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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0장 “거짓을 가둔 어둠 그리고 빛”
2026년 2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0장 “거짓을 가둔 어둠 그리고 빛” 찬송가 95, 96장열 가지 재앙이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너무나 견고한,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이집트 제국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가 온 땅을 덮고, 먼지가 이로 바뀌고, 파리가 들끓었습니다. 이어서 가축들이 심한 전염병으로 죽고, 사람들과 동물에 재가 들러붙어 악성 종기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과 함께 우박에 쏟아져 사람과 동물과 채소들을 덮쳤습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읽은 9장까지 기록된 재앙들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목적입니다. 단지 이집트의 왕과 백성들을 괴롭히고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화려한 문명과 삶을 떠받드는 이집트 우상숭배를 향한 심판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높여 찬양하는 그들의 신이 얼마나 거짓된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게 재앙의 이유입니다. 그 흐름 가운데 메뚜기가 온 땅을 덮었습니다. 이미 우박으로 이집트가 황폐해진 이후입니다. 햇빛을 가릴 정도로,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메뚜기 떼가 나타났습니다. 우박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푸른 잎을 메뚜기가 갉아먹고 사라집니다. 막중한 재산 손해 뿐만 아니라 신의 확고한 저주를 드러내는 너무나 두려운 상황입니다. 파라오가 벌벌 떨며 모세와 아론을 급하게 불러 용서를 구할 정도입니다.이제 다음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압도적으로 거대한 재난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이집트 온 땅을 피로 물들이는 잔혹한 사건이 일어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홉 번째 재앙은 얼핏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암흑’입니다. 21~23절 함께 읽겠습니다.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이집트 온 땅이 어둠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집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오직 한 곳,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영롱한 불빛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재앙과 달리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별거 아닌 일로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숨 막힐 것 같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이집트가 섬기는 수많은 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태양신 ‘라’(혹은 ‘레’)이기 때문입니다.이집트 백성은 태양의 지배를 받는다는 자부심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절반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였습니다. 그토록 찬란한 태양이 노예들이 섬기는 신 야훼에 의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태양신 따위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이 전능한 존재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고 그들의 자녀들을 함부로 죽이는 이집트의 권력과 문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벌을 내리십니다. 지금 우리는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우리 주위와 세계 곳곳에는 또 다른 태양신과 파라오가 존재합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게 현혹하는 물질 문명, 영원할 것만 같은 견고한 기득권, 사람들의 맹목적 열광 아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 보기에 아무리 찬란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어둠으로 거짓을 덮으십니다. 그 이면에 숨 쉬는 악한 폭력을 준엄하게 벌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참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온 우주를 향해 발하시는 진정 아름다운 광채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 빛이 오늘도 우리를 감싸안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영광에 안겨 현란하게 번쩍이는 거짓을 물리치고, 어둠 속에 고요히 빛나는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빛이신 주 하나님온 이집트가 어둠에 잠겼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곳에만 밝게 빛났던 그 빛을 마음에 새깁니다. 태양신의 거짓 광채와 그 안에 벌어졌던 폭력을 벌하신 주님의 공의를 바라봅니다. 억울하게 흘린 눈물을 보시고 신음에 응답하며 행하신, 놀라운 구원을 사모합니다. 거짓으로 빛나는 어둠이 아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어둠을 뚫고 다가온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 빛을 품고 전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 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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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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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9장 “말씀을 두려워하여”
2026년 2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9장 “말씀을 두려워하여” 찬송가 545, 546장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시기 위한 재앙들이 그 땅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시작은 나일강 물을 피로 바꾼 이적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개구리, 이, 파리 재앙이 이어졌음을 어제 읽은 8장이 알려줍니다.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앞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 강물을 피로 바꾸고, 개구리를 불러 모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흉내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작은 벌레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파라오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였습니다.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은 이어서 몰아닥친 재앙을 묘사합니다. 먼저 가축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키우는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심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성경이 굳이 각 동물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 시대에 매우 중요한 목축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이적은 생활에 큰 불편함을 주는 것에 멈추었습니다. 이제는 직접 생명에 위협이 다가왔습니다.또한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축과 이집트의 가축이 정확하게 구별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집에는 병으로 죽어가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파라오가 직접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재앙을 보내는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그 주님이 반드시 당신의 백성을 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은 재앙 가운데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악성 종기 재앙에 이어 하나님은 우박을 예고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습니다. 단지 심판만이 목적이라면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굳이 미리 경고하셔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배려하십니다. 19~21절 함께 읽겠습니다.19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내일 이맘 때, 커다란 우박이 쏟아질 겁니다. 맞으면 목숨을 잃는 무시무시한 우박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을 알려줍니다. 왕궁에서 모세의 경고를 들었던 파라오의 신하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여호와의 말씀을 두지 아니하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예고대로 종과 동물을 집 안으로 들인 사람들은 화를 면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무시하고 밖에 내버려두면 불덩이와 함께 쏟아지는 우박을 맞았습니다.따라서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무시하는가? 입니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됩니다. 현실 속에서 우박 재앙과 같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따라도 삶의 여러 재해를 겪기도 합니다. 신앙을 단순히 재난을 피하는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온전히 경외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실한 날개 아래 품어주실 줄 믿습니다. 때로 비바람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펼치시는 권능의 품 안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안전을 얻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역사의 마지막에 진정 생명과 승리를 거둘 줄 믿습니다. 그날을 향한 소망을 기대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말씀하시는 주 하나님말씀을 경외하며 경고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시한 사람들에게는 죽임이라는 매우 다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저희를 살리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복음만이 거친 세상 속에 저희를 보호하는 진정한 피난처이심을 고백합니다. 재앙으로 가득한 현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살림의 손길을 붙잡고 일어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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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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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8장 “하나님의 권능”
