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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 “요셉을 보리라”
2026년 1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5장 “요셉을 보리라” 찬송가 93, 95장이집트 총리 자리에 오른 요셉은 마침내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기를 이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자기에게 보여주신 꿈의 참 의미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신중하고 주도면밀합니다. 형들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씩 시험합니다.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시므온을 붙잡았습니다. 베냐민이 도착한 후에는 일부러 그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잡아 가둘 것처럼 위협합니다. 그런 그에게 유다가 지난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버지를 걱정하며 자기가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처했습니다.결국 요셉의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파라오의 궁궐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공포에 떨며 어리둥절해 하는 형들에게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고향의 언어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다고요?” 너무나 놀라 얼어붙은 형들에게 요셉은 거듭 자기 정체를 밝힙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팔아넘긴 그 동생이 맞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이곳에 보내셨다며 거듭 안심시켰습니다.그런 다음 시급히 요청합니다. 아직 흉년이 다섯 해나 남아 있습니다. 가족들을 더 이상 가나안에 둘 수 없습니다. 지금 자기가 총리로서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전해주고,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을 데려와 이집트에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형제들을 끌어안고 요셉은 용서와 화해의 눈물을 계속 흘렸습니다.이 놀라운 소식이 이집트 왕궁에 들렸습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의 가족들을 극진히 환영합니다. 파라오가 직접 명령을 내립니다. 요셉 가족이 이집트에서 가장 기름진 땅에서 평안히 살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화려한 이집트 수레에 각종 선물을 싣고 요셉의 형제들이 고향에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마침내 그들이 아버지에게로 도착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눈 앞에 펼쳐진 전혀 뜻밖의 성대한 행렬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그저 아들들이 무사히 곡식을 사고 베냐민을 안전히 데려오기만을 바랐을 겁니다. 그런 야곱에게 각종 동물과 이집트의 값비싼 물품이 함께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수레에서 내린 아들들에게 보석같이 눈부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이 살아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모시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마침내, 모든 게 거짓말인 것 같은 지금의 혼란 속에 맑은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28 이스라엘이 말했다. “이젠 더 바랄 게 없어. 요셉이, 내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니! 얼른 가서 그 아이를 봐야겠구나, 내가 죽기 전에.”단어 하나하나에 야곱의 눈물겨운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보낸 아들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가운데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를 만나고자 수레를 보냈습니다. 눈을 감기 전에 ‘내 아들, 요셉’을 만날 희망에 가득 안겼습니다.성경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으로 넘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단지 수천년 전 일어난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구원 역시 마찬가지로 기쁘고 복된 소식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결코 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한, 도무지 상상도 못할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집트의 금은보화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감격을 거듭 확인하고 회복하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구원의 주 하나님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가족을 굶주림에서 구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에 압도된 형들과 야곱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기쁜 소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린 새 힘과 희망을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사신 복음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소식인지를 고백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24
창세기 44장 “그 아이를 대신하여”
2026년 1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4장 “그 아이를 대신하여” 찬송가 320, 321장본문 앞에 있는 창세기 43장은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간곡히 설득하여 다시 이집트에 도착한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날 요셉은 오랜만에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을 만나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자기 정체를 알지 못하는 형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베냐민에 대한 그들의 진심이 어떠한지, 지난날 요셉에게 지은 잘못을 어디까지 반성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계획을 꾸밉니다. 자신의 은잔과 곡식값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으라고 부하에게 지시하였습니다. 날이 밝고 형들이 든든하게 챙긴 곡물과 함께 기분 좋게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을 쫓아 왔습니다. 어떻게 호의를 범죄로 값을 수 있냐고 느닷없이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이 총리의 은잔을 훔쳐갔다며 곧바로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형들로서는 가슴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자기들 옷과 함께 마음을 찢으며 다시 총리 관저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자기 종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우려했던 공포가 이루어졌습니다.그 때, 유다가 나섭니다. 유다는 그동안 가족이 겪은 일들을 차분히 들려줍니다. 아버지에게 막내 베냐민이 어떤 존재인지를 소상히 들려줍니다. 30-31절 읽겠습니다.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형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대들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의 아픔을 공감해 주었습니다. 요셉에 이어 베냐민마저 잃고 숨을 거둘까 봐 몹시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유다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요청합니다. 33-34절 읽겠습니다.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유다는 막내 베냐민을 대신 해 요셉의 종을 자처합니다. 그가 이집트로 떠나기 전 야곱에게 했던 약속이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앞장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전을 받고 동생을 팔았던 유다는 이제, 은잔을 훔친 죄목으로 붙잡힌 막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인물로 변했습니다. 동시에 유다가 형제들의 대표가 되었고 그의 영향력 아래 가족의 분위기가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지난 날 저지른 과거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뉘우쳤음을 보여줍니다.이렇게 유다는 증조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우뚝 솟아오릅니다. 훗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영광스럽게도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대신해 붙잡히고 모욕 당하고 숨을 거두셨습니다.이처럼 우리는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 등장한 유다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형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의 본질을 생생해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성품과 걸어가야 할 사명을 깨닫습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물러서고 양보해야 합니다. 구원을 세우기 위해 희생하고 져 주어야 합니다. 그 모든 헌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결코 헛되지 않고, 찬란한 생명의 결실로 이어질 줄 믿습니다. 기도위대한 사랑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온 가족이 처한 위기 가운데, 아버지에게 했던 약속을 굳게 지킨 유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나선 그의 희생을 바라봅니다. 늙고 힘없는 아버지 야곱을 지키기 위해 감수한 위험을 헤아립니다. 그런 유다에게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새삼 깨닫습니다. 유다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담대히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23
