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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장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2026년 1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30장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찬송가 365, 366장어제 읽은 창세기 29장은 가족에게 온당한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의 아픔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사랑받지 못함을 모시고 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거듭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언니와 달리 예쁜 외모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 라헬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라헬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창세기 30장은 보여줍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이미 아들 넷을 낳은 레아와 달리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앞서 아브라함의 오랜 난임을 묘사한 창세기 장면을 함께 묵상하며 나누었습니다. 이 당시에 자녀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2절에서 기록된 야곱의 말에도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신 일’입니다. 지금처럼 의학 정보가 없던 그 시대, 자녀를 얻지 못한 원인을 생물학적인 과학상식으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징벌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은 어마어마한 수치심에 잠겼습니다. 결국 라헬은 당시 풍습에 따라, 과거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러했듯이 자기 여종을 남편 침실로 들여보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자매가 경쟁하듯 임신을 두고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을 본문은 알려줍니다. 어느 날 레아의 큰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발견하고 가져왔습니다. 이 합환채는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의 작고 노란 열매를 가리킵니다. 옛 사람들은 그 열매가 임신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라헬이 언니에게 다가가 르우벤이 가져온 합환채를 달라고 합니다. 이 때, 레아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15절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레아는 동생 라헬에게서 남편 야곱을 빼앗겼다고 여겼습니다. 현재 온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의 함축한 말입니다. 즉, 레아는 라헬을 단순히 남편의 또 다른 아내이자 동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삶의 중요한 기둥인 남편을 빼앗은 원수로 여겼습니다. 레아가 받은 상당한 상처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라헬 역시 이 관계 가운데 매우 큰 곤란함과 아픔을 겪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그러합니다. 누구나 예외는 없습니다. 각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라헬에게 레아와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22~24절 함께 읽겠습니다.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창세기에서 거듭 반복하는 하나님의 행동, ‘듣다’가 여기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레아만이 아니라 라헬의 괴로운 처지에도 공감하시며 그녀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아들 요셉을 주시어 부끄러움을 씻어주셨습니다.삶은 고통입니다. 항상 순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레아처럼 때로는 라헬처럼 갈등과 번민에 싸입니다. 많은 돈을 가졌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거나, 자녀가 번듯한 성공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쉽게 겉으로 보기 힘든 내면의 복잡한 문제와 혼잡한 현실로 인해 절망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럴수록 성경에 담긴 복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차별없이 사랑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곤란한 상황을 생각하십니다. 간절히 구하는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십니다.오늘 하루도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레아과 라헬처럼 영혼 깊은 아픔을 솔직하게, 기도 가운데 내어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합당한 생명의 결실을 선물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저희 모든 처지를 생각하시고 탄식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아들을 얻지 못한 깊은 수치심과 절망 가운데 괴로워 몸부림 치는 라헬 또한 레아와 마찬가지로 불쌍히 여기시고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저희의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요셉을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눈물과 아픔을 씻어주시고 날마다 은혜를 더하실 줄 믿습니다. 진실함 기도로 주님의 응답을 구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7
창세기 29장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2026년 1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9장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찬송가 299, 300장야곱은 벧엘을 떠나 다시금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허겁지겁 무겁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긴 했지만 다시금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전히 많은 불안과 염려가 그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의 눈에 우물이 보였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우물은 단순히 물을 긷는 곳만이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입니다. 야곱은 그곳에 모인 목자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란’에서 왔다고 답을 합니다. 그는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감격적인 사실을 안도하며 확인하였습니다.바로 거기서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났습니다. 무사히 도망을 마쳤다는 안도감, 뒤늦게 찾아온 공포,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등이 복잡하게 마음에 뒤엉켰을 겁니다. 그 순간, 그의 눈 앞에 있는 라헬은 단순한 친척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그런 까닭에 라헬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게다가 그녀의 고운 외모는 그의 마음에 더욱 불을 지켰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 전체에서 가장 낭만적인 문장이 본문에 나옵니다. 바로 “칠년을 며칠 같이”입니다.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라반에게 노동한 7년의 긴 세월을 야곱은 불과 짧은 사나흘로 여겼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눈부시게 묘사한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상실과 아픔이 존재합니다. 바로 라헬의 언니 레아가 겪은 고통입니다. 17절은 레아를 가리며 ‘시력이 약하다.’라고 소개합니다.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 성경은 둘 다 ‘눈매가 부드럽다’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문맥과 맥락상 라헬의 예쁜 외모와 대조하는, 그리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겉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라반이 야곱을 속여 억지로 그의 침실에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럴 정도로 그녀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결혼하기 힘든 결격사유가 있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레아는 자라오며 끊임없이 동생과 비교당하며 마음에 수없이 많은 멍이 들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라헬 대신 첫날 밤을 치른 다음날 아침, 당황하고 분노하는 야곱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겁니다. 당연히 그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부부간의 정을 나눌 리가 없습니다. 레아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야곱으로서는 그녀가 칠 년을 더 노동하게 한 원망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한 여자로서 너무나 비참하고 힘겨운 인생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그런 레아를 향한 놀라운 은혜를 함께 기록합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창세기를 비롯해 성경 전체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하나님의 행동이 있습니다. 주님은 자녀들의 아픔을 보고 들으시고 반응하십니다. 레아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녀의 사랑 받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다.’는 이 문장 안에 너무나 짙은 상처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단순히 남녀 간의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레아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깊고 깊은 절망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무려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게다가 그 중 유다의 아들로 메시아가 태어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셨고 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도무지 해결되지 못하고 지우지 못한 영혼 깊은 상처를 들여다 보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응답하시어 사랑의 열매를 안겨주신다는 사실 또한 마음 깊이 품고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온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삶의 모든 비참한 좌절과 아픔을 이겨내고 생명의 통로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가족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힘들고 눈물겨운 삶을 살아왔던 레아의 아픔을 주님께서 보시고 응답하셨음을 말씀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생명의 결실을 그녀에게 안겨주셨듯이 저희에게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6