2026년 2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8장 “하나님의 권능” 찬송가 67, 68장출애굽기 7장은 열 가지 재앙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조용히 파라오를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나일강물을 검붉은 피로 바꾸셨습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국에 번영을 안겨준 생명의 근원이 죽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자연이 변한 게 아닙니다. 나일강이 상징하는 이집트 종교의 허상이 드러나고 야훼 하나님의 권능이 솟아오른 사건입니다.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아론이 이집트의 물 위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올라와 이집트 제국 전역을 덮었습니다. 단순히 징그럽다거나 생활이 크게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개구리는 다산의 축복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수많은 개구리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집트는 개구리 모양의 “헤케트”를 생명과 다산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섬겼습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에 의해 개구리가 통제 불능의 거대한 혼란을 안겨주는 것을 목격하며 그들의 신앙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음으로 티끌이 이가 되었습니다.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 땅에 먼지를 치자 일어난 일입니다. 최근에 나온 새한글 성경은 여기서 ‘이’ 대신 ‘모기’로 번역하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집트의 모든 티끌이 작은 벌레 떼로 변하여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동물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이 세 번째 재앙의 특징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이신 이적을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흉내 내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들자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출 7:11~12). 심지어 모세와 아론처럼 물을 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출 7:22).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를 불러 모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출 8:7)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뭔가 다른 상황이 펼져 졌습니다. 출애굽기 8장 18~19절 함께 읽겠습니다.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이번에도 이집트 왕궁 소속 마술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흉내 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태양과 나일강을 움직였던 그들이 정작 작은 벌레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자기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이적과 마주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완벽한 권능에 압도당하며, 파라오 앞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우 놀라운 역설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존재로 당신의 완전한 전능을 드러내시어 이집트의 거짓 능력을 폭로 하셨습니다. 파라오의 마술사들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하나님을 흉내 냅니다. 화려하고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고 자랑하거나 위협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마법사들이 제 아무리 눈부신 영광을 자랑한다 한들 주님의 빛 앞에 금세 사라집니다. 그들이 어떻게든 기적을 꾸며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이신 가장 온전한 능력을 바라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은 거대하고 찬란한 성과와 업적으로 자기를 드높이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처절한 죽음과 희생으로 부활의 능력과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위대한 겸손으로 세상의 오만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지극히 작음으로 주님의 진정한 크심을 깨달으며 재앙을 이겨내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전능하신 주 하나님하나님의 권능이 지극히 작은 벌레를 통해 드러난 사건을 발견합니다. 거창한 이적을 흉내 낸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정작 먼지를 이로 바꾸지 못한 모습에서 이 세상의 거짓을 확인합니다. 겸손히 낮아지는 가운데 비로소 다다르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화려한 욕망이 그려내는 허상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참 구원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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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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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2026년 2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찬송가 93, 94장출애굽기 6장은 이집트를 벗어나는 위대한 여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주도하신다는 위대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세의 쓰라린 좌절을 함께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완고하게 닫혀 있습니다.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 모세는 자기 입이 둔하다며 거듭 한탄합니다. 단지 신체 일부의 약함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막중한 사명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고백하는 장면 합니다.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일으켜 세워 본격적으로 출애굽 여정의 문을 여십니다. 당신의 권능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먼저 아론을 통해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키는 이적을 일으켰습니다. 파라오의 마술사들 역시 지팡이로 뱀을 만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뱀들은 이스라엘의 뱀에 잡아 먹혔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야훼 하나님이 마냥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얼마 되지 않아 온 이집트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파라오가 나일강에 나타날 때 그에게 전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십니다. 17~18절 함께 읽겠습니다.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하나님은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뱀으로 만들었던 그 지팡이를 들고 나일 강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일강을 비롯해 다른 강과 운하와 모든 호수가 피로 바뀌었습니다. 단지 물이 피로 변했다는 신비로운 화학적 변화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먹을 물이 없어 괴로움에 빠진 것도 이 이적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단순히 거대 자연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신성합니다. 이집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찬란한 문명을 지탱하게 한 원천입니다. 그런데 그 나일강이 노예들의 신에 의해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신이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그토록 자랑했던 화려한 번영이 한순간에 허약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근본을 뒤흔드는 경악스러운 사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 열 가지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성의 탄식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졌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내미시는 살림의 손길은 허공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 시대 가장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과 체계 속을 헤집고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떠받드는 화려한 문명을 뒤집고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러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반역범을 처형하는 틀이 부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고 고백한다면, 오늘날 우리 앞의 이집트 제국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파라오가 내세우는 나일 강이 무엇인지는 올바로 가늠해야 합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을 거세게 움직이게 하는 탐욕의 실체를 가리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게 하는 눈부신 무언가입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많은 돈이, 다른 누군가에는 드높은 명예가 그러합니다.