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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9장 “목이 곧은 백성을 위한 간구”
2026년 7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9장 “목이 곧은 백성을 위한 간구” 찬송가 149, 150장어제 읽은 신명기 8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진리를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언급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지닌 모든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신명기 9장은 요단강을 건너갈 이스라엘을 향해 준엄한 진리를 거듭 명심하게 합니다.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그들이 정직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가차 없이 선언합니다. 단순히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의로움을 선명하게 대비시키셨습니다.자신을 정확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연약한 죄인인 우리는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데 익숙합니다. 마치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내 억울함만을 호소하기에 급급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여깁니다. 물론 지나친 자기 비하는 물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이스라엘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의 본질인,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격 없는 내게 이루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어서 25~26절 함께 읽겠습니다.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모세는 호렙 산에서 벌어졌던 금송아지 사건을 언급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늦게 내려오자 금 송아지를 만들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하신 하나님이라며 숭배한 죄악입니다. 이 모습은 앞서 살펴보았던, 목이 곧은 이스라엘의 전적인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몹시 노여워하시며 그들을 향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40일 밤낮을 엎드려 절박하게 중보기도 했습니다. 주의 백성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분명 그들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이름과 언약에 근거해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을 간구 했습니다. 이처럼 죽어 마땅한 공동체가 중보자의 호소로 구원 받는 장면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다시금 눈부시게 발견합니다. 우리 대신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절망과 파멸에서 벗어나 희망과 생명에 안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복음의 본질을 거듭 확인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 누리는 은혜를 결코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사랑인지를 진심으로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중보자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생명의 주 하나님목이 곧은 백성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마땅히 구원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교만을 물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진심으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세처럼 누군가를 위해 중보하여 심판에서 돌이켜 생명으로 인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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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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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8장 “기억하라, 잊지 말라”
2026년 7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8장 “기억하라, 잊지 말라” 찬송가 391, 393장어제 읽은 신명기 7장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과감히 우상을 멀리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를 때 주실 복과 은혜를 선언하십니다. 이어지는 8장은 이러한 주님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중요한 자세를 알려줍니다. 바로 ‘기억’입니다. 7장의 '약속'은 이제 8장의 ‘기억’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는 광야의 결핍보다 더 무서운 ‘망각’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먼저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 기억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이 건너온 지난 40년의 광야 여정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만나’에 담긴 은혜를 일깨웁니다. 만나는 단순히 그들의 배고픔을 채우는 구호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육 도구입니다. 그들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아침 들판에 내린 만나를 먹으며 이 소중한 진리를 생생하게 배웠습니다.지금 무엇으로 굶주려 계십니까? 그 모든 영혼 깊은 허기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공격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훈련이라 것을 깊이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당장 욕망을 채우는 쾌락은 우리를 살릴 수 없습니다. 잠시 즐겁고 우쭐할 뿐입니다. 금세 깊은 허무함에 시달리는 게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입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는 복음을 온 몸과 마음으로 충분히 깨달아 누리시길 바랍니다.이어서 18~19절 함께 읽겠습니다.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광야에서와 다른 적의 공격에 노출 됩니다. 바로 은혜를 잊은 결과 찾아오는 내면의 ‘교만’입니다. 배부름과 안락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라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재물 얻을 능력’은 오직 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은 철저히 언약의 결과일 뿐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이지 내 자랑거리가 결코 아닙니다.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섬길 때 하나님의 노여움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주위의 ‘다른 신들’은 무엇일까요? 본문의 흐름을 따라 적용하면, 하나님 대신 풍요를 약속하는 무언가입니다. 