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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들으시고 기억하사”
2026년 2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장 “들으시고 기억하사” 찬송가 363, 364장이집트를 기근에서 구한 요셉의 자녀들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새로 등극한 파라오가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낳은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잔혹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비록 산파들이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하긴 했지만 잔인한 칼날을 완전히 피할 수 도 없었습니다.그 어두운 시기 어느 레위인이 결혼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런 아들을 엄마가 차마 죽음에 내 몰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 몰래 숨겨 키웠으나 점점 자라가며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눈물겨운 결정을 내립니다.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합니다. 그 안에 아기를 담고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부디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길 간절히 구하는 엄마의 기도 소리를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그 기도의 응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일이 펼쳐졌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시녀들과 함께 강에 나와서 갈대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고, 위험을 감수하며 아들 삼아 키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하였습니다. 매우 기묘한 성장 과정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왕족으로 교육 받았습니다. 동시에 레위인 친어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정체성을 깨달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소명을 깨달았을 겁니다.성인이 된 모세는 이집트 관리가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이집트 사람을 살해하고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다음 날 거리에서 모세는 히브리 사람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대뜸 그에게 따져 묻습니다. 누가 당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느냐며 나도 죽일거냐고 몰아 붙였습니다. 모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파라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이 모습이 사실 의아합니다. 절대 왕정 사회의 왕족은 면책 특권을 가집니다. 귀족이 아닌 건설 감독 관리를 살해한 정도는 큰 문제 될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파라오의 칼을 피해 광야로 도망쳤을까요? 해석의 실마리를 사도행전 7장 25절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모세가 이집트 관리를 살해한 것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 동족을 구할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반역입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당장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광야로 쫓겼습니다. 거기서 그는 장인 밑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비천하게 여기는 목자 일을 합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비참한 신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끝맺는 성경의 기록이 인상적입니다. 본문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두 절의 동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자녀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지난 날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앞서 창세기에서 주님께서 보이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탄식을 들으시고 아들을 구하셨습니다. 모세의 한탄에 귀 기울이시고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또한 온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그 하나님께서 우리 역시 동일한 은혜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간구를 들으시고 십자가 언약을 기억하시고 돌보십니다. 그러한 주님의 신실하신 손길을 의지해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자녀들의 탄식을 들으시는 주 하나님저희가 기도 가운데 내뱉는 신음에 귀를 기울이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 언약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시며 날마다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옵소서. 저희 역시 주위 사람들의 아픔에 귀를 열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김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ㅡ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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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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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장 “그럼에도 더욱 번성하여”
2026년 1월 3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장 “그럼에도 더욱 번성하여” 찬송가 336, 337장출애굽기는 야곱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떠나온 야곱과 그의 가족이 모두 칠십 명이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거듭 일깨웁니다. 출애굽기는 맥락 없이 툭 떨어진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와 연결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을 계승합니다.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 모두 임신과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을 거쳐 그들은 많은 자손을 낳았습니다. 너무나 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번영이 이스라엘에게 위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6~9절 함께 읽겠습니다.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새롭게 수립한 이집트의 왕조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파라오는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선조인 총리 요셉의 위대한 업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자기가 겪고 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우선대상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각종 대형 건축 사업에 동원하였습니다. 그 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11~12, 20절 함께 읽겠습니다.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인생을 관통하는 신비한 은혜를 발견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손주들은 난임을 비롯한 시련 가운데 많은 후손을 낳았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번성이 노예 생활의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파라오는 산파들을 시켜서 히브리 사람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는 잔악무도한 명령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오히려 더 번성하고 강해졌습니다.이를통해 성경에 흐르는 진리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계획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핍과 아픔을 거쳐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둔 은혜의 결실은 또 다른 시련의 빌미가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욱 번성하고 강하게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아름답고 온전히 드러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활의 찬란한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골고다 위의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생명의 눈부신 영광을 피워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여러 고난을 겪을 때, 저마다의 파라오를 마주할 때,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고난 당한 우리를, 인생의 무게로 지치고 상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뻗으시는 권능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은혜의 길을 걸으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생명과 은혜의 주 하나님주님께서 약속하신 위대한 복은 시련을 통과해 다가옴을 깨닫습니다. 또한 그렇게 이룬 은혜가 도리어 불의한 자들이 저지르는 폭력의 빌미가 되는 아픈 현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고난이 깊으면 깊을수록 도리어 번성하고 강해지는 신비를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놀라운 진리를 거듭 마음에 새기는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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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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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선으로 바꾸사”
