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제목 | 날짜 |
|---|---|
|
레위기 1장 “그리고 부르시어”
2026년 3월 2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장 “그리고 부르시어” 찬송가 217, 218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40장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한 남자를 발견합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마치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셨습니다(출 33:11). 심지어는 등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출 33:23). 모든 사람이 주님의 얼굴을 마주보기 두려워하여 영광 앞에 벌벌 떨었으나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성막이 완성되자 구름이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모세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압도될 뿐입니다. 레위기는 이러한 장면 다음에 펼쳐지는 성경입니다. 레위기 1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우리말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1장 1절의 첫 단어는 접속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회막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레위기 전체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복잡한 수많은 율법에 길을 잃으면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광 중에 임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들을 부르시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제일 먼저 사람들이 당신과 만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그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의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제물의 모든 것을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 가장 합당한 응답은 나의 삶 전체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강요나 의무가 아닙니다. 2절에 기록된 “누구든지 예물을 드리려거든”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나아오는 자들의 자발적인 반응이어야 합니다.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절차를 살펴보겠습니다. 4, 5절 함께 읽겠습니다.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죄인이 거룩하신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물에게 ‘안수’합니다. 제사장에게 떠넘길 수 없는 의식입니다. 그런 다음 직접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조각냅니다. 그 과정에서 짐승이 울부짖고 여기저기 피가 튑니다. 맨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순간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죄를 제물에게 넘기고, 제물의 생명이 나를 대신해 죽게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그 마무리를 레위기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17절 읽겠습니다.17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예전에 함께 묵상했듯이, 이미 출애굽기 29장 18절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제물이 불에 타는 것을 가리켜 ‘화제’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와 함께 동물이 탄 역한 고기 냄새가 퍼집니다. 하지만 레위기는 이를 가리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언급 합니다.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맡고 느끼는 기분과 감정과 상관없이 백성의 제사를, 죄의 고백과 헌신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구약 시대처럼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희생 제물이 되시어 제사를 완성하고 끝맺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출애굽의 구원을 베푸시고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 찾아오셔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마음과 시간을 주님께 온전히 태워 드리는 '향기로운 번제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영광 가운데 저희를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자격 없는 죄인을 초대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오늘 하루 저희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저희 삶을 주님께 향기로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5 |
|
출애굽기 40장 “가득한 영광”
2026년 3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40장 “가득한 영광” 찬송가 445, 446장드디어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을 읽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를 통해 수백년간 노예살이 하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는 장엄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삶의 기준이 되는 율법을 읽었습니다. 끝으로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이 위대한 성경의 마무리가 성막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2절에 보면 이날은 첫째 달 초하루입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유월절, 즉 이집트를 탈출한 날을 첫날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회막이 완성된 이날은 이집트를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여기서 “첫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창세기 1장 5절의 “첫날”과 같은 단어입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눈에 띄는 독특한 표현입니다.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막 완공이 곧 ‘새로운 세계의 첫날’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성막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닙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담긴, 위대한 영광을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아래에서 약 6개월간 하나님의 설계도에 전적으로 집중하며 순종하여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창조 질서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았더라며 감격하신, 선하신 은혜가 회복되었습니다.이러한 성막이 다 완성되었을 때 장면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34, 35절 함께 읽겠습니다.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성막이 세워지자 거룩한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이 임재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모세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앞서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나누었는지 이미 출애굽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런 모세 역시도, 성막에 임재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 앞에 지극히 연약합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확인합니다. 성막은 인간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채워지는 공간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의로움과 능력을 자랑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이룬 것들을 자랑한다면, 어쩌면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구름으로 가득한 성막처럼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마주하며 나를 내려놔야 합니다.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주님의 임재만을 구하고 사모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출애굽기 전체의 결론인 38절 함께 읽겠습니다.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성막은 성전이 아닙니다. 건물이 아닌 천막입니다. 이 사실은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광야 여정입니다. 그들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갑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인도는 낮에는 성막 위에 있는 구름으로 밤에는 그 구름 안에 있는 불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 영혼 깊이 보내주셨습니다. 인생 여정을 가장 신실한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진심으로 구해야 합니다. 내면의 소음들, 욕망으로 흐려진 시야를 거두고 오늘 내 삶 가운데 주님께서 보여주신 구름과 불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출애굽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복음과 진리가 날마다 풍성히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영광의 주 하나님저희 삶 가운데 오직 주님의 임재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창조를 이루시며 내민 손길이 저희 삶에 항상 중요한 기준이 되길 소망합니다. 인간의 업적과 능력을 자랑하지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24 |
