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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장 1~25절 “함께 하심을 믿으며”
2026년 5월 2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4장 1~25절 “함께 하심을 믿으며” 찬송가 487, 488장앞서 읽은 민수기 13장은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낸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들은 그 땅이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풍요로운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가져온 온갖 과일들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곳에 사는 거인 아낙 자손들에 의해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갈렙이 꿋꿋하게 나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외쳤지만 백성의 분위기를 돌리기에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이어지는 14장은 백성의 격한 반응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이스라엘은 밤새 울부짖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차라리 이집트나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나았겠다고 소리 높였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급기야 하나님을 향해서도 왜 여기까지 데려왔냐며 원성을 높였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겪는 참혹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웁니다. 모세가 아닌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합니다.그들을 사로잡은 공포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완전히 무시하는 치명적인 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특히나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철저히 부정하는 선언입니다. 스스로 종의 멍에를 다시 메겠다는 지극히 어리석은 태도입니다.이 때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 앞으로 나아갑니다. 옷을 찢고 외칩니다. 8~9절 함께 읽겠습니다.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백성의 불신앙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위대한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아낙 자손의 거대함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 하나님께서 누구와 함께 하시느냐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떤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가리켜 ‘우리를 삼키는 자’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사람이 ‘우리의 먹이’라고 외쳤습니다. 진지하게 본받고 따라야 할 믿음의 모범입니다. 물론 신앙을 극단적인 모험으로 여기는 건 위험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무모한 만용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때로 현실을 차분히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신 본문에 드러난,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태도를 눈여겨 봐야 합니다. 삶의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고백입니다.저마다의 마음을 뒤흔드는 놀랍고 충격적인 소식은 무엇입니까? 아낙 자손들의 어떤 모습 때문에 힘들어하십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현실 자체를 무시하고 무모하게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모든 인생 여정을 신실하게 이끄셨음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곳으로 몰아 넣은 게 아닙니다. 아낙 자손을 마주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무지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그 놀라운 은혜를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참된 승리를 이루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거인을 마주할 때, 커다란 실패와 좌절을 눈 앞에 둘 때, 두려워 떠는 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주님의 다스림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에 잠잠히 귀 기울이며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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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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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3장 “거인들 너머로”
2026년 5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3장 “거인들 너머로” 찬송가 351, 357장민수기 11~12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부신 영광을 목격하였음에도 원망과 불평에 사로 잡혔습니다. 심지어 미리암과 아론 조차 모세의 권위를 흔들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위기를 추스르고 가나안으로 백성을 이끄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정탐꾼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각 지파중 대표 한 사람씩 뽑아 임무를 맡겼습니다. 무사히 돌아온 그들은 커다란 포도송이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기묘한 보고를 합니다. 27~29절 함께 읽겠습니다.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하나님의 약속은 사실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정말 풍요로운 땅입니다. 두 사람이 꿰어 메고온 포도 그리고 석류와 무화과가 생생한 증거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언어가 아닌 각종 과실로 영롱하게 다가왔습니다. 과일들의 향기와 빛깔이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곧이어 ‘아낙 자손’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무너집니다. 정탐꾼들은 거인이라는 ‘눈앞의 현실’에 압도되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진실’을 지워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모양의 거인들 앞에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가정안에 닥쳐온 문제들, 위태로운 경제 상황, 온갖 질병에 무너져 내립니다. 희망을 잃고 자연스럽게 한 숨이 나옵니다.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지나온 인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실 자연스럽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솔직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참으로 살아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0절 함께 읽겠습니다.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모두가 거대한 성벽과 거인들을 두고 절망의 탄식을 내뱉을 때, 정적을 깨고 일어선 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 지파의 지도자 갈렙입니다. 그는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고, 능히 이기리라’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갈렙이 본 것은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거대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가나안을 정복해야 할 어려운 숙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향한 참여로 여겼습니다.오늘 우리가 거듭 명심하고 본받아야 할, 중요한 믿음의 태도입니다. 절대로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쉽게 무너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오늘 하루 그 손길을 느끼고 깨닫고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어 숱한 거인들 사이를 헤치고 인생 여정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아낙 자손과 같은 세상의 장벽 앞에서 자신을 ‘메뚜기’로 비하했던 불신앙을 회개합니다. 저희 눈을 열어 현실 너머의 하나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갈렙과 같은 믿음으로 당당히 거인들을 향해 나아갈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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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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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2장 “온유함으로 이기다”