학벌이나 인간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친 기대를 건 투자 상품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모두가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하지는 않는지 엄중히 돌아봐야 합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 더욱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마다의 인생 가운데 신실하게 이끄시고 먹으신 은혜와 사랑을 더욱 소중히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더욱 눈부신 평강으로 돌보시고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인생의 광야길에서 날마다 만나로 먹이시는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오직 참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풍요 가운데 찾아오는 거짓과 교만을 멀리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언약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않는 온전한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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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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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7장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2026년 7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7장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찬송가 299, 301장어제 읽은 신명기 6장은 이스라엘을 향해 “들으라!”라고 외치는 ‘쉐마’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7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굳게 명심해야 할 다른 엄중한 교훈을 당부합니다. 바로 우상과 단절입니다.2~4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가나안 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복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펼쳐지는 통치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빈 땅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님의 백성은 기존에 살던 이들과 타협 없는 분리를 해야 합니다. 그들을 완전히 없앨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자녀들을 혼인 시켜서도 안 됩니다. 사실 현대인의 시선에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잔인하고 편협한 명령으로 들립니다. 따라서 그 의미를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이같은 명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피에 굶주려 가나안 원주민을 학살하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복잡한 논의를 생략하고 간략하게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주님의 단호한 강조법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라는 혼합주의에 당신의 백성이 물들지 않게 하려는 보호 장치입니다. 특히나 가정 안에 그릇된 가치관이 들어오지 않고 정결함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폭압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참으로 살리기 위한 은혜의 길입니다.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이 시대의 우상숭배를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성공을 향한 과도한 집착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돈과 권력을 움켜쥐려 눈과 귀가 멀어있지 않은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 대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바라봐야 합니다. 7~8절 함께 읽겠습니다.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의 수효가 많거나 조건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자신의 행위나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소수를 택하여 큰 민족의 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그분이 먼저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하고 돌보셨습니다. 그 절절한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이처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참으로 알게 됩니다. 따라서 자격 없는 우리를 택하여 거룩한 백성 삼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진심과 기쁨으로 온갖 우상과 거짓을 멀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아무 조건 없이 저희를 택하시고 사랑을 베푸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속 여러 우상을 과감히 물리치게 하시고, 자격 없는 자를 구원하신 주님의 손길만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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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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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6장 “하나님을 사랑하라”
2026년 7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6장 “하나님을 사랑하라” 찬송가 314, 315장오늘 새벽 함께 펼친 신명기 6장은 묘하게 지난 주일 말씀과 같은 본문입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마침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핵심인 쉐마 말씀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4, 5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 “들으라!”고 힘 있게 선포하며 온 백성의 귀를 여십니다. 그리고 곧장 주님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원어를 그대로 옮기면 “야훼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야훼’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인격을 담아낸 이름입니다. 모세는 그 야훼께서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당신 자신을 “너희 하나님”으로 내어 주신 주님께 드리는 신앙의 자연스러운 화답입니다.그렇다면 오직 하나이신 “우리 주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백성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그 답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는 〈아하브〉입니다. 신명기에 무려 스물세 번이나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단순한 감정이나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고대 세계의 조약 언어에 뿌리를 내린 사랑입니다. 고대 근동의 강대국이 봉신 국가와 언약을 맺을 때, 그들은 대왕을 ‘사랑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때 '사랑'이란 오직 한 주군을 향해 바치는 변함없는 충성과 온전한 헌신을 의미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실로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고대의 평범한 백성은 자기가 속한 신하 국가의 왕을 통해서만 대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그 질서를 완전히 뒤엎습니다. 