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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4장 “어떤 식사”
2026년 3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4장 “어떤 식사” 찬송가 446, 447장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번과 달리 모세 혼자만이 아닙니다.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장로 70명도 같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하는 것은 모세 혼자입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물론이고 백성을 대표하는 많은 장로를 당신 곁으로 이끄셨습니다.그러자 모세는 백성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3절과 7절은 이때 이스라엘이 반복한 외침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입니다.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며 광야를 지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말씀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루는 다짐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는 백성에게 거듭 깨우쳐 주었습니다.그런 다음 모세는 장로들과 함께 시내산에 오릅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10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뵈었다. 그분의 발아래는 사파이어 타일을 깔아 놓은 것 같았고 맑은 하늘과 똑같았다. 11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치려고 그의 손을 펼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뵙는 가운데 먹고 마셨다.상상만 해도 너무 황홀한 광경입니다. 마치 사파이어로 만든 타일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푸른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사모하는 광경입니다. 동시에 떠올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정작 하나님과 마주한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감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주님의 존재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11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라는 말에는 이와 같은 보편적인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본래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구약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방금 읽은 데로 모세와 동행한 무리는 하나님을 뵙는 가운데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식사 교제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확인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별명을 아십니까? “먹보에 술꾼”입니다.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식욕이 많으셔서 허기를 채우시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밥상에 함께 둘러 앉은 사람들입니다. 지위와 평판과 무관하게 차별 없이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식탁에 막중한 의미를 부여했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경악스런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통한 나눔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성찬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스한 식탁으로 죄인을 부르시고 먹이십니다. 그렇게 받은 초대를 주위와 나누길 바라십니다. 친숙하고 내게 도움을 줄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웃, 싸늘한 냉대를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온기를 전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자리가 눈부신 청옥이 깔린, 주님이 임재하시는 현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사랑으로 다가오시어 만찬을 여시는 하나님시내산 위에 오른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잔치를 여신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함께 하신 숱한 식탁을 마음에 새깁니다. 정배교회 예배가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격적인 초대를 감사로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따뜻한 나눔과 섬김을 본받아 실천하는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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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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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3장 “우리도 그들처럼”
2026년 3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3장 “우리도 그들처럼” 찬송가 295, 298장어제 본문인, 22장 2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구절이 오늘 읽은 23장에도 나옵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거의 비슷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반복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돌보아야 할 가장 소중한 이웃이 있습니다. 바로 “이방 나그네”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게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만이 아니라 모세 오경 전반에 걸쳐 여러 곳에서 이를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이방인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심지어 오경을 넘어 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핵심인 레위기 19장은 이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레위기 19장 33~34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33 너희 땅에서 나그네가 너와 함께 머물러 살고 있을 때, 그를 억누르지 마라. 34너희와 함께 나그네로 살고 있는 사람을 너희 가운데 있는 토박이처럼 여기고, 너 자신처럼 사랑해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는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다.우리가 쉽게 지나치지만 율법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을 매우 엄중하게 가르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난민 문제를 통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이방인들은 철저한 약자입니다. 심각한 무력함과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이들을 보호하라는 성경 말씀은 단지 윤리와 복지 차원이 아닙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또한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유념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과거 경험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사회에 가장 천대 받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늘 명심하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최고 랍비를 역임한, 세계적인 율법학자 조너선 색스의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너희도 한때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에 나그네의 마음을 잘 안다. 너희가 인간이라면, 그들도 인간이다. 그들이 인간보다 못하다면, 너희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때 너희를 대신하여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이자 가장 강력한 제국과 싸웠던 것처럼, 너희도 마음속의 증오심과 싸워야 한다. 나는 너희를 세상의 전형적인 나그네로 만들어서 너희가 나그네의 권리를 위해 싸우게 했다. 너희 자신의 권리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위해 말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누구든, 피부색이나 문화의 결합이 어떻든, 그들이 너희의 형상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듯,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충분히 강력한 답은 단 하나뿐이다. 왜 이방인을 미워하지 말아야 할까? 그 이방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성경의 가장 핵심 위치에서 왜 거듭 이방인을 사랑하고 돌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그네로 상징되는, 가장 약하고 초라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지를 선명히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오늘 하루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 모양의 나그네들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너무 부담 갖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보다 낮은 지위에 있고 어린 사람을 대할 때 조금 더 배려하시길 바랍니다. 식당이나 카페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나그네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이방인 신세였던 시절을 기억하듯이, 저희가 본래 연약한 죄인이었음을 돌아봅니다. 죽음에서 구하시고 자녀 삼으신 놀라운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곁에 있는 외롭고 지친 이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감싸안는 따뜻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며 전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2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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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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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2장 “율법의 세심한 손길”
