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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2장 “앞서 나아가다”
2026년 7월 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2장 “앞서 나아가다” 찬송가 218, 220장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32장은 요단강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땅을 요구하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갈등에 휩싸입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토지는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현실적 욕망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 사이에서 긴장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먼저 2~4절 함께 읽겠습니다.2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3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4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풍요로움은 때로 영혼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가 직면한 위기는 결핍이 아니라 ‘넉넉한 소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많은 가축 떼가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보다 재산을 지키는게 더 중요했습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고, 목축하기 좋은 동쪽 땅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철저히 경제적인 논리입니다. 모세는 그런 그들을 엄중하게 꾸짖었습니다. 두 지파의 헛된 욕심이 공동체 전체의 사기를 꺾고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사명보다 우선할 때 믿음의 여정에 큰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고를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혹시 내 ‘가축’을 지키기 위해 부르심을 무시하고 풍요 가운데 주저 앉아 있는 건 아닌 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이렇게 땅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16~17절 함께 읽겠습니다.16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17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이스라엘은 지난날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윗 세대 어른들처럼 불평을 이어가고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는 우선 요단 동쪽에 자녀들과 가축을 위해 성읍을 건축하긴 하지만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른 지파들이 땅을 모두 차지할 때까지 앞장서 나가 함께 싸우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지파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주님의 말씀 안에 하나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언약 아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단순히 이익을 나누는 것을 넘어 함께 위험을 감수하였습니다. 지난 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각 가정과 우리 정배교회가 이루어야 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이렇게 형제를 위해 목숨 걸고 앞서 싸우는 자세는 죄인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몸소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평범하고 작아 보이더라도 묵묵히 섬기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갈등을 무릅쓰고 평화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끄시고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저희 시선이 풍요를 넘어 공동체의 사명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진 재물로 말미암아 갈등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앞장서는 결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파의 경계를 넘어 이스라엘을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본받아 정배교회가 참으로 서로를 섬기고 세우는 사랑의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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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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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1장 “전쟁터에 들려온 나팔 소리”
2026년 6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1장 “전쟁터에 들려온 나팔 소리” 찬송가 351, 353장오늘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투를 기록합니다. 모세가 눈을 감기 전 하나님께서 맡기신 마지막 사명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지난날의 실패를 극복하게 하려는 주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미디안과 벌인 싸움은 단순한 보복이 아닙니다. 과거에 지었던, 남아있는 죄를 해결하고 앞으로 가나안에서 이룰 승리를 연습하는 ‘거룩한 예고편’입니다.본문 2~4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3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 여호와의 원수를 갚되 4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매이 구절의 배경은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당시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으로 무너졌습니다. 주님은 이때 일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준엄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를 참으로 회복하며 거룩한 언약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과거 해결은 곧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실패를 정리하지 않고는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이라는 희망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죄의 뿌리를 뽑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공의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님은 죄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단순한 군사 활동을 넘어 거룩한 예배로 이어집니다. 6절 함게 읽겠습니다.6 모세가 각 지파에 천 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민수기 31장에 묘사된 전쟁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전쟁의 성패가 군사력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는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그 순간 전쟁터는 또 다른 성소가 되었습니다. 살육과 혼돈의 현장이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거룩한 구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기서 ‘나팔’을 주목해야 합니다. 민수기 10장에 따르면 은나팔은 단순히 군사를 모으는 신호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신다.’는 약속의 소리입니다. 미디안과 전투 가운데 비느하스가 부는 나팔 소리를 듣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 싸움이 자신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쟁과 같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예배를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 원칙을 알려 줍니다. 바로 죄악의 과거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 두 가지를 건강하게 세워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아름답고 위대한 다스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생의 광야 여정을 흔드는 미디안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향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십니다.기도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 여정의 중요한 원칙을 발견합니다. 저희 삶의 해묵은 죄의 잔재를 청산하고 거룩한 미래를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의 미디안을 단호히 끊어내고, 삶의 전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소음이 아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나팔 소리에 귀기울이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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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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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0장 “입으로 말한 대로”
