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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장 1~26절 “레위인의 직무”
2026년 5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장 1~26절 “레위인의 직무” 찬송가 323, 324장민수기 1~2장은 이스라엘에서 군사로 세울 성인 남성의 숫자를 헤아리고 각 지파별로 이동 위치를 정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이어지는 3장은 성소를 섬기는 레위인에 대해 기록합니다. 레위인들은 대제사장 아론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제사장이라는 특정 종교인의 보조인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제 2장을 읽으면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진치고 이동하는 대형의 중심에 성막이 있습니다. 그 성막을 중심으로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열두 지파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성막과 이스라엘 사이에 레위 지파가 완충지대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불덩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불은 한겨울 추위를 막고 음식을 익히게 하는 등 여러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을 가까이하는 건 몹시 위험한 일입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전달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레위인의 역할이 비슷합니다.레위 지파의 구체적인 직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6~8절 함께 읽겠습니다.6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크게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우선 제사장 아론을 도왔습니다. 아론이 제사장으로서 성소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조력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음으로 회막의 모든 휘장과 덮개, 기구들을 관리하며 예배의 환경을 유지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야를 지나 움직일 때 성막의 거룩한 기구들을 어깨에 메어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레위인의 직무를 살펴보며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분명히 다른 지파들과 여러모로 구별되었습니다. 12지파 숫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농사 지을 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맡은 사명이 다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소외된 고립된 업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 입니다. 제사장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거룩히 설 수 있도록 스며들고 깃드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분리되어 하나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분명히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명백히 다른 정체성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고립되어 산속에 모여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땅위에 발을 딛고 현실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삶의 도구들을 관리하며, 인생 여정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품고 나아갑니다. 사실 여러모로 지치고 힘듭니다. 많은 손해와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세상 가운데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퍼져 나갑니다. 비록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의 거룩한 직무를 충실히 감당한 덕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각자 처한 환경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사명을 더욱 마음 깊이 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걸음걸음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를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구별하여 세우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지만 분리되지 않고 스며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온기를 전하며 심판에서 구원으로 변화시키는 신실한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9
민수기 2장 “중심에 모시고”
2026년 5월 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장 “중심에 모시고” 찬송가 430, 435장어제 읽은 민수기 1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소개하며 군사로 나갈 만한, 각 지파의 성인 남성의 숫자를 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온갖 어려움에도 마침내 이루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체계를 갖춘 군대가 되었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군대는 부대별로 적절히 배치하는 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읽은 2장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진을 치고 이동하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동쪽, 즉 해가 뜨는 쪽에는 유다와 잇사갈과 스블론 지파가 진을 칩니다. 이어서 남쪽에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갓 지파가 진을 칩니다. 다음으로 서쪽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가 진을 칩니다. 마지막 북쪽에는 단과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진을 칩니다.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열두 지파가 고루고루 위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은 레위 지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관리하고 제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은 레위를 포함해 열두 명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레위 지파를 제외했는데도 사방에 열두 지파가 존재할까요? 레위 지파를 다른 지파와 구별하는 대신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들을 야곱의 아들들처럼 지파로 승격시켰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은 12지파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레위 지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중심에 성막을 두셨습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회막, 즉 성막은 하나님의 명확한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성막 주변, 즉 성막과 다른 지파 사이에 레위 지파가 있습니다. 일종의 완충지대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성막 기구를 움직이고 제사를 섬기는 것 못지 않게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직접 마주하는 위험을 막아주는 존재입니다. 굳이 요셉의 두 아들의 후손을 각각 다른 지파로 세우면서까지 레위 지파를 구별해 사명을 맡긴 이유입니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길 바라지만 정작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구약 시대 제사 제도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 성막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과 광야 여정의 근본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돌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2장이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인생 여정의 중심에 주님의 임재가 있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불안과 조급함이 자리 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화려한 성공 혹은 영웅적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삶의 핵심 원리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영혼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위대한 은혜에 안기도록 대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광야의 뜨거운 태양에 지치고 모래바람에 휘청거리더라도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마침내 가야할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도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온 이스라엘을 차별 없이 품으시는 위대한 사랑을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배치하고 중심에 성막을 두시고, 그 사이에 레위인들을 세우신 깊은 뜻을 마음에 세깁니다. 저희 인생 여정에 항상 하나님을 가장 가운데 모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욕심과 불안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인을 위해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저희도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를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8