2026년 3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2장 “율법의 세심한 손길” 찬송가 299, 300장“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잘 드러납니다. 며칠간 함께 읽었듯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온 우주를 가득 채욱 하나님의 꿈이 장엄하게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삶의 구체적인 순간 속에 함께 하십니다. 율법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막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이루어야 할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몸에 익혀야 할 삶의 언어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법의 형태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본문에서 확인합니다. 26~27절 함께 읽겠습니다.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을 발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경제 거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빌리고, 담보로 옷을 맡기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현실적인 경제 활동을 금지하지 않으십니다. 무작정 손해 보고 베풀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자연스런 금전 거래를 인정하십니다.다만 나의 돈을 빌리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라고 강조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의 겉옷은 전재산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는 외투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외모를 치장하는 패션이 아닙니다. 밤에 잘 때는 싸늘한 광야의 추위를 막아줄 이불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가 겉옷을 맡기면서까지 돈을 빌렸다면 그만큼 가난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어 밤이슬을 피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언급을 덧붙입니다. 27절 후반부를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줄 것이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선포하신 야훼 하나님은 이 땅에서 멀리 떨어져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밤새 부르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십니다. 그 고통과 설움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것은 또한 말씀을 받아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명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장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주님은 자녀들이 하루하루 맞이하는 현실을 존중하십니다.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고결한 존재로 살수 없습니다. 생을 이어가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여러 거래를 합니다. 그러다보면 때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다투기도 합니다. 치졸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자연스럽고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와 마주 보는 사람들 역시 주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겪는 삶의 여러 어려움에 공감해야 합니다. 특히나 마치 옷 한 벌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지경에 놓인,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주목 하십니다. 이를 명심하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주님의 마음과 뜻을 세심하게 헤아리며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디테일에, 세심한 손길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따뜻한 얼굴로 세상을 비추시는 하나님율법을 선포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담으시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무궁한 영광이 인생의 단면에 고루 스미고 있음을 믿습니다. 외롭고 아픈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탄식을 들으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저희의 신앙 또한 가장 구체적인 배려와 섬김으로 피어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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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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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1장 “참으로 자유로운 종”
2026년 3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1장 “참으로 자유로운 종” 찬송가 212, 213장어떤 나라가 성숙하고 발전했는지 그렇지 않은 지를 파악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는 ‘노예’가 있는 지 여부입니다. 인권을 박탈 당하고 가혹한 학대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분명 병들었습니다. 따라서 노예, 혹은 종 이라는 존재는 오늘날 우리 기준에서는 당연히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옛 사회에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예가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노동을 전담하는 계층이 사라진다면 나라 안의 여러 곳이 삐걱거리게 됩니다. 커다란 혼란에 직면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새롭게 나라를 일굴 이스라엘에게 닥친 곤란한 모순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러하였듯 사람들을 함부로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금지하는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예 자체가 없는 건 현실적으로 곤란합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제시해 주십니다. 부득이 종을 고용할 수 밖에 없는 필요는 인정하시되, 그 종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본문 2, 3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같은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부릴 경우를 가정합니다. 그가 6년간 일했다면 일곱째 해에는 이유를 묻지 않고 풀어줘야 합니다. 종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계급 사회나 노예의 아내 또한 노예입니다. 칠년 째 해에 노예 부부 두 사람을 한꺼번에 풀어준다면 주인으로서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럼에도 좋아줘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 구하신 하나님의 해방을 백성들이 실천하는 제도입니다.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자녀를 낳은 경우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와 자녀들을 두고 아버지 혼자만 떠나야 합니다. 만약 가족과 함께 하길 원한다면 그대로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관련 절차를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여기서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종이 자유를 포기하고 남아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상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화 농장에서 채찍질 당하던, 미국 흑인 노예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날 회사의 좋은 상사 혹은 사장님과 비슷합니다. 고용관계이지만 신뢰를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굳이 독립할 필요 없이 계속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종도 사랑하는 주인 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길 원했습니다.그럴 경우 종의 주인은 재판장의 보증 아래 종의 귀를 송곳으로 뚫습니다. 자신의 종이 되었다는, 몸에 새긴 선명한 상징입니다. 주인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드러내는 분명한 증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이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노예입니다. 