2026년 1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50장 “선으로 바꾸사” 찬송가 341, 342장야곱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아들들의 마음을 헤집으며 소용돌이 쳤습니다. 본문 15절 말씀과 같이, 당대 최강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는다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요셉을 찾아가 간곡히 비는 겁니다. 요셉의 화려한 총리 관저 안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며 야곱의 유언을 언급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형들을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제발 지난날 자기들이 행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 믿기 어렵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할 중요한 말을 직접 하지 않고, 굳이 오랫동안 불신했던 다른 아들들에게 했을 리 없습니다. 요셉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형들에게 속 마음을 거듭 털어 놓습니다. 20~21절 말씀을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20 형님들이 뜻하신 것은 저를 두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것은 그것을 좋은 일로 바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보시다시피 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21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을 계속 잘 모시고 형님들의 어린아이들도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며 형들의 마음에 와닿도록 말했다.요셉이 총리가 되어 처음으로 형들을 대면하며 했던 용서를 담은, 45장 5절을 반복하는 내용입니다. 그 날, 오랜 세월이 지나 형들을 다시 만나 요셉이 했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광기에 휩싸여 원한을 갚으려 않았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기적적인 장면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 때때로 바람처럼 화가 마음에 불어왔을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침내 비극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지난 날 겪었던 참혹한 폭력을 극복했습니다.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늘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회복과 반전의 길이 열립니다.총리가 되기 전 요셉의 일생은 패배와 좌절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철부지로 자란 청년이 미숙한 판단으로 여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순진하게 이용당하며 짓밟혔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자기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겪은 고난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지나온 아픔을 새롭게 돌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미래가 인간의 과거를 변화시켰습니다.요셉의 꿈풀이는 주술이나 점술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꿈을 꾸고 해석하며 주님으로부터 다가오는 미래를 느꼈습니다. 그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악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어둠도 하나님은 빛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절망도 하나님은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이러한 진리가 그로 하여금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버티고 살아남게 하였습니다. 찬란한 용서와 사랑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형들과 조카들을 끝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합니다.이렇게 창세기는 과거를 딛고 일어나 하나님의 미래로 나아가는 용서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창세기를 여는,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범죄를 극복하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연결됩니다. 또한 이후 펼쳐질,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과도 이어집니다. 그 어떤 악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생의 짙은 절망을 이겨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더 나아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거기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곳에 나를 세우신 뜻을 살피며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시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미래 속에서, 과거의 그 어떤 절망도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눈물도 계속 흐르지 않습니다. 그 모두는 아름다운 변화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거대한 폭풍에 휩쓸릴 때,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아픔 속에 괴로울 때,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로 힘겨울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행하신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몸소 사람이 되어 온갖 상처를 입으며 이 땅을 딛고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열어 보이실 미래를 기대하며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세상은, 사람은 우리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생명과 구원과 희망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기도온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요셉이 험난한 인생을 거치며 피운 용서의 꽃을 바라봅니다. 그가 고단한 시련을 통과하며 맺은 사랑의 열매를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에도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열어가실 미래로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며,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로 현재의 고난 가운데 주시는 소명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작년 말과 신년 초를 창세기 묵상으로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세기에 담긴 아름다운 복음과 놀라운 사랑을 마음에 품고, 주님께서 이뤄가시는 새로운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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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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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남겨진 말들”
2026년 1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9장 “남겨진 말들” 찬송가 430, 433장어제 읽은 창세기 38장은 야곱이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마주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 찬양합니다.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요셉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야곱은 노쇠한 팔을 엇갈려 뻗어 두 손자에게 복을 주었습니다.이어서 야곱은 요셉 뿐만 아니라 모든 아들을 다 불러 모아 그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이 장면에서도 야곱의 아버지 이삭을 떠오르게 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간절히 구하며 극한의 갈등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 아버지의 말이 지닌 힘을 자녀들이 매우 진지하게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야곱은 이삭과 달리 단 한 명에게만 복 혹은 저주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들들 각자에게, 그들에게 펼쳐질 앞날을 예고하며 말합니다.여기서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야곱은 점을 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지나온 삶에 근거하여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헤아려 주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숙명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어를 초월합니다. 주님의 주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헤아리십니다. 잘못을 크신 사랑으로 용서하시지만 동시에 엄중히 보여주며 깨닫고 돌이키길 바라십니다. 또한 남몰래 행한 섬김과 사랑을 귀하게 받으시어 합당한 복으로 반응하십니다.야곱은 열 두 아들 중에서 특별히 두 아들에게 비중 있게 축복하였습니다. 먼저 유다를 향한 선언을 살펴 보겠습니다. 8~9절 읽겠습니다.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유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겁니다. 다른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며 지도자로 치켜세울 겁니다. 그의 자손들은 마치 사자 새끼처럼 용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강한 지파를 세우고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태어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동시에 창세기 안에서 유다의 이야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38장에는 며느리 다말을 거리의 여인인 줄 알고 동침해 쌍둥이를 낳는 죄를 범했습니다. 몹시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베냐민 대신 옥에 갇히겠다고 자처했습니다. 결국 요셉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즉, 유다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금 가족을 온전히 사랑하고 기꺼이 희생한 결과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이어서 요셉을 향한 축복을 확인하겠습니다. 22, 25절 읽겠습니다.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야곱의 축복’이라는 찬양 가사로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요셉은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와 같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이집트를 넘어 주변 지역을 7년 대기근에서 구했습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요셉을 도우시어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복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셨음을 믿습니다. 유다처럼 강력한 지파를 이끌고, 요셉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임재가 진정한 복입니다. 그들의 약점과 한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며 이끄시는 손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품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새 힘을 얻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기도아버지 하나님저희 모든 인생을 돌아보시고 가장 합당한 은혜의 길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한 복인 구원의 기쁨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앞날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함을 믿고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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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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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아우가 큰 자가 되고”