|
출애굽기 39장 “모든 것을 마치고”
2026년 3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9장 “모든 것을 마치고” 찬송가 452, 455장그저께 함께 읽은 출애굽기 38장은 번제단과 놋 물두멍과 성막 울타리 제작에 대해 기록합니다. 그런 다음 성도들이 드린 예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상세한 결산을 알려줍니다. 이어지는 39장은 40장에 있을 성막 봉헌에 앞서, 모든 성막 제작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대장정의 끝을 앞둔 너무나 중요한 순간을 묘사합니다.대부분은 제사장 복장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1절부터 31절까지 긴 내용입니다. 그런 다음 32절부터는 성막의 모든 공사를 마친 이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들려줍니다. 먼저 32절 함께 읽겠습니다.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지금까지 읽어왔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의 각 기구를 제작할 때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갑니다. 하나하나 정교한 노동과 헌신이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라는 말에는 거대한 민족적 과업을 마친 이스라엘을 향한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주목할 또 다른 언급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입니다. 출애굽기 39장에만 무려 10번이나 나오는 표현입니다. 본문의 핵심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막은 모세나 제사장 마음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혹은 기술자가 편한 대로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는 주님의 명령을 따른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으로서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지식과 감정과 판단 전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너무나 버겁고 힘듭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임재로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이어서 43절 읽겠습니다.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모세는 모든 성막 작업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본즉”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신 말씀.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이어집니다. 혼돈 속에서 질서 있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처럼, 이스라엘은 광야라는 혼돈 속에 말씀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불확실한 여정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였습니다.관련해서 대제사장의 흉패에 박힌 열두 보석을 주목해야 합니다. 각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몸입니다.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슴과 어깨에 새기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의 금방울은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룩한 시간을 깨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보석들은 성소 안의 촛불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도록 일깨우는 “영원한 기념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감탄하며 외치셨습니다. 그 감격으로 대제사장의 가슴에 박힌, 열두 보석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을 향해 바라 보십니다. 그 시선은 참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소 안 촛불에 영롱하게 비친 보석처럼 여기십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형편, 가진 재산과 지식과 무관합니다. 사랑의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모든 갈등과 염려와 불안에서 생명의 질서로 변화 시키십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설계도 대로 주어진 삶을 가꾸고 빚어가시길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인생을 아름다운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고 빛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찬란한 영광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 하나님이스라엘의 성막을 사람의 판단과 욕심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따라 만들었음을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광야를 지나는 저희 인생 역시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사장의 흉패에 달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보석처럼 주님께서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실 줄 믿습니다.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눈길을 의지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23 |
|
출애굽기 38장 “금과 은 그리고 놋"
2026년 3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8장 “금과 은 그리고 놋” 찬송가 287, 288장출애굽기 후반부의 주요 주제는 ‘성막’입니다. 법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를 상징합니다. 오늘 읽은 38장은 성막을 제작을 마무리하며 중요한 내용을 알려줍니다. 21절을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21 여호와께서 머무실 천막, 곧 증언의 천막을 만든 일을 통틀어 보면 이러하다. 모세의 말에 따라 아론 제사장의 아들 이다말의 지휘를 받아 레위 사람들이 정리한 것이다.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만든 것으로 소명을 다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역을 정리하였습니다. 특별히 각종 귀금속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들인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25 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26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이틀 전에 읽은 출애굽기 36장을 떠올려 봐야합니다. 백성들은 성막을 만들기 위해 예물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바친 것으로 다 끝난게 아닙니다. 레위 사람들은 금과 은이 얼마나 쓰였는지 정확하게 정산합니다.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입니다. 은의 경우 백성들이 성소 세겔로 백 달란트로 천칠백칠십오 세겔입니다. 매우 구체적인 기록입니다.이러한 내용을 통해 참 이스라엘인 교회 역시 정확하고 재정 운영의 중요성을 확인합니다. 마침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회계처리를 하였습니다. 이런 소중한 전통을 잘 이어 나가야 합니다. 성도님들의 땀과 눈물이 밴 귀한 예물을 꼭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동시에 투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마침 1/4분기 재정을 보고하는 제직회가 3월 마지막 주에 있습니다. 