진실로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종입니다.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지 않고 몸소 상처 입으시고 죽기까지 죽음에서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깊이 복음의 흔적을 새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섬김의 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모든 인생을 주관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저희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억압으로 가득한 현실 가운데 해방의 길을 열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가운데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인을 사랑한 종이 송곳으로 귀를 뚫어 상처를 남기듯 저희 영혼에도 십자가의 흔적을 새기길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하는 것이 참된 자유인의 삶이라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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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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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사랑의 규칙”
2026년 3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0장 “사랑의 규칙” 찬송가 435, 438장어제 읽은 19장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께 언약을 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지금까지 출애굽기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각종 율법 조항이 나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딱딱한 규칙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근본 바탕을 주목해야 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스스로 소개하십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그들이 종살이 하던 이집트 땅에서 구하고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 즉 ‘야훼’라는 당신의 인격이 ‘너의 하나님’이라는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뜻합니다. 단순하지만 매우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율법의 존재 목적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까닭은 싸늘한 굴레로 사람들의 목을 조르려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이루신 구원의 의미를 거듭 곱씹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 안에 속해 있음을 깨닫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정신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무엇보다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출애굽기가 소개하는 첫 번째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핵심을 담은 삶의 원칙입니다. 첫 계명인 3절 함께 읽겠습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십니다. 주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신의 모양을 한 여러 허상이 있을 뿐입니다. 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은 때로 주님 대신에 돈과 권력을 숭배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나머지 계명들처럼 우상을 만들지 않고, 주님의 이름에 담긴 인격을 높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의 날을 지킬 수 있습니다.십계명은 하나님과 관계된 종교 개념만 나열하지 않습니다. 삶의 구체적인 규칙도 나머지 여섯 개 계명에 넣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인 17절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17 이웃의 집을 넘보지 마라. 이웃의 아내든, 남자 노예든 여자 노예든, 소든 나귀든, 이웃의 것은 무엇이라도 넘보지 마라.앞서 나오는 부모 공경, 살인 금지, 간음 금지, 도둑질 금지, 거짓 증언 금지, 이들 계명은 모두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마지막을 장식하는 열 번째 계명은 ‘시기심’, 즉 내면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와 관련한, 영국 최고 랍비 조너선 색스의 해석을 저는 동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모든 죄의 시작인,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남들이 지닌 것을 부러워하고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오늘 내가 누리는 소소한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최선을 주셨습니다. 지금 서 있는 위치, 주위를 둘러싼 환경, 곁에 있는 사람들. 이 모든 게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참으로 자녀답게 자라가게 하시는 은혜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물론 당장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오고 원망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걸 선으로 바꾸십니다.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오직 나를 위한 찬란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자녀들에게 사랑을 담아 열 가지 계명을 말씀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길 구합니다. 주님 외에 다른 허상을 물리치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에서 주신 놀라운 은총을 고백하는 성숙한 믿음을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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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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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장 “선물 받은 정체성”
2026년 3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9장 “선물 받은 정체성”출애굽기는 놀라운 구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최강의 군대와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수백년 간 노예로 있었던 백성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신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얼마나 헛된 존재인지를 폭로하셨습니다. 그 결과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습니다.너무나 흥미진진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된 이유입니다. 출애굽 여정에 참여한 백성들 역시 흥분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물론 광야 길은 험난합니다. 하지만 감격에 겨워 이집트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기대와 소망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본질에서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자기들의 욕망으로 하나님의 뜻을 덮을 위험이 많습니다.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릅니다. 출애굽의 이유와 목적을 정확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언약이 선포된 산의 이름을 따서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4~6절 함께 읽겠습니다.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사실을 생생한 표현으로 알려주십니다. “애굽 사람에게 행한 일”과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신 것입니다. 결국 둘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집트에서 고난 받던 백성을 전적인 은혜로 구하신 손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억압과 폭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주님은 그런 당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 시킵니다. 세계가 모두 주님께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 아닙니다.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집트를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구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무언가 하실 일이 있으셨습니다. 그러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이 꿈꾸신 뜻과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온 우주 가운데 구별된 민족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분명 하고자 하실 일들을, 이 세상 속에 이루길 바라시는 사명을 앞서 감당할 존재입니다.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온전히 회복하고 완성하는 꿈을 이룰 사람들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져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만을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새로운, 참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비록 홍해를 건너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또 다른 독수리 날개 위에 올라탔습니다.