2026년 1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8장 “아우가 큰 자가 되고” 찬송가 310, 312장이집트에 도착하고 얼마 있어 야곱의 건강히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먼 이집트로 이주를 떠나며 쌓인 피로, 그리고 그동안 겪은 극도의 긴장이 갑자기 풀려서일 겁니다. 그 소식이 요셉에게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끝에 극적으로 아버지를 다시 뵈었지만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의 침실로 향합니다.야곱을 돌보는 사람이 그에게 아들 요셉이 찾아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2절에 보면 그 이야기를 들은 야곱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야곱에게 요셉이 그런 존재입니다. 기력이 쇠한 노인을 일으키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가장 아끼고 소중한 아들에게 자기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들려줍니다. 지금 이 순간, 요셉을 통해 누리고 있는 행복의 본질을 정확히 깨닫고 알려줍니다. 본문 3, 4절 읽겠습니다.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야곱은 오래 전 형 에서의 칼을 피해 외삼촌 하란의 집으로 향했던, 그 암담한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 때 그는 가나안 땅 루스에서 돌을 베고 잠들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불연 듯 자기에게 다가오신 주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에게 이미 주신 언약을 다시 확인 시켜 주셨습니다. 많은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난 날의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셨음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 감격과 함께 손주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 이삭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 역시 눈이 몹시 어두웠습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데려갑니다. 야곱은 거듭 감격합니다. 요셉을 다시 만난 것도 감격인데 요셉이 낳은 두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따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에 근거해 손주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그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 시대 오른손은 강력한 권능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자연스럽게 장남 므낫세는 아버지의 오른손으로 차남 에브라임은 아버지의 왼손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엇갈려 뻗었습니다. 오른손은 차남 에브라임에게 왼손은 장남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놀란 요셉은 아버지가 실수한 줄 알고 손 위치를 바꾸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들을 만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읽겠습니다.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야곱이 나이 들어 눈이 보이질 않아서, 총명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져 차남 에브라임을 장남 므낫세보다 높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서를 뒤엎으며 이루어 집니다. 다른 누구보다 야곱 자신이 깊이 고백하는 진리입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생생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낮은 모습으로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당부합니다. 세상의 질서와 욕망을 거슬러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과 인내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넘어서는 진정한 복과 은혜를 신실하게 이루실 줄 믿습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야곱이 주님께서 안겨주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 깨달았듯이, 저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이 분명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견고한 세상의 거짓을 딛고 일어나 시련 가운데 열매 맺는 참된 복을 누리고 전하게 하여주시옵소서.어제부터 진행 중인 청소년부 겨울 수련회 가운데 기름 부음 넘치길 구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하시는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기쁨 가득히 안고 안전하게 귀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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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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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장 “나그네 길”
2026년 1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7장 “나그네 길” 찬송가 433, 435장요셉은 가족들이 이집트에 도착하자 형들 중 다섯 명을 선택해 파라오 앞에 모시고 갑니다. 파라오가 예상대로 그들에게 본래 하던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요셉에게 미리 들은 대로 답을 합니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가축을 치던 목자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차가운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이집트는 목축업을 천대하기 때문입니다.요셉은 이집트를 구한 영웅으로서 온 나라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그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셉의 가족을 환대하며 이집트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땅 라암셋을 주어 그곳에 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요셉과 그의 가족들은 이방인입니다. 역사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이방인은 언제나 경계 대상입니다. 어디서 불어오는 지 알 수 없는 바람에 나라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할 수 있습니다.이런 사실을 요셉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파라오와 그 주변 권력층이 혹시 모를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가업이 비천한 목축업이라고 아뢰었습니다. 굳이 자랑할만한 다른 요소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이집트 안에 남부러울 것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그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 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고난을 암시합니다. 요셉 이야기가 한 사람의 감격적인 성공신화가 아니라 험악한 인생 길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합니다.파라오는 자기에게 찾아온 야곱에게 연세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야곱은 자기 나이를 두고 백 삼십세라고 짧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지나온 고단한 인생을 ‘나그네 길 세월’이라고 묘사합니다. 노인 야곱은 자기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약삭 빠른 자기 머리로 치밀하게 꾸민대로 삶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주님께서 그의 앞길을 이끄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 놀랍고 위대한 계획 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항복한 야곱을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통해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야곱은 노년에 이와 같은 은혜를 마음 깊이 품으며 자신의 신앙을 유언에 담습니다. 30절 함께 읽겠습니다.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야곱은 이집트의 위대한 총리의 아버지로서 자기 인생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온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화려한 문명에 기대어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역시 나그네 길에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가나안이라는 걸 가슴 저릿하게 고백했습니다. 단지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 땅이 상징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주님의 위대한 약속을 소중히 여겼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나그네 길을 걷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입니다. 