이스라엘은 중간에 그 어떤 권력자 없이 야훼 앞에 직접 나아갑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는 사랑의 부르심이 온 백성 개개인에게 주어집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로 초대된 것입니다.주님의 백성은 구체적으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히브리어 각 단어를 살펴보면 그 뜻이 한층 선명해집니다. 마음(레바브)은 히브리어에서 인간의 사유와 의지와 정서가 함께 깃든 내면의 핵심입니다. 뜻(네페쉬)은 생명 그 자체,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 전체를 아우릅니다. 힘(메오드)은 지닌 모든 자원과 역량의 총체입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향해 그와 같은 전폭적인 사랑을 먼저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연약하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너희 하나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저주의 자리에서 홀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참으로 처절하고 고독한 희생으로 당신의 전부를 쏟아내셔서 그 사랑을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이토록 절절하게 ‘너희 하나님’이 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그 십자가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에 담긴 그 찬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그 사랑을 닮아 살아야 합니다. 온 인격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은 감정에 휩쓸린 일시적 감동이 아닙니다. 의무로 떠맡은 종교적 수행도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인정받으려는 율법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님을 향해 온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그 뜻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입니다.오늘 하루, 우리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을 삶으로 고백하며 걸어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살아계신 주 우리 하나님, 이 새벽 쉐마의 말씀 앞에 다시 섭니다. 유일하신 야훼 하나님께서 몸소 먼저 저희 하나님이 되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마음의 중심과 생명의 전부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 사랑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전부를 쏟아내신 주님의 사랑에 붙들려,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을 부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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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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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5장 “창조와 구원의 안식”
2026년 7월 1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5장 “창조와 구원의 안식” 찬송가 415, 419장십계명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삶의 원리입니다. 방대하고 복잡한 율법을 열 가지로 명확하게 정리해서 주님의 백성이 잘 명심하고 실천하게 합니다. 따라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에게 한 번 더 십계명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과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출애굽기 20장 1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하나님은 십계명 네 번째 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명령 자체는 출애굽기와 신명기가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모세기 먼저 선포한 십계명에서 안식일의 근거는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 휴식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쉼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안식은 곧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하고 충분한 쉼이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합니다. 그 의미를 안식일 규정에 담아 십계명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십계명을 다시 선포하면서 안식일의 이유를 창조에서 구원으로 바꿉니다. 15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하나님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은 안식일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가 기억을 잃고 착각해서일까요? 더 이상 창조가 중요하지 않아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가 구원으로 완성될 때 진정한 안식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잠을 줄여가며 그럴듯한 성과를 열심히 내는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낍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이벤트와 사역을 만들고 지나치게 예배를 늘립니다. 감정에 취해 많이,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신앙의 수준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십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헤아려야 합니다. 굳이 일곱 째 날에 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백성을 구하신 목적이 다름 아닌 그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었음을 명확하게 선언하셨습니다.그러므로 안식의 의미를 곱씹어 누리시길 바랍니다. 물론 나태와 태만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충분히 멈추어 쉬며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안식을 전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쉼을 뺏고 몰아붙일 때 그곳에 복음이 스며들 공간은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을 본받아 누군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지친 자녀들에게 쉼을 주시는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성과와 효율이라는 우상에 매여 자신을 채찍질하며 또 다시 이집트의 종노릇 하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책임지려던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창조와 구원 아래서 참된 쉼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웃에게 휴식을 전하는 여유와 여백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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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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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4장 27~49절 “다른 신은 없습니다.”