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물을 피로 바꾸십니다. 과연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검붉은 피로 생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향해 삶의 중심을 고정하며 제국의 풍요를 넘어 천국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나일강을 피로 바꾸신 하나님기세등등한 파라오의 오만이 강물과 함께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저희 삶의 참된 풍요는 나일강과 그 강을 다스린다고 외치는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파라오의 다스림이 아닌 주님의 통치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온전히 깨닫고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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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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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2026년 2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찬송가 324, 325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5장은 모세가 파라오에게 백성의 구출을 요구한 후 벌어진 파장을 알려줍니다. 파라오는 불쾌해하며 이스라엘이 게으르다고 질책하였습니다. 더욱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무척 마음이 상하고 지쳤습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하나님은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출애굽 사건을 누가 주도하는지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바로 하나님 당신입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모세가 괴로워하는 핵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막중한 사명을 이끌 책임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주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의 강한 손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이유를 다시 강조하며 설명하십니다. 5, 7절 함께 읽겠습니다.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하나님께서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지난날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길 바라셨습니다. 그들과 신실한 관계를 이루기 바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몸소 앞장서 이루십니다. 너무나 눈물 겹도록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합니다. 9절 읽겠습니다.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찬란한 언약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변화를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길 바랐을 겁니다. 출애굽 여정을 향해 비로소 힘차게 걸음을 내디딜 거라 예상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버겁고 괴로웠기 때문입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심하게도 모세를 더욱 몰아 붙이십니다. 11절에 보면 주님은 모세에게 파라오에게 다시 가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가 파라오에게 시도한 결과 이스라엘은 가혹한 노동 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로 인해 모세는 백성의 거친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파라오의 왕궁을 향해 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로서는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입니다. 출애굽기 6장의 마지막 절인 30절은 자기는 입이 둔한 자라며, 파라오가 말을 들을리 없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미 그가 떨기나무 앞에서 부름 받았을 때 하소연한 내용 그대로입니다.이처럼 본문은 하나님의 찬란한 언약 그리고 이와 명확히 대비되는 싸늘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경험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녀들과 따스한 관계와 사귐을 이루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직면하는 것은 내 처절한 한계와 주위 사람들의 냉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한계를 넘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당신의 방법으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소 열어가시는 놀라운 구원의 여정을 기대와 소망으로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구원의 주 하나님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언약을 바라봅니다. 저희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사랑의 관계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거칠고 어둡기만 합니다. 분노에 가득찬 이스라엘과 폭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파라오를 마주하고는 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거쳐 주님께서 앞서 나아가시며 이루시는 구원을 믿고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권능의 손길을 붙잡고 맡겨진 사명을 잠잠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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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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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2026년 2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찬송가 321, 322장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으로 나아갑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광야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파라오는 당연히 거절 하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왕이면서 동시에 신 입니다. 그의 앞에 노예로 부리는 백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신, 야훼를 거론하며 예배하도록 풀어달라는 말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 이집트의 주요 국가 건축 사업의 노동력입니다. 그들이 일을 멈춘다면 국가 경제는 한순간에 멈춥니다. 파라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엄중한 대응으로 권위와 기강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노동 감독관들과 현장 책임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편의를 배제하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숫자로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이집트 관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라오의 지시를 전달합니다. 노동 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세졌습니다. 짚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구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전과 같은 양의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현장 책임을 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라오에게 간청합니다. 왜 이렇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노예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하는 지 이유를 여쭈었습니다.그러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훼께 예배 하도록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이집트 관리들에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평가를 반복합니다. 바로 ‘게으름’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이 나태해져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무례한 요구를 감히 자신에게 했다며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물러서지 않고 앞서 내린 노동 조건과 강도를 그대로 이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 책임자들은 너무나 무거운 마음으로 왕궁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마침 그들 앞에 모세와 아론이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일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둘을 향해 거침없이 쏘아 붙이며 말합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이스라엘 책임자들이 격분하며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혹한 상황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의 처지여도 당연히 두 사람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멀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이 당장 처한 현실의 어려움에 괴로워할 겁니다.