창세기 43장 “유다가 진 책임”
2026년 1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3장 “유다가 진 책임” 찬송가 543, 549장어제 읽은 창세기 42장은 기근에서 벗어나고자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간 형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에 온 후 처음으로 그들을 보았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일단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3일뒤 시므온만 남겨두고 몰래 곡식과 돈을 챙겨주며 돌려 보냈습니다. 대신, 다음에 다시 와서 시므온을 풀어주려면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미 요셉을 잃은 충격으로 오랫동안 시름한 야곱으로서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입니다. 여전히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었습니다. 살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지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먹을 거리를 사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형제들을 대표해 말합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흥분하며 언성을 높입니다. 왜 막내를 언급해서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느냐고 했습니다. 총리가 요셉인지 알지 못한 유다는, 도무지 그가 그런 요구를 할지 몰랐다고 대답했습니다.그러면서 유다는 결정적인 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립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9 제가 그 아이를 책임지겠습니다. 저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께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서게 하지 못하면, 아버지께 평생 그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담보’가 된다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그는 가족이 처한 위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책임지고 아버지의 뜻을 돌리게 할 줄 아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주에 읽었던 38장 내용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요셉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한 장을 통틀어 유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남편을 잃은 며느리 다말을 돌보지 않고 그녀를 몸을 파는 여인으로 오해 해 잠자리를 한 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창세기가 뜬금없어 보이는 언급을 한 이유를 우리는 43장에서 확인합니다. 바로 유다의 극적인 변화입니다. 완전히 달라진 인격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가족을 어려움에서 구했습니다. 사실 유다만이 아닙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르우벤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도 시간이 흘러 변했습니다.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의 허물을 일러바치던 철부지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 새로워졌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유다의 헌신 덕분에 베냐민을 비롯한 형제들은 다시 요셉과 마주 하였습니다. 총리는 뜻밖에도 자기 집으로 그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베냐민을 만났습니다. 29절은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라고 기록합니다. 단지 같은 어머니 배에서 난 동생이란 뜻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극진한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너무나 애틋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그 결과 34절에 보면 요셉과 형제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유다의 결단과 희생의 없었다면 불가능한 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날 내 한계와 연약함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몰아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유다처럼 기꺼이 섬기고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성령님의 손길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가족과 이웃을 향해 진정한 즐거움의 잔치를 전할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새 창조의 주 하나님책임을 소홀히 하고 욕망을 따라 살던 유다의 위대한 변화를 발견합니다. 저희 역시 주님의 손길 아래서 새롭게 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날의 한계와 결핍을 넘어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 이루실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 사람들과 복음 안에서 함께 즐거워하는 풍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22
창세기 42장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2026년 1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2장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찬송가 429, 430장창세기의 시선은 요셉에서 야곱의 가족들로 향합니다. 기나긴 흉년의 피해가 그들이 사는 가나안 땅에도 미쳤습니다. 야곱은 어딘가에서 들은 소식을 아들들에게 알려줍니다. 주변 나라들과 달리 곡식을 많이 모아둔 이집트에서 먹을거리를 사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요셉의 형 열 명이 이집트로 향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셉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마침내 형들은 이집트 총리 관저에 도착했습니다. 요셉 앞에 엎드려 곡식을 사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심장이 철렁했을 겁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선명하게 영혼 깊이 다가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 그에게 보여준 꿈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지금껏 겪은 모든 시련이 주님의 깊은 뜻 안에 있었음을 다시금 생생히 깨달았습니다. 섣불리 분노를 불태우며 보복하지 않고 차분히 마음을 정리했습니다.동시에 불현듯 생각나는, 애타게 그리운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동생 베냐민입니다. 아쉽게도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베냐민도 나처럼 형들에게 구박을 당하진 않았는지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며 형들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들이 정탐꾼이라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삼일 뒤 나타나 한 명만 붙잡고 나머지는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풀려나길 원한다면 고향에 두고 온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형들이 나눈 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21~22절을 보면, 형들은 요셉에게 저지른 범죄를 뉘우치며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철없던 지난날, 시기심에 사무쳐 어린 동생에게 범했던 가혹한 폭력의 칼날이 자기들에게 되돌아 왔다고 느꼈습니다. 그 핏값으로 외국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자책하였습니다. 그 모든 대화를 요셉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추스른 다음에 돌아왔습니다. 시므온을 붙잡나 감옥에 가드었습니다. 그러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양식을 넉넉히 주고 받은 돈을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여비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험을 겪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던 형들은 여관에서 다시 돈을 발견합니다. 염탐꾼에 더해 절도범으로 몰릴 위기를 느낀 그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그들은 집에 도착해 아버지에게 이집트에서 겪은 일을 들려줍니다. 아들들이 무사히 곡식을 가져오기만 바랐던 야곱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미 요셉을 잃었는데 시므온도 이집트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게다가 라헬이 남긴 마지막 아들 베냐민까지도 빼앗길지 모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암담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야곱은 슬픔과 분노에 사무쳐 아들들에게 절절한 한탄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때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37절 함께 읽겠습니다.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르우벤은 비탄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며 약속합니다. 만약 베냐민을 무사히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의 두 아들을 죽여도 된다고 말합니다. 이 안에 너무나 많은 게 담겨 있습니다. 르우벤은 지난 날, 어리석은 욕망으로 아버지의 침실을 더럽혔습니다. 분명 이후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요셉을 잃은 야곱의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잃을 각오까지 하며 적극적인 희생을 공개적으로 다짐합니다.