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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7장 “피에 있는 생명”
2026년 4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7장 “피에 있는 생명” 찬송가 250, 252장어제 읽은 레위기 16장은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대속죄일’을 기록합니다. 염소 두 마리 중 하나는 제사로 태우고 하나는 광야로 보냅니다. 이를 통해 백성은 죄를 용서하시고 멀리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확인합니다. 구원받은 자녀로서 올바른 삶을 점검하고 돌이키게 하는 은혜의 날입니다. 이어지는 17~22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삶의 규칙을 기록합니다. 이 여섯 장을 두고 ‘거룩 법전’이라고도 부릅니다. 따라서 17장은 거룩법전의 장엄한 서막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피’입니다. 성도의 실상 가운데 피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먼저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동물을 먹기 위해 도축하는 경우를 이야기 합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짐승을 회막 문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린 다음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정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들판에서 제멋대로 짐승을 잡아 수염소 귀신에게 제사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웠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엄중히 금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일상의 소비와 식사를 거룩하게 구별하여야 합니다. 맹목적인 탐욕이 아닌, 하나님이 명하신 절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지혜롭고 올바르게 음식물을 구입해야 합니다. 가급적 이 지역에서 생산하고 가공하지 않은 먹을거리를 드시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쁜 방식으로 만드는 음식을 거부하도록 주의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속죄, 즉 죄 용서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속죄는 단순히 죄를 덮어주는 것을 넘어섭니다. 죄로 말미암아 흘려야 할 피를 대신 치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 수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짐승의 피라는 통로를 통해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공급하셨습니다.이러한 놀라운 은혜는 자연스럽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이어집니다. 구약 제사로 흘린 제물의 피는 반복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매 번 흘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꾼 ‘단번의 영원한 수혈’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으로 죄로부터 참으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흘리신 위대한 십자가 사랑을 더욱 마음에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 피가 생명의 물결로 밀려와 우리를 죽음에서 참으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놀랍고 아름다운 은혜를 더욱 감사함으로 누리고 전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폭력의 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저희를 보혈의 은혜로 덮어주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일상의 식탁과 작은 소비까지 주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저희의 매일 식사가 하나님의 생명 질서를 높이는 또 하나의 신앙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저희 죄를 영원히 용서하신 위대한 사랑을 높여 찬양합니다. 그 사랑으로 구원받은 저희 삶이 주님의 거룩함을 향기로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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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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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장 “광야로 향하는 염소”
2026년 4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6장 “광야로 향하는 염소” 찬송가 270, 272장지금까지 레위기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1~7장은 5가지 대표적인 제사를 두 번에 걸쳐 자세히 소개합니다. 이어서 제사를 집례할 제사장의 위임 절차를 기록합니다. 그런 다음 11~15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을 깨끗하게 하는 규칙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괄한 거대한 속죄를 다룬 대속죄일에 대해 오늘 읽은 16장이 기록합니다. 세세한 내용을 다루고 해당 내용을 포함한 핵심 주제를 언급하는 구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그런 이유로 16장은 레위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은 1년 동안 쌓인 공동체의 모든 부정함을 씻어내는 날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다시 화목하게 되는 ‘회복의 날’이자 ‘가장 귀한 은혜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 ‘마음을 괴롭게 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이러한 대속죄일 예식의 중심에 있는 ‘두 마리 염소’를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0~22절 함께 읽겠습니다.20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대속죄일 예식에 왜 염소 두 마리가 필요했을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의 ‘대가’를 지불입니다. 제비 뽑힌 첫 번째 염소인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해 그 피가 제단에 뿌려집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Justice)’를 만족시키는 속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보여주는 엄중한 대가입니다.둘째는 ‘죄의 완전한 제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사셀(Azazel)’을 위한 염소의 사명입니다. ‘아사셀’은 히브리어로 ‘떠나보내는 염소’ 혹은 그 염소가 향하는 ‘황무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대가를 피로 씻으실 뿐만 아니라, 그 죄가 더 이상 공동체 안에 머물지 못하도록 영원히 ‘추방’하셨습니다. 광야 저 멀리 사라져가는 염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시야에서 염소가 완전히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며 깊은 영적 해방감을 누렸을 것입니다. 영혼 깊은 곳을 눌렸던 죄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청량함을 느꼈을 겁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 하며 자연스런 찬양이 흘러나왔을 겁니다.이 구약의 신비로운 그림자는 마침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사셀 염소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성문 밖, 골고다 언덕이라는 광야로 향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온 우주에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발견합니다.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임을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 더욱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명심할 사명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연약함을 품어주시길 바랍니다. 일일이 맞서고 따지고 이기려 들기보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용서의 손길을 건네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결단과 고백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한 없는 사랑의 주 하나님대속죄일 광야를 향해 나아간 아사셀 염소에게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저희를 죄의 심판으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한없는 은혜로 품으시는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 모든 은혜를 마음에 품고 저희 또한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본받아 사랑과 인내로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돌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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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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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5장 “참으로 깨끗하게”