창세기 28장 “가장 깊은 밤에 이룬 만남”
2026년 1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8장 “가장 깊은 밤에 이룬 만남” 찬송가 390, 393장결국 야곱은 도망칩니다. ‘야곱을 죽이겠다.’라는 에서의 다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리브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일어나게 둘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로서 최선은 야곱을, 멀리 있는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신 보내는 것입니다. 야곱은 한 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부유한 족장 가문에 태어나 어머니의 보호 아래 삶의 온기를 즐기던 그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돌을 베개 삼아 처량하게 광야에서 잠 들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12절에 그 모습을 묘사하며 언급한 ‘사닥다리’, 즉 사다리는 다소 불확실한 번역입니다. 고대 서아시아 유물에서 흔히 보이는 층계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천사들이 수직이 아니라 경사를 타고 오고 갔습니다. 이 모습이 알려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그는 지금 홀로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길지만 13~15절 함께 읽겠습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당신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입니다. 이어서 3대에 걸쳐 반복되는 언약을 말씀 하십니다. 땅과 자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곱 입장에서는 너무나 막막한 이야기입니다. 당장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고생 끝에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에 도착한다 할지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하지만 하나님과 만남이 그의 마음에 생생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감탄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12절에 “꿈에 본즉”, “또 본즉” 이렇게 ‘본즉’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3절에도 앞부분에 “또 본즉”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개역개정 성경이 따로 번역을 하지 않았지만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15절 앞부분에도 한 번 더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본다’라는 동사가 아닙니다. “보라!”라는 의미의 감탄사입니다. 그냥 “와!”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경외감에 연신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신이 아닙니다. 그의 삶 깊숙이 찾아오셔서 위대한 약속을 선언하고 이끌어주시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때, 야곱의 상황을 다시금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고자 애쓰고 부르짖었을 때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손자라는 우월감에 취해, 그럴듯한 종교의식을 치르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진 채,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허우적 거릴 때입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이 돌연히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란으로 숨 가쁘게 달리다 지쳐 어두운 밤을 만나곤 합니다. 돌의 싸늘하고 딱딱한 촉감에 머리를 누이며 시린 잠을 청하곤 합니다.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 절망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희망이 움터 오릅니다. 도저히 주님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어둠 한복판에서 따스한 언약이 선포됩니다. 마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지닌 위대한 역설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힘과 용기를 품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벧엘의 하나님인생의 깊고 깊은 밤, 돌베개를 베고 잠든 야곱에게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말씀으로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비추실 찬란한 영광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선언하신 위대한 언약을 마음에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 여정에 돌연히 찾아오시는 주님과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새 힘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5
창세기 27장 “욕망을 넘어서는 신뢰”
2026년 1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7장 “욕망을 넘어서는 신뢰” 찬송가 542, 543장창세기 27장은 25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미 이삭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의 출생 그리고 성장한 후 극명히 다른 두 사람의 성향을 확인하였습니다. 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온몸에 붉은 털로 가득한, 외향적인 사냥꾼입니다. 그는 아버지 에서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반면 형의 발뒷꿈치를 잡고 태어난 야곱은 조용하고 차분하여 집안일에 능숙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둘 사이의 극명한 성격차이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붉은 죽에 동생에 팔아넘긴 사건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시간이 흘러 이삭이 무척 노쇠해 졌습니다. 차츰 죽음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점점 더 짙게 흐려지는 시야로 확인했습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아버지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사랑하는 에서를 부릅니다. 바로 축복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말 몇마디 덕담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제사장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했던 옛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식입니다. 에서는 이삭에게 평소처럼 사냥을 해서 그가 평소 즐기는 맛있는 요리를 해 달라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삭의 왜곡된 사랑입니다. 분명 쌍둥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 주님께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척 엄중한 자녀 축복의식을 두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다른 가족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자기 뱃속을 흡족하게 채운 큰 아들에 대한 편애로 일방적으로 결정했습니다.아내 리브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큰 아들에게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계획을 세웁니다. 함께 주방일을 하며 정이 듬뿍 든 둘째 야곱을 부릅니다. 집에서 키우는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인척 동물 가죽을 입고, 리브가가 요리한 평소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녀 또한 이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묻지도, 가족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감정에 따라 음모를 꾸며 아들과 함께 남편을 속였습니다.야곱은 어머니의 말 그대로 하였습니다. 혹여나 아버지가 자기를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침을 꼴깍 삼키고, 음식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아버지의 장막에 들어갔습니다. 이삭은 목소리를 듣고 의아해했으나 야곱이 몸에 두른 털을 만지고 에서로 여겼습니다. 본문에서 이삭은 계속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언급합니다. 앞서 보여준 에서의 식탐이 아버지 영향 아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삭 역시 맛있는 음식이 안겨주는 욕망에 마음이 뺏겨 하나님의 언약 안에 가정을 화평하게 이끌 책임을 소홀히 하고 말았습니다.