이 장면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이 지금껏 겪은 시련들을 통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간 시간 동안, 야곱의 아들들 또한 고통과 슬픔 가운데 다듬어지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이 현재 처한 절망과 공포 역시 이후 펼쳐질 놀라운 구원의 과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완전히 끝난 것 같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사라진 암흑의 절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꿈을 통해 온 우주를 아우르는 찬란한 계획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야곱 가족의 인생을 신실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 날, 요셉이 흘린 눈물을 함께 흘리시길 바랍니다. 그의 가슴을 뒤흔든 감동을 함께 느끼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겪은 좌절은 그대로 묻히지 않고 형들의 참회로 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껏 우리가 지나온 숱한 비극은 결코 그 자체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부활의 찬란한 영광으로 이어졌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신 위대한 구원으로 열매 맺을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더욱 소망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넓고 높은 계획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야곱의 시련 끝에 이집트 총리로 세우시는 동안, 형들에게도 성숙과 변화의 시간을 이끌어 오셨음을 발견합니다. 지금 저희가 겪는 여러 아픔과 고통을 주님께서 허비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그 모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어둠이 빛으로 새롭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매일 삶을 담대히 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21
창세기 41장 37~57절 “두 이름”
2026년 1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1장 37~57절 “두 이름” 찬송가 391, 393장어제 읽은 창세기 41장 전반부는 마침내 요셉에게 찾아온 인생의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파라오의 술맡은 관리가 왕궁에 복귀하고 2년이 흘렀습니다. 파라오가 꾼 기이한 꿈을 풀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요셉의 이름이 거명되어 왕 앞에 섰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고 이루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일’로 고백합니다. 동시에 자기 인생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믿음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뜻을 따라 파라오의 꿈이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의미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파라오와 모든 신하가 좋게 여겼습니다. 특히나 파라오가 더욱 감탄하였습니다. 단지 그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파격적으로 등용하였습니다. 제국의 권력을 모두 그에게 맡겼습니다. 너무나 눈부신 인생 역전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노예가 파라오 앞에 서는 것만해도 과분한 일입니다. 누구나 감탄할만한 인생성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거기서 훌쩍 끌어 올리셨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기나긴 풍년과 흉년을 잘 관리하도록 총리로 세웠습니다. 그동안 그가 겪어온 시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왜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 그 뜻을 그제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의 가슴을 흔든 고백을 아들들에게 지은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최고 지도자로서 마침내 안정을 찾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51~52절 함께 읽겠습니다.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누구에게나 그렇듯 자녀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부모로서 엄중한 역할입니다. 특히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고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버지의 묵직한 감정과 통찰히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요셉이 그러합니다. 그는 큰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잊다.’라는 뜻입니다. 51절이 설명하듯이 지금껏 겪은 험악한 고난과 형들에게 겪은 폭력을 잊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입니다. ‘창성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 총리로 세우시고 허락하신 번성을 의미합니다.불과 몇 글자로 적힌 이름이지만 요셉의 가슴저릿한 신앙 고백이 눅진하게 담겨있었습니다. 그는 지난 아픔을 잊었습니다. 더 이상 분노와 원망으로 자기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요셉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그에게 놀라운 풍성함으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집트 총리라는 높은 지위와 세속적 성공에 시선을 뺏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로 하여금 시련을 이기도록 주시는 은혜는 눈에 보이는 거창한 성공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총리 자리는 권력이 아니라 흉년에서 구하는 섬김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맡겨주신 모든 하루의 삶이 곧 각자의 풍성함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지금 내 손에 쥔 모든 것, 현재 나와 마주한 모든 이들로 말미암아 충만함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진정한 풍성함과 번성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지나온 모든 상처를 이겨내고 앞 날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진심을 담아 ‘므낫세’와 ‘에브라임’, 참된 ‘잊음’과 ‘번성’을 고백하길 축원합니다. 기도전능하신 주 하나님므낫세와 에브라임, 요셉이 두 아들에게 지은 이 이름들에 담긴 그의 진심을 발견합니다. 지난 날의 아픔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향해 나아간 요셉의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저희에게 주신 섬김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여려 흉년을 주님의 풍년으로 극복하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20
창세기 41장 1~36절 “하나님이 하실 일”
2026년 1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1장 1~36절 “하나님이 하실 일” 찬송가 390, 391장2년이 지났습니다. 요셉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극적으로 파라오의 술 관리에게 꿈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져 그가 관직을 회복했습니다. 이제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분명 쉽게 풀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당연히 찾아올거라 기대했던 희망이 산산이 무너졌습니다.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왕궁에서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감옥 문을 열었습니다. 파라오가 자신을 부른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그저 감옥에서 나오기만을 바랐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도무지 예상못한 놀라운 기회가 펼쳐 졌습니다. 어느 날 파라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나일 강가에 서 있었는데 살진 윤택하게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이어서 흉하게 야윈 다른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왔습니다. 끔찍하게도 그 흉한 암소들이 살찐 암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파라오는 놀라서 꿈에서 깨어 일어나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꿈이 펼쳐졌습니다. 곡식 줄기에서 잘 여문 이삭 일곱이 올라왔습니다. 이어서 마른 이삭 일곱이 피어나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흉한 이삭들이 잘 익은 이삭들을 삼켰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꿈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펼쳐질 거란 예감이 파라오의 마음에 강렬하게 찾아왔습니다. 평소 그렇듯 이집트의 점술가들을 불러 모아 지난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술 담당 신하가 자기 죄를 깨닫고 왕에게 고백합니다. 2년 전 감옥에서 만난 히브리 노예 청년을 소개합니다. 그가 행한 탁월한 꿈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요셉은 파라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집트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그에게 최고 권력자가 꿈 풀이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요셉이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에 각각 한 말들이 의미심장합니다. 16절 함께 읽겠습니다.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이어서 25절 읽겠습니다.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는 꿈 해석과 실행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분명히 고백합니다. 그는 여전히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험난한 인생의 굴곡에도,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희망 고문에도, 걷잡을 수 없는 패배감과 자기 모멸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가 눅눅하고 차디찬 감옥 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와 함께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지난 날 하셨고, 지금 하시고 앞으로 하실 일을 신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때로 감옥에 억울하게 갇힌 요셉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너무나 비참한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싫을 때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좌절하는 희망을 더 이상 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 깊숙이 다가오시어, 그를 통해 위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우리로 말미암아 주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이 땅 가운데 펼치실 줄 믿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동행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굳게 지킨 요셉의 믿음을 바라봅니다. 그의 일생을 이끄시고 때에 맞는 훈련과 돌보심으로 함께 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에 찾아오는 모든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세미한 섭리가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심을 믿고 기대합니다. 주님께 저희 삶을 드리며 모든 고난과 슬픔을 이겨내고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9