2026년 4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5장 “참으로 깨끗하게” 찬송가 286, 288장레위기 14장은 악성 피부병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과 집 안에 생긴 곰팡이를 처리하는 율법을 기록합니다. 현대인에게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위생 문제였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상황을 진단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레위기 15장은 남녀 신체에서 체액이 흘러나오는 문제를 다룹니다.사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당혹 스럽습니다. 지나치게 세밀한 규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앞선 정결 규정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보존하는 거룩한 장치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은 우리 몸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을 계시의 영역으로 끌어 올립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성전만이 아니라 우리 몸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레위기 15장은 정교한 구조를 통해 질병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신학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8절 함께 읽겠습니다.8 유출병이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개역개정성경의 ‘유출병’을 최근 번역한 성경들은 ‘고름’이 흘러나온 상태로 이해합니다. 몸이 병들어 고름이라는 증상으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율법의 기준으로 부정한 사람이 정한 사람에게 침을 뱉는 다면, 원래 정결했던 사람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가 유지되었습니다.여기서 ‘침을 뱉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어쩌다 한 번 한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반복적인 동작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무례함이 아니라 호흡기 질환이나 전염성 병균을 가진 자가 반복적으로 분비물을 내뱉는 ‘병리적 상황’을 묘사합니다. 오늘날처럼 의학 기술과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눈에는 원시적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절차를 세우셨습니다.오늘날 이렇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침을 뱉어서는 안됩니다. 문자 그대로 입에서 나오는 ‘침’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안기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그 원인이 되는 근본적인 질병이 자리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이어서 31절 읽겠습니다. 31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15장에 기록된 모든 규정의 목적을 정리합니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성소를 거룩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성경은 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영혼은 소중하고 몸은 천하게 보는 것은 그리스 철학이지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의 몸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소와 연결됩니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게 곧 주님을 경외하는 바른 예배입니다. 따라서 내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오늘 하루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단지 건강을 잘 챙기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살피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더러움이 아닌 맑고 아름다운 은혜와 평화를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저희 몸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살피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려 봅니다. 저희 몸이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 사람들에게 악독한 말과 행동이 아닌 사랑과 섬김의 향기를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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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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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4장 33~57절 “들판에 놓인 새”
2026년 4월 1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4장 33~57절 “들판에 놓인 새” 찬송가 410, 412장어제 읽은 레위기 14장 앞부분은 악성피부병으로 부정하다고 진단받은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알려줍니다. 격리 기간을 마치면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나갑니다.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우슬초를 사용해 예식을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커다란 백향목과 작은 우슬초의 대조를 통해 온 생명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이어지는 레위기 14장 후반부는 집에 생긴 색점에 대한 율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혹스런 표현을 발견합니다. 34~35절 함께 읽겠습니다.34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에 너희가 이를 때에 너희 기업의 땅에서 어떤 집에 나병 색점을 발생하게 하거든 35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여 알리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여기에 보면 백성의 집에 부정함을 하나님이 직접 발생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색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재앙’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언뜻 보기에 하나님이 우리 삶에 재앙을 내려 고통을 주시는 분처럼 느끼게 합니다. 때때로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그런 오해와 원망이 생기곤 합니다.여기서, 히브리어의 독특한 표현 방식인 ‘허용적 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쁜 뜻으로 재앙을 만들어 백성에게 붓는 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부패와 숨겨진 부정함이 마침내 겉으로 드러나도록 '허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집 벽에 색점을 나타나게 하신 게 아닙니다. 그 집의 정결함을 점검하고 치료하시려 경고하시는 은혜의 신호입니다. 때때로 우리 가정 안에도 곰팡이처럼, 아프고 힘든 일이 벌어지고는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 가정을 파괴하려는 분이 아닙니다. 미처 몰랐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썩어가는 죄의 흔적을 드러내 알려 주십니다. 더 큰 재난에서 구하시려 경고를 보내 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겸손히 가정을 살펴야 합니다.집에 더러움 색점을 발견할 때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36절 함께 읽겠습니다.36 제사장은 그 색점을 살펴보러 가기 전에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부정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그 집을 비우도록 명령한 후에 들어가서 그 집을 볼지니색점이 나온 집에 제사장이 진단하기 전에 집 안에 있는 가구와 물건을 모두 밖으로 내 놓아야 합니다. 집 안에 있는 부정함이 퍼지지 않게 하는 조치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색점’은 현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곰팡이 같은 균의 번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종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이러한 균들은 햇볕이 없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순식간에 번져 주변을 더럽힙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속 작은 어둠들, 미움과 거짓과 교만을 방치하면 순식간에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정과 이웃을 병들게 합니다. 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53절에서 확인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53 그 살아 있는 새는 성 밖 들에 놓아 주고 그 집을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러면 정결하리라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희생되고 나머지 한 마리를 들에서 놓아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모습을 본 집 주인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푸른 하늘 속에 날개를 뻗어 자유롭게 나는 날갯짓을 보며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까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참된 생명과 해방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얻은 은혜가 이와 같습니다. 부정한 집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모두 마친 후 날아가는 새에게서 자신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 놀라운 복음을 마음에 품고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거룩하신 하나님.