오늘날의 그 어떤 이집트도, 그 어떤 파라오의 금은보화도 우리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염려와 불안을 끊임없이 이겨내며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는 인생입니다. 때로는 야곱이 말하듯 험악한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삶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가장 신실하게 품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손길을 의지하며 거친 현실을 딛고 일어나 믿음의 걸음을 내딛길 축원합니다.기도저희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아들 요셉에 의해 파라오의 환대 가운데 도착한 이집트 땅에서 야곱의 가족들은 여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눈에 보이는 풍요에 안주하지 않고 차가운 현실에 직면하며 언약을 품으며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그와 같이 저희 인생 또한 ‘나그네 길’임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험악한 세월을 보낼 때, 신실하신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인생의 방향을 올바로 점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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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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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장 “이제 괜찮아”
2026년 1월 2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6장 “이제 괜찮아” 찬송가 379, 384장창세기 45장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감격적인 소식을 들은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둡고 어둡던 그의 인생에 한줄기 환한 빛이 쏟아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요셉을 이집트에 미리 보내셨습니다. 총리로 세워 곡식을 관리하게 하셨고, 이집트 파라오의 환대 가운데 가족을 초대하게 하였습니다.마침내 야곱은 온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조급하게 걸음을 옮기진 않습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립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그전에, 창세기 28장 13절과 32장 9절 모두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나란히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만 언급합니다. 막연히 할아버지 때로부터 대를 이어 받은 신앙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의 관계가 도드라집니다.그 둘은 원만한 부자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형 에서를 편애했습니다. 이후 가족 간에 벌어진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피신한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여러 복잡한 감정이 마음에 남았을 겁니다. 동시에 자기 역시 요셉을 편애하며 아들들 사이를 갈라놓은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와 반성을 했을 겁니다.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가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 하셨습니다. 앞서 약속하신 대로 이집트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확인 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그의 눈을 감겨주리라는 사실도 알려주셨습니다. 야곱의 험난한 인생을 마무리 하는 너무나 눈물겨운 위안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파라오가 보낸 수레에 가족을 태우고 가축을 포함한 온 재산을 끌고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요셉이 가족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기름진 고센 땅에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그곳에서 야곱은 요셉을 만났습니다.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의 상봉 장면을 기록한 29~30절 함께 읽겠습니다.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두 절을 새번역 성경을 제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29 요셉은 말에 수레를 메우고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버지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버지의 목을 껴안았다. 목을 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했다.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괜찮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요셉은 아버지를 껴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그에게 야곱이 말합니다.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괜찮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 창세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죽어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야곱은 인생의 험난한 설움과 한을 모두 풀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벧엘과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 해서 시련이 비껴가지 않습니다. 누구나 야곱처럼 험악한 나그네 길을 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완전한 그림을 주님께서 당신의 깊은 뜻 가운데 매듭 지으십니다. 지금까지 흘린 모든 눈물과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 안으십니다. 그 사랑에 의지하여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야곱이 보냈던 험악한 인생의 여정 끝에 안겨주신 따뜻한 위안을 발견합니다. 야곱을 끌어안고 흘린 눈물에 담긴 회복을 바라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저희 인생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여전히 저마다의 이삭으로 말미암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한 삶입니다. 하지만 벧엘과 브엘세바에서 야곱을 만나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저희와 동행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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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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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 “요셉을 보리라”
2026년 1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5장 “요셉을 보리라” 찬송가 93, 95장이집트 총리 자리에 오른 요셉은 마침내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기를 이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자기에게 보여주신 꿈의 참 의미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신중하고 주도면밀합니다. 형들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씩 시험합니다.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시므온을 붙잡았습니다. 베냐민이 도착한 후에는 일부러 그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잡아 가둘 것처럼 위협합니다. 그런 그에게 유다가 지난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버지를 걱정하며 자기가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처했습니다.결국 요셉의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파라오의 궁궐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공포에 떨며 어리둥절해 하는 형들에게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고향의 언어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다고요?” 너무나 놀라 얼어붙은 형들에게 요셉은 거듭 자기 정체를 밝힙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팔아넘긴 그 동생이 맞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이곳에 보내셨다며 거듭 안심시켰습니다.그런 다음 시급히 요청합니다. 아직 흉년이 다섯 해나 남아 있습니다. 가족들을 더 이상 가나안에 둘 수 없습니다. 지금 자기가 총리로서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전해주고,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을 데려와 이집트에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형제들을 끌어안고 요셉은 용서와 화해의 눈물을 계속 흘렸습니다.이 놀라운 소식이 이집트 왕궁에 들렸습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의 가족들을 극진히 환영합니다. 파라오가 직접 명령을 내립니다. 요셉 가족이 이집트에서 가장 기름진 땅에서 평안히 살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화려한 이집트 수레에 각종 선물을 싣고 요셉의 형제들이 고향에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마침내 그들이 아버지에게로 도착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눈 앞에 펼쳐진 전혀 뜻밖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그저 아들들이 무사히 곡식을 사고 베냐민을 안전히 데려오기만을 바랐을 겁니다. 그런 야곱에게 각종 동물과 이집트의 값비싼 물품이 함께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수레에서 내린 아들들에게 보석같이 눈부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이 살아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모시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마침내, 모든 게 거짓말인 것 같은 지금의 혼란 속에 맑은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28 이스라엘이 말했다. “이젠 더 바랄 게 없어. 요셉이, 내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니! 얼른 가서 그 아이를 봐야겠구나, 내가 죽기 전에.”