2026년 6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30장 “입으로 말한 대로” 찬송가 216, 218장어제와 그저께 읽은 민수기 28, 29장은 각종 제사에 대한 규례를 기록합니다. 절기와 제물을 어떻게 질서 정연하게 드릴지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하나님 백성은 예배를 삶의 근본원리로 여겨야 한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안겨 줍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30장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먼저 1, 2절 함께 읽겠습니다.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얼핏 엄중한 굴레로 들립니다. 사실 ‘서원’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나 신학대학교에는 본인은 내키지 않지만 부모님의 서원 때문에 억지로 입학한 학생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몹시 안타깝습니다. 서원의 참 의미를 모른 채 삭막한 명령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민수기에서 두 장에 걸쳐 풍성하게 제사와 절기에 대해 설명한 후 서원에 관해 명령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명심해야 할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며 사귐을 나눈 자녀들은 언어를 신중히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1세대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신의 말로 인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 앞에서 내뱉은 말에 신실하게 책임을 지는 ‘언어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서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대화’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받아낸 서약이 아닙니다. 강요로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감격한 성도가 자발적으로 드리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그런 까닭에 서원에 담긴 결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진지하게 실행해야 합니다.그런데 여기에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3~5절 함께 읽겠습니다.3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여기에 보면 어린 여성의 서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서원 내용을 허락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입니다. 오늘날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광야 생활을 하는 가족 공동체 상황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서원은 단지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척박한 여정을 함께 하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서원을 신중히 다루시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다 이행하라”는 말씀 앞에 모두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누구도 완벽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 엄중한 명령의 기초는 우리의 의지가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깨어진 서약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 선명한 증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언어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공허한 말들을 함부로 내뱉진 않았는지 살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진실한 고백을 기도로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랑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하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저희 입술의 무게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말을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신실하심을 닮아가길 원합니다. 저희는 연약하여 완벽히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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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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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9장 “나팔 소리에”
2026년 6월 2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9장 “나팔 소리에” 찬송가 446, 447장민수기는 크게 1~25장과 26~36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불순종으로 광야에서 쓰러져 간 출애굽 1세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죽음의 행진’입니다. 반면에 뒷부분은 가나안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를 위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질서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어제 읽은 28장부터 제사, 즉 예배에 대한 거룩한 규칙을 설명합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은혜의 물결로 이어지는 각종 제사를 기록합니다. 29장도 계속해 제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일곱째 달 첫날에 거룩하게 모이는 절기를 언급합니다. 이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합니다. 이때를 알리는 신호를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나팔’입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심판’에서 ‘인도’로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이전 세대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죄로 가득한 그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준엄하게 벌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가나안에게 들어갈, 새로운 세대를 향해 들려오는 나팔 소리는 더 이상 위험의 경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앞길을 직접 이끄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나팔 소리로 선포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백성에게 사랑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주님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무셨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소망의 시대가 열렸다는 복된 소식을 나팔 소리가 알려줍니다.이어서 29~31절 함께 읽겠습니다.29 여섯째 날에는 수송아지 여덟 마리와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네 마리를 드릴 것이며 30 그 소제와 전제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할 것이며 31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라민수기 29장 전체에 제사 때 드릴 제물 목록이 상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백성은 제사 드리며 제물의 정확한 숫자를 헤아립니다. 숫양이 열네 마리가 맞는지, 소제 드리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잘 섞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야로 대표되는 무질서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질서를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제물을 확인하며 그들의 시간과 소유 전체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다른 우상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은 제물의 값어치를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각 형편대로 제물의 종류를 다르게 하도록 배려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드리는 제사는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인간의 감정과 편의를 내려놓고 차분히 당신께 나아오길 바라십니다.이렇게 민수기 29장은 인생의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큰 울림을 안겨 줍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특히나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의 소음으로 지칠 때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광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임재를 건강한 균형 가운데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질서정연한 일상으로 높여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을 주님께서 온전히 이끄실 줄 믿습니다. 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거룩한 나팔 소리로 백성의 영혼을 깨우신 것처럼, 이 새벽 저희 마음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밀한 제물 규례 속에 담긴 주님의 질서를 따르길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 저희 모든 시간과 물질이 오직 주님의 거룩한 다스림 아래 있게 하소서. 희망과 순종으로 채우는 복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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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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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8장 “거룩한 삶의 리듬”