일상이 가장 깊이 묻어나는 집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어둡고 습한 한 구속에서 자라나는 곰팡이처럼 저희 삶을 좀 먹는 죄가 있다면 성령의 빛으로 밝히 드러내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거짓과 허영을 비우고 복음으로 마음을 채우길 구합니다. 하늘 위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처럼 저희에게 주신 죄 사함의 능력을 기쁨으로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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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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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4장 1~32절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2026년 4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4장 1~32절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찬송가 258, 259장어제 읽은 레위기 13장은 악성 피부병을 진단하고 부정함을 선포하여 환자를 격리하는 절차를 알려줍니다. 환자 본인이나 제사장이나 엄숙하고 무거운 시간입니다. 어찌 되었든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는 것은 그 시대로서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오늘 본문인 14장은 그 고립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오는 회복의 과정을 보여줍니다.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악성 피부병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영에서 추방되는 ‘사회적, 종교적 단절’이었습니다. 동시에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복잡한 정결 절차를 마련하신 목적은 단순히 위생 때문만이 아닙니다. 부정한 상태에 머물던 영혼을 사회적, 영적으로 완벽하게 재통합시키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의지입니다. 이러한 회복은 환자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찾아오심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4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정결 예식의 첫 단계는 제사장이 환자가 머무는 '진영 밖'으로 나가는 파격적인 행보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정결 예식에는 새 두 마리가 사용됩니다. 여기서 새들을 가리켜 “살아 있다.”라는 말은 단지 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새라는 의미입니다. 둘 중 한 마리는 죽임당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들판에 놓아줍니다. 이는 부정함을 멀리 날려 보내어 다시는 진영 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죽음의 추방'이자, 환자에게 주는 '생명의 선언'입니다.그리고 새 뿐만이 아니라 ‘백향목’과 ‘우슬초’를 사용하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두 식물의 대조가 인상적입니다. 우선 백향목은 무척 커다란 나무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높고 거대하며 썩지 않는 위엄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우슬초는 담벼락에서 자라는 가장 작고 비천한 식물입니다. 즉, 가장 고귀한 나무부터 가장 낮은 풀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창조 세계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모든 생명체를 구별 없이 돌보시고 죄에서 씻어주십니다.이러한 정결 의식 가운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녹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21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본문에서 반복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입니다. 이미 구약 제사를 공부할 때 여러 차례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비싼 제물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각각의 형편과 상황을 충분히 존중하십니다. 그런 여건 속에서 자기 힘이 미치는 대로 드리는 제물을 기쁘게 받으십니다.이러한 구약의 정결 예식은 장차 오실 참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 위해 친히 성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무너지고 더럽힌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 자로서 우리의 귀와 손과 발을 주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또한 "힘이 미치는 대로" 이웃을 배려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은혜로 다가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한없는 사랑의 주 하나님.죄로 말미암아 은혜와 멀어져 죽어갈 수밖에 없던 저희를 먼저 찾아와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모든 생명을 아우르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 주위의 연약한 이웃에게 항상 배려와 섬김으로 다가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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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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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3장 31~59절 “다 드러나고 태운 뒤에야”
2026년 4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3장 31~59절 “다 드러나고 태운 뒤에야” 찬송가 254, 255장어제 읽은 레위기 13장 앞부분에서 피부병에 관한 율법의 진단을 살펴 보았습니다. 레위기에서 “나병”으로 옮긴 말은 특정 피부 질환을 가리키기 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파악하기 힘들었던 “악성 피부병” 전체로 이해하는 게 맞습니다. 의료 여건과 지식이 부족했던 그 시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환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신중하게 살피고 인내하며 배려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13장 후반부에도 이러한 태도가 일관되게 나옵니다. 31~33절 함께 읽겠습니다.31 만일 제사장이 보기에 그 옴의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없으면 제사장은 그 옴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32 이레 만에 제사장은 그 환부를 진찰할지니 그 옴이 퍼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누르스름한 털이 없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면 33 그는 모발을 밀되 환부는 밀지 말 것이요 제사장은 옴 환자를 또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여기서 우리는 제사장의 기다림을 발견합니다. 피부에 옴이 생겼을 경우 피부보다 우묵한지, 검은 털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그럴 경우 7일 동안 격리시켰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기다림’은 한 영혼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상징합니다. 특히 머리와 수염에 나타나는 색점은 유대 전통에서는 ‘악한 말’, 즉 험담과 거짓말의 죄와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생각(머리)이 교만해지고 그것이 입술(수염)을 통해 악한 말로 흘러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경고등을 켜시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과학적인 시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여기에 담긴 의미는 소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등장합니다. 13절에 보면 피부병이 온몸에 다 퍼져 하얗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정결하다고 선언합니다. 얼핏 이상하게 들립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완전히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겸손히 인정할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피부 속에 깊이 감춘 채 짓무르고 있는 작은 색점이 더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당히 경건한 척 숨는 것보다, 주님 앞에 연약함을 완전히 내어놓고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정직함을 더 기쁘게 보십니다.하나님의 거룩한 시선은 우리의 몸을 넘어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주변 환경으로까지 확장됩니다. 52절 함께 읽겠습니다.52 그는 그 색점 있는 의복이나 털이나 베의 날이나 씨나 모든 가죽으로 만든 것을 불사를지니 이는 악성 나병인즉 그것을 불사를지니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피부만이 아니라 옷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색점이 있는 옷을 태우라고 합니다. 아마도 곰팡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죽이나 베는 생계와 직결된 귀한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악성 나병’으로 판명되면 그것을 과감히 불태워야 했습니다. 이는 죄의 전염성을 차단하기 위한 영적 결단입니다.