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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1

마태복음 8장 “큰 믿음, 작은 믿음”

2026년 10월 3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8장 “큰 믿음, 작은 믿음”, 406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를 소개하시고,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8장에서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산 위에서 권위 있게 가르치신 주님이 이제 산 아래에서 그 권위를 능력으로 보여 주십니다. 먼저 8~10절 함께 읽겠습니다.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백 명 남짓한 병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입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관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요청합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이 믿음은 올바른 권위를 제대로 아는 데서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평소 상관의 명령을 받고,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일상인 장교입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군사들이 움직이듯, 예수님 말씀 한마디에 병이 물러간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명령하실 권위가 예수님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예수님은 이 믿음을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진실로”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큰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의 권위 앞에 내 삶을 내어 드릴 때 비로소 칭찬받는 믿음이 됩니다. 그 결과 주님이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자 멀리있던 하인이 즉시 나았습니다.이어서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태는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바로 앞에서 주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어떤 지 말씀하셨습니다.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나선 제자들 앞에 큰 놀이 일어났습니다. ‘놀’로 옮긴 헬라어는 마태복음 다른 곳에서 지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다가 뿌리째 흔들리는 듯한 풍랑이었습니다.그 와중에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 위험 속의 단잠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짧은 기도는 그 뒤 모든 시대 교회가 풍랑 속에서 드려 온 기도가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복음에서 ‘믿음이 작은 자’라는 말은 제자들에게만 쓰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과 두려움이 뒤섞인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 결과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신약 원문에서는 ‘큰 고요’라고 묘사합니다. 큰 놀이 일던 바다에 큰 고요가 찾아왔습니다.앞서 살펴본 백부장의 모습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멀리 계셔도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바로 곁에 계셨는데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의 크기는 주님과 떨어진 거리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느냐로 정해집니다.주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기도한 일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반드시 우리 삶에 가장 위대한 은혜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풍랑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도 거센 비바람이 몰아닥칩니다. 건강과 자녀와 일터 문제가 인생의 배를 덮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주무시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우리와 한 배에 계십니다. 자녀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큰 풍랑을 큰 고요로 바꾸어 주시는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말씀을 이루시는 권능의 주 하나님, 백부장처럼 주님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풍랑 앞에서 흔들릴 때에도 우리와 한 배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작은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오늘 하루 말씀 위에 서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10-30

마태복음 7장 “구하고, 대접하고, 행하라”

2026년 10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7장 “구하고, 대접하고, 행하라”, 204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6장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켜야 할 경건과 일상을 알려 줍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일 염려를 맡기고 오늘 주신 은혜로 하루를 살라고 말씀 하십니다.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오늘 읽은 7장으로 마무리됩니다. 먼저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절에서 주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동사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한 번 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드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습니다. 둥근 돌은 떡덩이와, 뱀은 생선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식을 속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는 두말할 것 없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 말씀은 구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는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신실하심입니다.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그러므로 좋은 것을 받은 사람은 이제 좋은 것을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흔히 ‘황금률’이라 부르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 완성은 곧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듯, 이웃에게 좋은 것을 건네시기 바랍니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손길을 기억하시고 더 큰 은혜로 돌려주실 줄 믿습니다.이어서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산상설교의 마지막 비유입니다. 주님은 “나의 이 말”을 언급하십니다. 이제 바른 삶의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이 같아 보입니다. 차이는 폭풍이 올 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메마른 골짜기는 평소 물 한 방울 없다가도 큰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거센 물길로 변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칩니다. 반석 위의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래 위의 집을 두고는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십니다.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들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붑니다. 병이 찾아오고, 자녀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이 몰아칩니다. 그때 무너지지 않는 힘은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하는 데서 나옵니다. 오늘도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께 끊임없이 구하시길 바랍니다. 받은 은혜로 이웃을 먼저 대접하시길 바랍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당신이 하신 말씀을 위대한 희생과 사랑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시어, 말씀대로 사는 삶의 위대함을 눈부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하나님 나라 복음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더욱 섬기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씀의 반석 위에 세운 우리의 삶은 어떤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기도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못하여 모래 위에 집을 짓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믿고 날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옵소서. 받은 사랑으로 이웃을 먼저 대접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워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10-29

마태복음 6장 “먼저, 그리고 오늘”

2026년 10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마태복음 6장 “먼저, 그리고 오늘”, 382장어제 읽은 마태복음 5장 27~48절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새롭게 풀어 주신 말씀을 기록합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비추시는 아버지를 닮으라는 말씀입니다.이어지는 6장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경건과 일상을 다루십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 한가운데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이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면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주님은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하십니다.먼저 32~33절 함께 읽겠습니다.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25절부터 34절까지 ‘염려하다’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두려움이 섞인 걱정, 잠 못 이루게 하는 근심을 뜻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존이 걸린 문제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염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근심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먼저 보여 주십니다.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아버지를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솔로몬보다 아름답게 입히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는 하늘 아버지 이십니다. 따라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같은 내용을 표현할 때, 누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에만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하라’는 말도 아직 없는 나라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미 찾아온 하나님의 다스림을 삶의 중심에 모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의를 끊임없이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더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물론 손 놓고 기다리면 먹고 입는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도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우리도 땀 흘려 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더 많이 받는다는 거래 공식도 아닙니다. 주님이 금하시는 것은 수고가 아니라 염려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염려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 순서가 바로 서면 염려를 아버지의 손에 맡길 수 있습니다.이어서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주님은 염려의 범위를 내일로 넓히십니다. 사실 우리의 염려는 대부분 아직 오지 않은 날을 향합니다. 건강과 자녀와 노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농사와 일터의 앞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일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습니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내일도 거기 계십니다. 내일의 짐을 오늘 미리 질 필요가 없습니다.“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는 말씀은 삶의 괴로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날마다 괴로움이 있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다만 그 괴로움을 하루씩 감당하게 하십니다. 주기도문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의 만나처럼 오늘 필요한 은혜는 오늘 주십니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부활로 그 삶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여는 이 새벽,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내일의 염려는 내일을 다스리시는 아버지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신 하루를 감사로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넉넉히 채우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의 필요를 먼저 아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먹고 마시고 입는 일로 염려하며 순서를 잃어버린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오늘 주신 은혜로 하루를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염려 대신 감사가, 두려움 대신 믿음이 저희 삶을 채우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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