 복음입니다. 이런 진리는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세상의 거짓을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시련에 무너지지 마시길 바랍니다.그 대신, 오늘 하루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마음에 품고 참 평화를 누리고 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진실한 언약의 주 하나님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저희를 날마다 지켜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저주와 악담도 결코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참되신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광야 같은 인생 길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팔에 안겨 참된 쉼과 위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11
민수기 22장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2026년 6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2장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찬송가 198, 200장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있었던 매우 흥미로운 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분명 고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 외부의 침략 등 괴롭고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22장은 이스라엘 역시 주변 다른 나라들에게 상당한 위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입니다. 모압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많은 무리의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침략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압 왕 발락은 특단의 대처를 마련합니다.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발락은 모압 지역의 가장 유명한 점술가인 발람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옛날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술을 하는 사람에게 막강한 권위를 부여하였습니다. 모압 왕으로서는 최선의 조치였습니다.점술가 발람은 갈등을 느낍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그가 결코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모압 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은 신하들을 보내 발람을 설득합니다. 실갱이가 이어지다가 발람은 그들과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납니다. 하지만 다음날 신비로운 일을 겪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가 발람을 가로 막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전날 주님의 말씀과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정답을 파악하긴 힘들지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술사 발람을 모압 왕 발락에게로 보내신 이유는 그가 당신의 올바른 말씀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발람은 겉으로는 순종하면서도 속에는 모압이 제시한 금은보화에 눈이 멀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그의 본심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발람이 보지 못한, 칼을 든 천사를 그가 탄 나귀가 알아보고 피하려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을 다친 발람이 나귀를 죽이려 하자 천사가 가로막는 동화같은 상황을 거쳐 마침내 모압 왕에게 도착했습니다. 성대하게 자기를 맞아주는 발락에게 발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모압 왕이 화려한 보화를 제시하며 주술사를 부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가 신의 권위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말을 그가 대신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만을 선포하겠다고 합니다. 발람에게 대단한 결심과 의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발람의 다짐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따른다면,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본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호흡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루하루 일상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말씀을 맡은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분노와 저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늘 하루, 주어진 소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만유의 주 하나님공포에 싸여 누군가를 향해 저주를 쏟아부으려는 모압 왕 발락에게서 저희를 발견합니다. 용서와 사랑 보다는 소리 높여 악담을 외치려는 연약함을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거듭 명령하신대로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영혼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이신 참 사랑이 입술과 삶을 통해 흘러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10
민수기 21장 “쳐다본즉 살더라”
2026년 6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1장 “쳐다본즉 살더라” 찬송가 252, 254장민수기 20장은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이라는 출애굽 1세대의 죽음을 보여줍니다. 그 혼란의 시기 갈증으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은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자체를 부정하며 악담을 내뱉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는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지팡이를 휘둘러 반석을 쳤습니다. 그 결과 물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모세에게 가나안 진입이 금지 되는 엄중한 심판이 내려졌습니다.이어지는, 오늘 함께 읽은 21장은 앞에 펼쳐졌던 이스라엘의 갈등과 혼돈을 바탕으로 합니다. 먼저 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이 아닙니다. 단지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훈련하고 다듬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돌아가게 하신 바탕에는 분명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으로 세워가시는 중요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편하게 머무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떠나 이동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는 당장의 감정과 욕구가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질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원망을 쏟아내며 은혜로 주신 양식인 ‘만나’를 두고 ‘하찮은 음식’이라고 폭언을 내뱉었습니다.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험한 길을 돌아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에 이르는 엉뚱한 길로 등 떠밀어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게 하찮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이끄시어 만나로 먹이심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뱀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은 곧바로 회개하였습니다. 주님은 백성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살릴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8~9절 함께 읽겠습니다.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하나님이 제시하신 해결책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담긴 주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선 시선을 높이 하늘에 두게 하셨습니다. 눈길을 땅에만 두고 지금 내 문제에만 골몰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올려다 보며 하나님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복잡한 고행이 아닌, 그 단순한 순종으로 그들을 고치시고 회복하셨습니다.때로 불뱀에 물린 순간이 찾아옵니다. 거친 인생 길에 후회와 상처로 몸부림 치곤 합니다. 그때, 하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정확하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 눈길의 차이가 삶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탄식하며 당신을 우러러보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저희 모든 인생이 주님께서 선하게 이끄시는 구원 여정임을 고백합니다. 때로 원하지 않는 길로 돌아갈 때 원망을 쏟아내는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눈길을 하늘에 두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9