2026년 7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4장 27~49절 “다른 신은 없습니다.” 찬송가 93, 94장어제 말씀 드린대로 신명기는 지난 날의 경험과 함께 앞서 받은 율법을 다시 선포합니다. 이제 가나안에서 살아갈 백성의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4장 앞부분은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형상이 아닌 말씀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웁니다. 따라서 주님을 우상으로 제한하는 치명적인 죄악을 단호하게 경계해야 합니다.먼저 29~31절 함께 읽겠습니다.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처럼 가나안에서도 당신의 뜻에서 벗어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주위에 존재하는 화려한 우상의 유혹에 넘어갈 것을 충분히 예상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약속에 땅에서 쫓겨나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됩니다. 주님의 위대한 언약을 거스르는 혹독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 가운데 또 다른 소망을 발견합니다. 바로 ‘찾으면 만나시는’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은 백성의 그 어떤 잘못에도 영영 버리지 않으십니다. 때로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포로민으로 살아갔던 이스라엘 처럼 아프고 힘겨운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늘 명심해야 합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당신을 찾는 누구든 만나십니다. 아무도 예외 없습니다. 모두가 십자가의 언약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연약함과 한계를 마주할 때 더욱 주 하나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기쁨으로 맞이하실 줄 믿습니다.이어서 34~35절 함께 읽겠습니다.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모세는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조사해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당신의 언약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수행하신 거룩한 전쟁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구원을 더욱 확실히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온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나무 위에 달려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통해 처절히 보이셨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신도 보여주지 못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 가운데 우리가 죄와 죽음의 질서를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입술과 삶으로 진심을 다해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행하신 사랑을 진심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주님을 만나고자 애쓰며 나아가야 합니다. 헛된 욕망을 따라 엉뚱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걸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신실하게 이끄실 줄 믿습니다. 기도자비하신 하나님자녀들의 그 어떤 허물과 흠결에도, 주님을 찾으러 나아올 때 기꺼이 만나시는 위대한 사랑을 찬양합니다. 저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을 돌아봅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대의 온갖 우상을 물리치며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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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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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4장 1~26절 “말씀을 따르라”
2026년 7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4장 1~26절 “말씀을 따르라” 찬송가 204, 205장신명기 1~3장은 지금까지 광야 여정을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그런 다음 4장부터 시내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선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전에 레위기를 묵상하면서 나누었습니다. 구약 율법은 단순히 백성의 삶을 옥죄는 법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먼저 1, 2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다시금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말씀은 ‘생존의 근거’입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따를 때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만족 가운데 돋보이게 됩니다. 율법은 탐욕을 멀리하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됩니다.이러한 말씀을 두고 주님은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을 문자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근거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거나, 혼방 옷을 입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과 판단으로 함부로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어서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음성만 들었습니다. 눈으로는 못 보고 귀로만 들었습니다. 명백한 주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다른 우상들처럼 피조물의 형상 안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백성을 위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말씀을 즐겨 묵상하고 찬양하며 우상 숭배의 유혹을 이기게 하셨습니다.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우상을 만드는 것을 두고 16절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한한 영광을 보이는 사물로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악은 결국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예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영혼은 흐려지고 썩어가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복음을 품고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말씀이 당장 우리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신명기 시대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우상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자기 경험과 욕망의 좁은 틀로 가두는 태도와 행동입니다. 성경의 핵심인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게, 하나님을 섬기려면 당연히,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그 대신 다시금 말씀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내신 무한한 생명과 희망과 은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영혼에 생명의 향기를 불러 일으킬 줄 믿습니다.기도생명의 주인이신 아버지호렙산 불길 중에서 형상이 아닌 음성으로 임하셨던 주님의 임재를 기억합니다. 저희 마음속에 교묘히 자리 잡은 우상들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영혼의 중심에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온전한 순종으로 구별된 삶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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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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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장 “사랑이라는 해답”