창세기 40장 “안색을 헤아리다”
2026년 1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40장 “안색을 헤아리다” 찬송가 218, 220장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신뢰를 얻어 감옥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그곳은 평범한 감옥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친위대장, 즉 이집트 왕실 경비대장의 집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위 정치범들이 가두는 곳입니다. 어쩌면 히브리 노예 출신인 요셉이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보디발이 베푼 상당한 특혜와 배려입니다.그 감옥에 어느 날 왕의 술 맡은 관리와 떡 굽는 관리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왕의 음식을 마련하는 신하가 아닙니다. 독살이 흔했던 고대 사회에서 임금은 자신의 먹을거리를 매우 신뢰하는 심복에게만 맡겼습니다. 그들의 업무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파라오의 신임을 받는 고위 관료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두 사람의 처벌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친위 대장은 요셉에게 그들을 섬기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꿈에 대해 지금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게다가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한 순간에 추락해 옥에 갇힌 그들로서는 자기들이 간 밤에 꾼 꿈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몹시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마땅히 해석할 사람이 없어 답답해했습니다.그러자 요셉은 자기에게 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을 상황입니다. 예전처럼 궁궐 안에 있었으면 왕실 주술사를 불러서 꿈을 알려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닙니다. 먼저 술 맡은 관리가 이야기합니다. 그는 꿈에서 포도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습니다. 그 포도 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 파라오에게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곧바로 해석합니다. 포도나무 가지 세 개는 사흘을 의미합니다. 사흘 안에 파라오가 그를 원래 자리로 돌릴 거라며 그 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셉은 요청했습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떡 굽는 관리가 기대에 부풀어 자기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흰 떡 세 광주리를 머리에 짊어 졌습니다. 그 중 가장 위에 있는 광주리에는 파라오를 위해 만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먹을거리들을 새들이 먹었습니다. 요셉은 곧바로 해석을 알려줍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속 세 광주리도 사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리와 달리 그는 사흘만에 처형을 당해 나무에 달리게 됩니다. 완전히 다른 결말입니다.삼일 뒤, 요셉의 꿈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파라오의 생일이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요셉이 예고한 대로 술맡은 관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파라오의 술잔을 챙겼습니다. 반면에 떡 맡은 관리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순간입니다. 히브리 노예 출신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할 결정적 장면입니다. 동시에 형들을 격분하게 했던 요셉의 꿈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알려줍니다.이토록 중대한 사건의 시작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본문 6~7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6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갔다. 그런데 그들을 보니, 이런,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7 요셉은 자신의 주인집 감옥에 함께 갇혀 있는 파라오의 관리들에게 물었다. “오늘은 왜 그리 얼굴빛이 좋지 않으신가요?”술 맡은 관리와 자기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시작은 요셉의 시선에 있습니다. 창세기는 그날, 요셉의 눈길과 그의 생생한 감정을 감탄사와 함께 극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수동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앞에 마주한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주목하고 안색을 살폈습니다. 어두운 표정을 읽고 진심으로 함께 근심하며 형편을 헤아렸습니다. 사랑 어린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노예 신세에서 파라오 왕실 최고 권력자로 등극합니다.물론 그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술 맡은 관리는 왕궁에 들어간 후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분명 기대가 좌절되는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희망이 무너지는 암담한 절망으로 괴로웠을 겁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을 향한 그의 따뜻한 배려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은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힘들수록, 마음에 찬 바람이 불어올수록, 온통 주위에 어둠으로 가득할수록 더욱더 영혼 깊숙이 온기를 품으시길 바랍니다.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시름에 함께 아파하고 신음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짊어지신 주님께서 눈부시게 찬란한 구원의 여정을 펼쳐 보이실 줄 믿습니다.기도놀라운 구원의 주 하나님힘겨운 감옥 생활 중에도 곁에 있는 이들의 아픔과 근심에 귀 기울이고, 따뜻하게 경청한 요셉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의 진실로 성숙한 내면과 신앙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움터 올랐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에만 눈길이 머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를 향해 온기를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저희를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7
창세기 39장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2026년 1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9장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요셉은 형들 손에 팔려 낯선 땅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부유한 족장의 총애를 받는 아들에서 한순간에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근무하는 고위 장교인 보디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힘겨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기록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 한 복판에서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당신의 임재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을 잘되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극적인 반전입니다. 그 결과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었습니다. 집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주었습니다. 신분만 노예일 뿐, 어떤 면에서는 고향에서보다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렸습니다.하지만 행복은 얇디얇았습니다. 작은 충격에 쉽게 금이 가고 깨졌습니다. 언제부턴가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젊은 혈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굳게 지켰습니다. 9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 눈길을 항상 의식하였습니다. 죄를 단호하게 경계하였습니다. 도무지 요셉이 넘어오지 않자 보디발의 아내는 마침내 도발을 감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어 집안을 비워두고 요셉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옷을 잡고 더욱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기 옷을 주인 아내 손에 버려두고 도망칩니다. 