민수기 20장 “말씀을 거스를 때”
2026년 6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0장 “말씀을 거스를 때” 찬송가 212, 213장민수기 20장은 한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미리암입니다. 단순히 모세의 누나인 것을 넘어서는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여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4절에 보면 아론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역시 단지 모세의 형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막중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물론 둘 다 흠결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출애굽 1세대를 이끈 든든한 기둥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세대교체 시기 밀어닥친 혼란을 보여줍니다. 4, 5절 함께 읽겠습니다.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이스라엘은 갈증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광야를 지날 때 물이 부족하다면 불평을 쏟아낼 겁니다. 문제는 악담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에 답긴 하나님의 은혜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끄시는 광야를 ‘나쁜 곳’이라고 폄하 했습니다.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두고 푸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끄시고 돌보신 주님의 섭리 자체를 무시하는 악담을 쏟아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는 우연이 아닙니다. 고난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런데 모세 역시 평정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해서 물이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뿜어져 나온 결과는 같습니다. 사실 모세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닙니다. 그냥 반석을 향해 외치나, 지팡이를 휘두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행동의 깊은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의 능력을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마치 자신의 지팡이에서 나오는 ‘마술’로 전락시켰습니다. 홍해를 가를 때 그리고 아말렉과 전투에서 이길 때를 비롯해 출애굽 여정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는 위기 가운데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자기 감정과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준엄한 심판 선고를 받았습니다.이러한 모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공격을 당할 때, 사방으로부터 우겨 싸임을 당할 때 누군가의 참 인격과 신앙이 드러납니다. 그때 모세처럼 섣불리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혹은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잘못된 방법으로 나를 높이고자 해서도 안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발걸음을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타는 목마름에, 억울한 원성에 지나치게 마음 상하고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신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를 때 진리의 맑은 생수가 우리 영혼을 적실 줄 믿습니다.기도생명의 근원이신 주 하나님살아가며 극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여러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느낍니다. 신음이 어리석은 원망을 거쳐 악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잠잠히 말씀에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헛된 감정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십자가 복음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6
민수기 19장 “정결하게 하는 손길”
2026년 6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9장 “정결하게 하는 손길” 찬송가 250, 251장현대사회는 ‘죽음’을 사람들로부터 멀리 치워둡니다. 시체를 가까이하는 것은 가족이 숨을 거두었을 때, 장의사가 말끔하게 수습한 다음입니다. 시신은 영안실을 거쳐 화장터 혹은 묘지로 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평생 몇 번 겪기 힘든 사건입니다. 하지만 옛날 서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나 척박한 광야를 지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숨을 거둔 이들을 위한 장례를 수시로 경험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시체를 멀리해야 합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칠일 동안 더러운 상태라는 선언을 듣습니다.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지극히 가까운 현실을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신을 만진 건 단순한 위생 관념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비상 상황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죽음이 진영 내부로 침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차단하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영원히 부정하다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에 담긴 율법의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을 깨끗하게 다시 회복하십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정결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을 새롭게 하는 은혜의 통로를 건네십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시신으로 더럽혀진 사람에게,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섞은 물을 뿌립니다. 그가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으면 그날 저녁에 정결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정결한 사람’입니다. 더러운 사람은 또 다른 부정한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깨끗한 사람만이 더럽혀진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회복의 손길을 내밀 수 없습니다.예수님이 그러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잠깐은 율법 기준으로 정결하다고 판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러저러한 죽음의 현실 가운데 부정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다릅니다. 영원히 정결하십니다. 그렇기에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습니다.내 연약함과 부정함을 겸손히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그런 우리를 구하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고 숨을 거두신 놀라운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깊고 깊은 절망에서 일으켜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신다는 진리를 마음 깊이 품어야 합니다.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과 가정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마치 시체와 같은 악취를 풍기는 모든 악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주위를 생명으로 물들이시길 바랍니다. 어둠에 사무친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건네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하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품으시어 죽음을 넘어 참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때때로 저희는 죽음을 가까이 합니다. 탐욕이 썩은 악취를 풍깁니다. 분노로 누군가를 노려봅니다. 불평으로 주위를 어지럽힙니다. 그런 저희를 위해 아무런 죄 없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위대한 복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은혜를 힘입어, 어둠에 둘러싸인 이들에게 생명의 손길을 건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5
민수기 18장 “소금 언약”