이후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이미 창세기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가인과 아벨 사이에 벌여졌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리브가는 야곱을 멀리 있는 오빠 집에 보냅니다. 그후 야곱과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눈물 겨운 생이별입니다. 야곱은 부모의 집을 떠나 눈물겨운 고생을 합니다. 에서와 화해하기 까지 생의 먼길을 돌아갑니다. 이렇듯 온 집안을 덮친 비극의 뿌리는 가족들이 성급하게 저마다의 욕망을 따라 움직인데 있습니다. 그들은 차분히 각자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감정과 욕구를 더 우선시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족 모두가 깊은 고통과 슬픔에 잠기고 말았습니다.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끊임없이 조급하게 몰아붙입니다. 당하거나 뺏기지 않으려면 서둘러 음모를 꾸미고 꾀를 내야 한다고 닦달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소음과 내면을 불안을 말씀으로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잠잠히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이끄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저마다의 얕은 계산과 조급한 욕망으로 결국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삭 가족이 겪은 비극을 말씀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 깊은 교훈을 삼으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과 이웃과 교회를 평강으로 돌보는 지혜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보내신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3
창세기 26장 “그 밤에 나타나신 하나님”
2026년 1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6장 “그 밤에 나타나신 하나님” 찬송가 433, 438장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농사와 목축 모두 성공적인 결실을 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종도 두었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그로 인해 그가 겪었던 시련 또한 함께 묘사합니다.흔히 오해하듯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의 결과는 화려한 번영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이삭은 그가 머물러 살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았습니다. 특히나 26장 1절에 따르면 그곳에 큰 흉년이 있었기에 더욱더 이삭의 성공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이삭의 모든 우물을 막았습니다.매우 치졸한 행동입니다. 우물은 광야 생활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자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관리할 힘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삭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소유할 수 없다면 망쳐버리는 몹시 악한 행동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왕 아비멜렉은 이삭을 그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더 나아가 하나님께 복과 은혜를 입었기에 오히려 억울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동시에 깨달음에 이릅니다. 갑작스럽게 엄습하는 고난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주님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따라서 도무지 납득하지 못할 고통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도무지 기대 못한 눈부신 영광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고난의 여정을 떠납니다. 16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그에게 자기들보다 크게 강성했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가진 많은 종들을 불러 모아 위협하고 싸움을 벌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랄 골짜기로 떠납니다.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다툼을 피했습니다.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시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골짜기에서 새로 판 우물을 그랄 목자들이 탐내 시비를 걸었습니다. 결국 이삭은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 우물마저도 또 분쟁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삭은 한 번 더 우물을 팠습니다. 성경이 이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물을 옮길 때 마다 무척 많은 번민과 고민이 그를 덮였을 겁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하고 초라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모든 고난이 멈추었습니다. 안도와 탄식이 뒤섞인 밤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 하십니다. 24절 함께 읽겠습니다.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자손이 번성하는 복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위대한 언약이 아버지를 거쳐 이삭에게 눈부시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거듭 명심해야 합니다. 이토록 찬란한 장면은 이삭을 한없이 비참하게 한 고난 끝에 피어올랐습니다. 참고 물러서고 내어줄 때 진정 승리하고 성취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보여주는 위대한 역설과 비슷합니다.그러므로 연거푸 우물을 빼앗긴 이삭과 같은 상실과 아픔, 불안과 공포에 빠질 때,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세우신 언약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복을 주시고 생명이 번성하게 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참 승리의 주 하나님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과 영광은 시련과 패배와 좌절의 현실을 딛고 찾아온다는 진리를 말씀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연달아 우물을 뺏긴 이삭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시어 위로하셨듯이, 오늘 저희 삶 깊숙이 다가오시어 ‘두려워 말라’라고 위로하심을 믿습니다. 말씀으로 참된 힘을 얻게 하시며,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해를 힘차게 열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6-01-02
창세기 25장 “가볍게 여기다”
2025년 12월 3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5장 “가볍게 여기다” 찬송가 93, 94장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성경은 두 형제의 요란한 출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2~23절 읽겠습니다.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두 쌍둥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격하게 싸웠습니다. 이로 인해 어머니 리브가가 하나님께 기도할 정도입니다. 두 아들 사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얼마나 격렬한 갈등 관계였는지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놀랍습니다. 쌍둥이는 태중에서만 싸우지 않습니다. 두 쌍둥이 모두, 각자 커다란 민족을 이루어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입니다. 즉, 형이 동생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기존 사회 질서를 뒤집어 지고 새로운 관계가 펼쳐질 것을 하나님은 예고하셨습니다.마침내 출산일이 다가왔습니다. 첫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온 몸에 털이 나 있었습니다. 그 털 색깔이 붉어서, ‘붉다’라는 의미를 지은 ‘에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둘째는 그런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발꿈치를 잡다는 뜻의 ‘야곱’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막연히 출산 순간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 후 둘 사이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금세 두 사람이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다 자라서도 둘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보입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입니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반면 야곱은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입니다. 형과 달리 장막 안에서, 오늘날로 따지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이런 두 사람의 기질 차이는 부모의 엇나간 편애로 이어집니다. 아버지 이삭은 장남 에서가 사냥해서 잡아온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반면 어머니 리브가는 차남 야곱과 함께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정을 쌓았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갈등이 부모에게로 번져나갈 것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급기야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는 무척 허기져 했습니다. 고대의 사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너무나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극도의 공복감에 시달릴 때 눈 앞에 놓인, 막 요리한 음식이 지닌 강력한 힘을 쉽게 공감할 것입니다. 평소 거칠고 충동적인 성향의 에서는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동생에게 붉은 죽을 달라고 합니다. 