2026년 5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2장 “온유함으로 이기다” 찬송가 183, 187장어제 읽은 11장 이스라엘이 불평과 원망으로 겪은 심판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고기 가마와 채소를 그리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에 고기가 끼인채로 재앙을 겪었습니다. 궁핍이 은혜이며 풍요가 저주일 수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심장부인 지도자 그룹까지 죄악이 확산되었습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모세의 형과 누나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조력자인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지도자로서 ‘권위’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를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 뜻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태도입니다. 적용을 조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목회자의 권위를 보호하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와 같은 위치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가 있습니다. 때로 내가 서있는 곳이 마음에 안들고 다른 사람의 자리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격 없는 사람이 나보다 더 우월한 곳에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교만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서 각자 주신 자리를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내 곁에 두신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미움과 시기를 이겨내야 합니다.이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 모세가 보인 태도를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3절 읽겠습니다.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모세가 보인 반응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온유함을 지켰습니다. 여기서 ‘온유함’은 단지 성격이 유순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오는 영적인 성숙함을 나타냅니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드리는 철저한 겸손입니다.살다보면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이 있습니다. 부당한 공격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뚜렷한 정답은 없습니다. 지혜롭게 자기를 보호해야 합니다. 분명히 할 말을 해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한 마음에 소리를 높여서는 안됩니다. 미움에 사로잡혀 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은 잠잠히 참고 물러서는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하시고 우리의 편이 돼 주시기 때문입ㅂ니다.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또한 주님께서 곁에 세우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포용을 깨닫고 성장하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너무나 어렵고 힘들지만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품으시고 돌보실 줄 믿습니다.기도저희 삶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저희 마음속에 숨어 있는 어리석은 시기와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에도 나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모세의 온유함을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변호와 임재를 잠잠히 기다리고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맡겨주신 자리와 곁에 두신 사람들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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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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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장 “탐욕의 무덤”
2026년 5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1장 “탐욕의 무덤” 찬송가 428, 429장어제 읽은 민수기 10장은 구름 기둥과 은나팔 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장엄하고 거룩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그들 앞에 계시며 나가가야 할 길을 인도하십니다. 이제 광야 여정은 은혜 안에서 순조롭게 이뤄질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11장은 이스라엘에 몰아닥친 혼돈을 그대로 묘사합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원인은 ‘악한 말’입니다. 그들은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불을 내려서 진영 끝을 태우셨습니다. 주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들의 불평은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영적 범죄입니다. 이것을 두고 히브리어로 <마알>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마알>에서 유래해서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습니다.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입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악한 말로 원망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기에 때때로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실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최대한 조심해야 하지만 그 자체가 큰 죄는 아닙니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두고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를 돌아 봐야합니다. 지금 힘든 일을 겪는다 해서 심한 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자체를 부정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원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먹었던 고기와 각종 채소를 그리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바다에서 몰아오셨습니다. 새들이 잔뜩 떨어졌습니다. 백성은 소원대로 고기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합니다. 33~34절 읽겠습니다.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곳의 지명은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불렀습니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서운 진리를 마주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이 심판이 아닙니다. 정말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은 원하는 것을 질리도록 먹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다시 한번 우리의 원망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명심해야 합니다.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한 게 은혜입니다. 반대로 소원대로 가득히 움켜쥐고 있는 게 저주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따라서 삶에 불편과 결핍이 찾아올 때 원망을 이겨내고 도리어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풍요를 누릴 때 더욱 깨어 주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참된 복과 재앙은 인간의 판단을 뛰어 넘어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가장 저주스러운 형벌이 가장 위대한 생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힘겨운 일이 찾아올 때 원망과 불평을 하기 보다는 십자가 복음을 바라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아픔을 부활의 영광으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마음에 품고 담대히 인생 여정을 이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 원망과 불평 가운데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풍요라는 재앙으로 탐욕의 무덤에 들어간 어리석은 죄악을 확인합니다. 이집트의 고기 가마 곁을 그리워하기보다, 오늘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의 신비에 감격하며 살길 소망합니다. 결핍에 담긴 은혜를 감사로 고백하며 지금 저희 앞에 주어진 길을 믿음으로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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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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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0장 “앞서 가시는 하나님”