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끼는 습관이나 유익한 관계라 할지라도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태움’은 파괴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남은 자’를 뜻하는 단어 <샤아르>에는 ‘새로운 시작과 소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태워버리는 아픔 뒤에는, 비로소 건강하게 다시 돋아날 ‘거룩한 남은 자’의 생명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지 옷 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불태움’이 그러합니다. 새로움 생명을 여는 과정입니다. 이 모든 레위기 정결법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의 시대에는 제사장이 환자를 멀리서 진단하고 격리했을 뿐이지만, 예수님은 직접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어 그를 고치셨습니다. 부정을 타서 함께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이 환자의 부정함을 덮어버리고 생명으로 변화 시키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생명력을 충만히 깨닫고 누리며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사랑과 거룩의 주 하나님.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의 시선 앞에 이 아침 우리가 겸손히 섭니다. 저희 마음의 교만과 악한 입술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씻어 주시옵소서. 죄의 습관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고 오직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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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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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3장 1~30절 “피부를 살피다”
2026년 4월 1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3장 1~30절 “피부를 살피다” 찬송가 365, 366장어제 함께 읽은 12장은 산모에 대한 규정을 기록합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치열한 삶 가운데 건네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을 발견합니다. 이어지는 레위기 13장은 피부병에 관한 율법입니다. 중동 지방은 물이 부족한데다 오늘날과 달리 위생 여건이 좋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병은 흔한 질환이었습니다. 동시에 레위기는 피부 질환을 공동체의 거룩함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모여 잇는 진영 안에 발생한 작은 부정함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위협하는 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부병에 관한 레위기 율법을 통해 오늘 우리의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우선 본문에서 언급하는 ‘나병’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레위기에 언급되는 ‘나병’을 흔히 오늘날 ‘한센씨 병’으로 여깁니다. 매우 심각한 오해입니다. 현대 의학으로 진단할 수 있는 특정 질환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당시 의료 상식으로 다 파악할 수 없었던, 악성 피부병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러한 피부 질환의 ‘전염성’보다 ‘의식적 부정함’에 집중합니다. 즉, 피부에 나타난 경고등으로 여겼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삶이 더욱 정결하도록 주의하길 바랐습니다.이러한 피부 질환과 관련해 레위기 13장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환자를 고치는 치료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상태를 '분별'하고 '선포'하는 존재입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제사장은 환자의 병든 피부를 신중하게 살핍니다. "환부가 피부보다 깊은지", "그곳의 털이 희거나 누렇게 변했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흰 털은 생명력의 상실하고 일찍 늙는 것을 의미하는 초자연적 징후로 여겼습니다. 제사장은 이러한 세밀한 진단을 통해 단순히 육체를 보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가해진 영적 상태를 진단합니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제사장의 '인내'입니다. 4~6절을 보면 ‘이레’, 즉 ‘칠일’이라는 기간을 계속 반복해 강조합니다. 진단이 불분명할 때 제사장은 즉시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7일씩 두 번에 걸쳐 격리하며 관찰합니다. 고대 근동 맥락에서 '7'은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의 진단은 성급한 정죄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 영혼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하여 회복하시려는 사랑의 배려입니다. 제사장은 공동체를 보호함과 동시에, 병든 자가 다시 거룩함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자비로운 인도자입니다.이러한 말씀을 통해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세밀함입니다. 제사장은 피부에 나타난 질환을 유심히 살피며 공동체의 상태를 진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사소해 보이는 것들 가운데 자신과 공동체의 병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은 없는 지 주의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차분한 배려입니다. 제사장은 누군가를 병들었다고 판단하는 것을 신중히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가리켜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이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자녀들을 세심하게 보살피시고, 어떤 허물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은혜를 마음에 품고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겉모습뿐만 아니라 영혼의 깊은 곳까지 세밀하게 진단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자신의 부정함을 정직하게 시인하게 하옵소서. 작은 죄의 불씨가 공동체를 삼키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인내로 돌보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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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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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2장 “세심한 회복의 손길”
2026년 4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2장 “세심한 회복의 손길” 찬송가 406, 407장레위기 율법을 읽다 보면 현대인의 상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불편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오늘 읽은 레위기 12장이 그러합니다. 출산은 너무나 복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많은 축하를 받는 일입니다. 특히나 해산의 수고를 한 산모를 축하하며 아낌없는 사랑과 격려를 보냅니다. 하지만 레위기는 그런 산모를 향해 “부정하다”라고 선언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출산’과 ‘부정함’은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왜 산모를 향해 부정하다고 하며 죄인처럼 격리 시키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사라는 종교 행위와 성막이라는 종교 시설에만 계시지 않다는 걸 확인합니다. 주님은 산모가 산고를 이겨내고 필사적으로 생명을 출산하는 치열한 삶의 순간에도 찾아 오십니다. 관련해서 ‘부정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정함”은 결코 도덕적인 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레위기에서 부정함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제사 용어’입니다. 그런데 왜 출산 뒤에 부정함이 선포될까요? 레위기 17장 11절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라고 가르칩니다. 출산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리는 것을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명력의 유출, 즉 ‘상징적인 죽음’으로 이해했습니다.산모는 생명을 낳기 위해 사망의 문턱까지 다녀왔습니다. 특히나 옛날 중동에는 지금과 같은 산부인과 지식과 기술이 없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자녀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커다란 위험을 이겨내고 출산 했습니다. 그 순간 산모의 몸은 일시적으로 생명력이 빠져나간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이때 하나님은 산모를 ‘부정하다’고 밀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를 거룩한 둥지 안에 보호하십니다. 아들을 낳으면 칠일 딸을 낳으면 십사일 간 아무도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 기간동안 산모는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푹 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친밀함을 쌓으며 몸조리를 합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하나님은 아들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에는 현대 의학이 밝힌 놀라운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상처가 났을 때 피를 응고하는 효소가 태어난 지 8일 째 되는 날 제일 많이 몸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피가 가장 잘 멈추는 그 하루를 정확하게 지목했습니다. 