야곱은 그에게 뜻 밖의 요구를 합니다. 바로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러자 에서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장자의 명분과 붉은 죽을 바꿉니다. 그 뿐만 아니라 32절에 보면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합니다. 당장 허기진 배를 채워줄 음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장자의 명분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이러한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이 31~34절에 무려 넉 절에 걸쳐 한 번씩 계속 등장합니다. 에서의 우매함을 반복하여 지적합니다. 결정적으로 매듭짓는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세기 저자는 에서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의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바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는 아브라함의 장손으로, 이삭의 장남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자칫 운명론으로 이해할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예고한 대로 그가 동생에게서 밀려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단지 특정 음식을 먹었느냐, 혹은 그 과정에서 실수를 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에서의 일관된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내면의 중심을 보여줍니다. 그는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느라 중요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언약을 잇는 사명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이런 말씀 가운데 우리 자신에게도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인생에서 무엇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어느 것을 더 무겁게 여기고 어떤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듯이 너무 비장하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현실을 살아가기에 자연스런 욕망에 눈이 가는 것 자체는 사실 자연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생명의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보다 더 인생의 중심에 두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난 참 진리를 진정 무겁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내렸던 무수한 선택들과 삶의 태도를 복음과 진리 가운데 되짚어 보고 새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저희 삶의 중심이신 주 하나님한해의 마지막 날, 새벽을 깨워 말씀 앞에 나아가게 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때로 저희 또한 에서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장의 허기에 지쳐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가볍게 여길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삶의 초점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정확히 맞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긍지를 소중히 품게 하시고 진리로 말미암은 참 생명과 기쁨 충만히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31
창세기 24장 34~67절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2025년 12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4장 34~67절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찬송가 304, 310장어제 읽은 24장 전반부는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내용을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깊이 신뢰하는 종을 멀리 고향 땅으로 보내 막중한 임무를 맡깁니다. 종은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해 자기는 물론이고 낙타에게 까지 물을 주는 처녀를 곧 주인의 며느리감으로 알겠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보내셨습니다.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오빠 라반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 들어가 지금까지 자기가 겪은 일들을 고스란히 반복해 들려줍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그는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49절 함께 읽겠습니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여기서 주목해야 할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인자함과 진실함’입니다. 히브리어로는 각각 와 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두 단어가 24장에서 이미 한 번 등장했습니다. 바로 27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종이 리브가를 만난 후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사랑과 성실”을 언급합니다. 그 두 단어도 와 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분명히 고백합니다. 리브가를 만난건 우연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성실하심 덕분입니다. 따라서 그는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단순히 딸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동참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러한 종의 설득에 가족들은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리브가를 그에게 내주었습니다.하지만 이제 그녀를 언제 다시 볼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딸과 누이와 만날 기약을 잡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열흘 만이라도 좀더 시간을 보내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의 종에게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은 그럴 수 없다고 서두르며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리브가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녀는 선뜻 종을 당장 따라나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리브가는 가족들의 축복을 들으며 낙타를 타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마침내 아브라함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성경 전체에서 가장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해질 무렵 이삭은 들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 멀리서 아버지가 보낸 종이 타고 온 낙타무리가 보였습니다. 그런 이삭을 리브가가 발견합니다. 종에게 저기 보이는 저 남자가 자기 남편될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그가 맞다고 하자 리브가는 너울로 얼굴을 가리며 신부로서 몸가짐을 정돈하였습니다. 낙타에서 내린 종은 이삭에게 그의 아내를 데려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매듭짓는 67절 함께 읽겠습니다.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베푸신 한결 같은 사랑과 신실함은 위로로 열매 맺었습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남은 천막은 물론이고 이삭의 공허한 영혼에도 리브가가 들어와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삭에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가 아니라 인자와 진실함으로 돌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손길 그 자체였습니다.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때론 저마다의 사라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지곤 합니다. 저마다의 들판을 스산하게 배회하고는 합니다. 그런 모든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인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주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더욱더 우리 마음의 중심에 품고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영원히 사랑과 성실하심으로 충만하신 주 하나님아브라함 종의 걸음을 이끄시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삼으신 그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신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으로 동행하였음을 말씀으로 확인하였습니다.마찬가지로 저희 인생길 역시 신실하신 사랑으로 날마다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 따뜻한 위로를 얻었듯이, 성탄의 주인으로 참 빛을 이 땅에 비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실한 회복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네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30