꼭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이어서 29~30절 읽겠습니다.29 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30 이것으로 회막 문 기둥 받침과 놋 제단과 놋 그물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여기에 보면 금과 은 외에도 성막 기구, 구체적으로 기둥 받침과 놋 제단에 사용된 금속을 확인합니다. 바로 ‘놋’입니다. 이것과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으로 헬라어로 옮긴 70역 성경에 보면 여기에 사용된 놋은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고라의 무리가 반역할 때 사용했던 놋 향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설합니다.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내용입니다. 본래 그 놋 향로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자들이 들고 있던 '반역의 증거'이자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끄러운 과거의 잔해들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두드려 펴서 제단을 싸는 재료로 삼게 하셨습니다.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수치마저도 정화하여 은혜의 도구로 재활용하시는 분입니다. 금과 은에 하나님의 ‘영광’이 담겼다면, 놋은 우리의 ‘죄악’을 담았습니다. 또한 고라의 무리는 마음이 완악하여 심판을 당했으나 그들의 손에 쥔 놋의 ‘단단함’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희생 제물을 받으시는 은혜의 수단이 되었습니다.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조차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거룩한 예배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의 놋이 은혜의 제단으로 변모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막에 쓰인 화려한 금과 은 못지않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금과 은 그리고 놋의 쓰임과 쓸모를 명심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성막을 짓기 위해 백성들이 정성으로 드린 금과 은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하게 계산하여 남긴 기록을 발견합니다. 정배 교회가 지금껏 그러하였듯이 성도들의 소중한 예물을 합당하게 사용하고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강한 재정 원칙을 잘 지켜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성막에 사용된 놋이 하나님께 반역한 고라의 무리가 사용한 놋 향로에서 가져왔다는 오랜 구약 해설을 나누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21 |
|
출애굽기 37장 “순금과 조각목”
2026년 3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7장 “순금과 조각목” 찬송가 436, 438장오늘 함께 읽은 출애굽기 37장은 성막의 핵심 기구를 브살렐이 만드는 모습은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1~9절은 가장 고귀한 언약궤 제작 과정을 기록합니다. 앞서 며칠 전에 언약궤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상자입니다. 성막 전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주님은 당신의 백성과 교제를 나눕니다. 이러한 언약궤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2 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여기서 우리는 언약궤의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정교함’입니다. 성경은 언약궤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각각 두 규빗반, 한 규빗 반, 한 규빗 반입니다. 여기서 규비는 팔꿈치 끝에서부터 가운데 손가락 길이를 가리킵니다. 대략 45cm 정도로 추정합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산과 준비를 보여줍니다.마찬가지로 이후 펼쳐질 구약 성경 속 역사와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복음. 이 모든 것에 주님의 치밀한 뜻과 계획을 발견합니다. 죄임을 구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이 복잡한 세상 속에 정교하게 펼쳐졌습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열정과 사랑을 언약궤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언약궤의 두 번째 특징은 ‘균형’입니다. 사용된 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각목, 즉 나무로 상자를 만들고 순금으로 둘러쌌습니다. 조각목은 이스라엘이 머물던 광야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우 단단해서 강한 내구성을 지녔습니다. 우리 인생과 가장 밀접한 재료입니다. 살아있기에 연약함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 모레 바람과 벌레의 공격도 당합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순금에 대해서는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너무나 값진 보물입니다. 이 자체가 분명한 상징입니다. 존귀한 영광을 상징합니다. 영롱한 황금빛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드러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권을 보여줍니다. 역사상 많은 왕이 금으로 왕관을 만드는 이유입니다.이렇듯 언약궤가 나무와 순금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우리는 나무처럼 연약한 생명체이지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금처럼 환하게 빛난다는 뜻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셨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위대한 섬김과 사랑을 발견합니다.정리하자면 언약궤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엄밀함과 균형을 동시에 지닙니다. 때로 삶이 답답하고 막막할 때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세심한 손길이 우리 삶에 동행합니다. 가장 합당하고 정교한 은혜를 펼쳐 보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영광을 포함한 균형과 조화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명확한 상징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증거임을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오늘 하루도 주님의 위대한 임재가 우리와 동행할 줄 믿습니다. 기도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언약궤의 길이를 정교하게 설계하시듯 저희 인생을 향한 주님의 손길 또한 신실한 계획 가운데 나아갈 줄 믿습니다. 또한 나무와 순금으로 연약한 인생과 위대한 영광의 조화를 보이신 깊은 뜻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흠결 많은 저희 삶을 받으시어 찬란한 은혜를 펼쳐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
출애굽기 36장 “모든 일을 넉넉하여”
2026년 3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6장 “모든 일을 넉넉하여” 찬송가 212, 213장출애굽기 36장은 성막을 만드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제 함께 읽은 대로 지혜와 능력을 지닌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주도 아래 성막의 기물들을 만듭니다. 그 자세한 내용이 3절부터 38절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어떤 휘장을 사용하고, 그 길이가 어떻게 되며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었는 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어떤 가죽을 사용하고 어떤 나무로 널판을 만들었는지도 전해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이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성막을 만드는 그 행위 자체 못지않게 중요한게 있습니다. 바로 성막을 만들기 위한 준비입니다. 성막은 많은 금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복장을 비롯해 여러 곳에 다양한 보석이 들어갑니다. 그 외의 재료를 구하는데도 상당한 지출이 필요합니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충당했을까요? 관련해서 흥미로운 기록이 본문에 나옵니다. 3~5절 함께 읽겠습니다.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3 그들은 거룩한곳(성소)에서 할 일을 하는 데 쓰도록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져온 모든 예물을 모세에게서 넘겨받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모세에게 가져왔다. 4 솜씨 있는 사람들이 왔다. 거룩한곳(성소)의 온갖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왔다. 5 그들이 모세에게 보고했다.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하는 데 쓰고도 남습니다.”성소를 만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차고 넘쳤습니다. 오죽하면 성소를 만드는 일에 동원된 기술자들이 모세에게 보고하며 만류할 정도입니다. 