2026년 7월 1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3장 “사랑이라는 해답” 찬송가 304, 310장모세는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고 율법을 선포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정작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이유입니다. 바로 민수기 20장 2~13절에 기록된 ‘므리바 사건’입니다. 목마른 백성이 몰려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분노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그 행동 때문에 준엄한 심판을 받았습니다.이 상황이 이해되십니까? 모세가 분명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랜 소원인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런 까닭에 모세는 한 참 시간이 흘러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을 향해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억울함과 원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25~26절 다함께 읽겠습니다.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모세의 마음을 쉽게 공감합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온갖 좌절을 경험하며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별거 아닌 실수 탓에 그동안의 헌신과 노력이 모두 무시당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주님을 앞으로도 더욱 신뢰해야 하는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므리바 사건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제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매우 인상적인 일을 예전에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 제가 섬긴 교회에서 성도님과 함께 모세오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 본문에 나온 므리바 사건 난제에 대해 설명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가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각자 의견을 여쭈어봤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오갔습니다. 잠시 후 평소 조용히 계시던 은퇴 권사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참 사랑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출애굽을 완성한 공로로 사람들의 지나친 열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이 되면 그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 비극을 막으시려고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신 게 아닐까요?”하나님께서 모세의 오래고 간절한 소원과 달리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한결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우상이 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반드시 깨어지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가나안 입성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적어도 이 기도만큼은 응답해 주시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 누구에게나 알게 모르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대가 크면 클수록 좌절도 깊고 쓰라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절망에 사무쳐 몸부림칠수록,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위대한 진리에 온 몸과 마음으로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법이 연약한 죄인인 우리의 생각과 다를 뿐입니다.그러므로 저마다의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더 이상 걸음을 내디딜 수 없을 때, 그 허무함과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리석은 소원을 넘어서는 진정한 은혜의 길로 신실하게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인생이라는 광야 길을 지나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흐릿하게 보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을 향해 원망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통해 나 자신과 가정과 삶을 돌아보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난제를 넘어서는 사랑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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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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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장 “이미 거둔 승리”
2026년 7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2장 “이미 거둔 승리” 찬송가 351, 357장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지나온 광야 여정을 회상합니다. 1장에서 모세는 그들이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탐꾼들의 보고에 마음이 흔들려 주님의 구원을 모독하였습니다. 그 결과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오늘 읽은 2장은 1장에 기록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행진을 보여줍니다. 먼저 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하나님께 명령하셨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세일 산을 에돔의 땅으로 분명히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광야 여정의 목적지이자 이스라엘의 거주지는 가나안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땅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곳은 과정일 뿐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주어진 땅입니다.광야를 지나는 우리 역시 명심해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물론 불합리한 처지를 억지로 참아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 이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고, 그 깊은 뜻 안에서 내게 맡기신 자리가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경계를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합니다.다음으로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이스라엘은 아르논 골짜기 건너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야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24절 보면, 그 땅을 이미 이스라엘에게 “넘겼은즉”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직 전쟁이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나중에 있을 결과입니다. 하지만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이런 경우를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벌어질 하나님의 선명한 뜻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싸우기도 전에 승리했습니다.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저주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 경험하는 현실은 너무나 어렵고 버겁습니다. 나 자신이 완전히 패배자처럼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 모습이 내 존재를 정하지 않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완성됩니다.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과 다시 사는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경험하는 모든 좌절은 참된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이러한 진리 가운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울타리를 지키고 이웃을 돌보며, 삶의 전투를 이겨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깊고 넓은 은혜 가운데 저희 삶을 이곳으로 이끄신 뜻을 높여 찬양합니다. 맡겨진 자리를 믿음으로 지키며 이웃의 사랑으로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미 거둔 승리를 마음에 품고 오늘의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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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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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장 33~46절 “먼저 그 길을 가시며”