2026년 6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8장 “소금 언약” 찬송가 393, 397장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18장은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응답입니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죽어가는 구세대’와 ‘소망의 신세대’ 사이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반역으로 얼룩진 구세대는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8장의 ‘거룩한 질서’를 통해 살아남은 신세대가 더 이상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선 성소의 거룩함을 지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를 명확하게 구분하셨습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2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섬기며 백성의 죄를 담당합니다. 나머지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제사장들을 도와 일을 합니다. 제사장들과 달리 지성소의 기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얼핏 차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에는 동시에 책임의 무게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한쪽이 우월한 게 아닙니다. 각자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오늘날 교회에 구약의 직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중요한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각자 맡은 사명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목회자로 다른 누군가는 항존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교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맡은 봉사도 각각 다릅니다. 이를 두고 시기하거나 경계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각각 부르심의 자리와 책임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소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거룩하게 부름받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는 다른 지파들과 다른, 치명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나안에서 땅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땅이 없다는 것은 경제적 생존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더 놀랍고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옛 서아시아 사람들에게 소금은 단순히 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는 시대에 음식이 썩지 않게 보존하는 매우 중요한 재료입니다. 땅은 가뭄이나 메뚜기 떼나 전쟁으로 언제든지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금 언약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줄”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위해 제사를 통해 직접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토지’를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아무런 재산 없이 이상만을 좇아 살라는 뜻도 전혀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모으는 것 자체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삶을 이끄는 궁극적인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참된 소금 언약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사랑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놓은 현실에 넘어지지 않고 새롭게 일어날 힘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우리를, 주님께서 소금과 같은 은혜로 지켜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은 차별이 아닌, 각자 소중한 소명임을 깨닫습니다. 맡겨진 사명이 클수록 책임 또한 무거움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역할을 남들과 어리석게 비교하지 않고 충실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언약으로 오늘 하루도 지켜 돌보심을 고백합니다. 때로 삶이 지치고 흔들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에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 희망으로 굳게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4
민수기 17장 “지팡이에서 피어난 꽃”
2026년 6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7장 “지팡이에서 피어난 꽃” 찬송가 380, 382장민수기 16장은 고라 일당의 반역을 묘사합니다. 출애굽을 시작한 이후 이스라엘을 덮친 가장 암울한 위기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개입으로 악한 시도가 좌절되고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한 순간에 바뀔 리 없습니다. 여전히 남겨진 백성에게는 커다란 아픔과 충격이 자리 잡았을 겁니다.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처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암흑의 절정입니다.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17장은 경이로운 생명의 신호로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 줍니다. 3~5절 함께 읽겠습니다.3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4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하나님은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지팡이는 한 지파의 지도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일상적인 도구입니다. 이미 모세의 권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각 지파의 지팡이를 가져와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과정은 민수기 1장과 2장의 인구조사로 세운 지파의 질서가 반역으로 인해 무너졌음을 전제로 합니다. 지팡이 시험은 그 백성을 이끌 ‘권위의 근거’를 다시 확립하는 절차입니다.하나님께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5절 말씀과 같이 당신이 ‘택한자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것입니다. 지파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재앙으로 몰아 넣었던 원망의 뿌리를 뽑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우는 질서를 견고히 하십니다. 하루가 지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8절 함께 읽겠습니다.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대제사장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맺혔습니다. 여기서 살구 열매는 히브리어로 <샤케드>입니다. ‘지켜보다, 깨어 있다’라는 뜻의 <샤카드>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입니다. 수 많은 꽃과 열매 중에 왜 굳이 ‘살구나무 꽃’을 피우셨을까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살구나무는 겨울이 채 가기 전 봄의 전령으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달리 말하면 ‘싸늘한 죽음 가운데 맞이하는 따스한 희망의 징조’ 입니다. 고라 자손으로 대표되는 옛 세대의 반역은 영적 겨울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차디찬 계절을 뚫으셨습니다. 당신의 약속을 ‘깨어 지키신다.’는 <샤카드>를 살구나무 꽃, 즉 <사케드>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주권적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하였습니다. 가장 끔찍한 저주와 절망을 거쳐 부활의 생명과 희망을 눈부시게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메마른 지팡이와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차디찬 겨울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아픔과 고난의 시간을 지날수록 주님께서 우리를 날마다 깨어 지키신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생생히 보여주시려 생명의 꽃을 피우십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이루신 향기를 영혼에 머금고 무너진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을 새롭게 회복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날마다 자녀들을 지켜 돌보시는 하나님.참혹한 아픔과 절망 속에 찾아오신 생명을 꽃피우신 위대한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이루신 것처럼, 메마른 저희 눈물을 받으시어 참된 희망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복음을 붙잡고 무너진 삶을 딛고 일어나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를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3
민수기 16장 25~50절 “내가 서 있는 그곳”