2026년 5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0장 “앞서 가시는 하나님” 찬송가 390, 391장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고 시내산 기슭에서 11개월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거룩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이제 영광스러운 시내산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본격적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광야는 결코 영원히 머무는 안식처가 아닙니다. 신앙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행진을 위해 은 나팔을 사용하십니다. 고대 군사들의 이동 신호와 비슷하게 이스라엘도 이동 중 나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나팔 두 개를 분면 온 회중을 모읍니다. 하나만 불면 지휘관들을 부릅니다. 크게 한 번 불면 동쪽 진영이, 크게 한 번 더 불면 남쪽 진영이 출발합니다. 이러한 은 나팔의 핵심 의미를 9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 때,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나팔 소리는 백성이 하나님을 부르는 간구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개입하시겠다는 보증입니다. 우리 역시 말씀과 기도를 은 나팔 삼아야 합니다. 나팔을 불 듯 기도하며 주님을 부르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그 가운데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에 반응하는게 건강한 경건입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의 여정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습니다.백성을 이끈 건 나팔만이 아닙니다. 11절을 보면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릅니다. 구름을 따라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목격합니다. 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은 이전까지 진영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성이 걸음을 내딛자 주님의 언약궤는 그들이 쉴 곳을 찾으며 먼저 갔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이라는 고정된 장소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광야라는 위험한 현장으로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시는 전사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정적인 거룩함이 아니라, 대적을 흩으시는 강력하고 역동적인 거룩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켜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앞서 걸으심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저 멀리 우주에 고고하게 앉아 계시지 않으십니다. 자녀들이 고단한 인생 길 가운데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쉴 곳을 알려 주십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불안과 초조함에 빠진 자녀들을 품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 영혼을 깨우는 나팔 소리로 주님께 나아가실 바랍니다. 앞서 걸으시는 걸음을 뒤 따라 가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인생 여정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지켜 돌보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저희의 간구를 나팔 소리처럼 귀 기울이시는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또한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헤아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구름 기둥이 떠오르고 주님의 법궤가 백성보다 길을 앞서가신 모습처럼 저희 인생을 온전히 이끄심을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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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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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9장 “한 달 뒤 열린 유월절”
2026년 5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9장 “한 달 뒤 열린 유월절” 찬송가 299, 300장민수기 1장부터 8장까지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하기 위한 인구조사와 지파별 배치를 기록합니다. ‘조직의 외형’을 갖추는 과정입니다. 오늘 읽은 9장은 그 거대한 유기체가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예배(유월절)’와 ‘인도(구름)’를 보여줍니다. 엔진 없는 자동차는 고철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완벽하게 조직을 갖추었더라도 예배의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가 없다면 광야 길은 죽음의 여정일 뿐입니다. 먼저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집트를 탈출해 나온 후 1년이 지나 맞이하는 첫 번째 유월절입니다. 지난날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을 넘어서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매주 중요한 명절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절기를 앞두고 중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신을 접촉하여 부정해진 사람들이 절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결법상의 ‘부정함’과 유월절 참여의 ‘거룩함’이 충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모세의 태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고정된 문자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문자를 넘어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이러한 답을 들었습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11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하나님은 부정한 자와 멀리 있는 자들에게도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한 달의 유예기간을 두고 준비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둘째 달 열넷째 날에 그들을 위해 마련한 유월절 행사를 진행합니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율법서 자체에서 이미 율법주의를 물리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약한 백성을 돌보시는 주님의 드넓은 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확인하는게 우선입니다. 나머지 법 조항은 비본질에 불과합니다.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분명히 적용해야 합니다. 건강한 질서를 이루기 위해 여러 율법이 필요합니다. 가령 주일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거나, 봉사하며 교회를 섬기거나, 예물을 드리는 건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신앙 생활입니다. 매일 꾸준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경건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이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건 건강하지 못합니다.하지만 결코 형식에 얽메이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멀어진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위해 이루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드넓은 은혜를 우선해야 합니다. 성경 문자 혹은 삭막한 규칙에 갇히지 말고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난 주님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그러한 사랑이 인생의 거친 광야 여정을 지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됩니다.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으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이 소중한 진리를 마음 깊이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전능하신 손길을 넉넉한 배려와 온기로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구원의 주 하나님저희를 죄악과 죽음에서 구하신 위대한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스라엘이 매년 유월절을 기념하였듯이, 저희 또한 주님이 행하신 구원을 늘 명심하고 그 은혜를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또한 유월절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는 죄인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를 발견합니다. 성경 문자와 삭막한 전통에 복음을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세밀하게 헤아리며 은혜의 손길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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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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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8장 “거룩한 빛을 비추며”