민수기 1장 28~54절 “이루어진 언약”
2026년 5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장 28~54절 “이루어진 언약” 찬송가 545, 546장민수기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기록합니다. 그 시작인 1장은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를 세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노예에서 체계를 갖춘 군사로 변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주목하셨습니다. 고개를 들어 당신을 올려다 보게 하시며 각자의 존재를 소중히 대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군대에 나갈 만한 성인 남성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6절 함께 읽겠습니다.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총 60만 355명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20세 이상 성인 남성의 숫자입니다. 당시 대가족 문화를 고려해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합하면, 이스라엘 전체 숫자는 몇백만명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성경에 적힌 숫자는 상징성이 강합니다.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민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언약이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을 순종하며 따른 그에게 복을 주고 이름을 드높이실 겁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룹니다. 이 말씀 그대로 민수기 1장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힘겨운 시련을 겪었습니다. 우선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삭 또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야곱을 낳았습니다.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이집트로 건너가서 산 이후 파라오의 핍박을 겪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살해되는 끔찍한 학살의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겨우 이집트를 벗어났지만 홍해가 앞을 가로 막고 뒤에는 정예부대가 쫓아오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뒤에도 배고픔과 질병과 전투 등 광야에서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모든 고난 끝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대로 많은 민족을 세우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위대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언약의 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믿는다면 죽지만 죽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삶의 고난도 주님의 자녀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부활의 생명과 영광으로 다시 일어납니다.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언약의 성취는 세상의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는 화려한 성과가 아닙니다. 눈에 띄는 거창한 업적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함께 하시어 이루시는 인도와 동행 그 자체입니다. 남들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삶일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소원이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집트 노예살이와 고단한 광야생활을 포함합니다.하지만 그럴수록 마음 깊이, 십자가를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언약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도저히 상상못할 영광 가운데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품었을 때, 그 언약이 그를 위대한 조상으로 세우셨듯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영혼 깊이 간직할 때, 그 진리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고된 인생길을 신실하게 이끌어 갈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영원한 언약의 주 하나님아브라함에게 베푸신 위대한 약속을 마침내 이루셨듯이, 저희를 향한 놀라운 사랑도 마침내 주님 품 안에서 완성될 줄 믿습니다. 때로 이집트의 노예살이와 광야 생활과 같은 고되고 험난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모든 시련 속에서 지켜 보호하시는 손길을 바라봅니다. 저희를 붙드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인생 길을 힘차게 헤쳐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05-07
민수기 1장 1~27절 “헤아리시는 하나님”
2026년 5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장 “헤아리시는 하나님” 찬송가 310, 312장오늘부터 함께 민수기를 묵상하겠습니다. “민수기”라는 이 성경의 제목은 한자로 백성의 ‘숫자’를 셌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1장과 26장에 두 번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성인 남성의 숫자를 세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의 매우 중요한 주제를 드러내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에서 ‘숫자를 세다’라는 의미의 제목을 넣었습니다. 그런 전통이 우리가 가진 개역개정성경에도 이어져 내려와 한자말로 ‘민수기’가 되었습니다.반면에 히브리어로 쓴 구약성경은 각 책의 가장 첫 번째 단어로 이름을 정합니다. 민수기의 경우 입니다. “광야에서”라는 뜻입니다. 우연히 가장 먼저 나온 단어로 보기에는 막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며 광야에서 겪은 일들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다듬어지고 세워지는 과정들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오늘날 저마다의 광야 여정을 지나는 우리에게도 매우 큰 울림을 안겨주는 말씀입니다.이러한 민수기의 시작은 앞서 언급했듯이 백성의 숫자를 세는 일입니다. 2~4절 함께 읽겠습니다.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평범한 인구 조사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단순히 사람들의 머릿수를 센 것이 아니라 3절에 나온 대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 즉, 군사의 수를 셌습니다. 각 지파와 가문별로 상당한 체계를 갖춘 군사 조직을 구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더 이상 막 노예 처지에서 벗어난 오합지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키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계수”입니다. 본문에서 반복해 등장합니다. 한자말 그대로 풀면 ‘머릿수를 센다.’는 의미입니다. 학교나 군대 같은 조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1장을 읽으면서도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하는 히브리어 문장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곧바로 옮기면 “머리를 들라”라는 뜻입니다. 고대 중동에서 머릿수를 셀 때는 그냥 이름만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각 사람의 존재를 일일이 확인하였습니다. 각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과정입니다. 이들이 본래 이집트에서 이름 없이 살던 노예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본래 거대한 제국의 수레바퀴 아래서 존재를 부정당했습니다. 심지어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시고 얼굴을 바라보시며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존중하셨습니다.이렇게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얼굴을 들여다 보시고 그 숫자를 헤아린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또한 저마다의 광야를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노예에서 군사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을 들여다보시고 인격과 존재를 깊이 주목하십니다. 이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인생 여정을 기쁨으로 걷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광야를 지나는 자녀들과 항상 사랑으로 동행하심을 고백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벗어났던 이스라엘을 질서정연한 군사로 변화시키셨듯이, 저희 연약함을 강한 능력으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 보시고 이름을 부르시듯 저희 존재를 주목하시고 은혜로 품어주시옵소서. 인생의 거친 광야를 감사로 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6