단어 하나하나에 야곱의 눈물겨운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보낸 아들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가운데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를 만나고자 수레를 보냈습니다. 눈을 감기 전에 ‘내 아들, 요셉’을 만날 희망에 가득 안겼습니다.성경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으로 넘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단지 수천년 전 일어난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구원 역시 마찬가지로 기쁘고 복된 소식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결코 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한, 도무지 상상도 못할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집트의 금은보화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감격을 거듭 확인하고 회복하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구원의 주 하나님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가족을 굶주림에서 구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에 압도된 형들과 야곱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기쁜 소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린 새 힘과 희망을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사신 복음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소식인지를 고백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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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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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4장 “그 아이를 대신하여”
2026년 1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4장 “그 아이를 대신하여” 찬송가 320, 321장본문 앞에 있는 창세기 43장은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간곡히 설득하여 다시 이집트에 도착한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날 요셉은 오랜만에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을 만나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자기 정체를 알지 못하는 형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베냐민에 대한 그들의 진심이 어떠한지, 지난날 요셉에게 지은 잘못을 어디까지 반성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계획을 꾸밉니다. 자신의 은잔과 곡식값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으라고 부하에게 지시하였습니다. 날이 밝고 형들이 든든하게 챙긴 곡물과 함께 기분 좋게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을 쫓아 왔습니다. 어떻게 호의를 범죄로 값을 수 있냐고 느닷없이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이 총리의 은잔을 훔쳐갔다며 곧바로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형들로서는 가슴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자기들 옷과 함께 마음을 찢으며 다시 총리 관저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자기 종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우려했던 공포가 이루어졌습니다.그 때, 유다가 나섭니다. 유다는 그동안 가족이 겪은 일들을 차분히 들려줍니다. 아버지에게 막내 베냐민이 어떤 존재인지를 소상히 들려줍니다. 30-31절 읽겠습니다.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형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대들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해 주었습니다. 요셉에 이어 베냐민마저 잃고 숨을 거둘까 봐 몹시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유다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요청합니다. 33-34절 읽겠습니다.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유다는 막내 베냐민을 대신 해 요셉의 종을 자처합니다. 그가 이집트로 떠나기 전 야곱에게 했던 약속이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앞장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전을 받고 동생을 팔았던 유다는 이제, 은잔을 훔친 죄목으로 붙잡힌 막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인물로 변했습니다. 동시에 유다가 형제들의 대표가 되었고 그의 영향력 아래 가족의 분위기가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지난 날 저지른 과거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뉘우쳤음을 보여줍니다.이렇게 유다는 증조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우뚝 솟아오릅니다. 훗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영광스럽게도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대신해 붙잡히고 모욕 당하고 숨을 거두셨습니다.이처럼 우리는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 등장한 유다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형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의 본질을 생생해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성품과 걸어가야 할 사명을 깨닫습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물러서고 양보해야 합니다. 구원을 세우기 위해 희생하고 져 주어야 합니다. 그 모든 헌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결코 헛되지 않고, 찬란한 생명의 결실로 이어질 줄 믿습니다. 기도위대한 사랑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온 가족이 처한 위기 가운데, 아버지에게 했던 약속을 굳게 지킨 유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나선 그의 희생을 바라봅니다. 늙고 힘없는 아버지 야곱을 지키기 위해 감수한 위험을 헤아립니다. 그런 유다에게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새삼 깨닫습니다. 유다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담대히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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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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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장 “유다가 진 책임”
2026년 1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3장 “유다가 진 책임” 찬송가 543, 549장어제 읽은 창세기 42장은 기근에서 벗어나고자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간 형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에 온 후 처음으로 그들을 보았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일단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3일뒤 시므온만 남겨두고 몰래 곡식과 돈을 챙겨주며 돌려 보냈습니다. 대신, 다음에 다시 와서 시므온을 풀어주려면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미 요셉을 잃은 충격으로 오랫동안 시름한 야곱으로서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입니다. 여전히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었습니다. 살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지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먹을 거리를 사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형제들을 대표해 말합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흥분하며 언성을 높입니다. 왜 막내를 언급해서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느냐고 했습니다. 총리가 요셉인지 알지 못한 유다는, 도무지 그가 그런 요구를 할지 몰랐다고 대답했습니다.그러면서 유다는 결정적인 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립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9 제가 그 아이를 책임지겠습니다. 저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께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서게 하지 못하면, 아버지께 평생 그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담보’가 된다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그는 가족이 처한 위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책임지고 아버지의 뜻을 돌리게 할 줄 아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주에 읽었던 38장 내용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요셉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한 장을 통틀어 유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남편을 잃은 며느리 다말을 돌보지 않고 그녀를 몸을 파는 여인으로 오해 해 잠자리를 한 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창세기가 뜬금없어 보이는 언급을 한 이유를 우리는 43장에서 확인합니다. 바로 유다의 극적인 변화입니다. 완전히 달라진 인격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가족을 어려움에서 구했습니다. 사실 유다만이 아닙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르우벤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시간이 흘러 변했습니다.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의 허물을 일러바치던 철부지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 새로워졌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유다의 헌신 덕분에 베냐민을 비롯한 형제들은 다시 요셉과 마주 하였습니다. 총리는 뜻밖에도 자기 집으로 그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베냐민을 만났습니다. 29절은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라고 기록합니다. 