2026년 5월 1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8장 “거룩한 빛을 비추며” 찬송가 379, 380장오늘 읽은 민수기 8장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본격적인 광야 행진을 시작하기 직전의 긴박한 준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민수기의 독특한 시간 배열을 확인합니다. 7장 1절부터 10장 10절까지는 장막이 처음 완성되었던 과거의 시점을 다시 불러와 회상합니다.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광야 여정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나 조직력이 아니라 오직 성소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지날 수 있습니다. 이 소중한 진리를 거듭 확인시키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성소의 등불’의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4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양식을 따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소 방향입니다. 주목할 것은 등잔대의 모습입니다. 꽃 장식과 일곱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 나무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등잔대 위 등불을 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광야라는 메마른 죽음의 땅 한복판에서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그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내 능력과 의지만으로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혼의 등불을 밝히고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명을 영혼 깊이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 주님의 숨결을 드러내는 생명 나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성소의 빛에 이어, 그 빛을 모시고 행진할 레위인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6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데려다가 정결하게 하라 7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구별하여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속죄의 물로 몸을 씻는 것은 물론이고 온몸의 털을 칼로 밀어야 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모습입니다. 아기와 같은 ‘무력함’과 ‘순결함’을 상징합니다.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겠다는 결단입니다.왜 이토록 철저한 정결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임재는 ‘폭죽 공장 한복판에 놓인 화로’와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세계관에서 거룩은 강력한 복이지만, 정결하지 못한 존재가 함부로 접근할 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됩니다. 따라서 레위인은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거룩한 완충 지대이자 통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결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나친 윤리적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욕망을 지닌 연약한 인간입니다. 누구나 흠이 있고 실수합니다. 하지만 탐욕에 그대로 자기를 맡기는 사람과 경계하고 씻어내는 사람의 태도는 완전히 다릅니다.말씀으로 자신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어느샌가 죄악으로 더럽혀진 곳이 없는 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씻어내며 어린 아이와 같은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고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광야 행진을 앞두고 과거의 은혜를 돌아보게 하신 주님의 깊은 뜻을 묵상합니다. 마음의 등대 앞에 하나님이 비추시는 생명의 빛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어리석은 탐욕을 말씀으로 씻어 주시옵소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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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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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7장 1~29절 “공평한 섬김”
2026년 5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7장 “공평한 섬김” 찬송가 218, 220장어제 읽은 민수기 6장은 ‘나실인’에 대한 율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레위인 외에 다른 지파도 원하는 사람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별된 태도로 자기 삶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실인의 서원을 기쁨으로 받으시며, 제사장 아론을 통해 구체적인 축복 선언을 들려 주셨습니다.오늘 읽은 민수기 7장은 출애굽기 40장에 기록된, 성막이 완성된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때 이스라엘이 12일에 걸쳐 드린 각종 헌물을 기록합니다. 시작은 지휘관들입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요 그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그 계수함을 받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헌물을 드렸으니 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이니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 한 사람에 소가 한 마리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여기서 ‘지휘관’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성막 완성을 기념하여 제단에 기름을 부은 날에 자발적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때 드린 예물은 재산을 과시하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의 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덜어주는 세심하고 섬김입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은 6대의 수레와 12마리의 소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레위 지파 가문의 각 직무에 따른 철저한 계산의 결과입니다. 먼저 7절을 보시면 게르손 자손에게는 무거운 휘장과 덮개를 운반할 수 있도록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배분 했습니다. 8절에 의하면 므라리 자손에게는 훨씬 더 무거운 널판과 기둥들을 실어야 하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9절에 따르면 고핫 자손은 가장 거룩한 지성물을 직접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하기에 수레를 받지 않았습니다.이렇게 지도자들이 바친 수레와 소가 레위인들의 어깨를 가볍게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저마다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짐을 덜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몸소 보이신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는 누군가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돌아보며 그의 지친 어깨에 쉼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어서 12~13절 함께 읽겠습니다.12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13 그의 헌물은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12절부터 17절까지 암마나답의 아들 나손이 유다 지파를 대표해 드린 헌물의 목록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12일간 12지파가 여기에 나오는 예물의 종류와 양이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님 앞에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파별로 영향력과 인구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결과 지파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이 있었고 급기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지기 까지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힘의 크기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죄악입니다.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헌신을 소중하게 보십니다. 