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소명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온 세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연히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룰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하루도 부르심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시내산 자락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모세를 올라오게 하신 장면을 읽었습니다. 그들과 맺은 위대한 언약을 저희 마음에도 새깁니다. 저희가 누구이며, 왜 구원을 받았는지를 늘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긍심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한 삶으로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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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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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8장 “크신 하나님”
2026년 2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8장 “크신 하나님” 찬송가 79, 80장마침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때 반가운 얼굴이 모세 앞에 나타납니다. 바로 장인 이드로입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과 광야의 여러 위험을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노출 시킬 수 없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처가에 맡겼습니다. 상황이 안정되자 가족들이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모세는 장인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드로는 그 모든 큰 은혜에 놀라며 이렇게 찬송합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이드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지신, 야훼 주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이드로는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신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가 지금껏 섬겨왔던 다른 우상을 비롯한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을 마주하였습니다.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드로가 그 전까지 지녀왔던 종교를 완전히 버렸을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온전히 받아들였을까요? 성경에서 그런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방금 읽은 11절을 봐도 그는 야훼 하나님을 여러 신들 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길 뿐 유일신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그런 이드로를 대하는 모세의 태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억지로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라고 해서 장인의 말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26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사위 모세가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던 이드로는 값진 조언을 건넵니다. 백성 가운데 능력과 인격을 갖춘 일꾼을 세우라고 권합니다. 그들을 적절히 조직하여 모세가 지나치게 많은 일에 얽메이지 말고 지도자로서 가장 본질적인 업무에 충실하라는 권면입니다. 이를 통해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라고 해서 직통계시에 의존해 얼렁뚱땅 일을 처리하는게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조직 운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또한 모세가 이방 종교 제사장인 장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소중한 지혜를 발견합니다. 바로 열린 태도와 경청입니다. 당연히 진리의 순수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을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혼합주의와 다원주의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드로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듯이 우리도 귀를 넓게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님의 손길은 무한히 넓은 우주를 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은 종교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넘어섭니다. 따라서 편협한 시각을 내려놓고 세상 속을 자유롭게 거니시길 바랍니다. 교회 밖을 향해 시선을 두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소중히 여기면서 동서양의 여러 고전과 사상에도 관심을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만남과 나눔을 통해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더욱 풍성히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본을 보인대로 교회와 세상, 진리와 상식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개인과 가족과 교회를 더욱 건강히 가꾸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광대하신 주 하나님이방 제사장 이드로의 입술에서 주님을 향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크고 위대하신 은혜와 구원을 높여 찬양합니다.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건강한 상식과 지혜를 갖추기 원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견고하게 지키면서도 교회 밖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슬기롭고 건강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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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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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2026년 2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찬송가 354, 357장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감격적인 출애굽 이후 힘겨운 광야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마라의 쓴물과 굶주림을 겪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 1~7절에는 목마름으로 인한 갈등을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 고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쟁입니다. 그전에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실제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야만적인 순간입니다. 게다가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단순히 군대와 군대의 대결이 아닙니다. 신(神)과 신의 싸움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처음으로 치르는 이방 민족과의 전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목숨을 걸고 창과 칼을 움켜쥐는 상황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맡겨진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전투 현장으로 향합니다. 바로 산꼭대기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루실 놀라운 구원을 확연히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모세는 모든 혼돈을 헤치고, 처참한 현실을 넘어 지팡이를 치켜들었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아말렉 군대를 강력히 제압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지팡이를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곧 피로감을 느낍니다. 두 팔이 부들거렸습니다. 차츰 팔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 이스라엘의 기세도 조금씩 꺾이기 시작합니다. 동행했던 아론과 훌이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돌을 가져와 모세가 그 위에 편하게 앉게 했습니다. 양쪽에서 각각 모세의 손을 하나씩 붙잡아 올렸습니다. 덕분에 모세는 해가 질 때까지 양팔을 치켜들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이날 모세의 행동을 주술적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마법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본질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날, 전쟁터에서 하나님께서 무얼 하셨는지, 그걸 통해 백성들에게 확고하게 알려주고자 한 진리가 무엇인지, 또한 그 진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 답을 알아가기 위해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모세는 아말렉과 싸워 감격스러운 승리를 거둔 후 제단을 쌓고 예배했습니다. 