이미 충분히 쓰고도 남을 정도로 예물이 많은데 그럼에도 백성들이 가져와서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이쯤되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체 이스라엘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과 보석이 나서 하나님께 바쳤을까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를 떠올려 보시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보석을 받아 갔습니다.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많은 보석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풍부한 자원과 세공 기술을 오랫동안 자랑했습니다.이스라엘은 그러한 이집트의 보석을 가슴에 품고 나오며 심장이 두근 거렸을 겁니다. 가나안에 정착하면 든든한 살림 밑천으로 사용할 기대에 부풀었을 겁니다. 긴 시간 힘겹게 노예로 살아왔던 고통스런 삶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사실 충분히 자연스럽고 타당한 생각입니다. 아무도 비난할 수 없고 보석을 억지로 뺏을 수 없습니다.하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아낌없이 자기 소유를 하나님께 드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얼마전에 있었던 금송아지 사건과 시내산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막과 성소는 그런 임재를 백성 가운데 명확히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기꺼이 아낌없이 예물 드린 이유입니다. 예물에 그 사람의 가장 깊은 가치관과 지향이 담기기 때문입니다.오늘 본문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에 헌금 많이 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대신 우리의 소비와 지출이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 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 고백 가운데 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지식 등,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의 나라를 풍성히 넓히는 일에 아낌없이 내어놓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성소를 짓는 일에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드린 이스라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역시 주님의 일을 넓히도록 넉넉히 내어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재능과 지식을 자기 자신의 탐욕과 성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9 |
|
출애굽기 35장 “안식과 소명”
2026년 3월 1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5장 “안식과 소명” 찬송가 205, 208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34장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기록할 두 번째 돌판을 들고 시내산에 오르는 모셉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는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어서 다시 말씀을 적은 돌판을 들고 내려옵니다. 그의 모습에 너무나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릴 정도였습니다.모세는 백성을 불러 모아 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었습니다. 사실 여기에 언급한 내용들은 이미 앞서 출애굽기가 보여준 율법들입니다. 하나 하나 모두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3절 읽겠습니다.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눈 부시게 밝은 광채 가운데 산에서 다시 내려온 모세가 전한 첫 번째 주제는 “안식일”입니다. 그만큼 백성이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삶의 원리입니다. 사람이 안식을 지킬 때 안식이 사람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더 이상 안식일을 율법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대신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지킵니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 흐르는 정신은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명심하며 잠시 멈추어 쉬어야 합니다. 욕망과 불안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가 우리 삶의 리듬을 이루어야 합니다. 30~31절 읽겠습니다.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이어서 34~35절 읽겠습니다. 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하나님께서는 성막 안의 각종 거룩한 도구들을 만들 일꾼으로 유다 지파의 브살렐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부르셨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31장에 거론됩니다. 이 후에도 오늘 읽은 35장을 비롯해, 36~38장에 계속 언급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손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신비로운 이적들을 통해서만 이루지 않으십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음에도 굳이 사람을 부르십니다. 합당한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 실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그 결실들로 가득한 장소가 성막입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이 시대의 브살렐과 오홀리압으로 부르셨습니다. 각각 맡은 역할만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더욱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각자 주어진 가정과 일터 등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이루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기도영광의 주 하나님백성들에게 거듭 당부하신 안식의 의미를 마음에 새깁니다. 지나치게 앞을 향해 내 달리는 세상 속에서 진리 앞에 멈추어서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성막 기구를 만드는 일꾼으로 세우셨듯이 저희에게 이 시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명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저마다 주어진 일상을 주님 뜻 안에서 선하게 가꾸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8 |
|
출애굽기 34장 “질투하시는 하나님”
2026년 3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4장 “질투하시는 하나님” 찬송가 299, 301장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금송아지를 둘러싸고 광란의 잔치를 즐겼습니다. 그 죄악의 현장 한복판에 모세는 말씀이 새겨진 돌판을 집어 던졌습니다. 말씀이 그 모든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 잡았습니다.이제 회복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당신의 말씀을 기록할 돌판 두 개를 마련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모세는 순종하여 돌판 두 개를 들고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순간입니다. 어제 읽은 33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처럼 친밀하게 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와 같은 신뢰 가운데 모세는 부서진 돌판처럼 무너진,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 하셨을까요? 5~6절 함께 읽겠습니다.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주님께서 구름 가운데 내려오시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5절 후반부를 새한글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성경에서 하나님은 ‘보통명사’이고 ‘여호와’는 고유명사입니다. 장군은 직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고, 이순신은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의 이름인 고유명사인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말씀 판을 새기는 그 엄중한 순간에 선포하신 건 당신의 지극한 권위가 아닙니다. 백성들이 복종해야 할 삼엄한 계율도 아닙니다. ‘여호와’라는 내밀한 존재를 담은 이름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스라엘이 기계처럼 당신을 복종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사귐을 이루길 바라십니다. 