불타오르는 집착에서 분노로 바뀌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요셉을 강간범으로 고발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즉결처분감입니다. 하지만 보디발은 자기가 관할하는 감옥에 요셉을 가둡니다. 아마도 보디발도 요셉의 억울함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체면상 처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보디발로서는 상당한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으로서는 너무나 암담한 상황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인권 개념이 없는 옛날, 감옥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다시 찾은 평온과 비교하며 더욱더 요셉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두고 창세기는 이렇게 놀라운 기록을 남깁니다. 21절 읽겠습니다.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한글 번역에 잘 드러나지 않는 원문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20절 그가 감옥에 갇혔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21절의 히브리어 성경 본문은 접속사를 세 번 반복 사용해 연속적인 흐름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 ‘요셉에게 은혜 베푸심’, ‘간수장의 호의를 받음’, 이 세 가지가 한 호흡으로 연결됩니다.즉, 감옥에 갇힌 아픔으로 요셉의 삶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함께 하시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는 구체적으로 보디발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간수장의 눈에 들어 감옥의 주요 업무를 맡아 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23절 후반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형들에게 팔려 두려움에 떨며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에도, 낯선 나라에서 노예살이를 할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임재하시어 고난을 이겨내고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가슴뭉클한 위로를 안겨주는 진리입니다. 동시에 쓰라린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해서 모든 일이 순탄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지만 여전히 고난이 찾아옵니다. 주님이 찾아오지만 절망에 빠지고 암담한 어둠에 잠깁니다. 주님이 동행하시지만 눈물겨운 상처를 입고 관계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임재를 신뢰해야 합니다.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가장 생생히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 않아 보이는 그 깜깜한 순간이야말로 진실로 나와 함께 하시는 순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인생의 온갖 어둠을 이겨내며 진정한 형통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임마누엘 하나님요셉의 굴곡진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심에도 여전히 고통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에 그 모든 절망을 이겨낼 희망으로 이끄심을 고백합니다. 당장 처한 현실에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새롭게 펼치실 내일을 향해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6
창세기 38장 “다말이 베레스를 낳고”
2026년 1월 1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8장 “다말이 베레스를 낳고” 찬송가 304, 310장요셉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창세기는 툭하고 작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바로 야곱의 아들 유다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얼핏 보면 창세기 흐름에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형제 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다에 대한 인물 소개를 미리 하는 정교한 의도가 있습니다. 게다가 유다는 메시아의 조상이 되기에 더욱 주목해야 할 사람입니다.그런데 성경은 그런 유다가 저지른 추악한 죄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서 큰 아들 엘이 다말과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을 저질러 심판을 받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유다는 둘째 오난에게 형수와 결혼하라고 시켰습니다. 이른바 ‘형사취수혼’ 제도를 보여줍니다. 신명기 율법에도 나오는 제도입니다. 현대인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풍습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목민들에게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관습입니다. 심지어 우리 역사 속 고구려에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인이 살아갈 길이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족 안에서 약자를 돕는 제도입니다.그렇게 의무를 짊어지게 된 동생은 형수와 동침하여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을 책임을 지닙니다. 그러면 사실 막중한 부담만 가질 뿐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습니다. 따라서 오난은 형수와 동침은 하면서도 정작 임신은 피했습니다. 그 행동이 역시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기에 그 또한 형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유다에게는 막내 셀라만 남았습니다. 유다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또한 목숨을 잃을 까봐 염려하였습니다. 며느리 다말의 불행을 방치하였습니다.다말은 그냥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찾아온 불행에 쉽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대담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거리의 여인처럼 변장하고 길에서 유다를 기다렸습니다. 유다는 자기 며느리인 줄 알지 못하고 다말과 잠자리를 하였습니다. 평소 유다가 얼마나 성적으로 방종했는지를 확인합니다.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잠자리를 하며 그의 물건을 챙겼습니다. 이후 그녀의 배가 불러옵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벌을 내리려 합니다. 그때 다말은 미리 챙겨둔 시아버지의 물건을 내밀며 아기의 아버지가 유다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유다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다말은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베레스를 포함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이렇듯 다말은 당시 남성 중심사회의 폭력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꾸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신음에 응답하시어 절망에서 구하시고 생명과 은혜의 상징인 두 아들을 품게 하셨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 그녀의 이름이 찬란하게 기록됩니다. 먼저 룻기 4장 12절 읽어 드리겠습니다.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이어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마태복음 1장 3절 읽어 드리겠습니다.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연달아 잃고 암담해 하는 다말의 상황을 품어 안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대 그릇된 관행과 문화에 과감히 저항하는 그녀의 용기를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겨 주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절망에 함께 아파하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는 우리의 처지를 헤아려 주십니다. 비록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이상하고 기괴하더라도, 힘 있는 사람의 조롱과 무시를 겪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당신 마음에 새겨 주십니다. 그 사랑을 의지하며 담대히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참 소망의 주 하나님연달아 휘몰아친 절망 속에 힘겨워하던 다말에게서 저희 모습을 발견합니다. 다말의 용기를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무시를 이겨내고 크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5
창세기 37장 “채색옷의 슬픔”