그런 다음 ‘야훼 닛시’라는,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은 나의 깃발’이라고 뜻입니다. 깃발은 혼란한 전투상황 속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병사들이 응시해야 할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인생의 전투 속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눈길을 고정해야합니다.‘야훼 닛시’ 하나님은 그렇게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신실하게 함께하십니다. 때때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고된 전투에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깃발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응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 말씀 따라 참된 승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루어 나가길 축원합니다.기도‘야훼 닛시’, 나의 깃발이신 주 하나님주님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광야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패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의 현실이 너무나 쓰라립니다. 비참합니다. 아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처절한 전쟁터에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진정한 승리의 길로 이끄셨음을 믿습니다.그 믿음 따라 행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듬고 역사의 비극에 희생당한 이들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승리의 허상을 물리치고 진정한 승리를 진리 가운데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십자가에서 구원 깃발을 펼쳐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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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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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6장 “원망의 방향”
2026년 2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6장 “원망의 방향” 찬송가 242, 246장출애굽기 15장 앞부분은 홍해를 건넌 감격을 찬양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쓴 물을 마시고 금세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물을 단물로 바꾸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합니다. 금세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원인은 먹을거리였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고기와 떡을 그리워했습니다. 제국의 풍요가 안겨준 부스러기를 추억하였습니다. 사실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광야의 척박한 환경에서 부실한 먹을거리를 먹으면 누구나 당연히 화려한 음식을 그리워합니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자체를 후회하고 원망했습니다. 애초에 이렇게 나올게 아닌데 괜히 모세가 자기들을 구해내어 배고파 죽을 지경에 몰아놓았다고 투덜 거렸습니다. 광야의 자유보다 제국의 억압을 더 높게 평가하였습니다.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이집트의 우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낫다는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약속합니다. 바로 메추라기와 만나입니다. 메추라기는 시나이 반도 일대를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하나님은 저녁에 바람을 통해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메추라기 고기를 먹으며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이슬처럼 만나를 내리시어 탄수화물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먹이셨다고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주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8절 함께 읽겠습니다.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하나님은 백성의 원망에 반응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고기와 떡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냉정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백성의 원망이 단지 그들 눈 앞에 있는 지도자들에게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토대를 부정한 불신앙입니다.살아가며 누구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특히나 고된 광야 여정을 지나며 굶주림을 겪을 때 너무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그 자체를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삶의 근본적인 신뢰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악에서 구하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된 걸음 끝에 마침내 다다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오늘도 또다른 만나와 메추라기로 우리를 먹이시고 이끄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건네시는 사랑의 손길로 말미암아 불평을 덜어내고 다시금 힘차게 인생의 여정을 이어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날마다 사랑으로 먹이시는 하나님인생의 고된 여정을 지나며 원망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님의 사랑과 구원 자체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광야를 덮은 메추라기와 만나와 같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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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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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5장 “치료하시는 주님”
2026년 2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5장 “치료하시는 주님” 찬송가 285, 286장마침내 낯선 여정을 떠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놓인 상황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성경이 기록한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거대한 이집트 제국이 몰락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위대한 구원 한복판에 있던 이스라엘은 주님께 찬양 드렸습니다.하지만 잠깐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자마자 낙원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광야를 걸었습니다. 삼일동안 무겁게 걸음을 옮기며 타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겨우 샘물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이때, 이스라엘 백성의 감정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애쓰고 노력해서 이집트를 탈출한 게 아닙니다. 전적인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런 다음 메마른 광야로 내 던져졌습니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비록 노예로 살았으나 적어도 먹을 것은 풍족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덥고 거친 길을 떠돌며 노예만도 못한 힘겨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그들을 과연 누가 함부로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과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25절 함께 읽겠습니다.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이스라엘의 거센 원성을 들은 지도자 모세는 주님께 해결책을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한 나무를 가리키며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독성이 사라지고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가리키다.’입니다. 흥미롭게도 가리키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라>는 ‘가르치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를 “한 나무를 가르치시니”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어떤 나무를 가리키고 가르치신 것은 단순히 쓴물을 고치시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백성이 불평하는, 눈 앞에 있는 원인을 고치시려는 뜻이 아닙니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라는 교훈입니다. 관련해서 이어지는 26절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26절 함께 읽겠습니다.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하나님은 율법을 지킨 백성에게 이집트 사람이 앓았던 질병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당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특히나 심각한 병으로 신음하고 있거나 그런 가족을 곁에 두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동시에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다시금 유념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막 광야로 나섰습니다. 