그런 까닭에 6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 이름 ‘여호와’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당신의 성품을 생생하게 알려 주십니다. 6절 후반부를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 여호와는 자비롭고 불쌍히 여겨 주며, 참을성 많고 사랑 많고 참된 하나님이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불쌍히 여겨 주며, 참을성 많고 사랑 많고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또 다른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주님은 질투의 하나님 이십니다. 심지어 질투를 당신의 이름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성품입니다. 사실 좀 당황스럽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존엄과 맞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6절에 기록된,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시는 풍성한 사랑의 성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그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관념 속에 있지 않습니다. 모호한 철학 개념도 아닙니다. 뜨겁게 살아 숨 쉬는 행동입니다. 그분의 가슴을 뒤흔드는 반응입니다. 그 절정을 십자가에서 발견합니다. 십자가에서 온갖 모욕과 핍박을 견디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시어 무한한 인내와 사랑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을 통해 더욱 분명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그 놀라운 사랑이 오늘 하루도 충만하게 우리와 동행할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한 사랑의 주 하나님죄악으로 가득한 백성들에게 또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시며 이름을 들려주신 놀라운 사랑을 찬양합니다. 그 이름에 담긴 뜨거운 은혜를 마음에 품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의 온기와 생기를 풍성히 품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7 |
|
출애굽기 33장 “주님의 길로”
2026년 3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3장 “주님의 길로” 찬송가 440, 442장그저께 읽은 출애굽기 32장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조급해진 백성들은 아론을 재촉해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론은 금을 모아 녹여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는 그 금송아지를 가리켜, 다른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한 야훼 하나님이라고 부른데 있습니다. 십계명 제2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심각한 범죄였습니다.오늘 읽은 33장은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두 차례나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슬퍼하면서 어느 누구도 장신구로 꾸미지 않았습니다. 근신하며 반성하였습니다.모세가 선택한 방법은 회막입니다. 정확히는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진 중앙에 있는, 법궤를 모시는 성막과 별개로 진 밖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9~11절 함께 읽겠습니다.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자 구름 기둥이 내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온 백성이 지켜보며 일어나 경배하였습니다.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임재입니다. 단지 지도자 모세 한 사람의 권위를 내세우는 장면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당신의 계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여기서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관계 가운데 주님께 요청합니다. 13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13 이제 제가 정말 주님 눈에 든다면, 주님의 길을 제게 꼭 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제가 주님을 알아보고서 계속 주님 눈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이 겨레는 주님의 백성입니다.”모세의 요청은 분명합니다. 바로 “주님의 길”입니다. 막막한 광야 여정 가운데 가장 소중한 진리입니다. 동시에 지난 황금 송아지 사건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치명적인 무지입니다. 그들은 혼란과 공포 가운데 하나님의 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우리 또한 저마다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다. 황량한 여정을 지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특별한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신비한 느낌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쌓아가는 꾸준한 교제입니다.그런 만남이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알려주실 줄 믿습니다. 때로 앞이 보이지 않고, 잘못된 길로 빠진 것 같고, 되돌아 가야할 것만 같은 답답한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죄악에서 구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 하루도 가장 합당한 길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과 친밀한 사귐을 이루시는 하나님모세가 회막에서 주님을 만나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 또한 날마다 하나님과 따뜻한 사귐을 이루기 원합니다. 온전한 묵상과 기도 가운데 주님의 길을 깨달아 알길 소망합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 길에서 어리석은 조급함과 욕심을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6 |
|
출애굽기 32장 “금 송아지를 깨뜨리며”
2026년 3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2장 “금 송아지를 깨뜨리며” 찬송가 321, 322장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수백년간 대를 거쳐 익숙하게 살았던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낯선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광야 여정을 지나는 중입니다. 모든게 낯설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강력한 지도자 모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는 감감 무소식입니다. 처음 며칠간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떠올리며 진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공백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백성들은 점점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결국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에게 찾아갑니다.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든 위기 가운데 진면목을 드러냅니디. 블행히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아론은 금 귀고리를 모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본문 4절 함께 읽겠습니다.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이 장면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몹시 격노하신 끔찍한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을 제시한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종교를 믿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황금 송아지를 가리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야훼 하나님입니다. 관련해서 십계명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 제2계명이 적힌 출애굽기 20장 4절 읽어 드리겠습니다.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여기서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금지하신 우상은 무엇일까요? 시간 관계상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마침 지난 수요일에 말씀 드렸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 종교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나무나 돌로 형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외입니다. 