단지 같은 어머니 배에서 난 동생이란 뜻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극진한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너무나 애틋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그 결과 34절에 보면 요셉과 형제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유다의 결단과 희생의 없었다면 불가능한 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날 내 한계와 연약함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몰아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유다처럼 기꺼이 섬기고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성령님의 손길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가족과 이웃을 향해 진정한 즐거움의 잔치를 전할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새 창조의 주 하나님책임을 소홀히 하고 욕망을 따라 살던 유다의 위대한 변화를 발견합니다. 저희 역시 주님의 손길 아래서 새롭게 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날의 한계와 결핍을 넘어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 이루실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 사람들과 복음 안에서 함께 즐거워하는 풍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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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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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장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2026년 1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2장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찬송가 429, 430장창세기의 시선은 요셉에서 야곱의 가족들로 향합니다. 기나긴 흉년의 피해가 그들이 사는 가나안 땅에도 미쳤습니다. 야곱은 어딘가에서 들은 소식을 아들들에게 알려줍니다. 주변 나라들과 달리 곡식을 많이 모아둔 이집트에서 먹을거리를 사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요셉의 형 열 명이 이집트로 향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셉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마침내 형들은 이집트 총리 관저에 도착했습니다. 요셉 앞에 엎드려 곡식을 사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심장이 철렁했을 겁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선명하게 영혼 깊이 다가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 그에게 보여준 꿈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지금껏 겪은 모든 시련이 주님의 깊은 뜻 안에 있었음을 다시금 생생히 깨달았습니다. 섣불리 분노를 불태우며 보복하지 않고 차분히 마음을 정리했습니다.동시에 불현듯 생각나는, 애타게 그리운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동생 베냐민입니다. 아쉽게도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베냐민도 나처럼 형들에게 구박을 당하진 않았는지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며 형들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들이 정탐꾼이라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삼일 뒤 나타나 한 명만 붙잡고 나머지는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풀려나길 원한다면 고향에 두고 온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형들이 나눈 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21~22절을 보면, 형들은 요셉에게 저지른 범죄를 뉘우치며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철없던 지난날, 시기심에 사무쳐 어린 동생에게 범했던 가혹한 폭력의 칼날이 자기들에게 되돌아 왔다고 느꼈습니다. 그 핏값으로 외국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자책하였습니다. 그 모든 대화를 요셉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추스른 다음에 돌아왔습니다. 시므온을 붙잡나 감옥에 가드었습니다. 그러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양식을 넉넉히 주고 받은 돈을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여비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험을 겪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던 형들은 여관에서 다시 돈을 발견합니다. 염탐꾼에 더해 절도범으로 몰릴 위기를 느낀 그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그들은 집에 도착해 아버지에게 이집트에서 겪은 일을 들려줍니다. 아들들이 무사히 곡식을 가져오기만 바랐던 야곱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미 요셉을 잃었는데 시므온도 이집트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게다가 라헬이 남긴 마지막 아들 베냐민까지도 빼앗길지 모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암담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야곱은 슬픔과 분노에 사무쳐 아들들에게 절절한 한탄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때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37절 함께 읽겠습니다.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르우벤은 비탄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며 약속합니다. 만약 베냐민을 무사히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의 두 아들을 죽여도 된다고 말합니다. 이 안에 너무나 많은 게 담겨 있습니다. 르우벤은 지난 날, 어리석은 욕망으로 아버지의 침실을 더럽혔습니다. 분명 이후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요셉을 잃은 야곱의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잃을 각오까지 하며 적극적인 희생을 공개적으로 다짐합니다.이 장면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이 지금껏 겪은 시련들을 통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간 시간 동안, 야곱의 아들들 또한 고통과 슬픔 가운데 다듬어지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이 현재 처한 절망과 공포 역시 이후 펼쳐질 놀라운 구원의 과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완전히 끝난 것 같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사라진 암흑의 절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꿈을 통해 온 우주를 아우르는 찬란한 계획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야곱 가족의 인생을 신실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 날, 요셉이 흘린 눈물을 함께 흘리시길 바랍니다. 그의 가슴을 뒤흔든 감동을 함께 느끼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겪은 좌절은 그대로 묻히지 않고 형들의 참회로 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껏 우리가 지나온 숱한 비극은 결코 그 자체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부활의 찬란한 영광으로 이어졌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신 위대한 구원으로 열매 맺을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더욱 소망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넓고 높은 계획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야곱의 시련 끝에 이집트 총리로 세우시는 동안, 형들에게도 성숙과 변화의 시간을 이끌어 오셨음을 발견합니다. 지금 저희가 겪는 여러 아픔과 고통을 주님께서 허비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그 모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어둠이 빛으로 새롭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매일 삶을 담대히 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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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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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37~57절 “두 이름”
2026년 1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1장 37~57절 “두 이름” 찬송가 391, 393장어제 읽은 창세기 41장 전반부는 마침내 요셉에게 찾아온 인생의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파라오의 술맡은 관리가 왕궁에 복귀하고 2년이 흘렀습니다. 파라오가 꾼 기이한 꿈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요셉의 이름이 거명되어 왕 앞에 섰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고 이루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일’로 고백합니다. 동시에 자기 인생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믿음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뜻을 따라 파라오의 꿈이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의미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파라오와 모든 신하가 좋게 여겼습니다. 특히나 파라오가 더욱 감탄하였습니다. 단지 그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파격적으로 등용하였습니다. 제국의 권력을 모두 그에게 맡겼습니다. 너무나 눈부신 인생 역전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노예가 파라오 앞에 서는 것만해도 과분한 일입니다. 누구나 감탄할만한 인생성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거기서 훌쩍 끌어 올리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기나긴 풍년과 흉년을 잘 관리하도록 총리로 세웠습니다. 