레위기 27장 “하나님의 소유”
2026년 5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7장 “하나님의 소유” 찬송가 212, 213장어느새 레위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지켜야 할 중요한 율법을 정리 하셨습니다. 핵심은 ‘거룩’입니다.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 따라야 할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런 까닭에 모세오경을 넘어 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를 마무리하는 27장은 하나님께 서원, 다른 말로 서약해 바치는 값에 대해 기록합니다. 본문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2절을 새한글성경으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 “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라. ‘사람이 무슨 특별한 것을 바치기로 단단히 약속하려 한다고 하자. 그것도 보통 매기는 값으로 사람을 여호와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하자.하나님께 무언가 특별한 것을 드릴 때, 특별히 사람을 하나님께 바칠 때 드릴 값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전에 노동력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레위기 27장은 이러한 서약 제물의 값을 상세하게 정리합니다. 우선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나이마다 다릅니다. 다섯 살에서 스무살, 일개월에서부터 다섯 살, 예순살 이상으로 각각 구분해 성전의 화폐 단위인 성전 세겔로 다르게 드립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미 성소에서 땀을 흘리는데 거기에 더해 예물까지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순서를 유념하셔야 합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돈은 헌신을 시작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 약속한 기간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며 드리는 예물입니다.이렇게 본다면 하나님께서 옹졸하게 보입니다. 이미 성전해서 헌신했는데 중간에 나간다고 굳이 돈을 받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당시 중동에서 인신제사, 즉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가 유행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다른 우상 종교들은 사람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너무나 싫어하고 혐오하셨습니다. 그 대신 성전에서 땀 흘려 일해 섬기게 하셨습니다.관련해서 제사 제물과 마찬가지로 서원 예물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그의 형편을 살펴 값을 낮춰 줍니다. 하나님은 탐욕에 눈이 멀어 제물의 값어치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서원을 중단할 때 받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괴롭히려는 게 아닙니다. 예물로 그 사람을 대신해 성전이 다시 잘 운용되기 위함입니다.핵심은 헌신입니다. 27장 더 나아가 레위기 전체는 땅 그리고 소나 양의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계명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 고백으로 드리는 구체적인 제물과 예물이 레위기에 기록되었습니다.레위기를 마무리하며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매일 교회에 메여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재산을 헌금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의 모든 게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주일을 지켜 예배하고 봉사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분명히 강조합니다. 이런 모든 헌신이 일상을 무너뜨릴 정도로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대신 지속 가능한 진실한 신앙 고백이길 바랍니다.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손길을 내미시면 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데 필요한 예물을 적절히 드리시길 바랍니다. 또한 교회 밖의 생활 가운데 꾸준히 나눔과 섬김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의 모든 인생을 기뻐 받으시고 이끄시고 돌보실 줄 믿습니다.기도저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모든 인생을 주님께 드립니다. 기뻐 받으시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선물로 허락하신 일상을 소중히 가꾸며 구별한 재물과 시간을 드립니다. 신실한 손길로 선하게 이루실 은혜를 기대합니다. 날마다 평강으로 동행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5
레위기 26장 “주님의 말씀으로”
2026년 5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6장 “주님의 말씀으로” 찬송가 199, 200장그저께 읽은 레위기 25장은 희년 제도를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땅의 주인임을 명확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지파와 가문별로 받은 땅을 함부로 사고 팔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부득이 가난으로 땅을 판 경우는 가까운 친척이 대신 사야 합니다. 그러지도 못한 경우는 일곱 번째 안식년이 지나고 그 다음 해, 오십년 째 해를 희년으로 지켜 이 때 모든 땅과 사람을 원래 자리로 되돌립니다. 지나치게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이 없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이어지는 레위기 26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본 생활 원리를 가르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 다는 가르침입니다. 먼저 3~5절 함께 읽겠습니다. 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낯선 땅에서 ‘농사’라는 낯선 일을 하며 지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곳 농경 문화에 바탕을 둔 우상 숭배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이 당신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가나안의 우상이 아닌 하나님이 그들의 땅에 비를 내리십니다. 풍성한 결실을 먹게 하십니다.동시에 말씀을 불순종하며 받을 벌도 함께 말씀 하십니다.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주님은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무시하고 싫어하면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열심히 씨를 뿌린 농사를 마칩니다. 여기까지 보면 하나님이 옹졸하게 보입니다. 말 잘 듣는 사람에게 상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벌주는 독재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벌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45~46절 함께 읽겠습니다.45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인도하여 낸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46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축복과 저주를 내리는 기준은 주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전달한 율법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조상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백성을 향한 상벌의 기준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는 순간 이미 저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건강과 농사를 예로 들며 복과 저주를 언급하신 것은 겁주고 어르고 달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백성에게 생생히 깨우치기 위함입니다.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살이로 구하신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수많은 죄악과 저주에서 구하셨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게 가장 큰 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에서 벗어나 욕심과 오만을 부리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당장 우리 손에 쥔, 다른 사람들 보는 겉모습은 별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핵심인 사랑을 순종하며 참된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말씀하시는 주 하나님삶의 어떤 모양과 처지가 아닌 말씀 자체가 참 복과 저주의 기준이라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죄악인지를 선명히 깨달으며, 말씀을 귀히 여기는 은혜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4