어떤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시내 산 밑에 남겨진 백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드신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몹시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우상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유한한 틀 안으로 제한했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의 뜻을 좁은 형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철저히 부정하는 심각한 우상 숭배입니다.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간의 얕은 생각으로 만유의 주님을 제한하지 않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진리는 교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경건은 형식에 갇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낯설게 대해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익숙한 편견을 내려놓고 광대하신 하나님의 복음 앞에 항복해야 합니다.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가 죄인을 향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생생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붙잡고, 내 인생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분명히 다짐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을 물리친 하나님의 생생한 의지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알게 모르게 내가 만든 금송아지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둬둔 우상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무한히 넓은 사랑으로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기도만유의 주 하나님한낱 금 송아지로 주님의 영광을 제한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들을 통해 저희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틀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가두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광대하신 주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하시며 드넓은 진리를 품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4 |
|
출애굽기 31장 “안식을 지키라”
2026년 3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1장 “안식을 지키라” 찬송가 337, 338장오늘 본문을 묵상하기 전에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를 벗어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성소와 성막과 제사장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평소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회막의 각종 기구를 정교하게 만든 브살렐과 오홀리합에 대한 기록이 출애굽기 31장 11절까지 이어집니다.그런 다음 성막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요한 내용을 하나님은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그들이 지켜야 할 여러 규칙 중 하나가 아닙니다.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이러한 안식일을 통해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7절 읽겠습니다.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사실상 13절을 반복하는 구절입니다. 종종 설명 드린대로 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 낭독하는 걸 귀로 듣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배려하기 위해 중요한 내용을 살짝 바꾸어서 반복해 외쳤습니다. 1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 날 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육일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휴식을 취하셨을까요? 사람들처럼 피곤하셨기 때문일까요? 기운을 차리려 그러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창조의 원리를 분명히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마침 지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주라는 성전의 중심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주님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고 섬겨야 합니다. 이러한 소명에 응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이 바로 안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을 설명하는 본문의 기록은 무척 냉혹합니다. 안식일에 일을 해서 이날을 더럽힌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주의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강조법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식을 강조하실까요?안식이라는 일상 속 여백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폭력적인 욕망을 향해 맹렬히 내달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제도가 정착되기 전 힘을 가진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했습니다. 상대가 적절한 휴식과 쉼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몰아 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억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옥죄기도 합니다. 내가 달리고 손을 뻗은 만큼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걸 움켜쥘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무모한 열정으로 자기를 무너뜨리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내어주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능력과 지식만을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저주와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쉼을 누리고 그분의 뜻을 묵상할 때 우리를 살리는 참된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 길 속에 하나님과 관계가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안식의 여백을 이루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안식의 주 하나님백성들을 향해 안식을 거듭 명령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저마다의 욕망을 따라 굵은 붓으로 인생을 그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쉼을 지키길 다짐합니다. 저희를 향해 주님께서 그려가실 여백을 비우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삶 속에 구체적으로 임하시는 손길을 기대하며 안식의 여정을 이어가길 소망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3 |
|
출애굽기 30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위하여”
2026년 3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0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위하여” 찬송가 287, 288장출애굽기 30장은 성막과 제사와 관련한 여러 규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설교하기에는 좀 난감합니다. 하나로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 마음에 담을 몇 가지 내용을 다시 찾아보며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먼저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11~16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불해야 할 성전 속전에 대해 언급합니다. 새한글 성경은 좀 더 직관적으로 “목숨값”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0세 이상 성인 남성은 1/2세겔을 바쳐야 합니다. 이 돈을 통해 성막을 유지하고 제사를 진행하는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돈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쉽게 잊히는 진리입니다.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물질을 항상 기적적으로 채우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의도하신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적지만 마음을 모아 헌금하여 그 헌금을 통해 실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담임 목사로서 이번 기회에 조금 부담스러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헌금입니다.