창세기 24장 1~33절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2025년 12월 2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4장 1~33절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찬송가 379, 382장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생을 마감할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아들 이삭의 혼인입니다. 어렵게 낳은 언약의 아들인데 아직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단지 며느리를 맞아들이고 손주를 얻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사명 수행입니다.이 막중한 임무를 위해 아브라함은 평소 깊이 신뢰하던 늙은 종에게 맡깁니다. 자기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허벅지는 남성의 성기를 완곡히 표현한 말입니다. 정확히는 할례 받은 흔적에 손을 대게 하여 주님과 맺은 언약을 거듭 확인시키는 행동입니다. 그런 까닭에 며느리의 조건을 단호하게 언급합니다. 3~4절 읽겠습니다.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맺으신 언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즉, 땅과 후손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서 뿌리내릴 후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가나안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종은 힘겨운 수고를 감수하며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떠납니다. 이러한 여정 자체가 늙은 종에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설령 그곳에 도착한다 할지라도, 역시나 함께 먼 길을 돌아와 주인의 아들 이삭과 결혼할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런 까닭에 종은 주인의 고향에 도착해 우물가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14절 읽겠습니다.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그는 우물에 찾아온 소녀에게 물을 요청할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광야 지방에서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나그네를 위해 물을 대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낙타에게까지 물을 주는, 더욱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지닌 처녀라면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로 예비하신 사람이라고 알겠다는 내용입니다. 보통 형식적인 호의는 베풀 수 있지만 무더운 날 낯선 사람을 향해 그 정도 섬김으로 다가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종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말로 한 소녀가 다가와 그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다 주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소녀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대상입니다. 이삭의 완벽한 아내감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모든 상황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주인의 온 가족, 그리고 이 사명을 위해 섬긴 자기에게 은혜 베푸셨음을 감격하며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지키려 수고한 백성을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새삼 확인 하였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세우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언약으로 날마다 세밀하게 지켜 돌보심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세운 언약을 충실히 따르시길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길을 묵묵히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비록 험하고 고통스럽고 너무나 막막하지만, 그 길 끝에 도저히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가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기도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주 하나님주님을 따르며 막막한 걸음을 내디뎠던 어느 이름 모를 종의 수고와 기도를 신묘한 손길로 응답하셨음을 말씀을 통해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의 언약을 소중히 지키는 저희 삶 가까이에 오셔서 모든 만남을 선하게 이끄실 줄 믿습니다.오늘 하루도 주님의 세미한 손길 가운데 위로와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리브가처럼 몸과 마음이 주린 이들을 향해 진실한 섬김으로 다가가,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흔드는 창세기 읽기』(크리쿰북스, 2017)
2025-12-29
창세기 23장 “막벨라 굴 앞에서”
2025년 12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3장 “막벨라 굴 앞에서” 찬송가 488, 490장사라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127년의 험난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녀의 고단한 삶에 함께 한 남편 아브라함을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애통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곧 현실과 마주합니다. 바로 아내의 시신을 둘 곳이 없는 고단한 나그네 신세입니다. 성경은 분명 아브라함이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뜨네기 신세입니다. 자기 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방에 보이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필요한 장례를 위한 땅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원주민들은 외지인들을 경계하기 마련이고 특히나 땅의 소유 문제는 언제나 예민한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시신 앞에서 일어나 그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는 헷 족속에게 찾아갑니다. 그들과 토지 거래를 합니다. 서로 정중한듯 하나 나이든 족장 아브라함으로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상황이 이어집니다.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를 장례 지내기 위한 땅을 헷 족속에게 요청합니다. 6절에 의하면, 헷 족속은 표면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명예를 높이며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우회적인 거절이거나 보다 더 땅값을 받아내기 위한 형식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노회한 아브라함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몸을 땅에 굽혀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 소유한 막벨라 굴을 사고 싶다고 간청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했듯이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시신을 땅에 묻는 게 아니라 굴에 넣고 돌로 입구를 막아 자연 부패시키는 장례 방식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무리 중에 있던 에브론이 자기 땅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말 역시 진심이 아니라 거래를 위한 형식적인 언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에브론의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둘러싼 나무를 샀습니다. 성문 앞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소유를 확정 지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내 사라의 장사를 지냈습니다. 18~20절 함께 읽겠습니다.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18절과 20절에서 두 번, 그 땅이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다고 거듭 명시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유일한 땅입니다. 그가 나그네로서 얼마나 초라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지금 우리가 막연하게 연상하는 위대한 인물의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지만 정작 그가 사는 날 동안에 마주한 혈육은 매우 적었고 땅은 무척 좁았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당장 이룬 성취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과 극명히 반대되는 현실을 감수하였습니다. 결핍과 마주하고 굴욕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향한 당신의 언약을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이루셨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며 많은 한계와 가난에 시달립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자녀를 향한 눈부신 약속과는 한 참 거리가 먼, 비참한 시련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보이신 놀라운 사랑과 희생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모든 아픔과 눈물을 위대한 영광의 씨앗으로 삼으실 줄 믿습니다. 기도자녀들의 믿음을 기뻐 받으시는 주 하나님아내를 장사 지낼 땅이 없어 비참한 고난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저희를 발견합니다. 주님의 찬란한 언약과는 너무나 다른 쓰라린 결핍과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희 삶의 그 모든 시련과 가난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이 땅에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하루하루 마주하는 아픔이 클수록, 그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저희의 판단과 기대를 넘어서는 참된 소망을 품고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24
창세기 22장 “보시는 하나님”