레위기 25장 23~55절 “계속 이어가는 해방”
2026년 5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5장 23~55절 “계속 이어가는 해방” 찬송가 270, 272장어제 읽은 레위기 25장 앞부분은 안식일에서 안식년을 거쳐 희년으로 확대되는 절기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희년을 통해 참된 안식으로 완성하는 진정한 자유와 거룩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25장 후반부는 이러한 희년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줍니다. 23~25절 함께 읽겠습니다.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23절은 희년의 핵심 원리를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땅은 영원히 팔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구체적으로 어느 곳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건너가 정착할 땅입니다. 그곳은 농경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농사지을 땅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주님은 각 지파와 가문별로 농지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함부로 팔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현실적인 예외를 인정하시고 거기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으로 내몰려 땅을 판 경우를 가정합니다. 그 자체를 억지로 금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땅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누군가 가난해 땅을 팔았다면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대신 다시 사서 땅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런 친척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구원하다’라는 뜻의 <가알>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번역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개역개정 성경은 ‘기업 무를 자’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업 무를 친척조차 없이 궁핍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영 땅을 뺏긴채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바로 희년입니다. 49년째, 혹은 50년째 해에 희년을 선포합니다. 그 때 온 땅의 소유가 가나안에서 처음 토지를 나누었던 대로 되돌아가게 됩니다.이뿐만이 아닙니다. 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39~40절 함께 읽겠습니다.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땅과 마찬가지로 종도 희년에 해방이 선포되어 자유를 누립니다. 동시에 자기가 일구고 살 토지까지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백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돌보십니다. 현실적으로 생기는 재산의 차이는 존중하십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되어 오랫동안 사람이 사람을 억누르는 상황을 단호하게 막으십니다. 그것은 이집트 노예 살이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속박과 억압에서 당신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신 하나님은 가나안에서도 출애굽을 이어가셨습니다.희년법을 오늘날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땅을 사고 팔지 못하게 하거나 억지로 소유권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나라의 경제 제도를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희년의 정신을 마음에 품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몇몇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이 아니라, 체계와 질서를 통해 온 땅 곳곳에 온기를 스며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이러한 희년을 실천하는 길은 분명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며 당신께서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 시대 가장 무시당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수많은 억압에서 자유롭게 하셨음을 진심으로 고백하며, 희년을 누리고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참 해방의 주 하나님희년을 통해 가난과 억압으로 고통당하는 백성을 자유롭게 하신 위대한 은혜를 찬양합니다. 희년을 선포하시고 살아가신 예수님을 본받아 저희도 갇히고 눌린 사람들을 놓아주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나 자신을 얽매이게 하는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는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2
레위기 25장 1~22절 “자유를 선포하라”
2026년 5월 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5장 1~22절 “자유를 선포하라” 찬송가 320, 321장그저께 읽은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의 각종 절기들을 언급하였습니다. 시작은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 온 피조 세계를 위해 일곱째 날 몸소 쉬셨습니다. 그 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십계명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안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 지를 분명히 확인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의미와 실천을 폭넓게 확장하십니다.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6일간 일하고 다음날인 7일을 안식일로 지키듯 육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었다면, 그다음에 오는 일곱째 해는 ‘안식년’으로 지켜야 합니다. 이 때는 땅을 쉬게 해야 합니다. 밭에 씨를 뿌리거나 포도원을 가꿀 수 없습니다. 심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란 과일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이러한 안식년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휴식과 회복은 단지 인간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인간을 넘어 땅을 포함한, 창조 세계 전체를 끌어안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회복은 사실을 인간에게도 유익합니다. 땅이 황폐해지는 건 결국 사람에게도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맹목적인 욕망으로 함부로 자연을 망치고 이용하지 못해 결국 자기를 망치는 어리석음에서 보호하시는 율법이 바로 안식년입니다.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희년을 선언하십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하나님은 칠 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낸 해, 즉 49년째 해 다음 해인 오십년 째 해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해를 가리켜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이날 온 백성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각자 자기 소유지로 돌아갑니다. 달리 말하면 잃어버린 땅을 되찾습니다. 노예로 팔려 남의 집 살이 하던 사람들은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12절에 보면 이스라엘에게 희년이 ‘거룩’하다고 선언합니다. 안식의 결론은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실 때 마음 깊이 품었던 꿈입니다. 