바로 그날에 언약의 징표를 몸에 새기게 하셨습니다.이처럼 레위기 12장은 옛날 사회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인 산모 보호 규정입니다. 동시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세밀하게 돌보시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 세심한 손길로 가장 깊은 아픔과 수고를 끌어안아 주십니다. 확실한 언약 가운데 자녀로 불러주십니다. 오늘 하루 저마다 수고하며 힘겨워 하는 문제를 향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걸음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참된 쉼을 주시고 흘린 피를 닦아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사랑을 주위에 진심으로 나누고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생명의 근원이신 주 하나님산모의 고통과 연약함을 살피시고, 긴 안식과 정결의 기간을 허락하신 세밀한 사랑을 높여 찬양합니다. 지쳐 쓰러질 때 회복시키고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게 하소서. 가장 정확하고 세심한 방법으로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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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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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장 “우리도 거룩하도록”
2026년 4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1장 “우리도 거룩하도록” 찬송가 423, 425장레위기 10장까지 제사와 제사장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 읽은 11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에서 지켜야 할 여러 율법을 기록합니다. 그중에서도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음식법을 11장이 기록합니다. 사실 이러한 말씀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삶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규정들이 대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은 단순한 식습관에 대한 내용이 아니란 걸 유념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가장 평범한 일상의 장소인 식탁에서 어떻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침입니다. 즉, 문자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여기에 담긴 핵심 의미를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론인 44~45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여기서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규례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다가 왔습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깨끗한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직 노예였고,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들을 전적인 은혜로 먼저 구원해 내셨습니다.지난 번 수요성경공부시간에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순서를 명심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율법을 받았습니다. 레위기의 율법은 우리를 얽매는 족쇄가 아닙니다. 당신 뜻대로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 보내는 사랑의 요청입니다그러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종교 규칙들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금욕주의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거룩이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새 언약 백성이 된 우리들은 이 레위기 11장의 규례를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더 이상 돼지고기나 오징어를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참된 의미를 완성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진정한 부정함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닙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마음에서 비롯되어 입으로 나오는 시기와 미움과 불평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레위기 11장 말씀을 통해 명심할 것은, 문자 그대로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마는지 여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식탁을 넘어 일상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다시 말씀드리지만 굉장한 도덕주의나 결벽증에 가까운 금욕 생활을 뜻하지 않습니다. 때로 실수하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에 중심에 연약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맞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 다운 정결하고 진솔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레위기 11장에 기록된 음식 규정의 의미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일상이 펼쳐지는 식탁을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습니다.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구원받은 백성으로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게 하여주시옵소서. 진정한 거룩을 이루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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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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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0장 “다른 불”
2026년 4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10장 “다른 불” 찬송가 320, 321장어제 읽은 레위기 9장은 레위기를 넘어 구약성경, 더 나아가 인류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장면입니다. 제사 제도를 바르게 세우고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러자 주님 앞에서 '축복의 불'이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태웠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며 환호하며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생히 만난 경험을 기록합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장면입니다.하지만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오늘 읽은 레위기 10장은 갑작스러운 죽음과 심판을 보여줍니다. 본문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아론의 아들, 즉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가 지은 치명적인 죄는 “다른 불”을 주님께 드린 행동입니다. 여기서 “다른 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자들은 이 불이 성막의 번제단이 아니라, 가정집 부엌이나 일반 화로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것이 왜 죽음에 이를 죄일까요? 그들은 '거룩한 공간'에 '세속적인 요소'를 무단으로 침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들의 '편의'를 앞세웠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하나님의 주권을 훼손하였습니다.오늘날 우리에게도 묵직한 경고를 줍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입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기준으로 예배를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샌가 예배가 변질된 경우를 교회 역사에서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주위에서 종종 발견하고는 합니다. 따라서 다른 불이 아닌, 성경과 전통에 근거한 균형있고 건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집중하고 주의해야 합니다.아론 그리고 남겨진 그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두고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슬픔 속에서도 제사장의 직무를 다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율법대로 제사장으로서 소제와 화목제물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속죄제 염소가 남아 있지 않고 전부 불태워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세가 발견하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아론은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합니다. 19절을 새한글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19 아론이 모세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오늘 아이들이 죄없애는제물(속죄제물)과 다태우는제물(번제물)을 자신들을 위해 여호와 앞에 바치려고 했지. 