2025년 12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2장 “보시는 하나님”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창세기는 그동안 절절히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단순히 무리한 요구에 대한 좌절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뿌리 깊은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자녀를 바치는 인신 제사는 그 시대 서아시아 종교에서 흔히 보던 풍습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절망이 아브라함 마음에 젖어들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주변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따뜻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해였습니다. 다른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아들을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는 잔악무도한 신이었습니다.결국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만 남기고 번제를 위해 쓸 나무와 불과 칼을 챙겨 이삭과 함께 산 위에 오릅니다. 그러자 아들은 종들 앞에서는 차마 못 던진 질문을 아버지께 드립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 때 아브라함의 심경이 어떠했을까요? 아버지는 슬픔을 억누르고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주님께서 정하신 곳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해 아들을 꽁꽁 묶었습니다. 많은 나무를 짊어질 정도로 충분히 자란 이삭 역시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었습니다. 아들이 고통 없이 빨리 숨을 거두도록 미리 생각해 두었던 급소를 향해 팔을 움직였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늘에서 황급한 소리가 들여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며 만류합니다.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을 보여 주시며 이삭 대신 제물로 바쳐 번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타오르는 불길이 안겨준 온기가 아브라함의 마음을 녹였을 것입니다. 긴장감에 세차게 두근거리던 심장에 고요한 위로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과 달리 인신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역설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매우 잔인하고 가혹하지만, 주님과 생생한 화해를 고백하는 사건입니다.그 위대한 제사를 드린 땅을 기념하며 아브라함은 그 곳에 임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아브라함은 지금까지 겪은 격정적인 사건을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바로 ‘이레’입니다. 여기서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14절 안에서 쉽게 답을 발견합니다. 바로 ‘준비’입니다. 주님께서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예비하시고 공급하신 것으로 즉각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넘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르에’의 1차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입니다.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극적인 공급 이전에 그분의 눈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느낀 번민하고 좌절,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결국 아들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극심한 절망 모두를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보시고 당신을 보이시고 예비하신 숫양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진리를 오늘 하루도 더욱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우리 역시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절망을 헤치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지금 그런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거듭 마음에 새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의 모든 아픔과 좌절을 보십니다. 그 상처와 결핍 가운데 가장 합당한 선물을 예비하시고 보내십니다. 그러한 사랑어린 주님의 눈길과 시선을 맞추며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자녀들의 모든 아픔을 보시는 하나님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처럼, 저희도 때로는 주님께 너무나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저마다의 모리아 산으로 향하곤 합니다. 그런 저희의 모든 슬픔과 절망을 들여다 보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며 합당한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구원을 신뢰합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의 숨을 거두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마음에 품고, 따뜻한 눈길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가슴에 품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23
창세기 21장 “웃음, 그 후”
2025년 12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21장 “웃음, 그 후”마침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창세기를 함께 읽어오시면서 공감하실 겁니다. 단지 한 아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간절히 바라온 위대한 언약의 결실입니다. 수없이 좌절하고 무너진 끝에 품에 안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날 아브라함과 사라는 살면서 가장 커다란 미소를 보였을 겁니다. 성경은 그 때, 사라의 격한 기쁨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18장 12절에서 사라는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삶에 즐거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외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웃음을, 아들 이삭을 안고 지었습니다.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생한 권능과 사랑을 아들의 체온을 통해 뜨겁게 느꼈습니다.그런데 성경은 동시의 그녀가 보인 냉혹한 행동 또한 함께 기록합니다. 이삭이 자라 젖을 뗀 것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대략 만 세 살때 열리는 행사입니다. 유아 사망이 흔했던 옛날, 위험한 시기를 무사히 넘긴 것을 축하하는 뜻깊은 장면입니다. 그 때 사라의 눈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있는 장면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문 9절은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라고 기록합니다.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복형제간의 평범한 놀이 장면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라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을 겁니다. 어렵게 낳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보호 본능이 극도로 예민하고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냅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방에서 엄마와 어린 아들만 광야로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입니다. 하갈은 임신부일 때에 이어 한 번 더 비참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급기야 챙겨온 물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갈증에 힘겨워하며 차츰 숨이 꺼져가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갈은 그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창세기에서 특별히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에 대한 행동 묘사을 여기서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가족에 의해 이용당하고 폭력을 겪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응답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샘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범위는 무한합니다. 온 우주를 아우르는 드넓은 사랑으로 연약한 죄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십니다.이와 같은 만유의 하나님께 오늘 하루도 기도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은혜를 입고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연약함을 고백 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의 모든 신음에 응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참 평안의 주 하나님주님께서 저희 삶에 안겨주신 참 기쁨을 소리높여 찬양합니다. 인생의 그 어떤 절망도 이겨내는 진정한 행복과 승리를 복음 안에서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시에 욕망과 불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공격하는 저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받은 사랑 그대로 전하고 나누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 힘겨운 고난에 빠질 때,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탄식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의 드넓은 마음을 신뢰하며 은혜의 샘물을 마시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22
창세기 19장 “뒤돌아 보다”