그동안 그가 겪어온 시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왜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 그 뜻을 그제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의 가슴을 흔든 고백을 아들들에게 지은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최고 지도자로서 마침내 안정을 찾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51~52절 함께 읽겠습니다.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누구에게나 그렇듯 자녀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부모로서 엄중한 역할입니다. 특히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고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버지의 묵직한 감정과 통찰히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요셉이 그러합니다. 그는 큰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잊다.’라는 뜻입니다. 51절이 설명하듯이 지금껏 겪은 험악한 고난과 형들에게 겪은 폭력을 잊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입니다. ‘창성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 총리로 세우시고 허락하신 번성을 의미합니다.불과 몇 글자로 적힌 이름이지만 요셉의 가슴저릿한 신앙 고백이 눅진하게 담겨있었습니다. 그는 지난 아픔을 잊었습니다. 더 이상 분노와 원망으로 자기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요셉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그에게 놀라운 풍성함으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집트 총리라는 높은 지위와 세속적 성공에 시선을 뺏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로 하여금 시련을 이기도록 주시는 은혜는 눈에 보이는 거창한 성공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총리 자리는 권력이 아니라 흉년에서 구하는 섬김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맡겨주신 모든 하루의 삶이 곧 각자의 풍성함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지금 내 손에 쥔 모든 것, 현재 나와 마주한 모든 이들로 말미암아 충만함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진정한 풍성함과 번성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지나온 모든 상처를 이겨내고 앞 날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진심을 담아 ‘므낫세’와 ‘에브라임’, 참된 ‘잊음’과 ‘번성’을 고백하길 축원합니다. 기도전능하신 주 하나님므낫세와 에브라임, 요셉이 두 아들에게 지은 이 이름들에 담긴 그의 진심을 발견합니다. 지난 날의 아픔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향해 나아간 요셉의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저희에게 주신 섬김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여려 흉년을 주님의 풍년으로 극복하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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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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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1~36절 “하나님이 하실 일”
2026년 1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1장 1~36절 “하나님이 하실 일” 찬송가 390, 391장2년이 지났습니다. 요셉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극적으로 파라오의 술 관리에게 꿈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져 그가 관직을 회복했습니다. 이제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분명 쉽게 풀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당연히 찾아올거라 기대했던 희망이 산산이 무너졌습니다.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왕궁에서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감옥 문을 열었습니다. 파라오가 자신을 부른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그저 감옥에서 나오기만을 바랐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도무지 예상못한 놀라운 기회가 펼쳐 졌습니다. 어느 날 파라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나일 강가에 서 있었는데 살진 윤택하게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이어서 흉하게 야윈 다른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왔습니다. 끔찍하게도 그 흉한 암소들이 살찐 암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파라오는 놀라서 꿈에서 깨어 일어나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꿈이 펼쳐졌습니다. 곡식 줄기에서 잘 여문 이삭 일곱이 올라왔습니다. 이어서 마른 이삭 일곱이 피어나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흉한 이삭들이 잘 익은 이삭들을 삼켰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꿈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펼쳐질 거란 예감이 파라오의 마음에 강렬하게 찾아왔습니다. 평소 그렇듯 이집트의 점술가들을 불러 모아 지난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술 담당 신하가 자기 죄를 깨닫고 왕에게 고백합니다. 2년 전 감옥에서 만난 히브리 노예 청년을 소개합니다. 그가 행한 탁월한 꿈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요셉은 파라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집트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그에게 최고 권력자가 꿈 풀이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요셉이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에 각각 한 말들이 의미심장합니다. 16절 함께 읽겠습니다.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이어서 25절 읽겠습니다.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는 꿈 해석과 실행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분명히 고백합니다. 그는 여전히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험난한 인생의 굴곡에도,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희망 고문에도, 걷잡을 수 없는 패배감과 자기 모멸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가 눅눅하고 차디찬 감옥 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와 함께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지난 날 하셨고, 지금 하시고 앞으로 하실 일을 신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때로 감옥에 억울하게 갇힌 요셉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너무나 비참한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싫을 때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좌절하는 희망을 더 이상 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 깊숙이 다가오시어, 그를 통해 위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우리로 말미암아 주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이 땅 가운데 펼치실 줄 믿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동행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굳게 지킨 요셉의 믿음을 바라봅니다. 그의 일생을 이끄시고 때에 맞는 훈련과 돌보심으로 함께 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에 찾아오는 모든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세미한 섭리가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심을 믿고 기대합니다. 주님께 저희 삶을 드리며 모든 고난과 슬픔을 이겨내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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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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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장 “안색을 헤아리다”
2026년 1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0장 “안색을 헤아리다” 찬송가 218, 220장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신뢰를 얻어 감옥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그곳은 평범한 감옥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친위대장, 즉 이집트 왕실 경비대장의 집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위 정치범들이 가두는 곳입니다. 어쩌면 히브리 노예 출신인 요셉이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보디발이 베푼 상당한 특혜와 배려입니다.그 감옥에 어느 날 왕의 술 맡은 관리와 떡 굽는 관리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왕의 음식을 마련하는 신하가 아닙니다. 독살이 흔했던 고대 사회에서 임금은 자신의 먹을거리를 매우 신뢰하는 심복에게만 맡겼습니다. 그들의 업무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파라오의 신임을 받는 고위 관료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두 사람의 처벌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친위 대장은 요셉에게 그들을 섬기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꿈에 대해 지금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게다가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한 순간에 추락해 옥에 갇힌 그들로서는 자기들이 간 밤에 꾼 꿈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몹시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마땅히 해석할 사람이 없어 답답해했습니다.그러자 요셉은 자기에게 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을 상황입니다. 예전처럼 궁궐 안에 있었으면 왕실 주술사를 불러서 꿈을 알려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닙니다. 