그런데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추가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행동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야훼께서 살피고 판단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두 사람의 행동을 두고 벌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게 아닙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야훼를 여전히 경배합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파라오의 뜻을 따릅니다. 이집트의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였습니다.너무나 놀라운 장면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엄숙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알게모르게 이 시대의 파라오를 경배하며 이집트의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사건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상황에 잠잠히 호흡을 다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감정과 이익에 철저히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구원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더욱 신뢰하고 동참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권능의 주 하나님삶의 시련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정작 파라오의 뜻에 충실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했던 잘못을 뉘우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을 마음에 품고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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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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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2026년 2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찬송가 382, 383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3장은 쓸쓸하게 장인의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성에게 전할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되어갈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을 통해 환하게 열릴 미래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세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낼 사명을 거부하였습니다. 특히나 백성들에 대한 염려를 드러냈습니다.그러자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를 믿게 할 이적 세 가지를 보여주십니다. 우선 목자로서 사용하는 도구인 지팡이를 땅에 던져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뱀의 꼬리를 잡자 도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어보니 악성 피부병에 걸려 손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넣자 본래대로 손이 나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일 강 물을 퍼다가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할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그럼에도 모세를 덮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불신했습니다. 지난날 그가 받은 상처의 깊이를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을 이끌기에는,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언변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토로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모세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공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창조주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모습과 상태를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한 창조의 능력을 모세를 향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물러섰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과 동행을 말씀 하셨습니다.결국 모세는 사명을 받아들입니다. 장인 어른께 인사를 나누고 가족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원래는 가축을 돌보던 노동 도구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평범한 일상의 상징을 능력의 통로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지극히 뻔한 삶에 창조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마침내 이집트에 도착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았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모세 그토록 우려했던 상황과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모세는 백성의 불신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여정 내내 모세를 어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양면이 있습니다. 모세와 처음으로 대면한 백성의 첫 번째 반응은 ‘믿음’과 ‘경배’였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근거를 주목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신 행동입니다.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오시고,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눈물을 살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자녀들이 짊어진 한계와 약점 또한 너무나 잘 아십니다. 권능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건네시는 창조의 손길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창조의 주 하나님이집트로 돌아가 백성을 구할 사명을 연거푸 거부하는 모세에게서 저희의 약함을 발견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창조의 능력을 더욱 온전히 바라고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 삶 깊숙이 찾아오시어 고통의 눈물을 살피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마다의 이집트에서 벗어나 구원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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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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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2026년 2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찬송가 320, 321장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무심결에 광야 서쪽,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향했습니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모세가)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출 3:1)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평소 하던 데로 자신이 가축을 몰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여 당신께로 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만남은 신비로운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불에 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영롱한 불꽃을 계속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모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정말 가야 할 곳으로 발길을 잡아 당겼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이때, 그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요? 무척 황당했을 겁니다. 혈기 왕성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 그가 이미 시도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그는 고통받는 동족을 구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파라오를 피해 도망쳐 광야로 떠났습니다.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무기력한 80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세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 와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도무지 따를 수 없었습니다.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과 ‘못 갑니다.’라고 거부하는 모세 사이의 실랑이가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불쑥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단순히 몇 글자로 이루어진 명칭이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주님의 인격을 마주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14절 함께 읽겠습니다.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해당 구약 원문은 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래’ 의미로, “나는 있는 자로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있을 자이다.”라는 뜻입니다. “되어 가시는 주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 안에 적극적인 구원 의지와 계획을 담으셨습니다. 