2025년 12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19장 “뒤돌아 보다”마침내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내렸습니다. 성경은 그 곳에 일어난 극심한 심판을 보여주기 전에 그 땅에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천사 둘이 어느 날 저녁 소돔에 도착하였습니다. 롯은 삼촌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극진히 맞이 합니다. 자기 집에 모시고 음식을 베풀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하지만 낯선 두 사람이 찾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둘러쌌습니다. 그런 다음 매우 충격적인 요구를 합니다. 그들을 자기들에게로 끌어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상관’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1차적인 의미는 ‘알다’입니다. 본문의 맥락과 다른 성경에 사용된 용례를 보았을 때 강제적인 성관계를 뜻 합니다.환대하고 따뜻하게 맞이해야 할 나그네들을 소돔 사람들은 추악한 욕망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멀리서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 땅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롯은 그들의 악행을 만류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롯을 보호한 다음 이제 소돔을 심판할 것을 선언합니다. 롯의 가족들을 데리고 얼른 성 밖으로 도망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롯은 딸들과 약혼한 예비 사위들에게 자기가 들은 심판 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들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4절 함게 읽겠습니다.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사위들은, 자기들을 살릴 복음을 두고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했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진리가 웃음거리로 전락한 처참한 현실을 낱낱이 보여줍니다.이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롯의 가족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도망칠 때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서둘로 산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마침내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불꽃이 곳곳마다 타오르고, 불쾌한 타는 냄새가 코끝을 향해 옵니다. 한시 바삐 달려가기 바쁩니다. 그 때 일어난 사건을 26절이 기록합니다.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롯의 아내는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금세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장면을 두고 그녀가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에 몸을 돌린 결과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롯의 아내가 불순종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원인이 과거에 누렸던 부귀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언급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이 장면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심판의 자리에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이 저지른 폭력에 희생된 이들이 외치는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오랜 인내의 결과입니다. 마침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사이에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 있는 힘껏 내달려야 합니다.물론 이런 장면을 당장 우리 일상에 적용하는 건 곤란합니다. 오히려 지나친 이원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앙의 근거는 불안과 초조함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이어야 합니다. 심판 받을까 두려워 벌벌 떨며 강박에 빠진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천천히 걷거나 가끔씩은 멈춰 쉬어도 괜찮습니다.다만, 인생의 방향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어영부영하지 말고 주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산을 향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향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기도공의로우신 주 하나님소돔으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던 이들의 부르짖음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음을 말씀을 통해 확인합니다. 동시에 그 땅에서 벌어진 처참한 죄악의 현실을 발견합니다. 약한 이들을 따뜻하게 돌보지 않고 도리어 더러운 탐욕의 대상으로 여기고, 진리를 비웃었던 그들에게서 저희의 죄와 연약함 또한 발견합니다.죄의 길에서 단호히 벗어나 담대히 생명의 진리를 향해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거짓과 욕망에 취해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원의 길을 열고 전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20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중보”
2025년 12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중보” 서아시아의 한낮은 매우 뜨겁습니다. 사람들 대부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했습니다. 그 때 멀리서 걸어오는 낯선 남자 셋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목민 문화에서 나그네 대접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관습 만이 아니라 몸에 밴 섬김을 보여 줍니다. 상당한 규모를 이끄는 족장이지만 굳이 달려나가 몸을 땅에 굽혀 인사 하였습니다. 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고 음식을 베풀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이 이끄는 일행이었습니다. 어제 읽은 17장에서 할례 의식에 이어 한 번 더, 내년에 분명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주님의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명확하게 문장으로 말씀하십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여기서 아브라함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매우 감격스러운 음성입니다. 아브라함을 주님이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바로 소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들려온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그들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류합니다. 소돔 땅에 혹시나 50명이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이렇게 다섯 번에 걸쳐 집요하게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의인 열명을 구원의 조건으로 약속 받았습니다.이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당신의 뜻을 낱낱이 드러내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복종하기 바라지 않으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주님의 뜻에 의문을 표하고 따져 묻는 것을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이십니다. 특히나 그 안에 다른 사람을 향한 애끓는 중보의 마음이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바로 여기에서 노아와 아브라함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영국 최고 랍비를 역임한 조너선 색스의 통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왜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예가 훨씬 앞서 존재해 ‘의인’이라고 칭함 받았던 노아가 아닌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을까요? 둘 다 ‘심판’ 선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노아는 묵묵히 알겠다고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간청하였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노아가 잘못했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노아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노아가 아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그려가시는 뜻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19절 말씀과 같이, 그의 후손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이루는 게 목적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브라함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 부당하고 지나쳐 보일 때, 담대히 나아가 당돌히 막아서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반가워하시며 기뻐하십니다. 성경 전체에 드러난 주님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웃을 살리는 기도, 주위 사람들을 일으키는 손길을 건네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섬김을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너에게 숨기겠느냐”기도정의와 공평의 주 하나님소돔 심판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의 위대한 중보기도를 말씀 가운데 확인합니다. 인간의 만류와 외침에 기꺼이 반응하시고 귀 기울이시는 주님의 드넓은 품을 발견합니다. 저희 역시 아브라함을 본받아 죽음 앞에 놓인 이들을 위해 중보하며 그들을 사망에서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랑받는 자녀로서 믿음의 기도를 드러내길 소망합니다. 저희에게 반드시 이루실 언약을 소망하며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19
창세기 17장 “전능하신 하나님”