2026년 1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7장 “채색옷의 슬픔”어제 읽은 창세기 35장은 라헬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야곱이 극진히 사랑한 아내입니다. 라헬은 ‘칠년을 며칠 같이’ 여길 정도로 야곱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아내가 어렵게 가진 요셉에 이어 두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런 순간이지만 난산으로 결국 산모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산부인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종종 있었던 가슴 아픔 사건입니다. 숨이 꺼져가는 순간 라헬은 아들 이름을 ‘베노니’라고, ‘슬픔의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들을 두고 떠나는 엄마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부를 수 없는 아버지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베냐민’ 즉,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오른손은 옛 사람들에게 힘과 권위를 의미하기에 정반대의 뜻을 지닙니다.이 사건이 야곱의 마음에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슬픔은 비극적인 애착으로 이어집니다. 여전히 그 주위에는 다른 아내들과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의 빈 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라헬이 낳은 첫 번째 아들 요셉은 달리 말하면 ‘살아있는 라헬’입니다. 그의 영혼 깊은 공허함을 채워주는 존재입니다. 결국 야곱은 노골적인 편애를 저지르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옷은 매우 값비싼 물건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옷감이 풍부하지 않은 그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 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염색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입니다. 가뜩이나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던, 요셉 형들 눈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입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요셉 본인도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습니다. 간밤에 꾸었던 꿈을 자랑합니다.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형들이 단이 자기 단을 둘러서서 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했다는 다른 꿈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그 꿈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형들이 그를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취될 일을 미리 예고하는 계시입니다.그렇지만 형들에게는 아버지만 믿고 함부로 말하는 건방진 동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노가 극에 달해 결국 잔인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양을 치고 있는 자기들을 찾아온 요셉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나마 르우벤이 장남답게 그들을 만류하고 우선 구덩이에 넣은 다음 나중에 구해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르우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런 다음 요셉의 옷에 동물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거짓말 했습니다.야곱은 ‘살아있는 라헬’ 마저도 죽은, 끝없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야곱의 그릇된 애착에 있습니다. 그는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라헬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어머니 리브가에게 받은 대로 편애를 했습니다. 아들들 사이의 심각한 갈등과 시기를 눈 감았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파행에 이르렀습니다.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라헬’이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아련히 자리 잡은 사람과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떠나보내야 할 건 떠나보내야 합니다. 지난 아픔과 후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신뢰하며 앞으로 이루실 위대한 계획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차별 없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기도사랑의 주 하나님떠난 라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요셉을 향한 편애로 이어진, 야곱의 안 쓰런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에게서 저희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지나온 후회와 아픔을 떨쳐버리고 다가올 미래를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4
창세기 35장 “벧엘로 올라가자”
2026년 1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5장 “벧엘로 올라가자” 찬송가 337, 338장어제 읽은 34장은 야곱 가족에 또다시 몰아닥친 위기를 묘사합니다. 어렵게 자리잡은 이방 성읍에서 외동딸 디나가 족장 아들에게 몹쓸 짓을 겪었습니다. 이 자체로도 야곱에게는 너무나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들들이 잔인한 복수와 약탈을 하였습니다. 히위 족속과 동맹을 맺은 이웃 부족들의 보복이 불보듯 뻔합니다. 온 가족이 몰살당할 상황에 몰렸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며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극렬한 불신을 확인하였습니다.너무나 참담한 상황입니다. 도무지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다가오시어 말씀하셨습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야곱이 응답하며 가족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주님은 ‘벧엘’이라는 지명과 함께 그 곳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부유한 족장의 아들로서 어머니 품안에서 고생없이 여유롭게 자랐던 야곱이 한 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쓸쓸하고 막막한 밤을 보내며 돌베개를 베고 잠 들었습니다. 바로 그 때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임하시고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베고 누웠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곳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돌연히 주님의 영광을 만난, 야곱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을 언급하신 까닭은 단지 장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날의 만남을, 야곱을 향한 놀라운 언약과 은혜를 거듭 되새기는 말씀입니다. 이로써 과거가 현재로 다가왔습니다. 지난날,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을 또다시 경험합니다. 5절 읽겠습니다.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놀랍게도 주변 성읍 사람들이 오히려 야곱에게 겁을 먹었습니다. 그가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었던, 당연할 것 같았던 보복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 벧엘에서 맺은 언약처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응답하신 결과입니다. 주님의 전적인 개입으로 이뤄진 눈부신 구원 사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녹록치 않습니다. 창세기 35장 후반부는 야곱이 겪었던 또다른 끔찍한 시련을 차분하게 기록합니다. 칠년을 며칠처럼 여길정도로 몹시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는 충격적인 성적 일탈을 저질렀습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 이삭이 180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더 큰 시련이 남아 있습니다.이처럼 창세기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과 인생의 민낯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지닌 깊은 의미를 알려줍니다. 극적인 탈출뿐만 아니라 끝없는 슬픔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기적적인 보호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굴욕 속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인생의 나그넷길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숱한 시련 속에서 의연해야 할 이유입니다. 어김없이 고통은 찾아오지만 우리를 완전히 삼킬 수는 없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응답하시고 임재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벧엘의 하나님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언약과 사랑의 공간과 시간으로 나아갑니다. 저희를 위협하는 삶의 문제들 가운데 지켜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구원과 시련이 공존하는 인생의 실존 가운데 겸손히 주님만 바라고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3
창세기 34장 “휘몰아치는 폭풍 한가운데서”
2026년 1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4장 “휘몰아치는 폭풍 한가운데서” 찬송가 412, 413장야곱은 힘겨운 위기를 연달아 넘겼습니다. 그 후 그는 원래 목적지인 고향으로 형 에서를 따라 가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밭을 사고 정착합니다. 마침내 안도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제 풍요로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유를 누리고 살 기대에 부풀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삶은 고통입니다. 극적인 시련을 통과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사랑하는 외동딸 디나가 수치를 당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극도의 긴장 속에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소녀는 풍족한 땅 세겜에 도착해 흥분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그 땅에 사는 또래 소녀들의 일상에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외국의 대도시에 여행을 가면 그렇듯이 그곳의 활력 넘치는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시장과 중심가를 돌아다녔을 겁니다.하지만 이방인은 쉽게 눈에 띄게 됩니다. 아마도 디나의 외모가 매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지역의 권력자가 마음에 들어하며 억지로 욕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디나에게 푹 빠져들었습니다.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닌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몰에게 결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야곱에게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짙은 후회와 번민이 가슴에 밀려왔을 겁니다. 