드넓은 사랑으로 품어 안아 주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본받아 사람들의 겉으로 보이는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며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오늘 하루 저마다의 광야 여정을 지난날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행진하시길 바랍니다. 동행하는 이들을 참으로 섬기며 그들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길 소망합니다. 그런 우리의 걸음걸음을 주님께서 신실하게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시 주 하나님성막을 완성한 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원하여 수레와 소를 바쳤듯 저희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정배교회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물질과 재능이 다른 이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복된 수레'가 되게 하옵소서.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를 당신 백성으로 품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닮기 소망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차별없이 사랑으로 대하고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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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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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구별된 이들을 향한 축복”
2026년 5월 1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6장 “구별된 이들을 향한 축복” 찬송가 436, 438장어제 읽은 민수기 5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진영 안의 거룩함을 위한 율법을 기록합니다. 악성 피부병을 앓고 있거나 고름이 나오거나, 장례 등의 이유로 시신을 가까이 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내보냅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으로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폭력적인 제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쉼과 회복의 시간을 주는 배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어지는 6장에는 ‘나실인 서원’이 등장합니다. 먼저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이어서 8절 읽겠습니다. 8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앞서 3~4장에서 레위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받지 못하고 성소 일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사제 계급’ 자체는 다른 나라나 종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실인처럼, 레위 지파가 아님에도, 혈통과 가문과 무관하게 자원하는 마음을 받아 헌신하게 하는 제도는 매우 독특합니다. 이런 제도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을 섬기는 것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레위 지파로 살아가는 건 분명 고되고 힘듭니다. 하지만 특권과 권력이 되기도 쉽습니다. 하나님은 나실인 제도를 통해 진정한 헌신은 모두에게 열린 것임을 보여줍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는 절제, 머리를 자르지 않는 구별, 생명을 존중해 시체를 접촉하지 않는 눈에 띄는 삶의 태도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나실인 입니다. 특히나 우리가 속한 개신교회는 ‘만인사제설’의 전통을 따릅니다. 헌신은 목회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어렵고 버겁습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향해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백성에게 축복할 말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루터와 칼뱅 등 개혁전통을 따라 우리 교회 주일 예배 축도 때 이 본문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축복’이 오염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욕심을 이뤄줄 분으로 이용하고 흔들려는 유혹을 겪습니다. 분명 물리쳐야 합니다. 동시에 축복 자체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아름다운 전통이기 때문입니다.오늘 하루, 나실인이라는 정체성을 품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실인의 모습을 문자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말과 행동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온유함을 지키고 섬기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 모두에게 주님께서 참된 복과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주일 예배 때 사용하는 축복 기도문으로 민수기 6장 24~26절을 읽어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셔서,그대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주님께서 그 얼굴빛을 그대에게 비추셔서,그대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께서 그 얼굴을 그대에게로 드셔서,그대에게 평화 주시기 바랍니다.”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을 향한 헌신을 레위인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시고 모든 백성에게로 문을 여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저희를 이 시대의 나실인으로 부르셨음을 깨닫습니다. 구별된 인격과 삶으로 주님 뜻을 넓혀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향해 참된 은혜와 평화를 베푸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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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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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5장 “회복으로 향하는 길”
2026년 5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5장 “회복으로 향하는 길” 찬송가 283, 285장민수기 1~2장은 이스라엘에서 군사로 나갈 만한 성인 남성 숫자를 세고, 각 지파별로 위치를 배치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이어지는 3~4장은 성소를 섬기는 레위 지파에 대한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인은 나머지 지파와 구분 됩니다. 따라서 민수기 1~4장은 이스라엘 전체의 정체성과 각 역할을 알려줍니다.이어지는 5장부터는 그러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삶의 규칙들을 기록합니다. 먼저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하나님께서는 악성 피부병 나병 환자나 몸에 고름이 흐르거나 시신을 만진 사람을 더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병든 사람들을 매정하게 배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과는 어울리지 않은 폭력적인 규칙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 말씀이 속한 맥락과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본문에서 ‘부정함’은 도덕적 ‘죄’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나병이 죄의 결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 ‘상태’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와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정한 자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소외시키는 게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다시 함께할 수 있도록 충분한 회복의 시간을 주시는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양보이자 공동체를 보호하시려는 은혜의 장치입니다.이러한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각종 교만과 상처가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공동체를 어지럽히게 하는 악한 본성이 누구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히 돌아보고 복음으로 깨끗하게 되도록 자신을 살피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5절에서 10절은 공동체 내부의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파격적인 선언을 만납니다. 6절 제가 새한글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6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라. 남자든 여자든 가릴 것 없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죄든 지어 여호와에게 정말로 신의를 저버렸다면, 그 사람은 벌받아야 한다.