2025년 12월 1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17장 “전능하신 하나님” 어제 읽은 창세기 16장의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습니다.16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날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이었다.바로 다음절인 오늘 본문 17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불과 1절 사이에 13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여든 여섯 살이었던 아브람이 구십 구세가 되었습니다. 더욱더 쇠약해진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언약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며 내면에도 깊은 주름살이 잡혔을 겁니다. 그런 아브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1절 다시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주님께서 당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씀이 아브라함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더 큰 상실과 좌절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토록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작 당신이 약속하신 언약을 아직 이루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거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매우 도발적인 반응을 합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습니다. 기쁨으로 짓는 미소가 아닙니다. 쓰디쓴 냉소입니다. 꿈과 기대가 산산이 무너지고 부서진 노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입니다. 그런 까닭에 18절에,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단호하게 내년에 사라가 낳을 이삭을 통해 언약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집안 모든 남자와 함께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철저히 무력한 순간입니다. 움직일 수 없이 그저 아파하고 신음할 뿐입니다. 이 상황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너무나 큰 상징과 교훈을 안겨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지극한 무력함을 통해 다가옵니다.하나님께서 분명 아브라함에게 당신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전능하심은 아브라함의 소원을 마법처럼, 그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즉각 이루는 권능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실망을 끼치고 좌절을 안긴, 철저한 절망과 무능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능력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아기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비참한 모습으로 매달려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온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그 전능하심이 지닌 입체성을 성경으로 온전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하나님의 권능은 때로 너무나 쓰라리고 허무하고 불쾌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주님의 전능은 지극히 무력하고 무능한 얼굴로 나타나는 진리를 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십자가로 드러나신 하나님의 참된 능력이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며 진실로 살릴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을 함께 고백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전능하신 주 하나님마치 아브람이 그러하였듯, 저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주님의 얼굴은 때로 너무나 무능하고 무심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희의 간절한 바람과 소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냉기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철저히 무력한 모습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참된 구원은 힘겨운 공백을 통과한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며 겪는 그 어떠한 시련도 담대히 딛고 일어날 힘을 주시옵소서. 저희의 연약한 기대를 넘어서는 주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18
창세기 16장 “살피시는 하나님”
2025년 12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창세기 16장 “살피시는 하나님” 찬송가 365, 363장어제 읽은 창세기 15장은 계속된 난임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브람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별을 마음에 품고 믿음을 지니고 의롭게 인정받은 아브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성경에 기록된 눈부시게 위대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인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권유의 따라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분명 칭찬받은 믿음을 지녔으나 여전히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브람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런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현실 속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를 위로합니다. 동시에 그 결과 겪었던 거친 시련 또한 보여 줍니다.하갈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여주인 하갈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래는 가만히 있지 않고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여기서 ‘학대’에 해당하는 단어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 생활을 묘사할 때도 등장합니다. 그만큼 하갈은 너무나 혹독한 핍박을 받고 무거운 배를 잡고 도망칩니다. ‘임산부 도망자’라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입니다. 그런 하갈에게 하나님이 다가와 말을 거십니다. 8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하나님이 물으십니다.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쉽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너무나 중요한 대화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물론이고 고대 서아시아 문헌에서 신이 여성에게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른바 아브라함의 정통 족보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드러낸 행동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하갈에게 다가와 아픔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하갈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하갈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가리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역시도 오늘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장면으로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서아시아에서 여성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이었습니다.이처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과 하갈 사이의 파격적인 만남과 대화를 소개합니다. 주님은 아브람과 그의 아들들만이 아니라 천대받고 학대당한 이방인 여성에게 다가오셔서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살리시려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몸소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모습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한 희생으로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이를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무한한지를 거듭 깨닫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기준으로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제한합니다. 심지어 구원과 신앙에 있어서도 함부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밀어내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본문은 우리에게 더욱더 커다란 마음으로 주위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안고 보듬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그 주님은 바로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 가운데 내뱉는 신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따스한 숨결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기도저희 삶의 모든 아픔을 살피시는 하나님임신으로 부푼 배를 부여잡고 도망치는 하갈처럼, 때로 저희도 끝없는 좌절과 절망 가운데 깊이 빠지곤 합니다. 그런 저희의 모든 신음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믿습니다. 그 사랑에 감긴 무한한 넓이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진심으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받은 은혜를 명심하며 주위에 있는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건네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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