참된 안식을 통해 진정한 거룩을 선포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힘써 쉼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태와 태만이 아닙니다. 참된 회복을 향한 여백입니다. 그 빈자리에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 가십니다. 그 놀라운 뜻을 향해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마침 오늘은 노동절 공휴일입니다. 성실한 노동과 여유로운 휴식의 조화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희년으로 절정을 이룬, 안식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거룩의 의미를 곱씹으시길 바랍니다. 부디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휴식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응답하는 신실한 자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안식을 나 자신을 넘어 이웃과 온 창조 세계로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창조의 주 하나님온 우주 가운데 몸소 선언하신 안식을, 안식년을 넘어 희년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참된 쉼을 통해 자녀들을 비롯해 모든 피조 세계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안식을 통해 주시는 진정한 자유와 거룩을 오늘 하루 기쁨으로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5-01
레위기 24장 “영원히 비추는 빛”
2026년 4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4장 “영원히 비추는 빛” 찬송가 442, 445장출애굽기를 비롯해서 레위기까지 성막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레위기 24장은 성소에 두어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물품을 강조합니다. 하나는 등잔불, 다른 하나는 빵입니다. 각각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2, 3절 함께 읽겠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3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감람 열매로 짜서 만든 깨끗한 기름으로 등잔불을 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불이 온종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꺼지지 않고 켜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등잔불은 단순한 장식용 조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백성을 돌보시도록 켜는 불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등잔불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어두워서 불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이러한 등잔불은 백성을 위한 배려입니다. 이 순결한 불의 존재를 통해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잠든 순간에도 늘 깨어 지켜 돌보십니다. 어둠으로 가득한 순간에도 환한 빛으로 함께 하십니다. 도무지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 같은 짙은 고독과 절망 가운데에도 참 빛으로 비춰 주십니다. 성소를 밝힌 등잔불을 우리 마음에도 깊숙이 모셔두고 꺼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어서 5~8절 읽겠습니다.5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6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성소에는 등잔불과 함께 열두 개의 빵을 두어야 합니다. 이 빵들은 앞서 언급한 등잔불들과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등잔불을 순결한 기름으로 피우듯이 열두 빵도 고운 가루로 만듭니다. 또한 등불을 순결한 등잔대, 즉 순금 위에 켜듯이 성소의 빵들도 순결한 상 위에 올려둡니다. 등잔불과 달리 매일은 아니지만 안식일마다 항상 주님께 빵을 드려 ‘영원한 언약’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등잔불과 열두 빵이 따로따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그렇다면 빵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빵의 개수인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빵 하나당 십분의 이 에바, 오늘날 무게 단위로는 밀가루 4.4리터로 만듭니다. 2리터 생수병 두 개를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꽤 커다란 크기입니다. 그런 빵들이 여섯 개씩 두 줄로 하나님 앞에 차려져 있습니다. 그 빵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등잔불이 그윽하게 비추고 있습니다.이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이 자체만으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명확한 상징을 보여줍니다. 바로 당신의 백성을 따뜻한 빛으로 비추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녀들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영롱한 불빛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등잔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그 불빛이 이스라엘을 언제나 비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찬란한 영광이 우리를 환하게 덮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한 없는 흑암 속에 파묻힌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등잔불은 변함없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진심으로 고백하며 맡겨진 소명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영광의 통로로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순금 등잔대처럼 자기를 다듬어 주님의 빛을 밝히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기도참 빛 되신 주 하나님빵 열두 개를 비추는 등잔불처럼, 저희를 따뜻한 광채로 품어주시는 사랑을 찬양합니다. 등잔불을 꺼뜨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주님께서 비추시는 영광으로 말미암아 힘과 용기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30
레위기 23장 “우리가 지킬 안식”
2026년 4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3장 “우리가 지킬 안식” 찬송가 538, 539장오늘 함께 읽은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각종 절기를 기록합니다. 기독교는 구약 때부터 ‘시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부터 일곱 날을 구분하셨습니다. 주님의 당신의 백성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배하고 사귐을 나누길 바랐습니다. 그런 의미와 맥락 가운데 여러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은 안식일,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한 유월절과 무교절, 첫 이삭 한 단을 바치는 절기, 두 번째 거둔 곡식을 바치는 절기, 휴식하는 일곱째 달 첫 날, 속죄일과 초막절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이러한 절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안식입니다. 많은 절기를 나열하며 안식일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일곱째 달 첫날에도 쉼을 강조합니다.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이 짧은 한 절에서 쉼과 안식이 계속 반복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육일 동안은 일하지만 일곱째날은 쉬어야 합니다. 그날이 ‘안식일’이라고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하지말아야 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몸소 안식일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3절 새한글성경으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1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완성하셨다. 일곱째 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셨다. 3 그리고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날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여 만드시던 모든 일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안식일 규정 그대로 본인이 6일간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편안히 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인간처럼 몸이 피곤해 그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을 위해서 였습니다. 