그 이름이 모세를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되어가시는 하나님’과 마주하고 그 이름을 부르며 모세는 자기 자신과 직면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지난날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처절한 좌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결코 인생의 낙오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동적인 미래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활짝 열린 앞날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 절정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길로 하나님께서 나아가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참 인간이 되시어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이와 같은 주님의 권능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과거의 아픔과 오늘의 한계를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찾아오시고 일꾼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장 합당한 사명을 맡기시고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되어가시는 주 하나님초라한 일상 가운데 지친 발걸음으로 양 떼를 이끌던 모세에게 먼저 찾아와 알려주신 거룩한 이름을 마음 깊이 품어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이 되어 가시리라 약속하신 위대한 은혜를 바라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셨음을 믿습니다.그 믿음 따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 가운데 엄습하는 그 어떤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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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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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들으시고 기억하사”
2026년 2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장 “들으시고 기억하사” 찬송가 363, 364장이집트를 기근에서 구한 요셉의 자녀들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새로 등극한 파라오가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낳은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잔혹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비록 산파들이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하긴 했지만 잔인한 칼날을 완전히 피할 수 도 없었습니다.그 어두운 시기 어느 레위인이 결혼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런 아들을 엄마가 차마 죽음에 내 몰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 몰래 숨겨 키웠으나 점점 자라가며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눈물겨운 결정을 내립니다.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합니다. 그 안에 아기를 담고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부디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길 간절히 구하는 엄마의 기도 소리를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그 기도의 응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일이 펼쳐졌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시녀들과 함께 강에 나와서 갈대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고, 위험을 감수하며 아들 삼아 키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하였습니다. 매우 기묘한 성장 과정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왕족으로 교육 받았습니다. 동시에 레위인 친어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정체성을 깨달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소명을 깨달았을 겁니다.성인이 된 모세는 이집트 관리가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이집트 사람을 살해하고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다음 날 거리에서 모세는 히브리 사람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대뜸 그에게 따져 묻습니다. 누가 당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느냐며 나도 죽일거냐고 몰아 붙였습니다. 모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파라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이 모습이 사실 의아합니다. 절대 왕정 사회의 왕족은 면책 특권을 가집니다. 귀족이 아닌 건설 감독 관리를 살해한 정도는 큰 문제 될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파라오의 칼을 피해 광야로 도망쳤을까요? 해석의 실마리를 사도행전 7장 25절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모세가 이집트 관리를 살해한 것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 동족을 구할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반역입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당장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광야로 쫓겼습니다. 거기서 그는 장인 밑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비천하게 여기는 목자 일을 합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비참한 신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끝맺는 성경의 기록이 인상적입니다. 본문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두 절의 동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자녀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지난 날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앞서 창세기에서 주님께서 보이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탄식을 들으시고 아들을 구하셨습니다. 모세의 한탄에 귀 기울이시고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또한 온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그 하나님께서 우리 역시 동일한 은혜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간구를 들으시고 십자가 언약을 기억하시고 돌보십니다. 그러한 주님의 신실하신 손길을 의지해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자녀들의 탄식을 들으시는 주 하나님저희가 기도 가운데 내뱉는 신음에 귀를 기울이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 언약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시며 날마다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옵소서. 저희 역시 주위 사람들의 아픔에 귀를 열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김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ㅡ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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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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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장 “그럼에도 더욱 번성하여”
2026년 1월 3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장 “그럼에도 더욱 번성하여” 찬송가 336, 337장출애굽기는 야곱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떠나온 야곱과 그의 가족이 모두 칠십 명이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거듭 일깨웁니다. 출애굽기는 맥락 없이 툭 떨어진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와 연결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을 계승합니다.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 모두 임신과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을 거쳐 그들은 많은 자손을 낳았습니다. 너무나 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번영이 이스라엘에게 위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6~9절 함께 읽겠습니다.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새롭게 수립한 이집트의 왕조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파라오는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선조인 총리 요셉의 위대한 업적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자기가 겪고 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우선대상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각종 대형 건축 사업에 동원하였습니다. 그 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11~12, 20절 함께 읽겠습니다.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인생을 관통하는 신비한 은혜를 발견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손주들은 난임을 비롯한 시련 가운데 많은 후손을 낳았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번성이 노예 생활의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파라오는 산파들을 시켜서 히브리 사람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는 잔악무도한 명령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오히려 더 번성하고 강해졌습니다.