그러다가 이런 일들이 나에게 닥쳤다네. 이런 판국에 죄없애는제물(속죄제물)을 오늘 내가 먹었더라면, 여호와 눈에 들었겠는가?” 모세의 책망에 대해 아론은 속죄제물을 먹지 않고 불사른 까닭을 말합니다. 두 아들이 죽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날에, 거룩한 제물을 의무적으로 먹는 것이 과연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마음 가짐이 스스로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수행해야 할 업무보다 내면의 태도를 더욱 중요시하는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 1~2절과 16~20절의 대조를 발견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다른 불'을 드렸습니다. 교만한 불순종이었습니다. 반면, 아론과 남은 아들들은 자신들이 먹을 수 있음에도 제물을 남김없이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겸손한 행동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것보다, 예배자의 진실한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보신다는 진리를 확인합니다..우리 삶과 예배 역시 그러하길 소망합니다. 사실 오늘 읽은 말씀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으시고, 너무나 매정하게 불로 심판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관련해 여러 논쟁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기회 있을 때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다만 성경의 문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언짢아 하시고, 기뻐하시는 지 그 본질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핵심은 우리 내면의 바른 태도입니다. 내 이기심도, 종교적 강압도 아닌 참된 기쁨과 겸손으로 주님께 예배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나답과 아비후처럼 '다른 불'을 드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살피며 경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상하고 애통하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은혜로 품어주시는 주님의 긍휼을 의지합니다. 기계적인 형식과 의식에 얽매이기보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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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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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9장 “기뻐하며 엎드리다”
2026년 4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9장 “기뻐하며 엎드리다” 찬송가 64, 67장지금까지 함께 읽은 레위기 구조를 간략히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 7장까지 두 번 반복해서 제사 제도에 대해 설명합니다. 제물의 피를 통해 백성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레위기 8장은 이러한 제사를 집례할 제사장을 백성 앞에 세우는 예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 다음인, 오늘 읽은 9장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이 집례한 첫 제사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제사’의 관점으로 볼 때 레위기에서 ‘절정’에 이르는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본문 1절은 "제 팔 일에"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단순하게 이해하면 제사장을 세우는 기간인 7일이 지나고, 다음날인 8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성막 건립과 제사장 위임이라는 준비를 완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 즉 '새로운 창조'를 여는 의미심장한 날이라는 걸 알려줍니다.이날 모세는 아론에게 제사장으로서 맡은바 소명을 제사를 드리며 시작하라고 명령 하였습니니다. 그러자 아론은 먼저 자기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제단에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해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를 규례에 따라 차례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러한 제사들을 통해 온 이스라엘의 죄를 닦아내고 주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누리도록 하였습니다.이러한 모든 절차를 마친 대제사장 아론은 백성을 향해 손을 들어 축복을 선포합니다. 22절 함께 읽겠습니다.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여기서 아론이 ‘언제’ 축복했는지를 거듭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신과 백성을 위한 모든 제사를 마친 다음 손을 들었습니다. 즉, 철저한 속죄가 완료되어야만 진정한 축복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임할 수 없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충만한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를 통해 이 위대한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그 은혜 가운데 이웃에게 축복의 손을 건네는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시길 바랍니다.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성을 축복할 때, 주님의 영광이 눈부시게 나타났습니다. 24절 함께 읽겠습니다.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불이 주님 앞에서 내려와 제단 위의 모든 제물과 기름을 태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은 소리지르며 엎드렸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기뻐 외치며 엎드렸다.”라고 옮겼습니다. 무섭고 놀라서 외치는 괴성이 아니라 기쁨의 환호입니다. 그러면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래야 합니다. 의무와 억압이 아닌 자연스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감정에 취하는게 아니라 만유의 하나님을 겸손히 높여야 합니다.오늘 하루도 이웃에게는 죄 용서의 복음으로 다가가고 하나님께는 기쁨으로 드높이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기쁨으로 경배 받기 합당하신 주 하나님,자기 힘으로 거룩하신 주님께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시어 죄인을 위해 영원한 용서를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론의 첫 제사에 주님의 영광이 불로 임하셨듯이 저희 삶의 예배 가운데에도 찬란한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날마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쁨으로 경배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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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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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8장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2026년 4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8장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찬송가 252, 254장그동안 레위기는 제사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오늘 읽은 8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리자인 제사장을 세우시는 엄중하고도 신비로운 현장으로 이끌어 갑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를 임명하는 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막과, 죄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기 위해 7일이라는 시간을 요구하셨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의 맥락에서 '7'은 완전과 종결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인간의 사적인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공적 대리자로 재탄생하는 시간입니다. 거룩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소의 향기로운 냄새, 몸에 닿는 차가운 물, 그리고 끈적한 피의 감각을 통해 신체에 실질적으로 새겨지는 변화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제사장 위임식에서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의복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 묘사된 제사장의 예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성소에 들어갈 장소적 자격'을 부여하는 장치입니다. 제사장은 이 옷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거룩한 구역에 진입해도 죽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둘째는 관유, 즉 기름입니다. 관유는 제사장의 신분을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차별성을 발견합니다.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에게는 기름을 '뿌렸지만', 아론의 머리에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아론은 이 '폭포수 같은 부음'을 통해 성막의 기구들과 동일하게 지극히 거룩한 상태로 격상되었습니다. 