하지만 야곱에게는 함부로 화를 표출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는 힘없는 이방인입니다. 반면 가해자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고대 부족 사회에서 족장이 쥔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복잡다단한 현실의 역학관계가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서늘한 침묵이 그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였습니다.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영악함과 삼촌의 폭력성을 함께 지녔습니다. 동생에 대한 복수심과 세겜의 재물을 향한 탐욕으로 폭주합니다. 이 둘이 합해져 잔인한 학살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세겜과 하몰을 속입니다. 결혼 조건으로 상대 부족 남성들의 할례를 요구합니다. 그들로서는 솔깃한 제안입니다. 상당한 재산을 일군 야곱 가문과 섞여 교류하면 그들에게도 큰 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히위 족속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사흘 째 되던 날,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그들에게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기습하였습니다. 하몰과 세겜을 비롯한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여동생 디나를 데려옵니다. 다른 아들들은 피비린내 나는 성읍에 들어가 그곳 재산을 약탈해 가져왔습니다.그러자 야곱은 아들들의 무모한 만행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이 살해한 부족과 이웃한 다른 부족들이 보복을 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엄습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성적인 야곱으로서는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상황입니다. 또다시 가족 전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하지만 오히려 아들들이 아버지를 향해 거칠게 대들었습니다. 이미 파탄 난 부자 관계가 이 사건으로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이 잠시 누린 평온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습다. 본문 앞에 있는, 33장 마지막 단락의 언급, 야곱이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와 대비를 이룹니다. 또한 이어지는 35장의 시작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벧엘로 올라가라’의 배경이 됩니다.우리에게 평화를 보증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이나 비극이 엄습합니다. 이 잔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만났던 빛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고통만 있지는 않습니다. 비극과 직면하고 통과한 사람에게 비로소 참 평화가 찾아옵니다. 십자가를 통해 몸소 어둠 한복판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삶의 어둠을 이기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평강의 주 하나님세상 그 어느 곳도, 화려하고 번성해 보인 세겜도 결코 안전하지 않고 도리어 야곱에게 커다란 위기를 가져온 성읍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쉽게 판단하는 조건으로 삶의 거처를 정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평강의 주이신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인생 여정을 내딛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2
창세기 33장 “이스라엘의 하나님”
2026년 1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3장 “이스라엘의 하나님” 지난 밤 야곱은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곧 에서와 그의 무리 400명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처참한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많은 재산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요셉은 결국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위대한 새 이름을 얻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몰골은 영락없는 패배자입니다. 온 몸이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게다가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 심하게 절뚝거립니다.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듣던 대로 에서가 부사 사백 명을 거느리고 다가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가족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혀 예의를 표하며 에서에게 다가갑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을 겁니다. 분명 어제 하나님의 뜨거운 임재를 체험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협은 살아 있습니다. 마치 사자의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심정이었을 겁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뜻 밖의 장면이 펼쳐 집니다. 에서가 달려와 야곱을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순간 오랜 원망과 분노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엉엉 울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여졌을까요? 물론 우리는 쉬운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때, 에서의 눈에 보인 야곱의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만약 야곱이 자수성가한 부자로서 기세등등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자기가 보낸 선물을 두고 생생을 부렸다면 어땠을까요? 그 순간 에서에게는 어린 시절 야곱의 교활하고 영악한 모습이 떠올랐을 겁니다. 금세 지난날 야곱에 의해 빼앗긴 아버지의 복을 떠올리며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야곱의 상태는 정반대입니다. 영락 없이 패배와 좌절로 처량한 신세입니다. 에서의 긍휼을 끌어오르는 모습입니다. 자연스런 용서에 이르는 용모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화해와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를 통해 지난 밤, 복을 구하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신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를 좌절하고 무너뜨리려는 게 아닙니다. 야곱을 참으로 살리시는 은혜의 손길입니다.이 모든 상황을 마친 야곱의 신앙고백을 20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야곱은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 제단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 이름을 통해 지금 자기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을 다시금 명확히 합니다. 바로 ‘엘엘로헤이스라엘’입니다. 뜻을 풀이하면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관념적인 절대자가 아닙니다. 단순히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오는 가족 종교의 신도 아닙니다. 자기를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신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때로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크게 휘청거릴 때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좌절과 절망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마음 깊이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어둠과 아픔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입니다. 마치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생명으로 이어진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무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모욕을 당하고 뼈가 꺾이고 모든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 모든 희생이 온 세상을 살렸습니다. 그러므로 아프고 힘들수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전능하신 만유의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품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기도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온통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휘청거리는 야곱에게서 저희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모든 아픔을 통해 화해와 평화를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때로 저희 삶에 찾아오는 좌절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임을 진심으로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삶 깊숙이 다가오시어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10
창세기 32장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