이를통해 성경에 흐르는 진리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계획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핍과 아픔을 거쳐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둔 은혜의 결실은 또 다른 시련의 빌미가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욱 번성하고 강하게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아름답고 온전히 드러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활의 찬란한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골고다 위의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생명의 눈부신 영광을 피워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여러 고난을 겪을 때, 저마다의 파라오를 마주할 때,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고난 당한 우리를, 인생의 무게로 지치고 상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강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뻗으시는 권능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은혜의 길을 걸으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생명과 은혜의 주 하나님주님께서 약속하신 위대한 복은 시련을 통과해 다가옴을 깨닫습니다. 또한 그렇게 이룬 은혜가 도리어 불의한 자들이 저지르는 폭력의 빌미가 되는 아픈 현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고난이 깊으면 깊을수록 도리어 번성하고 강해지는 신비를 고백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놀라운 진리를 거듭 마음에 새기는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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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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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선으로 바꾸사”
2026년 1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50장 “선으로 바꾸사” 찬송가 341, 342장야곱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아들들의 마음을 헤집으며 소용돌이 쳤습니다. 본문 15절 말씀과 같이, 당대 최강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는다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요셉을 찾아가 간곡히 비는 겁니다. 요셉의 화려한 총리 관저 안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며 야곱의 유언을 언급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형들을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제발 지난날 자기들이 행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 믿기 어렵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할 중요한 말을 직접 하지 않고, 굳이 오랫동안 불신했던 다른 아들들에게 했을 리 없습니다. 요셉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형들에게 속 마음을 거듭 털어 놓습니다. 20~21절 말씀을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20 형님들이 뜻하신 것은 저를 두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것은 그것을 좋은 일로 바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보시다시피 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21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을 계속 잘 모시고 형님들의 어린아이들도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며 형들의 마음에 와닿도록 말했다.요셉이 총리가 되어 처음으로 형들을 대면하며 했던 용서를 담은, 45장 5절을 반복하는 내용입니다. 그 날, 오랜 세월이 지나 형들을 다시 만나 요셉이 했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광기에 휩싸여 원한을 갚으려 않았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기적적인 장면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 때때로 바람처럼 화가 마음에 불어왔을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침내 비극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지난 날 겪었던 참혹한 폭력을 극복했습니다.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늘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회복과 반전의 길이 열립니다.총리가 되기 전 요셉의 일생은 패배와 좌절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철부지로 자란 청년이 미숙한 판단으로 여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순진하게 이용당하며 짓밟혔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자기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겪은 고난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지나온 아픔을 새롭게 돌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미래가 인간의 과거를 변화시켰습니다.요셉의 꿈풀이는 주술이나 점술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꿈을 꾸고 해석하며 주님으로부터 다가오는 미래를 느꼈습니다. 그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악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어둠도 하나님은 빛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절망도 하나님은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이러한 진리가 그로 하여금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버티고 살아남게 하였습니다. 찬란한 용서와 사랑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형들과 조카들을 끝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합니다.이렇게 창세기는 과거를 딛고 일어나 하나님의 미래로 나아가는 용서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창세기를 여는,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범죄를 극복하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연결됩니다. 또한 이후 펼쳐질,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과도 이어집니다. 그 어떤 악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생의 짙은 절망을 이겨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더 나아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거기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곳에 나를 세우신 뜻을 살피며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시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미래 속에서, 과거의 그 어떤 절망도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눈물도 계속 흐르지 않습니다. 그 모두는 아름다운 변화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거대한 폭풍에 휩쓸릴 때,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아픔 속에 괴로울 때,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로 힘겨울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행하신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몸소 사람이 되어 온갖 상처를 입으며 이 땅을 딛고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열어 보이실 미래를 기대하며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세상은, 사람은 우리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생명과 구원과 희망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기도온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요셉이 험난한 인생을 거치며 피운 용서의 꽃을 바라봅니다. 그가 고단한 시련을 통과하며 맺은 사랑의 열매를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에도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열어가실 미래로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며,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로 현재의 고난 가운데 주시는 소명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작년 말과 신년 초를 창세기 묵상으로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세기에 담긴 아름다운 복음과 놀라운 사랑을 마음에 품고, 주님께서 이뤄가시는 새로운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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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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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남겨진 말들”