안식의 원리를 온 우주 가운데 분명히 선언하고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파격적인 법률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주인들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휴식을 싫어합니다. 어떻게든 계속 일을 시키려 합니다. 인간의 탐욕스런 본능입니다. 이러한 사악한 본성을 하나님은 단호히 거부하며 안식일을 만드셨고, 거듭 율법을 통해 엄중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은 쉬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휴식을 뺏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보다 힘 있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내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많은 경우 내가 나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스스로 안식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집요하게 안식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안식일을 넘어 안식년과 희년을 선포하신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며,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선언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무엇에 쫓겨 지내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마땅히 성실하게 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근본적인 토대는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삶을 신실하게 이끄심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안식을 지키면, 안식이 우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아래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향긋한 휴식을 안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자녀들에게 참된 쉼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온 우주를 지으실 때부터 안식을 정하시고 전하신 놀라운 뜻을 높여 찬양합니다. 맡겨진 삶을 최선을 다해 일구는 성실함을 주시옵소서. 동시에 불안과 초조함으로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 쉴 줄 아는 믿음 또한 허락해 주시옵소서. 피곤하여 지친 이들을 넉넉히 돌보는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안식을 널리 전파하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9
레위기 22장 “성물을 먹기 위해”
2026년 4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2장 “성물을 먹기 위해” 찬송가 449, 452장어제 읽은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의 자격에 대한 여러 규정들을 소개합니다.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까다로운 내용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장애 관련 율법은 오늘날 인권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관련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안에 담긴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관련해서 제사장을 가리켜 “하나님께 음식을 바치는 자”로 묘사한 부분을 유념해야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삶을 마치 요리사가 요리해 대접하듯, 정성스럽게 다듬고 정돈해야 합니다.이어지는 레위기 22장은 제사장이 제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기록합니다. 앞서 읽은 레위기 속 제사 규정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제사에 따라 제물을 모두 태우지 않습니다. 그 일부를 남겨 제사장이 먹습니다. 단순히 제사장의 배를 채우는 구운 고기가 아닙니다. ‘성물’로 특별하게 구분합니다. 그러한 성물을 먹는 제사장의 올바른 자세를 강조합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어제 읽은 레위기 21장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22장 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성호,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엄중하게 강조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몸이 부정한 상태로 성물을 가까이 하는 자는 끊어버리겠다고 주님께서 엄중하게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그 성물은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드린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물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피부병이 없어야 합니다. 더럽거나 죽은 동물을 만져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율법들은 제사장으로서 바른 자세를 일깨웁니다. 음식이 풍족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백성이 제사 드리고 남은 제물 일부를 먹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자칫 백성을 위해 제사를 집례하는 것보다 성물을 먹는 것에 정신이 팔리기 쉽습니다. 진정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소명보다 배를 채우는 것에 더 연연할 위험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제사는 무너지고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선하신 만유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아낌없는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새벽을 깨우고 일어나 기도의 자리로 나아온 것 자체가 감당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먹을 음식, 몸을 뉘여 잘 집,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하나하나가 결코 당연하게 아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에게 욕망을 그대로 들이밀며 내 소원을 이뤄주실 분으로만 여기는 기복주의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자녀들의 삶을 이끄시고 필요를 채우고 먹이시는 분이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다양한 복을 기대하고 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동시에 말씀으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실지 바라고 기대하기 전에, 주실 복에 합당한 존재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성물, 즉 불로 태우고 남은 제물을 먹기 위해 자신을 살피는 제사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더럽고 썩고 심지어 죽은, 이 시대의 나쁜 생각과 문화에 물들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소홀히 하고 있는 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의 몸과 마음 가짐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맡기실 성물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모양으로 지키시고 공급하시는 복을 진정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은혜에 합당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참으로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로 하여금 세상을 복음으로 섬길,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세우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제사장에게 불로 태우고 남은 고기를 주시듯, 저희에게도 합당한 복으로 날마다 채워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무언가에만 연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거짓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새롭게 일으켜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8
레위기 21장 “제사장들에게”