여기에 보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죄를 지은 것을 가리켜 “여호와께 신의를 저버렸”다고 표현합니다. 개역개정성경은 “여호와께 ‘거역’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성소의 거룩한 물건을 가로채는 등의 ‘신성 모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곧 성소를 더럽히는 신성 모독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중요한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에게만 신실하거나 이웃에게만 진실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진실한 신앙은 곧 주위 사람을 향한 섬김으로 열매 맺습니다. 곁에 있는 이들을 참으로 돕고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다운 태도이자 인생 여정을 온전히 걷기 위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오늘 하루도 이러한 말씀을 마음 깊이 품으며 정결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하나님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은혜를 고백합니다.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더럽히는 각종 죄의 문제들, 열등감과 교만 등 온갖 병든 마음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웃에게 지은 죄가 곧 주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신성 모독임을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주위 사람을 향한 진실한 섬김으로 건강한 신앙을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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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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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4장 29~49절 “기초를 세우는 사람들”
2026년 5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4장 29~49절 “기초를 세우는 사람들” 찬송가 314, 315장어제 읽은 민수기 4장 앞부분은 성막을 섬기는 레위인의 나이가 30~50세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힘과 지혜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레위 지파는 크게 세 가지 가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그핫 사람들은 성소의 각종 기구를 천으로 덮어 어깨에 메고 나릅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동시에 성물을 직접 만지는 교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르손 사람들은 줄로 각종 기구를 묶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을 발견합니다.이어서 므라리 가문의 역할을 살펴보겠습니다. 31~32절 함께 읽겠습니다. 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은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2 뜰 둘레의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라 너희는 그들이 맡아 멜 모든 기구의 품목을 지정하라하나님께서는 므라리 자손에게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받침을 비롯해 각종 부속품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고핫 자손이 화려한 ‘성물’을 메고, 게르손 자손이 아름다운 ‘휘장’을 맡았다면,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뼈대’와 ‘기초’를 책임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경계’를 관리하는 직무입니다.여러 차례 설명드린 대로 성막은 하나님의 강력하고도 위험한 임재가 머무는 곳입니다.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부주의하게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준엄한 심판이 발생합니다. 그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외벽과 기둥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견고히 세워야 했습니다.이들이 메는 은 받침과 무거운 널판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흔들리면 성막 전체가 기울어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는 공간이 무너집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국 교회는 그런 분들의 위대한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정배교회 안에 그렇게 아름다운 섬김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모든 손길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교회의 기본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이어서 47~48절 읽겠습니다. 47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48 곧 그 계수된 자는 팔천오백팔십 명이라30세부터 50세까지 봉사 가능한 레위인은 총 8,580입니다. 단순히 인구 통계가 아닙니다. 레위인으로 상징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입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변하고 움직이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 모래바람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라고 하신 약속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레위인을 통해 그들을 세밀하게 지켜 보호하셨습니다. 8,580명이라는 레위인의 숫자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그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우리를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돌보실 줄 믿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부름받은 사명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 주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참 섬김과 나눔과 헌신을 실천하는 복된 하루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기도거룩하신 하나님저희가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때로 버겁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고된 시련이 주의 거룩한 처소를 세우는 든든한 기둥과 받침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리는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공동체 가운데 지켜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 저희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광야 같은 세상 속으로 쉼 없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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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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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4장 1~28절 “짊어지고 묶는 손길”
2026년 5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4장 1~28절 “짊어지고 묶는 손길” 찬송가 217, 218장민수기 3장에 이어 4장도 계속 레위인에 대해 기록합니다. 본문에서 인상적인 것은 회막 일을 하는 레위인의 나이입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 3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레위 지파라고 해서 모두 성막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삼십에서 오십세까지 연령에 제한을 둡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지금과 같은 노동인권이 없던 그 옛날에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레위 지파의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했다면 어린 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았을 겁니다.그러면서도 묘합니다. 20살 이상이면 충분히 성인이 되었고 군 복무도 합니다. 하지만 레위 지파로서 성막에서 일을 하려면 10년이 더 지나 서른 살이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좀 더 성숙한 연륜이 필요합니다. 백성을 대표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열정과 체력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리 교단 역시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만 30살 이상부터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바람직한 제도입니다.레위 지파는 크게 고핫, 게르손, 므라리 가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가문마다 역할이 다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고핫과 게르손 자손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고핫 자손은 지성소 안에 있는 각종 성물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15절 함께 읽겠습니다.15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고핫 자손의 구체적인 역할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동할 때 각종 성소의 기구를 포장한 뒤 그것을 메어 옮기는 일입니다. 