저는 성도님들의 생활에 무리가 될 정도로, 마음이 힘들 정도로 헌금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혹시 그런 분 계시다면 적극 돌려드릴 겁니다. 동시에 교회가 건강하고 생기있게 운영되도록 꾸준한 헌금 생활을 당부 드립니다. 물론 투명한 재정 운영이 그 전제입니다. 이를 위해 더욱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다음으로 37~38절 읽겠습니다.37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38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34~38절은 성막 안에서 피우는 향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좀 낯설 수 있지만 동방 정교회나 성공회 등 다른 교파에서는 예배 가운데 적절히 향을 사용합니다. 그 근거가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후각으로 경험하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전인적인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에 피울 향을 조제하는 상세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여러 향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서 만든 후에 증거궤 앞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향이 “지극히 거룩하다.”라고 엄중하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단호하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는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분명 하나님께 바쳐야 할 향이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맡고 싶어서 향을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냄새를 맡으려고” 만드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심판을 선포 하셨습니다. 자칫 별것 아닌 것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을 두고, 다른 죄악 못지 않게 무게를 실어서 말씀 하셨습니다.우리 또한 가만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만족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봉사와 섬김이 주님을 향하기 보다는 자기 만족은 아닌지 되 짚어 봐야 합니다. 물론 너무 겁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만족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태만보다 낫기도 합니다. 다만 헌신의 방향을 다시금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는 순전한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그런 우리 모두에게 오늘도 주님께서 아름다운 향기로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아름다운 임재로 날마다 함께 하시는 주 하나님성막에 관한 여러 규정 중 속전과 거룩한 향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회막 봉사를 위해 이스라엘 성인 남자 모두가 속전을 드린 모습을 발견합니다. 저희의 헌금 생활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정하신 균형을 이루는 헌신을 예물에 담길 소망합니다. 거룩한 향기를 사람이 맡기 위해 만들지 말라는 경고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영광을 가로채지 않게 하시고, 항상 자신을 살펴 겸손히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2026-03-12 |
|
출애굽기 29장 “주님께 드리는 향기”
2026년 3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9장 “주님께 드리는 향기” 찬송가 213, 214장오늘 읽은 29장은 제사장을 세우는 절차를 기록합니다. 그 핵심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백성을 위해 제사를 집례하는 그들은 우선 자신들을 위해 제사합니다. 이를 통해 제상의 핵심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제물을 태운 연기입니다. 25절 다시 한번 더 읽겠습니다.25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번제는 제물을 다 태우는 제사입니다. 구약 제사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입니다. 번제를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부릅니다. 흥미롭게 우리말과 비슷하게 “올라가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성전 제단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제물을 태운 연기가 하나님의 코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번제의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행위보다 그 제사를 주님께서 받는 게 더 중요합니다. 방금 읽은 25절을 보면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부분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화제”입니다. 주님께서 향기롭게 맡으시는, 제물을 태운 연기입니다. 정확하게 제물 가운데 불사르는 부분 또는 그것을 태우는 제사 방법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제물이 구분되는 걸 발견합니다. 제물 중에서 태워서 올라가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몫인 ‘화제’가 있고 나머지 제사장과 백성의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부분을 사람들이 가져가면 안 됩니다. 거룩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를 명심하며 매우 신중하게 주의해야 합니다.그런데 화목제의 경우 제물에서 태우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물 드린 사람이 온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서 고기를 나눠 먹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 유익이 큽니다. 반면에 모두 타서 연기가 되는 ‘화제’는 눈 앞에 사라집니다. 당장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 눈에 보이고 입에 들어가는, 태우지 않고 사람들이 먹는 고기와 다 태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 중 무엇이 중요할까요? 두말할 것 없이 불로 태워진 제물이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코에 향기로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제사의 본질입니다. 제사 드리는 백성이 거듭 유념해야 할 진리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당장은 배를 채우는 고기가 좋아 보입니다. 사실 자연스럽습니다. 분명 의미가 있고 그 역시 거룩한 제사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제사를 통해 더욱 본질적인 가치를 확인합니다.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건 보이지 않는 연기입니다.우리가 예배 가운데 거듭 고백해야 할 복음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당장 눈 앞의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런 본능을 억지로 누르라는 말도 아닙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상의 모든 삶은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눈부신 가치를 지닙니다. 아끼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이 여기에서만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 다는 진리를 마음 깊이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품고 때때로 바보같이 져주고 참고 손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탐욕에 흔들려 맹목적으로 내달리지 않고 미련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까닭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렇게 하셨습니다. 화려한 왕관이 아닌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시어 우리를 이 시대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습니다.오늘 하루 맡겨진 소명에 응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참 진리를 살아내고 전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저희 삶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주님께서 제사 중에 기쁨으로 맡으시는 향기는 금세 사라지는 연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당장 눈 앞의 현실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저희 삶이 주님 앞에 온전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참된 복음을 그윽한 향기로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300-07.