2026년 4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1장 “제사장들에게” 찬송가 212, 213장그저께 읽은 레위기 20장은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의 목록을 나열합니다.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가나안 땅을 정결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이어지는 21장 역시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많이 포함합니다. 21장의 주제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백성들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해 죄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들에게 엄중한 자격이 요구됩니다. 해당 구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6절 함께 읽겠습니다. 6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제사장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바로 ‘거룩’입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1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서 거룩은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도덕성이 아닙니다. 먼저 찾아오시어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한 반응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거룩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으로 구체화 됩니다. 이미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말씀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누군가의 인격을 드러냅니다. 정리하자면 제사장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존중하고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님과 친밀한 사귐으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성경은 그러한 제사장의 소명을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제물을 태워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을 가리켜 음식을 드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지금도 고위 관료나 기업인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최고급 요리사는 엄정한 자격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요리 실력은 물론이고 위생 관리등 다양한 업무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조심스런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주님께 드리는 음식이라면 감히 비교할 수 없이 막중한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의 삶이 그러합니다. 마치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요리사처럼 하루하루 모든 말과 행동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자신의 흠과 잘못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지나친 강박이나 엄숙주의에 빠지거나 아니면 자포자기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23절을 주목해야 합니다.23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고 말씀 하십니다. “거룩하라!”라는 말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백성과 제사장을 향해 철저한 거룩함을 명령하신 주님은 그 책임과 역할을 전부 떠넘기지 않으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거룩을 향한 길을 발견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완전무결하게 하려고 애쓰는게 아닙니다. 거룩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영접하는 고백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거룩을 명하시면서 또한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의 넓은 품에 안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따뜻한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품고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를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세우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마치 왕의 음식을 대접하는 요리사처럼 저희 모든 하루하루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성에게 거룩이라는 막중한 짐을 안기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몸소 거룩을 이루시는 여정으로 부르셨음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7
레위기 20장 “엄중한 경고”
2026년 4월 2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20장 “엄중한 경고” 찬송가 288, 289장어제 읽은 레위기 19장은 레위기를 넘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며 실천해야 할 여러 규칙들을 설명합니다. 그 정점은 이웃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인 이웃은 평소 원만히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원수’를 포함합니다. 무척 어렵고 무거운 숙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를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는 용서와 은혜의 길로 이어집니다.그 다음에 나오는 20장은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각종 범죄를 언급하며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라고 정리합니다.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무한한 사랑과 거리가 먼 폭력적이고 잔인한 신으로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녹아 있습니다.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까닭은 세상을 섬길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과 구별되야 합니다. 특별히 기존에 가나안에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끔찍한 탐욕과 범죄를 단절해야 합니다.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레위기 20장에서 가나안 사람들이 행했던 범죄들을 언급합니다. 대표적인 범죄를 살펴 보겠습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하나님은 우상 몰렉을 섬기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몰렉 우상은 어린 자녀를 불에 태워 바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몰렉의 인신 제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우연히 접하고 상당한 충격과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 지를 곱씹으며 몸부림 쳤습니다. 동시에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자녀까지 바칠 수 있는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식을 몰렉에게 바치는 사람을 반드시 죽이라는 하나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단지 주님이 몰렉을 시기해서 하신 명령이 아닙니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 악마가 되는 길을 단호하게 막기 위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무속 신앙 금지와 부모 공경과 거룩한 성 윤리를 거듭 강조하셨습니다.그리고 20장을 마무리하며 이 모든 엄중한 경고의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확인 하십니다. 26절 함께 읽겠습니다.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위기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삼고 구별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이 토해낸 그곳 원주민들과는 전혀 다른 깨끗하고 정결한 삶을 바라고 기대하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이스라엘 된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탐욕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박적이고 결벽적인 도덕의식을 지니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당연히 연약한 사람이기에 흔들리고 실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인생의 방향을 점검해야 합니다. 결국 이런 질문 앞에 마주 섭니다. 생명을 살리는 주 하나님을 따르느냐? 생명을 삼키는 몰렉을 따르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탐욕의 질주를 내려놓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살아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생명의 주 하나님이 새벽, 성경에서 “반드시 죽이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죄의 길에서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임을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어린 생명을 바치는 몰렉의 길에서 벗어나 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맹목적으로 탐욕을 향해 달리며 이웃을 짓밟는 폭력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5