관유에 섞인 몰약과 계피의 강렬한 향기는 아론의 온몸에 배어들어,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하나님의 성품과 임재의 향취를 드러내게 했습니다.셋째는 ‘위임식 숫양’입니다. 앞선 두 단계, 즉 옷과 기름이 제사장을 '준비'시키고 '성별'했다면, 숫양의 제사는 제사장이 비로소 자기 역할을 수행하게 합니다. 숫양 제사의 핵심 목적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성물을 먹을 자격'을 얻게 하는 데 있습니다. 즉, 제단과 식탁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직무의 시작이 바로 이 숫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이 과정의 정점은 숫양의 피를 몸에 바르는 의식입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3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위임식'을 뜻하는 히브리어 '밀루임'은 '손을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손이 이제 자신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직무로 가득 찼음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숫양의 피를 아론과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발랐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이런 표식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도장이었습니다. 즉, 제사장의 몸에 피로 새겨진 이 표식은 "하나님의 서명"입니다. 제사장은 이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권 아래 움직이는 '제단의 확장판'이자 '살아있는 제단 뿔'이 되었습니다.이제 제사장 위임식의 가장 중요한 절정은 숫양을 먹는 행위입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31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령하시기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당시 이스라엘 주변 우상 종교에서는 생명 없는 신상의 입에 음식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성을 주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죽은 목석이 아니라, 당신의 대리자인 '살아있는 인간'의 입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제사장을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여 거짓 우상이 흉내낼 수 없는, 살아있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와 같은 제사장 관련 규정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오늘날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다스림을 드러내는 존재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흘리신 피로써 주님의 소유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온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소명을 오늘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생명의 주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론을 구별하여 기름 부으시고 그의 온몸에 주님의 소유권을 새기셨듯, 저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쳐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주님의 서명이 담긴 거룩한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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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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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7장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2026년 4월 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7장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찬송가 251, 252장어제 잠깐 말씀 드린대로 레위기는 두 차례에 걸쳐 제사제도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제사를 참여하는 백성을 위한 기본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6장부터 나오는 두 번째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중에서도 화목제물에 대해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매우 구체적인 명령을 덧붙이셨습니다. 23~24절 함께 읽겠습니다.2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24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다른 데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는 말지니라화목제를 드릴 때, 제물의 '기름'을 먹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 명령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당시 경제적 현실이 절묘하게 교차합니다. 옛날 중동 사회에서 기름은 짐승의 부위 중 가장 풍요롭고 영양가 있는 ‘최고의 부분’을 상징했습니다. 이처럼 제사 드릴 때,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명령은 우리 삶의 모든 풍요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도우시고 베푸신 결과입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게 잊어버리고 착각하는 진리입니다. 제사를 드리며 기름을 먹지 말고 드리라는 명령에는 이와 같은 중요한 삶의 원칙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부분은 주님께 내어 드리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이어서 26~27절 읽겠습니다.26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27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하나님은 기름에 이어 '피'에 대해 더욱 엄격한 금지명령을 내리십니다. 어떤 피든지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끊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을 넘어섭니다. 언약 관계의 완전한 상실과 가문의 단절을 의미하는 구약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 중 하나입니다.왜 이토록 엄중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사람이 피를 취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임의로 지배하려는 탐욕이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침범하는 교만입니다. 세상의 탐욕은 자기 유익을 위해 생명을 소모하고 이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그 분명한 뜻을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으로 뚜렷하게 보여 주셨습니다.이와 같은 엄격한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마침 지난 부활 주일에 함께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이기 위해 피를 마시는 것이 '엄중히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새 언약의 잔'입니다. 구약의 엄숙한 금지명령이 신약의 '성찬'이라는 기쁘고 영광스러운 축제로 승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보혈의 무게를 아는 성도는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을 대할 때 결코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보혈에 빚진 자로서 겸손하게 살아갑니다.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항상 엄숙히 지켜야 할 명령을 본문에서 확인하였습니다. 바로 기름과 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오늘 하루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을 존중하는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가장 귀한 '기름'과 '피'가 오직 주의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풍요가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삶의 가장 빛나고 소중한 부분을 주님께 기꺼이 내어드리는 헌신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또한, 생명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새 언약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며, 보혈에 빚진 자로서 겸손하고 신실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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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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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6장 “불이 꺼지지 않도록”