|
2026-03-11 |
|
출애굽기 28장 “맨발의 제사장”
2026년 3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8장 “맨발의 제사장” 찬송가 420, 421장출애굽기 28장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 어떤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옷은 전부 일곱 가지입니다. 숫자 7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옷의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제사장의 옷에 관련한 율법이 무척 까다롭게 많이 적혀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사장 의복은 화려한 패션이 아닙니다. 멋지게 꾸며내기 위해 입는 옷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게 목적입니다. 제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사장은 자기 모습을 감추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관련하여 오늘날 목회자들이 예배를 집례할 때 가운을 입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목사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중세 가톨릭 시대 때 지나치게 화려했던 사제의 의복 대신 검소한 의복으로 바꾼게 시작입니다. 가운을 입지 않고 정장을 입게 되면 자칫 목회자의 정장과 넥타이 등에 시선을 뺏겨 예배에 방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가운을 안 입는 목사님들의 의도를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기회에 개혁교회 예배 전통에 따라 예배의 경건을 위해 가운을 입는 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관련해서 주목할 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 의복에 관해 온갖 규정을 세세하게 정했습니다. 심지어 속옷에 대한 기록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하며 꼭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건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바로 신발이나 양말입니다. 제사장은 맨발로 제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멋지게 꾸미려고 했다면 화려하고 멋진 신발을 신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굳이 불편하고 초라하게 맨발로 서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사람들 눈에 보기에 몹시 이상합니다. 마치 누군가 창피를 주기 위해 벌을 세운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발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의복과 장식구를 착용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사장의 의복이 보여주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제사장이 옷에 착용한 각종 보석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지 자기를 포장하는게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는 사실입니다.이렇게 오늘 본문이 기록하는 제사장 복장 규정은 얼핏 지금 우리와 크게 관련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성막 대신 교회에 와서,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섬길 소명을 받았습니다.그러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요? 권위를 내세우고 화려하게 꾸미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주위 사람을 위해 맨발로 서야 합니다. 땅의 거친 질감을 느껴야 합니다. 발 위로 덮쳐오는 열기와 냉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놀라운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 가장 낮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온갖 핍박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셨습니다.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오늘 하루도 맨발의 제사장으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를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인도할 때 입을 옷의 상세한 규정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아무런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제사장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본받아 맨발의 소명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290-91.
|
2026-03-10 |
|
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2026년 3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찬송가 430, 433장시내산에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출애굽기 25장부터 그들에게 성막과 각종 기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증거궤’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혹은 ‘법궤’라고도 부릅니다. 흔들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려주며 용기를 불어넣는 게 증거궤입니다. 증거궤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이자 생생하게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입니다.시내산의 하나님 체험은 세월이 지나면 과거로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붙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이 산에서 내려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이 머물 성막을 마련하고, 그 성막 안에 주님이 특별히 계실 특정한 장소인 증거궤를 준비했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와 돌판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 광야 길에서 주님께서 함께 하신 은혜를 상징합니다.법궤는 조각목, 즉 나무로 만들고 겉은 순금으로 둘러쌌습니다. 옆면에는 금고리를 만들어 붙여서 채를 끼워 운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동 가능한 상태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광야 여정 중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한 곳에만 고정적으로 머무르며 사람에게 ‘보러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과 함께 다니시며 삶에 임재하기를 원하셨습니다.증거궤의 핵심은 덮개입니다. 20~22절 읽겠습니다.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법궤 위를 덮는 뚜껑을 가리켜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그곳을 두 천사가 날개를 높이 펼쳐 덮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속죄소에 앉아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증거궤 덕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영 한가운데 있는 성막에서 더불어 거하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의 척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믿었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증거궤를 모셔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장막입니다. 원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끔 대제사장만 허락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막았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가 드러났습니다.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의 고정된 장소에서 몇 백년 동안 계시던 하나님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우리를 만나셨습니다.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를 떠돌던 성막에 있던 증거궤가 시간이 흘러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머물렀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분명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어 당신의 인격으로 증거궤라는 물건을 대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을 더욱더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인간의 지식과 느낌과 상관없이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인생의 광야 여정을 신실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동행하는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날마다 사랑으로 저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증거궤 위 속죄소에 임재하셨듯이 성령님께서 지금도 저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경험과 느낌을 넘어서는 주님의 임재를 항상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272~76.
|
2026-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