2026년 7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1장 33~46절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찬송가 377, 379장오늘 읽은 본문에서 모세는 신명기의 서론을 끝맺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 여정을 정리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33절 함께 읽겠습니다.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장막 칠 곳을 미리 찾으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찾다’가 대조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서 찾고 발견한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공포가 백성에게 번져 결국 반역과 범죄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열하룻 길 걸리는 거리를 무려 40년이나 돌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며 그들은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매섭게만 느껴졌을 겁니다.그렇지만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주님의 숨은 은혜가 있습니다. 거친 광야 길을 그들보다 먼저 가셨습니다. 백성이 머물 ‘장막 칠 곳’ 찾으셨습니다. 무언가를 찾아 보는 인간의 눈길은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녀들의 고된 걸음을 잠시 멈 출 쉴 곳을 마련하셨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켜 보여주셨습니다. 긴 여정에서 가장 힘든 건 길이 거친 게 아닙니다. 길이 안 보이는 게 제일 공포스럽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주님은 눈에 분명히 보이는 불과 구름으로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단지 어느 방향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분명히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확히는 하나님 자신이 길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생생하게 알려 주셨습니다.저마다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가 거듭 명심해야 할 복음입니다.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연약한 우리의 눈길 또한 그 옛날 정탐꾼들과 비슷합니다. 두렵고 불안한 현실에 더욱 시선을 뺏깁니다. 내 한계와 연약함이 더 크게 보입니다. 내 앞에 있는 문제가 당장 나를 삼킬 것만 같습니다. 그 결과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으며 먼 길을 돌아갑니다.하지만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십니다. 먼저 길을 여시고 머물 곳을 알려주십니다. 이미 그렇게 은혜 가운데 지금까지 인생을 이어왔습니다. 그 돌보심이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합니다. 때마다 불과 구름으로 길을 알려 주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는 은혜를 펼쳐 보이십니다.따라서 우리는 참된 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님만이 영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늘 마음에 품어야할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길이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따르는 삶입니다. 낮아지고 섬기고 나누는 여정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을 때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물론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여전히 성령께서 불과 구름으로 신실하게 지켜 보호하시고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기도참된 길이 되신 주 하나님저희 눈길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처럼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대신 앞서 가시며 백성의 머물 곳을 찾으시는 주님의 눈길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들의 걸음을 날마다 불과 구름으로 지켜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걸음을 믿음으로 내딛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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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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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장 1~33절 “오래 머문 곳을 떠나”
2026년 7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신명기 1장 1~33절 “오래 머문 곳을 떠나” 찬송가 390, 391장오늘부터 신명기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오경을 매듭짓는 성경입니다. 동시에 여호수아에서 열왕기상하로 이어지는 역사서의 문을 엽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중요한 말씀이 정교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이스라엘이 지나온 길은 호렙산에서 출발해 세일산으로 지나, 가나안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 도착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2절은 ‘열 하룻길’이라고 기록합니다. 본래는 11일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3절에 보면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 마흔째 해에 도착했습니다. 11일과 40년, 어마어마한 간격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낳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렇게 신명기가 들려주는 경고에 우리 또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고 주님을 거스를 때 먼 길을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의 해야 합니다. 단순히 계획한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주님이 이끄시는 손길을 붙잡느냐 뿌리치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 인생을 후회와 좌절로 헛걸음 하느라 허비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어서 6절 읽겠습니다.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모세는 오래전 호렙 산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꺼냅니다. “이 산에 머문 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행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단호하게 거부하십니다. 신앙의 역동성을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호렙산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가나안으로 향해야 합니다.오늘날 우리 역시 종종 범하는 실수입니다. 과거 특별한 신앙 체험에 연연할 때가 있습니다.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목회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정 교회나 선교단체를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합니다. 그 모두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드넓은 뜻을 제한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백성으로 하여금 오래 머문 곳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이유입니다.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합니다. 익숙한 삶의 습관과 자세를 지키려 합니다. 따라서 광야를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힘겨운 과정이 우리를 참으로 새롭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여정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걸음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흔들리며 나아가는 은혜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 흔들림이 어리석은 방황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온전히 인도할 줄 믿습니다.기도저희 인생의 참된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열 하룻길이 40년으로 늘어난,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돌이켜 봅니다. 죄와 원망으로 주님 품에서 멀리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물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익숙한 삶과 신앙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을 향해 불안과 염려에도 걸음을 내딛는 믿음의 자녀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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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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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6장 “순종으로 걷는 길”