2026년 6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6장 25~50절 “내가 서 있는 그곳” 찬송가 545, 546장그저께 읽은 민수기 16장 앞부분은 고라 일당의 반락 시도를 보여줍니다. 고라는 이스라엘 안에서 높은 신뢰와 지지를 받는 지도자 250명을 끌어모았습니다. 거기에 맞는 논리도 계발합니다. 치밀한 준비를 짐작하게 합니다. 모세를 끄집어 내리고 자기들이 권력을 쥐려 하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르우벤 지파와 레위인으로서 열등감이 깔려 있습니다. 모세로서는 너무나 커다란 배신감과 함께 인생 가장 큰 위기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경청하고 엎드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고라가 이끄는 반역범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전에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26~27절 함께 읽겠습니다. 26 모세가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 27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하나님은 일부의 범죄를 두고 이스라엘 모두를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노를 절제 하셨습니다. 나머지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함께 벌을 받지 않도록 구분하셨습니다. 백성 사이가 확 나뉘어집니다. 이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인정 받으며 권력을 지녔으나 반역한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이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명확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인간은 모두 연약합니다. 누구나 선인과 악인, 의인과 죄인 사이를 수없이 오갑니다. 동시에 하나님 앞에 명확히 나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단순히 구원에 관한 교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진지하게 따르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사랑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38절 함께 읽겠습니다.38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들의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철판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하나님은 반역자들이 들고 있던 향로를 펴서 금속판으로 만들어 제단을 씌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릴 때마다 번쩍거리는 금속판을 보며 자연스럽게 고라 일당의 반역과 심판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에서 벗어나 주님 뜻을 실천하게 하려는 은혜의 도구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타고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인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면서도 죄인을 끌어 안으시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참 생명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품 안에 안겨 그 깊은 뜻을 따르고 전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돌아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주님의 다스림 안에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반역자들의 향로로 제단을 덮으신 뜻을 헤아려 봅니다. 하나님의 선명한 공의 그리고 심판을 넘어서는 따뜻한 은혜를 항상 명심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 여정을 사랑으로 동행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6-02
민수기 16장 1~25절 “듣고 엎드리다”
2026년 5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6장 1~25절 “듣고 엎드리다” 찬송가 449, 452장또 다른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도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본문 1절에 보면 레위 지파의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사람들 250명 끌어 모았습니다. 상당한 세력을 이루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그 많은 지도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치밀한 설득 작업이 있었을 겁니다. 한순간의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긴 시간 공을 들여 실행한 반역이라는 걸 짐작하게 합니다.이들의 주장 자체는 얼핏 일리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온 백성이 모두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왜 모세와 아론이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것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지 따졌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은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위를 탐내며 흔들었습니다. 언뜻 정의로운 척하는 이들의 주장 이면에는 심각한 열등감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고라는 레위 지파입니다. 레위인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영광스런 직분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눈에 더 높아 보이는 제사장 직분을 탐냈습니다. 역할의 차이를 지위고하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자리에 욕심을 부렸습니다. 제사장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 위치에 함부로 오르려 했습니다.다음으로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큰 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침대를 더럽히는 심각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장자의 권위를 유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 뿌리 깊은 열등감이 후손들의 마음에도 자리 잡았습니다. 유다 지파의 커다란 영향력을 보며 배가 아팠습니다. 다른 지파들에 치이고 밀려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지닌 연약한 모습입니다. 누구나 내가 지닌 것은 보잘 것 없이 여깁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부러워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하찮게 여깁니다. 남들이 서 있는 곳을 우러러 봅니다. 탐내고 욕심을 부립니다. 어떻게든 끄집어 내리고 대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길 바랍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모세가 보인 반응을 주목해야 합니다. 4절 함께 읽겠습니다.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어떤 사람의 진면모는 그가 위기에 처할 때 첫 번째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을까요? 동사 두 개가 나옵니다. 바로 “듣다”와 “엎드리다”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반역하는 백성의 함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엎드렸습니다. 자기 권위를 내세워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침묵을 지키며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었습니다.본문과 같은 거창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모세와 같은 처지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보인 온유함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무작정 참기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라는 의미도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올바른 가르침으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바른 지혜를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시기와 불평 가운데 모함하거나 헐뜯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반대로 답답한 곤경에 빠질 때 말과 행동을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우선 듣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아픔을 주님께서 귀 기울이시고 시련에서 일으켜 세우실 줄 믿습니다. 기도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저희 마음 속 교만과 비교 의식을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명을 작은 일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 너무나 답답하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섣불리 움직이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과 사람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겸손히 엎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30
민수기 15장 “꿈을 품는 믿음” 찬송가