2026년 1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2장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 찬송가 436, 438장야곱은 마침내 라반의 손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커다란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쌍둥이 형 에서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다혈질 기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반드시 야곱을 죽이겠다는 그의 다짐이 허언이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나도 자기를 향한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역시나 에서가 무려 사백 명이 되는 패거리를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야곱은 또다시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7절은 그런 야곱의 심리를 가리켜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라고 묘사합니다. 지금까지 힘겹게 쌓아올린 인생의 성과물인, 가족과 재산을 한 순간에 잃을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꾀를 동원합니다. 우선 가축을 두 떼로 나누어 만약 한 쪽을 공격하면 다른 한 쪽은 피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서의 마음을 녹일 선물로 동물들을 각각 떼로 나누어 차례대로 보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곱을 압도한 두려움은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뒤 기댈 마지막 방법은 그저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야곱과 밤새 씨름하셨습니다. 격한 몸부림 끝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부러졌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물러서지 않고 축복을 구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뜻밖의 질문을 불쑥 던집니다. 27절 읽겠습니다.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엉뚱하게도 야곱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모르셔서가 아닙니다. 이름에 담긴 자신의 정체성을 그가 스스로 확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야곱은 ‘발 뒤꿈치를 붙잡다. 남을 속이고 걸려 넘어지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지금껏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입니다. 그의 좌절과 한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적어도 당신에게 자기를 속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길 바랐습니다. 그런 질문에 응답해 야곱은 자기 이름을 ‘야곱’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위대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28절 읽겠습니다.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단순히 누군가의 호칭이 변화된 사건이 아닙니다. 성경 속 이름에는 하나님의 창조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야곱을 야곱의 삶에서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인생에서 이스라엘로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뜻을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하나님이 져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응하고 응답하셨다는 뜻 입니다. 이처럼 야곱이 하나님께 자신의 야곱 됨을 인정할 때, 주님은 야곱을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이스라엘’로 변화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대로 나머지 인생을 이끄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시간 하나님께 자신의 야곱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주님 앞에서는 애써 자신을 꾸미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 한계와 결핍, 내가 그토록 못나게 느끼는 자기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찬란한 복음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품어 안으시고 새롭게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기도위대한 창조의 주 하나님인생의 깊고 깊은 절망 한 복판에서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아 몸부림친 야곱에게서 저희 아픔과 고통을 발견합니다. 그런 저희의 이름을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슬픔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항상 소중히 마음에 품고 절망을 딛고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9
창세기 31장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2026년 1월 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1장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찬송가 542, 543장야곱이 다시 도망칩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닙니다. 네 아내와 자녀들과 종들, 그리고 그가 이룬 많은 가축이 그를 바라봅니다. 20년 전, 하란을 향해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압도적인 부담과 두려움을 안고 마침내 라반의 집을 나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야곱과 그의 가족은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렸을까요?직접적인 원인은 라반의 안색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읽은 30장의 마지막 절, 즉 31장 바로 앞에는 야곱이 매우 번창했다고 기록합니다. 과거에는 라반과 야곱 사이 재산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릅니다. 라반은 사위의 몫을 따로 챙겨주겠다는 자기 약속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늘어난 야곱의 재산에 우선 라반의 아들들이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급기야 라반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이 상황을 감수할 수 없었습니다. 장인 라반의 표독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머지않아 커다란 위협이 자기에게 찾아올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두 아내, 레아와 라헬 역시 야곱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15절에 보면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라고 말합니다. 가족보다 돈과 이익을 우선시 하는 라반의 성품을 낱낱이 드러내는 평가입니다. 결국 야곱의 가족을 도망칩니다. 하지만 금세 잡히고 맙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가축을 포함한 거대한 무리를 소수의 추격대가 쫓아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칠일 만에 야곱에게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자 라반은 야곱에게 궁색한 변명을 댑니다. 자기 딸, 손자들과 인사 나누지 못해 아쉬운 척 합니다. 그런 다음 자기 집에 둔 우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라헬이 훔쳐간 사실을 알지 못한 야곱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라반은 라헬이 감춘 우상을 끝내 찾지 못합니다. 그러자 야곱에게 20년간 쌓은 감정이 폭발합니다.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야곱은 20년 동안 장인어른 밑에서 일하며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길어서 다 읽지는 않았지만 38, 39절에 의하면 그가 키운 가축 암컷들은 낙태하지 않았고 숫양은 먹지 않았습니다. 맹수에게 물리거나 도둑 맞은 것은 변상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쉴틈없이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라반이 품삯을 무려 열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최근에야 겨우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기 재산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라반은 야곱을 해치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라반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다면, 야곱의 인생은 이루말할 수없이 비참하고 초라한 삶입니다. 하지만 그 절망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는 고백합니다. 42절 읽겠습니다.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야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목숨을 건진 까닭은, 라반이 평소 인성과 달리 자기를 내버려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 덕분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20년전 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 하신 덕분입니다. 야곱은 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시선이 그의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시어 고난을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하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과 수고를 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살아가며 여러 라반을 만납니다. 우리를 이용하고 억누르고 위협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로 인해 억울한 눈물을 흘리고 상처입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벧엘 언약을 품고 지키는 우리의 인내와 고난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가장 합당한 때에 합당한 방법으로 찾아오시어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손길을 붙잡고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자녀들의 모든 고난과 수고를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라반 밑에서 20년간 겪은 야곱의 착취와 억압을 주님께서 잘 알고 계셨듯이, 저희의 아픔 또한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응답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그 어떤 시련에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깊은 어둠 가운데 오히려 더욱 빛나는 찬란한 영광을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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