상당히 거룩한 일입니다. 동시에 엄중한 경고를 듣습니다. 성물을 메어 나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으리라’라는 강력한 심판 예고를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물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내 것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것으로 여기며 함부로 손을 대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율법입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신앙 생활을 화려한 왕관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극적인 체험을 하거나 열심히 경건 훈련을 하거나 충실히 봉사할 때 그러합니다. 화려한 자랑거리가 되고 그걸 이유로 자신을 드높이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신앙은 공로가 아닙니다. 그저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성물을 짊어졌다는 감사를 겸손히 드릴 뿐, 함부로 손을 대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의 각종 줄을 담당했습니다. 26절 함께 읽겠습니다. 26 뜰의 휘장과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며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성막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광야 이곳을 옮겨 다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줄을 가지고 성물을 묶거나 고정시켜야 합니다. 게르손 자손이 맡은 역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을 대신합니다. 그들 덕분에 성막 각종 기구가 제 자리를 지키며 광야길을 무사히 지날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의 섬세한 손이 되길 소망합니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약하고 병든 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진 이들을 복음으로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 순간 마치 게르손 자손과 같은 위대한 사명을 이어가는 것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 우리의 모든 섬김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 기도신실하신 하나님.레위 지파처럼 저희 삶을 주님께 드리길 소망합니다. 모든 건강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핫 자손에게 주신 사명과 경고대로 거룩한 은혜를 옮기되 교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게르손 자손처럼 주님의 세미한 손길을 대신하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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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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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장 27~51절 “레위인으로 대신하여”
2026년 5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장 27~51절 “레위인으로 대신하여” 찬송가 263, 264장민수기 3장은 레위인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분명 다른 12지파와 구분됩니다.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제사를 섬기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동할 때도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다른 지파들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분리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비슷합니다. 이러한 레위인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모든 첫째를 대신합니다. 12~13절 함께 읽겠습니다.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여기서 이집트를 탈출할 때 있었던 열 번째 재앙이 언급됩니다.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동물의 첫째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스라엘의 맏아들들은 문기둥에 바른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은혜로 생명을 얻었기에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앙 고백으로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모든 소유와 존재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하지만 주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성소에서 봉사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레위 지파를 선택하셨습니다. 방금 읽은 12절 말씀대로 레위인은 이스라엘 중에서 맏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졌습니다. 땅을 소유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에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보호하고 대신하는 희생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이처럼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대신하는 레위인의 역할을 두고 하나님은 세밀한 요구를 하십니다. 43절 함께 읽겠습니다. 43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된 처음 태어난 남자의 총계는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더라태어난 지 1개월 이상 된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계수한 결과 그 수는 총 22,27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신할 레위인 남자의 총수는 22,000명이었습니다. 레위인의 숫자가 이스라엘의 맏아들 수보다 273명이 부족합니다. 이 273명에 대해 성소의 세겔로 1인당 5세겔씩, 총 1,365세겔의 '속전(물어내는 값)'을 바쳐 대속하게 하십니다. 매우 꼼꼼한 집행입니다. 여기서 5세겔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6개월 치 품삯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레위인이 이스라엘의 맏아들을 대신하는 것이 단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사건이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니라는 걸 깊이 깨닫습니다. 큰 값을 치르고 온 백성이 확실히 마음에 새겨야 할 진리입니다. 하물며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서 모든 어둠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은혜를 날마다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건 당연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놀랍고 위대한 섬김과 사랑 덕분입니다.따라서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해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을 거룩함으로 새롭게 하여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그런 우리의 섬김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기도생명의 주 하나님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저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저희의 모든 소유와 존재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서 참된 거룩함을 드러내며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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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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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장 1~26절 “레위인의 직무”