2026년 7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6장 “순종으로 걷는 길” 찬송가 430, 435장어느새 민수기 마지막 장입니다. 광야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입니다. 13절에 보면, 지금 이스라엘은 ‘요단가 모압 평지’에 모여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 준비 공간입니다. 여기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앞서 27장에서 대담하게 땅을 요구한 여인들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들의 요청으로 벌어진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3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들의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가 제비 뽑은 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요므낫세 지파 길르앗 자손의 지도자들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가족 중 남자를 모두 잃은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땅을 주는 것에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다른 지파의 남자와 결혼할 경우 가족의 토지를 잃는 걸 우려했습니다. 단순한 재산 다툼이 아닙니다. 경제 분쟁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가나안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이 보여주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근본을 지탱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경계는 무엇인가요? 돈일 수 있습니다. 혹은 힘겹게 이룬 지위와 명예일 수 있습니다. 그 모두는 당연히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토대는 아닙니다.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더욱 추해지고 망가집니다. 그 대신 주님이 저마다에게 맡긴 은혜의 울타리를 확인하고 신실하게 지켜가야 합니다.이어서 10절 읽겠습니다.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하나님께서 길르앗 자손 지도자들의 요청에 응답하시며, 요구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결혼의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같은 지파 안으로 제한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온 백성 앞에서도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저항해 부당함을 항변했던 용기를 떠올려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모습입니다. 앞서 가족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요청한 은혜의 영역에 대한 엄중함을 슬로브핫의 딸들도 동의하고 따랐습니다.이 모습은 민수기 앞부분에 기록된 온갖 반역과 절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윗세대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질서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끄신 땅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계획하신 삶의 영역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세입니다. 그 순간 이미 그들은 승리를 경험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를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뜻 앞에 잠잠히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욕망 무조건 억누르는 복종이 아닙니다. 현실 상황을 무시하는 폭압도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통해 진정 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당장 내키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내 뜻과 감정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은혜의 선물을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주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울타리를 소중히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명의 영역을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지키는 신실한 자녀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과 같은 순종을 다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에 놓여진 참된 은혜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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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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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5장 “도피성으로”
2026년 7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5장 “도피성으로” 찬송가 380, 382장어제 읽은 민수기 34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너가 살 가나안 땅의 경계를 그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거기서 모든 지파가 차별 없이 맡은 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주님 백성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들을 마련하십니다. 먼저 민수기 35장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3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이미 땅을 분배받는 다른 본문에서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에서 살 땅을 나누어 주십니다. 하지만 레위 지파는 제외입니다. 그들은 농사짓지 않고 성전에서 주님의 일을 맡아 섬깁니다. 한곳에 모여 살지 않고, 각 지파의 성읍 가운데 흩어져 지냈습니다. 막연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입니다.그런데 여기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7절에 따르면, 레위 지파의 조상 레위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곳곳에 전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를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들릴 뿐입니다. 그 모든 아픔을 은혜의 도구로 변화시키십니다.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어서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하나님은 레위인이 사는 성읍 중 6곳을 ‘도피성’으로 정하셨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복자의 손에서 보호합니다. ‘피의 보복’을 끊고 하나님의 은혜를 요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제도를 그토록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34절에 적힌 데로, 당신이 거하시는 ‘땅’이 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34절). 성경에서 땅은 단순한 자연 지형이나 부동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무분별한 피흘림은 땅을 오염시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더 이상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 존중은 곧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일입니다. 주님은 도피성을 통해 비극적인 사고에도 공동체가 생명을 보존하고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충돌하지 않도록 배려하신, 구체적인 사랑 표현입니다. 이렇게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이 완전한 자유를 얻고 집으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28절에 기록된 데로 대제사장이 죽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죄의 결과로 심판 당해야 할 우리가 온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피성이 되어주셨습니다.그러므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삶의 그 어떤 어둠과 죽음도 빛과 생명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신 구원에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이 시대의 도피성으로 살아가는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되갚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더욱 인내와 용서로 품어 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펼쳐질 줄 믿습니다.기도영원한 사랑의 주 하나님레위인들의 흩어짐은 본래 조상 야곱의 저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임재를 전하는 복으로 바꾸신 은혜를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또한 레위인들을 통해 도피성을 세우시고 그곳에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구원을 찬양합니다. 저희도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도피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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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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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4장 “거룩한 경계”