먼저 술 맡은 관리가 이야기합니다. 그는 꿈에서 포도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습니다. 그 포도 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 파라오에게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곧바로 해석합니다. 포도나무 가지 세 개는 사흘을 의미합니다. 사흘 안에 파라오가 그를 원래 자리로 돌릴 거라며 그 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셉은 요청했습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떡 굽는 관리가 기대에 부풀어 자기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흰 떡 세 광주리를 머리에 짊어 졌습니다. 그 중 가장 위에 있는 광주리에는 파라오를 위해 만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먹을거리들을 새들이 먹었습니다. 요셉은 곧바로 해석을 알려줍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속 세 광주리도 사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리와 달리 그는 사흘만에 처형을 당해 나무에 달리게 됩니다. 완전히 다른 결말입니다.삼일 뒤, 요셉의 꿈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파라오의 생일이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요셉이 예고한 대로 술맡은 관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파라오의 술잔을 챙겼습니다. 반면에 떡 맡은 관리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순간입니다. 히브리 노예 출신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할 결정적 장면입니다. 동시에 형들을 격분하게 했던 요셉의 꿈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알려줍니다.이토록 중대한 사건의 시작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본문 6~7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6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갔다. 그런데 그들을 보니, 이런,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7 요셉은 자신의 주인집 감옥에 함께 갇혀 있는 파라오의 관리들에게 물었다. “오늘은 왜 그리 얼굴빛이 좋지 않으신가요?”술 맡은 관리와 자기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시작은 요셉의 시선에 있습니다. 창세기는 그날, 요셉의 눈길과 그의 생생한 감정을 감탄사와 함께 극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수동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앞에 마주한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주목하고 안색을 살폈습니다. 어두운 표정을 읽고 진심으로 함께 근심하며 형편을 헤아렸습니다. 사랑 어린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노예 신세에서 파라오 왕실 최고 권력자로 등극합니다.물론 그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술 맡은 관리는 왕궁에 들어간 후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분명 기대가 좌절되는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희망이 무너지는 암담한 절망으로 괴로웠을 겁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을 향한 그의 따뜻한 배려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은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힘들수록, 마음에 찬 바람이 불어올수록, 온통 주위에 어둠으로 가득할수록 더욱더 영혼 깊숙이 온기를 품으시길 바랍니다.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시름에 함께 아파하고 신음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짊어지신 주님께서 눈부시게 찬란한 구원의 여정을 펼쳐 보이실 줄 믿습니다.기도놀라운 구원의 주 하나님힘겨운 감옥 생활 중에도 곁에 있는 이들의 아픔과 근심에 귀 기울이고, 따뜻하게 경청한 요셉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의 진실로 성숙한 내면과 신앙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움터 올랐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에만 눈길이 머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를 향해 온기를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저희를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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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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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2026년 1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9장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요셉은 형들 손에 팔려 낯선 땅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부유한 족장의 총애를 받는 아들에서 한순간에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근무하는 고위 장교인 보디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힘겨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기록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 한 복판에서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당신의 임재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을 잘되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극적인 반전입니다. 그 결과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었습니다. 집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주었습니다. 신분만 노예일 뿐, 어떤 면에서는 고향에서보다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렸습니다.하지만 행복은 얇디얇았습니다. 작은 충격에 쉽게 금이 가고 깨졌습니다. 언제부턴가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젊은 혈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굳게 지켰습니다. 9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 눈길을 항상 의식하였습니다. 죄를 단호하게 경계하였습니다. 도무지 요셉이 넘어오지 않자 보디발의 아내는 마침내 도발을 감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어 집안을 비워두고 요셉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옷을 잡고 더욱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기 옷을 주인 아내 손에 버려두고 도망칩니다. 불타오르는 집착에서 분노로 바뀌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요셉을 강간범으로 고발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즉결처분감입니다. 하지만 보디발은 자기가 관할하는 감옥에 요셉을 가둡니다. 아마도 보디발도 요셉의 억울함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체면상 처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보디발로서는 상당한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으로서는 너무나 암담한 상황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인권 개념이 없는 옛날, 감옥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다시 찾은 평온과 비교하며 더욱더 요셉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두고 창세기는 이렇게 놀라운 기록을 남깁니다. 21절 읽겠습니다.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한글 번역에 잘 드러나지 않는 원문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20절 그가 감옥에 갇혔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21절의 히브리어 성경 본문은 접속사를 세 번 반복 사용해 연속적인 흐름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 ‘요셉에게 은혜 베푸심’, ‘간수장의 호의를 받음’, 이 세 가지가 한 호흡으로 연결됩니다.즉, 감옥에 갇힌 아픔으로 요셉의 삶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함께 하시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는 구체적으로 보디발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간수장의 눈에 들어 감옥의 주요 업무를 맡아 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23절 후반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형들에게 팔려 두려움에 떨며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에도, 낯선 나라에서 노예살이를 할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임재하시어 고난을 이겨내고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가슴뭉클한 위로를 안겨주는 진리입니다. 동시에 쓰라린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해서 모든 일이 순탄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지만 여전히 고난이 찾아옵니다. 주님이 찾아오지만 절망에 빠지고 암담한 어둠에 잠깁니다. 주님이 동행하시지만 눈물겨운 상처를 입고 관계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임재를 신뢰해야 합니다.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가장 생생히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아 보이는 그 깜깜한 순간이야말로 진실로 나와 함께 하시는 순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인생의 온갖 어둠을 이겨내며 진정한 형통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임마누엘 하나님요셉의 굴곡진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심에도 여전히 고통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에 그 모든 절망을 이겨낼 희망으로 이끄심을 고백합니다. 당장 처한 현실에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새롭게 펼치실 내일을 향해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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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