2026년 1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9장 “남겨진 말들” 찬송가 430, 433장어제 읽은 창세기 38장은 야곱이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마주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 찬양합니다.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요셉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야곱은 노쇠한 팔을 엇갈려 뻗어 두 손자에게 복을 주었습니다.이어서 야곱은 요셉 뿐만 아니라 모든 아들을 다 불러 모아 그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이 장면에서도 야곱의 아버지 이삭을 떠오르게 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간절히 구하며 극한의 갈등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 아버지의 말이 지닌 힘을 자녀들이 매우 진지하게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야곱은 이삭과 달리 단 한 명에게만 복 혹은 저주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들들 각자에게, 그들에게 펼쳐질 앞날을 예고하며 말합니다.여기서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야곱은 점을 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지나온 삶에 근거하여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헤아려 주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숙명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어를 초월합니다. 주님의 주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헤아리십니다. 잘못을 크신 사랑으로 용서하시지만 동시에 엄중히 보여주며 깨닫고 돌이키길 바라십니다. 또한 남몰래 행한 섬김과 사랑을 귀하게 받으시어 합당한 복으로 반응하십니다.야곱은 열 두 아들 중에서 특별히 두 아들에게 비중 있게 축복하였습니다. 먼저 유다를 향한 선언을 살펴 보겠습니다. 8~9절 읽겠습니다.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유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겁니다. 다른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며 지도자로 치켜세울 겁니다. 그의 자손들은 마치 사자 새끼처럼 용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강한 지파를 세우고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태어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동시에 창세기 안에서 유다의 이야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38장에는 며느리 다말을 거리의 여인인 줄 알고 동침해 쌍둥이를 낳는 죄를 범했습니다. 몹시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베냐민 대신 옥에 갇히겠다고 자처했습니다. 결국 요셉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즉, 유다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금 가족을 온전히 사랑하고 기꺼이 희생한 결과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이어서 요셉을 향한 축복을 확인하겠습니다. 22, 25절 읽겠습니다.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야곱의 축복’이라는 찬양 가사로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요셉은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와 같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이집트를 넘어 주변 지역을 7년 대기근에서 구했습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요셉을 도우시어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복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셨음을 믿습니다. 유다처럼 강력한 지파를 이끌고, 요셉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임재가 진정한 복입니다. 그들의 약점과 한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며 이끄시는 손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품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새 힘을 얻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기도아버지 하나님저희 모든 인생을 돌아보시고 가장 합당한 은혜의 길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한 복인 구원의 기쁨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앞날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함을 믿고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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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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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아우가 큰 자가 되고”
2026년 1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8장 “아우가 큰 자가 되고” 찬송가 310, 312장이집트에 도착하고 얼마 있어 야곱의 건강히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먼 이집트로 이주를 떠나며 쌓인 피로, 그리고 그동안 겪은 극도의 긴장이 갑자기 풀려서일 겁니다. 그 소식이 요셉에게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끝에 극적으로 아버지를 다시 뵈었지만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의 침실로 향합니다.야곱을 돌보는 사람이 그에게 아들 요셉이 찾아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2절에 보면 그 이야기를 들은 야곱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야곱에게 요셉이 그런 존재입니다. 기력이 쇠한 노인을 일으키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가장 아끼고 소중한 아들에게 자기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들려줍니다. 지금 이 순간, 요셉을 통해 누리고 있는 행복의 본질을 정확히 깨닫고 알려줍니다. 본문 3, 4절 읽겠습니다.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야곱은 오래 전 형 에서의 칼을 피해 외삼촌 하란의 집으로 향했던, 그 암담한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 때 그는 가나안 땅 루스에서 돌을 베고 잠들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불연 듯 자기에게 다가오신 주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에게 이미 주신 언약을 다시 확인 시켜 주셨습니다. 많은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난 날의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셨음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 감격과 함께 손주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 이삭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 역시 눈이 몹시 어두웠습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데려갑니다. 야곱은 거듭 감격합니다. 요셉을 다시 만난 것도 감격인데 요셉이 낳은 두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따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에 근거해 손주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그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 시대 오른손은 강력한 권능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자연스럽게 장남 므낫세는 아버지의 오른손으로 차남 에브라임은 아버지의 왼손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엇갈려 뻗었습니다. 오른손은 차남 에브라임에게 왼손은 장남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놀란 요셉은 아버지가 실수한 줄 알고 손 위치를 바꾸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들을 만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읽겠습니다.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야곱이 나이 들어 눈이 보이질 않아서, 총명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져 차남 에브라임을 장남 므낫세보다 높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서를 뒤엎으며 이루어 집니다. 다른 누구보다 야곱 자신이 깊이 고백하는 진리입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생생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낮은 모습으로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당부합니다. 세상의 질서와 욕망을 거슬러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과 인내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넘어서는 진정한 복과 은혜를 신실하게 이루실 줄 믿습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야곱이 주님께서 안겨주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 깨달았듯이, 저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이 분명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견고한 세상의 거짓을 딛고 일어나 시련 가운데 열매 맺는 참된 복을 누리고 전하게 하여주시옵소서.어제부터 진행 중인 청소년부 겨울 수련회 가운데 기름 부음 넘치길 구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하시는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기쁨 가득히 안고 안전하게 귀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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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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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장 “나그네 길”