수백년간 대대로 익숙하게 살아왔던 화려한 이집트 제국을 떠났습니다. 전혀 다른 황량한 땅을 떠돌며 지내야 합니다. 무척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마라를 지납니다. 쉴 새 없이 쓴물을 마십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씀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백성은 굳게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진정 치료하십니다. 몸과 마음의 가장 깊은 목마름을 말씀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광야 여정 전체를 아우르는 복음입니다.오늘도 우리는 광야를 향해 나아갑니다. 어떤 모래 바람이 덮칠지 모릅니다. 어떤 곤충의 독에 쏘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기에 누구나 다치고 베이고 쓴물을 들이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잠잠히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안에 담긴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품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말씀인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붙잡고 담대하게 걸음을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광야를 지나는 백성을 마라를 거쳐 엘림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로 목을 축이고 그늘에 쉬게 하시는 그 주님은 우리의 치료자 이시기 때문입니다.기도치료하시는 주님하루하루, 저마다의 광야 길을 지나는 자녀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마라의 쓴물에 괴로워하고 원망하는 저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스스로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 선언하시는 주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합니다.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지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치유를 누리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말씀이 몸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치유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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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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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4장 “구원을 보라”
2026년 2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4장 “구원을 보라” 찬송가 484, 486장노예들이 사라진 제국에는 황량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집트 궁궐 안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 땅을 벗어났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순간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대로 끝낼 수 없습니다. 위대한 제국이 노예들과 그들의 신에 의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파라오는 최정예 부대를 소집하였습니다. 특별하게 제작한 병거 육백대를 포함해 온 나라의 병거와 장교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마침 이스라엘 백성의 앞은 홍해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속임수로 제국을 기만했는 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압승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명예를 회복하고 파라오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이 상황을 이스라엘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요? 그들 역시 파라오의 판단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현실 인식입니다.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에는 당대 최신 무기들이 살기를 품고 맹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거칠게 요동하는 말 발굽 소리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을 쏟아냅니다. 대체 뭐 하러 우리를 구해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13~14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앞서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자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파라오가 마음을 바꾸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쫓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홍해가 갈라진 이적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28~29절 읽겠습니다.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거칠게 넘실거리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던 바다가 힘을 잃고 갈라졌습니다. 그 사이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넜습니다. 파라오가 그토록 자랑했던 군대는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승리를 자신하며 오만했던 그들이 오히려 물살에 파묻혀 사라졌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이 어떠한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는 방법은 원래 있던 길을 넓히는 게 아닙니다. 기대했던 탄탄대로로 이끄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절망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사망을 코 앞에 둔, 어둠 그 자체로 몰아 붙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너무나 무심하게 보입니다. 가혹하고 잔인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 스스로 철저한 고립 속에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깊고 깊은 절망에 휘감겨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죽음을 가르고 길을 내셨습니다. 악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할 참 승리와 희망의 명료한 상징을 보여주셨습니다.우리 역시 홍해 바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뒤에는 이집트 병거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모든 게 다 끝난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잠잠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바다를 가르십니다. 기도참되신 구원의 주 하나님오늘도 홍해 앞에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채 그저 두려워 떨며 눈물만 흘립니다. 그런 저희를 향한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히 주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다를 가르시는 권능의 오른팔을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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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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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3장 “먼 길을 나서며”
2026년 2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3장 “먼 길을 나서며” 찬송가 430, 433장출애굽 여정을 나선 이스라엘은 또 다른 민족적 과업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파라오와 이집트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새로운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향해 기대를 거는 수많은 백성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낙관 혹은 비관입니다. 이제 그들이 누릴 자유와 언젠가 다다를 가나안 땅의 풍요를 언급하며 그들의 가슴을 더욱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제 광야에서 헤쳐가야 할 난관을 경고하며 백성의 마음가짐을 강하게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영역을 언급합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모세는 가나안 땅에서 처음 얻은 짐승의 첫 새끼를 바치는 예식을 알려줍니다. 열 번째 재앙 때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재앙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거듭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바로 신앙 전수입니다. 자녀들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거듭 일깨워야 합니다. 이미 앞서 12장에서 유월절 규례를 정하며 분명히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자유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를 이어 함께 기억하는 교육입니다. 여기에 담긴 심오한 진리를 1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17 파라오가 백성을 내보내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땅을 거쳐 가는 길로 이끌지 않으셨다. 