2026년 5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5장 “꿈을 품는 믿음” 찬송가 545, 546장본문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민수기 흐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13~14장은 가나안 정탐꾼의 보고 이후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을 기록합니다. 16장부터는 고라 일당의 또다른 반역을 알려줍니다. 15장은 이같은 두 가지 반란 사이에 위치합니다. 여기에는 뜬금없이 ‘제사 규례’가 등장합니다. 계속되는 비극 속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죄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당신이 그들에게 “주어 살게 할 땅”을 언급하십니다. 이를 통해 율법의 성격을 확인합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 이면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여정에 부름받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할 때 주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관련해서 이스라엘 제사에 들어가는 각종 제물을 살펴봐야 합니다. 4~6절 함께 읽겠습니다. 4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5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6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어 준비하고여기에 들어가는 각종 제물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에는 ‘고운 가루’, ‘기름’, ‘포도주’ 등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메마른 광야입니다. 철처히 결핍으로 가득한 장소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앞서 언급한 여러 제물을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모두는 그들이 마침내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수확해 거둘 결실입니다. 즉, 다가올 감격적인 미래를 ‘제사’를 통해 생생히 보여주셨습니다.이와 같은 은혜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회중 곧 너희에게나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율례이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16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도 동일한 법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의 오해와 달리 하나님의 복과 약속은 특정한 혈통의 사람들에게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습니다. 한마디로 ‘포괄적 은혜’입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꿈꿉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떠한 광야를 지나고 있으십니까?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서걱거리는 모래 바람을 지나고 계실겁니다. 힘겨운 뙤약볕을 지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지금 당장 눈앞의 고통 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고운 가루와 기름과 포도주를 마음에 품고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훗날 완성될 주님의 나라가 품은 아름다운 향기와 빛깔을 꿈꾸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우리가 영혼 깊숙이 생생하게 지닌 희망에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은혜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널리 전하고 이루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주님께서 저희에게 반드시 안겨주실 위대한 언약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그 소망 가운데 광야와 같은 세상을 이겨낼 힘을 발견합니다. 소중한 희망을 생생한 형상으로 가꾸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드넓은 마음을 본받아 차별하지 않는 은혜를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29
민수기 14장 26~45절 “참된 위치와 방향”
2026년 5월 2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4장 26~45절 “참된 위치와 방향” 찬송가 377, 379장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보낸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심각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자체를 불신하였습니다. 급기야 다른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철저한 불신앙입니다. 여기에 맞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선포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후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심판을 두고 모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그 가운데 하나님은 엄중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28절 함께 읽겠습니다.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이스라엘은 밤새도록 ‘이집트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라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불신앙의 고백을 문자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이 말한 대로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지금 우리도 신중하게 새겨 들어야 할 장면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알려줍니다.물론 성경을 읽을 때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다고 해서 쉽게 흥분하며 심판하는 존재로 주님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여기에 담긴 엄중한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합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만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에도 귀 기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언어가 아름다운 믿음과 평화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들은 백성은 뒤늦게 슬퍼하며 가나안 산지로 올라가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또 다른 형태의 ‘불순종’이자 ‘만용’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모세는 주님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한다.’라고 명백히 경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 결과 처참한 패배를 경험합니다. 이 장면을 묘사하며 언급한 내용을 주목해야 합니다. 44~45절 함께 읽겠습니다.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백성은 흥분하며 서둘러 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님의 언약궤와 모세는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말렉과 가나인들에게 크게 패배하여 ‘호르마’까지 쫓겨갔습니다. 이때 ‘호르마’는 “완전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구하지 않고 불안과 초조함에 쫓겨 움직이는 결과는 참패입니다.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맹렬히 달리는 열정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계신 곳을 확인하는 시선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향해야 합니다. 방향과 속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내 열심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뜻과 무관한 곳에 이르러 패배를 겪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 잠시 말씀과 기도 가운데 멈춰 서길 바랍니다. 내 기분과 감정과 탐욕이 아닌 복음이 우리의 속도와 방향을 이끌도록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더 우리의 언어가 주님 보시기에 정갈하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인생 여정을 주님께서 품으시고 가장 선한 곳으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주님께서 저희 기도만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의 말도 귀 기울이심을 깨닫습니다. 저희 입술의 모든 말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마음의 중심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약궤와 모세가 있는 곳과 무관하게 산 위로 내달렸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모습을 확인합니다. 그들처럼 내 열심과 열정만을 내세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잠잠히 주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여 믿음의 여정을 신실하게 이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26
1 2 3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