2026년 1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7장 “나그네 길” 찬송가 433, 435장요셉은 가족들이 이집트에 도착하자 형들 중 다섯 명을 선택해 파라오 앞에 모시고 갑니다. 파라오가 예상대로 그들에게 본래 하던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요셉에게 미리 들은 대로 답을 합니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가축을 치던 목자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차가운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이집트는 목축업을 천대하기 때문입니다.요셉은 이집트를 구한 영웅으로서 온 나라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그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셉의 가족을 환대하며 이집트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땅 라암셋을 주어 그곳에 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요셉과 그의 가족들은 이방인입니다. 역사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이방인은 언제나 경계 대상입니다. 어디서 불어오는 지 알 수 없는 바람에 나라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할 수 있습니다.이런 사실을 요셉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파라오와 그 주변 권력층이 혹시 모를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가업이 비천한 목축업이라고 아뢰었습니다. 굳이 자랑할만한 다른 요소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이집트 안에 남부러울 것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그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 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고난을 암시합니다. 요셉 이야기가 한 사람의 감격적인 성공신화가 아니라 험악한 인생 길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합니다.파라오는 자기에게 찾아온 야곱에게 연세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야곱은 자기 나이를 두고 백 삼십세라고 짧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지나온 고단한 인생을 ‘나그네 길 세월’이라고 묘사합니다. 노인 야곱은 자기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약삭 빠른 자기 머리로 치밀하게 꾸민대로 삶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주님께서 그의 앞길을 이끄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 놀랍고 위대한 계획 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항복한 야곱을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통해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야곱은 노년에 이와 같은 은혜를 마음 깊이 품으며 자신의 신앙을 유언에 담습니다. 30절 함께 읽겠습니다.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야곱은 이집트의 위대한 총리의 아버지로서 자기 인생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온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화려한 문명에 기대어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역시 나그네 길에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가나안이라는 걸 가슴 저릿하게 고백했습니다. 단지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 땅이 상징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주님의 위대한 약속을 소중히 여겼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나그네 길을 걷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입니다. 오늘날의 그 어떤 이집트도, 그 어떤 파라오의 금은보화도 우리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염려와 불안을 끊임없이 이겨내며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는 인생입니다. 때로는 야곱이 말하듯 험악한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삶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가장 신실하게 품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손길을 의지하며 거친 현실을 딛고 일어나 믿음의 걸음을 내딛길 축원합니다.기도저희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아들 요셉에 의해 파라오의 환대 가운데 도착한 이집트 땅에서 야곱의 가족들은 여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눈에 보이는 풍요에 안주하지 않고 차가운 현실에 직면하며 언약을 품으며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그와 같이 저희 인생 또한 ‘나그네 길’임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험악한 세월을 보낼 때, 신실하신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인생의 방향을 올바로 점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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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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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장 “이제 괜찮아”
2026년 1월 2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6장 “이제 괜찮아” 찬송가 379, 384장창세기 45장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감격적인 소식을 들은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둡고 어둡던 그의 인생에 한줄기 환한 빛이 쏟아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요셉을 이집트에 미리 보내셨습니다. 총리로 세워 곡식을 관리하게 하셨고, 이집트 파라오의 환대 가운데 가족을 초대하게 하였습니다.마침내 야곱은 온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조급하게 걸음을 옮기진 않습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립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그전에, 창세기 28장 13절과 32장 9절 모두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나란히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만 언급합니다. 막연히 할아버지 때로부터 대를 이어 받은 신앙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의 관계가 도드라집니다.그 둘은 원만한 부자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형 에서를 편애했습니다. 이후 가족 간에 벌어진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피신한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여러 복잡한 감정이 마음에 남았을 겁니다. 동시에 자기 역시 요셉을 편애하며 아들들 사이를 갈라놓은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와 반성을 했을 겁니다.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가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 하셨습니다. 앞서 약속하신 대로 이집트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확인 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그의 눈을 감겨주리라는 사실도 알려주셨습니다. 야곱의 험난한 인생을 마무리 하는 너무나 눈물겨운 위안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파라오가 보낸 수레에 가족을 태우고 가축을 포함한 온 재산을 끌고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요셉이 가족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기름진 고센 땅에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그곳에서 야곱은 요셉을 만났습니다.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의 상봉 장면을 기록한 29~30절 함께 읽겠습니다.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두 절을 새번역 성경을 제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29 요셉은 말에 수레를 메우고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버지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버지의 목을 껴안았다. 목을 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했다.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괜찮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요셉은 아버지를 껴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그에게 야곱이 말합니다.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괜찮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 창세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죽어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야곱은 인생의 험난한 설움과 한을 모두 풀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벧엘과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 해서 시련이 비껴가지 않습니다. 누구나 야곱처럼 험악한 나그네 길을 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완전한 그림을 주님께서 당신의 깊은 뜻 가운데 매듭 지으십니다. 지금까지 흘린 모든 눈물과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 안으십니다. 그 사랑에 의지하여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야곱이 보냈던 험악한 인생의 여정 끝에 안겨주신 따뜻한 위안을 발견합니다. 야곱을 끌어안고 흘린 눈물에 담긴 회복을 바라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저희 인생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여전히 저마다의 이삭으로 말미암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한 삶입니다. 하지만 벧엘과 브엘세바에서 야곱을 만나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저희와 동행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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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