그 길이 가깝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전쟁에 말려들면 나온 것을 후회하여 이집트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하시고 지름길로 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에 휘말려 후회하며 이집트로 되돌아갈 것을 우려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백성이 흔들릴 겨를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심을 견고하게 세우면 되지 않으실까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굳센 용기로 사로잡으면 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지 않으시고 왜 그들의 연약함 그대로 내버려 두시며 긴 시간을 돌아가게 하셨을까요?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 본성에 개입하지 않고 긴 시간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당신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고 배반할 권한까지 주셨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고 우리가 미숙함과 두려움을 안고 이겨내며 인생 여정을 슬기롭게 지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이미 정답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이야기를 듣고 또 전하는 데 있습니다. 길을 나서기 전, 자녀들을 향한 신앙 전수를 거듭 강조한 이유입니다. 기억이 우리를 살립니다. 모든 사람은 연약하기에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힙니다. 길을 멀리 돌아가고 심지어 이집트에 다시 들어가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백성을 죄악에서 구하시려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명심할 때, 비록 흔들릴지언정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항상 마음 깊이 품어야 합니다. 복음 만이 우리에게 참된 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혼탁한 인생의 모래바람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선명히 기억하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생명의 길을 열고 보이시는 주 하나님끊임없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저희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기다리시는 놀라운 사랑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깊은 뜻을 마음에 품고 신뢰하며 하루하루 나아갑니다. 믿음과 구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또한 들려주는 복된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혼탁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인생의 기준으로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07~113, 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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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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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장 29~51절 “주님의 밤”
2026년 2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2장 29~51절 “주님의 밤”마침내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온 이집트를 향한, 최후의 결정적인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모든 장남의 생명을 빼앗으셨습니다. 가장 높은 권력을 지닌 파라오의 왕자부터 감옥에 갇힌 비천한 사람의 아들까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들의 첫 수컷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예고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집트 온 땅에 “큰 부르짖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호흡이 멈춘 아들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우는 소리가 집마다 울려 퍼졌습니다. 그 싸늘한 공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에 어두운 죽음이 가득 들어 찼습니다. 완연한 패배와 절망이 이집트를 덮쳤습니다. 그날 밤 결국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아홉 재앙에도 완고하게 지켰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얼른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생각에는 다소 의아할 수 있습니다. 장남을 잃은 게 몹시 슬픈 일은 맞지만 패배를 선언할 정도로, 나라에 직접적인 위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는 감히 상상 못할, 훨씬 더 깊은 충격과 공포입니다. 유교 문화와 조금 비슷하게 그 때 사람들에게 장남은 단지 ‘첫 번째 아들’이 아닙니다. ‘계승’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가축의 장남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했던 화려한 종교와 문명의 파산을 선언합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섬기는 주 하나님의 찬란한 승리가 드러났습니다. 32절에 보면 심지어 파라오가 모세를 향해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합니다. 완벽한 패배 선언 입니다. 파라오 뿐만 아닙니다. 모든 이집트 사람이 두려워 떨며 이스라엘에게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앞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금과 은을 안겨 주었습니다.마침내 이스라엘은 출애굽 여정을 떠납니다. 무려 430년에 걸친 노예 생활이 끝났습니다. 무거운 속박과 억압의 사슬이 끊어졌습니다. 성인 남자만 60만명이 되는 거대한 무리가 가나안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민족들도 동참했습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42절 함께 읽겠습니다.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42 그날에 '여호와께서 밤을 지새우며'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다. 이는 여호와의 밤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대로 깨어서 지켜야 할 밤이다.성경의 저자는 위대한 해방의 여정을 시작하는 감격적인 순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사실을 명확히 서술하였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영웅적인 지도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닙니다. 백성의 하나된 힘으로 성취한 결과도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께서 앞장서 이뤄내신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밤을 지새우며’ 행하신 구원입니다. 한 마디로 “야훼의 밤”, “주님의 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이 밤을 해마다 깨어 지켜야하는 이유입니다.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십자가와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영원한 죽음과 저주를 이겨낼 힘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몸소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성목요일, 고난의 밤을 거쳐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찬란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여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온갖 위기와 시련을 뚫고 가까이 오시어, 앞장서 나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대대로 기억하며 인생의 걸음을 주님께 맡기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능력의 주 하나님밤을 지새우며 이집트 땅에서 백성을 데리고 나오신 모습을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를 죄악에서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위대한 구원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감격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너져 내릴 이집트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깊고 깊은 밤을 지날 때, “주님의 밤”을 기억하며, 어둠을 헤치고 영광의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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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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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장 1~28절 “첫날을 기념하라”