2026년 6월 2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8장 “거룩한 삶의 리듬” 찬송가 42, 43장어제 읽은 민수기 27장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보인 용기를 기록합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히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항변하였습니다. 27장 뒷부분에는 모세의 뒤를 잇는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모두는 가나안으로 들어가 살아갈 사람들, 출애굽 2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어지는 민수기 28장은 그런 그들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을 거듭 강조합니다. 바로 제사, 즉 예배입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하나님은 "내 헌물, 내 음식,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제사는 인간이 주님께 무엇을 드리는 공로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인 시간과 물질을 주님께 되돌려 드리는 고백입니다. 이를 통해 주님과 참된 관계와 거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무겁고 엄중한 굴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건강한 정체성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각종 우상 속에서 주님을 온전히 붙잡고 살아가게 하는 선물입니다. 진정한 생존 전략이자 삶의 질서를 바로 잡는 거룩한 기초입니다. 이러한 뜻 아래서 민수기 28장은 여러 제사들을 나열합니다. 그런데 그 순서가 인상적입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드리는 제사로 점점 넓혀 갑니다. 먼저 3~8절은 “일년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드리는 ‘상번제’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 마리는 해가 뜰 때, 다른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립니다. 즉 하루 전체를 주님께 바치는 의미입니다.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의 삶은 매일의 성실한 예배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물론 우리가 구약 시대처럼 제사를 드리진 않습니다. 다만 매일 일상 가운데 꾸준히 하나님을 높이시는 습관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렇게 모인 새벽기도회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거창하진 않더라도 한결 같이 주님의 사랑을 품고 경배하는, 저마다의 시간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예배의 삶이 우리를 건강히 일으켜 세울 줄 믿습니다.이렇게 매일 드리는 상번제를 바탕으로 매주 안식일, 매월 초하루에 번제를 드립니다. 이러한 제사를 통해 시간의 리듬이 확장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월절 제사에 이릅니다. 16~18절 함께 읽겠습니다.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은 과거 사건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루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구원을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주님께서 행하실 은혜를 소망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삶은 매일, 매주, 매월의 제사를 거쳐 일년의 한 번 성회로 모이고 휴식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능력의 손길을 높여 찬양하는 예배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습니다.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주일 예배 그리고 성탄절과 부활절을 중심으로 한 교회력을 따릅니다. 그러한 시간의 물결을 통해 지난날 이미 경험했고, 지금 누리고 있으며 앞으로 이루어갈, 바로 나를 향한 구원을 생생하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예배 가운데 진심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매일과 매주, 그리고 매달과 매해의 시간의 흐름을 거쳐 일생동안 참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백성에게 예배의 질서를 세우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간 드리는 기도가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상번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물질과 생명이 모두 주님의 것임을 명심하며, 맡겨진 소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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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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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7장 “담대한 기도”
2026년 6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7장 “담대한 기도” 찬송가 365, 369장어제 읽은 민수기 26장은 두 번째 인구 조사를 기록합니다. 그 목적은 가나안 땅 분배입니다. 각 지파와 가문이 농사지을 땅을 나누는 과정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27장은 매우 도발적인 내용을 보여 줍니다.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 지파의 자손들 중 슬로브핫의 딸 다섯 명이 모세와 제사장 앞에 찾아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을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3 “우리 아버지는 광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여호와께 맞서 모였던 고라흐 무리에 들지는 않았고, 자신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4 아들이 없다고 아버지 이름을 가문 가운데서 빼내려 하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아버지가 차지했던 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아버지 형제분들 가운데 머물게 해 주십시오.”토지를 나누기 위한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는 남성 중심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나 아들, 혹은 남자 형제가 없는 여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삶의 기반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민수기 26장 1~2절에 따르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되었습니다.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기준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소는 모세가 혼자 있는 집무실이 아닙니다. 본문 27장 2절에 따르면 그곳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인 회막문 앞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7절 함께 읽겠습니다.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하나님은 불쾌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기도에 경청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수정하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오류를 인정하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처럼 말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장면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흔드는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시는 말씀과 행동은 역동적으로 달라집니다. 그 대상이 너무나 연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까이 다가오시며 당신을 낮추시는 주님의 모습은 시시각각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당돌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점잔을 빼면서 고상한 모습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마다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가장 치열한 문제들, 내면을 갉아 먹는 제일 힘겨운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안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과감히 그리고 솔직하게 토로해야 합니다. 담대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도에 귀 기울이시어, 우리 삶을 참으로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이 드리는 어떤 기도에도 언제나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저마다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를 주님께서 그 누구보다 잘 아실 줄 믿습니다. 험난한 아픔과 시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당돌한 기도를 드린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우리 역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전한 응답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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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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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6장 “인구 조사와 제비 뽑기”