레위기 19장 “이웃 사랑”
2026년 4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9장 “이웃 사랑” 찬송가 453, 455장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논할 때 흔히 16장과 19장을 거론합니다. 며칠 전에 읽었던 16장은 ‘대속죄일’에 대해 설명합니다. 레위기의 흐름과 구조를 볼 때, 온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19장은 레위기를 넘어 구약성경,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를 드러냅니다.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관련해서 레위기 19장이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모든 이스라엘을 향해 “거룩하라!”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말씀의 주체인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르십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주님의 인격을 담은 고유 명사, ‘하나님’은 신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예로 들면 이해하시기 더 편할 겁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영웅 개인의 이름입니다. ‘장군’은 그가 지닌 지위를 부르는 호칭입니다.하나님은 ‘여호와’라는 당신의 내밀한 이름을 직접 언급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 하나님”이라고 의미를 덧붙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주님께서 스스로 이해하는 당신의 정체성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자녀들의 삶과 무관하게 저 우주 멀리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부둥켜 안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으로 실천해야 할 여러 구체인 율법을 말씀하십니다. 그 절정은 18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하나님은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은 주위에 사는 평범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원수’를 지칭하십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당한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얼굴도 보기 싫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너무나 어려운 숙제입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관련해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는 어느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이 성경 전체의 핵심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단지 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죄인을 품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덮친 암흑을 껴 안으시고 세상에 생명을 널리 퍼뜨리셨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삶의 근본 태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거룩은 율법 문자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게 아닙니다. 말씀에 담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온전히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품고 용서하는 실천입니다. 물론 너무나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를 참으로 살립니다. 진정 복된 생명과 부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오늘 하루도 이 놀라운 복음을 마음에 품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주 우리 하나님아득히 먼 우주에 자신을 감추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너희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며 사랑을 이루신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함의 의미를 말씀으로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강박적인 규칙 준수가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온 영혼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4
레위기 18장 “토해내지 않도록”
2026년 4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8장 “토해내지 않도록” 찬송가 420, 421장어제 읽은 17장은 ‘피’에 대한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피에 있음을 강조하며 일상 속 식습관까지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를 구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거듭 깨닫게 합니다.이어지는 레위기 18장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당혹스럽고 민망한 성적 금기 사항들의 나열합니다. 여기서 엄중히 금지하는 근친상간은 단순한 성윤리 지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공동체 보호 장치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늘날 핵가족과 달리 한 울타리 안에 3대에서 5대, 약 50명에서 100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밀집해 살았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성적인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막기 위해 “가정의 평화와 온전함”을 제시합니다. 단순히 싸우지 않는 조용한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샬롬으로 돌봐야 합니다. 단지 오늘 본문에 언급된 심각한 성범죄를 막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소중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죄의 씨앗은 없는지 분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더 가족을 사랑과 인내로 품고 돌볼 수 있도록, 복음을 마음 깊이 담아야 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레위기는 거룩함의 영역을 개인의 침실을 넘어서 “땅”으로 확장합니다.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가나안 원주민들이 쫓겨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행한 가증한 행위들로 인해 '땅이 더러워졌고', 마침내 그 '땅이 거주민을 스스로 구역질하며 토해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땅에 대한 구약 성경의 이해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땅을 단순히 자연의 일부로 여기지 않습니다. 거룩함과 죄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영적 생태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오늘날 우리에게도 엄중한 경고를 주는 말씀입니다. 성적 타락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고 더러운 죄의 결과는 나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라며 맹목적인 탐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모든 악한 문화와 풍습은 사회라는 토양에 독소를 쏟아붓습니다. 심각하게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거룩을 잃어버릴 버린다면, 땅으로부터 ‘토해낼’ 위기에 처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사명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땅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삶 가운데 거룩의 가치를 일궈내야 합니다. 단지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매일 살아가는 일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문화와 가치를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우리가 삶의 환경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신 창조의 온기로 회복시키고 변화시키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손길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참 평안으로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거룩하신 하나님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경계가 옥죄는 사슬이 아니라 생명의 울타리임을 고백합니다. 저희 가정이 질서와 존중 위에 세워지는 샬롬의 처소가 되게 하시고, 저희의 정결한 삶을 통해 이 땅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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