2026년 2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2장 1~28절 “첫날을 기념하라” 찬송가 250, 251장출애굽기는 1장부터 시작해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위기에 처했던 모세가 이집트 공주에게 극적으로 구해졌습니다. 이집트 왕실 교육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친어머니 요게벳 품에서 자라 자기 민족 정체성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로 쫓겨나 비천한 목자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긴 했지만 오히려 거부를 당했습니다. 마침내 아홉가지 재앙이 연달아 몰아치며 거대한 제국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전개입니다. 출애굽기를 소재로한 영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이제 마지막 열 번째 재앙과 홍해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 이적 등 화려하고 신비로운 구원 사건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극적인 순간에 불쑥 출애굽기는 이야기의 흐름을 멈춥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장르인 ‘율법’을 제시합니다. 현란한 장면에 주의를 뺏기기 전에 꼭 해야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분명히 명심해야할 핵심을 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본문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하나님은 먼저 ‘유월절’을 제정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열 번째 재앙, 즉 장자의 죽음을 피하고 이집트를 떠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의 문 양쪽 기둥과 위쪽 가로대에 발라야합니다. 그렇게 하면 재앙이 그 피를 보고 지나갈 겁니다. 그렇게 ‘넘어 감’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날이 유대인 달력의 새해 첫 날입니다. 마침 다음 주에 설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1월 1일을 한 해의 첫 날로 여깁니다. 또한 음력 기준으로 첫 날을 설날로 기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그 날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이날로 시작하는 첫 달을 ‘아빕월’로 부릅니다. 이러한 달력을 통해 출애굽 사건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대림절로 교회력을 시작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어느 기준에 두는가가 너무나 중요하기 합니다. 당연히 현실의 달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에 충실한 게 마땅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의 시간을 신실하게 이끄심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유월절 규정을 그 한 날의 규칙으로만 그치지 않고 매년 기념해야할 율법으로 세우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6~27절 함께 읽겠습니다.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모세는 훗날 있을 상황을 가정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 딸이 유월절을 지키는 이유를 묻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그 때 자연스럽게 첫 번째 유월절날 있었던 구원 사건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라고 합니다. 이 역시 유월절을 새해 첫날로 지키는 이유와 같습니다. 영원히 반복하며 이어가야 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전하는게 자녀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에 담긴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복음만이 개인과 가족과 나라를 참으로 살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구원을 새롭게 마음에 품고 삶의 여러 재난을 딛고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구원의 주 하나님.유월절이 이스라엘 달력의 시작이듯이, 주님께서 저희를 죄악에서 구하신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되길 소망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인생 여정을 이어가는 근본을 이루길 구합니다. 날마다 삶의 온갖 재난에서 구하시는 주님의 손길 아래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복음 이야기를 감격으로 듣고 전하는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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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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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2026년 2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찬송가 217, 218장아홉 가지 재앙이 지나갔습니다. 이집트 온 땅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순히 생명과 재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제국의 정신을 떠받들고 있던 그들의 종교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예들이 섬기는 야훼께서 참 하나님이심이 드러났습니다. 이집트가 숭배했던,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이 결국 헛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이 모든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로 향합니다. 앞선 아홉은 기나긴 서론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11장은 그 절정을 앞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본격적인 재앙을 앞두고 파라오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파라오를 비롯해 이집트의 모든 종과 가축의 장남이 모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 온 이집트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파라오의 마음은 완악하여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본문은 이와 같은 엄중한 장면을 앞두고 뜬금없어 보이는, 의아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이스라엘이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줍니다. 바로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과금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출애굽 상황은 매우 긴박합니다. 빵 반죽이 부푸는 걸 기다릴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 와중에 보석을 요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이 필요해서일까요? 가나안으로 떠나는 여비가 부족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만나와 이스라엘로 먹이시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이집트의 화려한 금은보화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스라엘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보석을 받아가야 할까요? 그 이유를 신명기 23장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무거운 명령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수백년 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며 가혹한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분노가 차오르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에서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나고 곧 가나안으로 떠나야 하는, 실제 노예 생활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몸은 이집트 밖으로 벗어났을지라도 증오를 품고 있다면 여전히 그 마음은 미움에 사로잡힌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원한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에게 받은 보석의 의미가 그러합니다. 값진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노예로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와 굴욕감을 떨쳐내는 매우 적절한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들의 증오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보석을 받게 하셨습니다.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연약한 인간은 분노와 원망으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거듭 ‘용서’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미움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마치 원수에게서 사과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자기를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환하게 열린 미래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기도평화의 주 하나님열 번째 재앙을 앞둔 엄숙한 순간, 파라오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기 전 온 백성에게 하신 명령에 귀 기울입니다.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요구한 보석의 의미를 헤아려 봅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저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용서를 본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의 미움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이루시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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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