2026년 5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장 1~26절 “레위인의 직무” 찬송가 323, 324장민수기 1~2장은 이스라엘에서 군사로 세울 성인 남성의 숫자를 헤아리고 각 지파별로 이동 위치를 정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이어지는 3장은 성소를 섬기는 레위인에 대해 기록합니다. 레위인들은 대제사장 아론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제사장이라는 특정 종교인의 보조인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제 2장을 읽으면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진치고 이동하는 대형의 중심에 성막이 있습니다. 그 성막을 중심으로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열두 지파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성막과 이스라엘 사이에 레위 지파가 완충지대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불덩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불은 한겨울 추위를 막고 음식을 익히게 하는 등 여러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을 가까이하는 건 몹시 위험한 일입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전달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레위인의 역할이 비슷합니다.레위 지파의 구체적인 직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6~8절 함께 읽겠습니다.6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크게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우선 제사장 아론을 도왔습니다. 아론이 제사장으로서 성소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조력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음으로 회막의 모든 휘장과 덮개, 기구들을 관리하며 예배의 환경을 유지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야를 지나 움직일 때 성막의 거룩한 기구들을 어깨에 메어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레위인의 직무를 살펴보며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분명히 다른 지파들과 여러모로 구별되었습니다. 12지파 숫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농사 지을 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맡은 사명이 다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소외된 고립된 업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 입니다. 제사장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거룩히 설 수 있도록 스며들고 깃드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분리되어 하나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분명히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명백히 다른 정체성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고립되어 산속에 모여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땅위에 발을 딛고 현실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삶의 도구들을 관리하며, 인생 여정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품고 나아갑니다. 사실 여러모로 지치고 힘듭니다. 많은 손해와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세상 가운데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퍼져 나갑니다. 비록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의 거룩한 직무를 충실히 감당한 덕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각자 처한 환경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사명을 더욱 마음 깊이 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걸음걸음을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를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 구별하여 세우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지만 분리되지 않고 스며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온기를 전하며 심판에서 구원으로 변화시키는 신실한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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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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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장 “중심에 모시고”
2026년 5월 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장 “중심에 모시고” 찬송가 430, 435장어제 읽은 민수기 1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소개하며 군사로 나갈 만한, 각 지파의 성인 남성의 숫자를 세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온갖 어려움에도 마침내 이루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체계를 갖춘 군대가 되었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군대는 부대별로 적절히 배치하는 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읽은 2장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진을 치고 이동하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동쪽, 즉 해가 뜨는 쪽에는 유다와 잇사갈과 스블론 지파가 진을 칩니다. 이어서 남쪽에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갓 지파가 진을 칩니다. 다음으로 서쪽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가 진을 칩니다. 마지막 북쪽에는 단과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진을 칩니다.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열두 지파가 고루고루 위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은 레위 지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관리하고 제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은 레위를 포함해 열두 명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레위 지파를 제외했는데도 사방에 열두 지파가 존재할까요? 레위 지파를 다른 지파와 구별하는 대신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들을 야곱의 아들들처럼 지파로 승격시켰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은 12지파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레위 지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중심에 성막을 두셨습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회막, 즉 성막은 하나님의 명확한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성막 주변, 즉 성막과 다른 지파 사이에 레위 지파가 있습니다. 일종의 완충지대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성막 기구를 움직이고 제사를 섬기는 것 못지 않게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들은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직접 마주하는 위험을 막아주는 존재입니다. 굳이 요셉의 두 아들의 후손을 각각 다른 지파로 세우면서까지 레위 지파를 구별해 사명을 맡긴 이유입니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길 바라지만 정작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구약 시대 제사 제도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 성막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과 광야 여정의 근본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돌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2장이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인생 여정의 중심에 주님의 임재가 있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불안과 조급함이 자리 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화려한 성공 혹은 영웅적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삶의 핵심 원리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영혼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위대한 은혜에 안기도록 대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광야의 뜨거운 태양에 지치고 모래바람에 휘청거리더라도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마침내 가야할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도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온 이스라엘을 차별 없이 품으시는 위대한 사랑을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배치하고 중심에 성막을 두시고, 그 사이에 레위인들을 세우신 깊은 뜻을 마음에 세깁니다. 저희 인생 여정에 항상 하나님을 가장 가운데 모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욕심과 불안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인을 위해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저희도 이 시대의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를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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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