2026년 7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4장 “거룩한 경계” 찬송가 447, 449장이스라엘 광야 여정의 목적지는 가나안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득히 멀게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곧 마주할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의 경계를 민수기 34장에서 명확하게 알려주십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그리는 지도는 당신의 신실하심을 증거 하는 가장 확실한 설계도입니다.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를 직접 그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을 나눠주기 전에 그 땅의 진정한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토지는 다 내 것이라”고 주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말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의 소유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토지를 지키는 청지기입니다. 주어진 거룩한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경계가 필요합니다. 제약과 속박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울타리입니다. 물론 당연히 현실에 안주하라거나 불합리한 억압을 인정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게 맡겨진 부르심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는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이렇게 하나님은 땅의 경계라는 ‘공간’을 정하시고, 그 공간을 책임질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16~19절 함께 읽겠습니다.16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18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19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민수기 34장 후반부는 땅을 나눌 각 지파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열합니다.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질서와 공정성을 확립하시려는 하나님의 세밀한 통치 방식입니다. 명단의 순서를 주목해야 합니다. 유다 지파의 갈렙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장자였던 르우벤의 실패 이후 유다가 맡았던 지도력을 반영합니다. 이후 수백년 동안 발전한 이스라엘 체계를 드러냅니다.또한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지명하신 것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특정 개인이나 지파가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질서와 협력’을 통해 분배되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지도력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 전체를 위한 책임으로 승화됩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를 모두 거명하셨습니다. 이로써, 거대한 군대 조직 속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질서 있는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이렇게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신 경계와 그 경계 안을 채운 백성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오늘 저마다 살아갈 가정과 일터 역시 주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삶의 자리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온전히 전하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복음의 무한한 영역을 보이시고 참된 은혜를 펼쳐 보이신 예수님의 평화가 날마다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의 삶의 모든 경계를 친히 정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오늘 저희에게 주어진 환경과 사명이 하나님의 거룩한 보호 아래 있음을 고백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도 저희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의 세심한 배려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그어주신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이웃과 화평을 이루며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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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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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3장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며”
2026년 7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3장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며” 찬송가 369, 370장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33장은 이집트을 떠나 지금까지 지나온 여정을 정리합니다. 단순히 지리적 정보를 나열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출애굽 1세대가 머물렀던 죽음의 장소들을 돌아보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가나안에 건너갈 준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배반하고 죄를 짓던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저마다의 광야 여정을 지나는 우리 역시 살펴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생명의 말씀입니다. 먼저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쳐온 땅의 이름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걸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음을 분명히 깨닫고 고백하는 과정입니다. 그동안 민수기를 함께 묵상하며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끊임없는 불평과 반역으로 얼룩진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훨씬 더 컸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은 자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만을 따진다면 광야는 그들 모두 묻혀야 할 땅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에도 주님은 신실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피와 절규로 가득한 나날을 지나 마침내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또한 어둠과 죽음을 거쳐 빛과 생명으로 동행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이어서 3~4절 함께 읽겠습니다.3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4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이 모든 여정의 시작을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탈출이 아니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근거한 거룩한 군대의 승리 행진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시점을 ‘유월절 다음 날’로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행진이 어린 양의 피라는 구속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장자의 죽음으로 통곡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권능’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권능’은 단순히 물리적 힘을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죄 많은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은혜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너무나 어리석고 연약하지만 주님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내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 나를 지켜 보호하심을 진심으로 고백해야 합니다.지금까지의 지나온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늘 순탄하셨던 분은 아무도 없으실 겁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이스라엘과 궁극적으로 비슷한 궤적을 확인합니다. 아무도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나 연약해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그 모든 시간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고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가 오늘 하루도 우리 가운데 흘러 넘칠 줄 믿습니다.기도 신실하신 주 아버지모세에게 광야 여정을 기록하게 하신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봅니다. 모든게 은혜 였음을 고백합니다. 저희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지켜 보호하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의 권능만을 의지하며 남겨진 삶의 걸음을 담대히 이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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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