2026년 4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6장 “불이 꺼지지 않도록” 찬송가 183, 184장어제 읽은 레위기 5장 후반부에서는 속건제 규정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성물을 더럽힌 죄에 대해 소개합니다. 이어지는 레위기 6장 앞부분은 사회적 범죄를 다룹니다. 위탁물 횡령, 착취, 거짓 맹세 등 이웃의 재산을 침해하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나열합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범죄입니다.이러한 사회적 범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본래 하나님의 성물을 잘못 건드렸을 때만 사용하는 전문적인 제의 용어입니다. 그런데 왜 이웃 간에 벌어진 갈등을 두고도 이런 신앙 언어를 사용 했을까요? 3, 5절 함께 읽겠습니다.3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5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두 절에서 ‘거짓 맹세’를 주목해야 합니다. 범죄자가 자기 죄를 덮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으로 맹세하는 순간,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웃을 상하게 하고 주님을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위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거짓을 저지를 때,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께서 더 이상 머무실 수 없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이렇게 6장 7절까지 레위기는 5가지 주요 제사를 가르칩니다. 그런 다음 6장 8절부터 7장까지 다시 한번 제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제사장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엄중하게 반복하는 명령이 있습니다. 바로 “제단 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임무입니다. 12~13절 함께 읽겠습니다.12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관련해서 레위기 9장 24절 읽어 드리겠습니다.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제단 위에 있는 불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피운 불이 아닙니다. 영광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나온 거룩한 불입니다. 이 불은 고대 중동의 역사와 문화의 맥락에 따르면 하나님과 공동체 사이의 ‘친교’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즉, 제단의 불은 주님이신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환대의 빛’입니다.이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명령은 본문에서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수동적 은혜’이지만, 그 불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능동적 책임’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 새로운 나무를 공급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제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불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기도의 나무를 넣고 그 불꽃을 가꾸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실함에 달려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 은혜를 ‘유지’하는 책임입니다.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 받은 우리의 고귀한 소명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사명은 앞서 살펴본 속건제 규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람들과 관계에 연결됩니다. 즉, 은혜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만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한 정직으로 더욱 건강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섬김을 통해 성령의 불을 날마다 지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주님의 백성에게 신앙과 삶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레위기 제사법을 통해 거듭 확인합니다. 이웃을 향한 정직이 곧 하나님을 높이는 거룩한 예배임을 깨닫습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성령의 불을 꺼뜨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진실한 사랑에 안기고,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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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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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5장 “배려와 회복의 제사”
2026년 4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레위기 5장 “배려와 회복의 제사” 찬송가 290, 292장고난주간이 끝나고 다시 새벽기도회로 모인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여러 제사 규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합니다. 오늘날 우리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그 문자 사이로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녹아 있습니다. 먼저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드릴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을 위해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양이나 염소는커녕 비둘기조차 바칠 수 없는 극빈층에게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속죄제물로 받아주십니다. ‘십분의 일 에바’는 약 2리터 정도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치 식량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먹는 소박한 양식만으로도 용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과도한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제물의 값어치로 평가하고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난이나 형편이 하나님께 받는 용서의 ‘문턱’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얼마나 비싼지가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오는 백성의 떨리는 중심과 믿음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주님은 가루 제물에 비싼 기름이나 유향을 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비용을 최소화 해 가난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시는 세심한 배려입니다. 동시에, 죄를 슬퍼하며 자복하는 속죄제 본연의 의미에 집중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본받아,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다음으로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16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여기에는 속건제 핵심인 ‘배상’ 원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범했거나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해야 할 보상입니다. 단순히 마음으로만 미안해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라는 종교 행위 뒤에 숨지도 말아야 합니다. 피해를 입힌 성물 혹은 이웃 재산의 원래 가치에 ‘5분의 1’ 더해 갚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통범칙금처럼, 잘못을 응징하는 벌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사이에 깨진 관계를 실제로 복구하는 실천입니다.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군가의 잘못으로 입은 손해를 보상합니다. 둘째로, 그렇게 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회복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배상을 통해 가해자가 죄책감을 덜고 공동체로 복귀하도록 기대합니다. 우리 죄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회복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에 담긴 회복과 치유의 핵심 원리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종교 의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주의하게 끼친 손해나 상처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의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아름답게 회복됩니다.이렇게 오늘 우리는 속죄제와 속건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드린 말씀대로 하나님은 제사법 안에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해 백성들이 실천해야 할 내용을 담으셨습니다. 불필요하고 성가신 규칙 같아 보이지만 이 안에는 자녀의 삶을 배려하시고 회복시키는 세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을 속죄 제물로 내어 드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오늘 하루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가난한 자의 가루 한 움큼도 귀히 여기시는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품어 안으시는 세밀한 은혜에 찬양 드립니다. 저희가 지은 허물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단순히 용서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책임 있게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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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