2026년 6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6장 “인구 조사와 제비 뽑기” 찬송가 440, 442장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민수기”의 제목은 ‘백성의 숫자를 센 기록’이라는 의미입니다. 민수기의 시작인 1장부터 나오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러한 인구 조사가 오늘 읽은 26장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 자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 즉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지리라" 하신 약속이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출애굽 직후 실시했던,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인구 조사 결과는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 시행한 2차 조사의 결과는 601,730명입니다. 숫자로는 미세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온 후 바로 다음 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의 구원을 모독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출애굽 첫 번째 세대를 모두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광야 여정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숫자를 거의 비슷하게 지켜 주셨습니다.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광야의 척박함도 주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영영 버려진 것 같은 싸늘한 심판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사랑 마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고 지켜 가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두 번째 인구 조사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가나안 땅 분배입니다. 53~55절 함께 읽겠습니다.53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55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과 배려를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은 머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따라서 농사 지을 땅을 잘 나누는 게 민족 전체의 운명이 걸린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원칙으로 토지를 분배해야 합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인구 비례’와 ‘제비 뽑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키십니다. 땅의 크기는 사람 숫자로, 위치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셨습니다.우선 54절에 보면 인구 조사 결과에 따라 지파별 땅의 크기를 정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은 지파가 무리하게 좁은 땅에 사는 불편함을 이해하셨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적은 지파가 지나치게 넓은 땅을 받았을 때, 주변 지파의 시기심을 헤아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위치는 제비뽑기로 정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판단과 필요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일깨우는 은혜의 장치입니다. 삶의 현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다스림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셨습니다.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질서와 균형의 하나님입니다. 자녀들의 일상을 보살피십니다. 연약한 인간이 감당 못 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십니다. 고단한 형편을 배려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준엄한 다스림을 펼쳐 보이십니다.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사명을 보이십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복음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짊어지셨습니다.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아픈 몸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오르시어 당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오늘 하루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마치 제비뽑기로 받은 마음에 들지 않는 땅처럼, 당황스럽고 불편한 부르심을 묵묵히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인생의 여정을 거쳐 하나님의 아름다운 언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새 희망을 열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셨음에도 백성을 지켜 보호하신 은혜의 손길을 높여 찬양합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더욱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나안 땅을 나눌 때에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시며 동시에 제비를 뽑게 하신 균형과 조화를 깨닫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동시에 현실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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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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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5장 “하나님의 질투”
2026년 6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5장 “하나님의 질투” 찬송가 435, 436장민수기 22~24장은 모압 왕 발락과 주술사 발람의 이야기를 길게 기록합니다. 권력자가 큰 돈을 들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그 누구도 감히 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존귀한 백성인지 분명히 드러납니다.하지만 이어지는 25장은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욕망 앞에 이스라엘이 몹시 연약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렀을 때, 거기에 사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였습니다. 단순히 평범한 성인 남녀의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우 문란하고 방탕한, 성적 타락을 뜻합니다. 이러한 범죄는 단순히 성윤리만 무너뜨린게 아닙니다. 2절에 따르면 우상숭배로 이어졌습니다. 자기에게 쾌락을 안겨주는 여인들에 손에 끌려 이스라엘의 많은 남성이 모압의 신에게 절하고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몹시 진노 하십니다.얼핏 이런 장면이 오늘 우리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성범죄와 노골적인 우상숭배를 할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타락의 본질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아닌 것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는 실체를 분별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듣던 대로 주일 아침에 하는 TV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강력한 돈의 마성과 끊임없이 목마르게 하는 명예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모압 여인이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이 반복하는 죄악에 분노한 하나님은 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전염병이 퍼졌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충격에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 때,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 ‘시므리’라는 사람이 ‘고스비’라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죄가 지니는 무서운 속성을 확인합니다. 몹쓸 병이 돌아 사람들이 신음하고, 주님 앞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할 뿐입니다. 이런 끔찍한 죄악을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대신해 처단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질투’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신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단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이스라엘이 우상에게 마음을 뺏긴 모습이 격렬히 질투를 느끼셨습니다. 비느하스는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범죄한 사람들을 단호하게 처단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격정적으로 뛰는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진리를 확인합니다.따라서 오늘 본문에 담긴 엄숙한 심판의 뒷면에 있는 주님의 은혜를 거듭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화를 내며 죄를 벌하시려는 모습의 바탕에는 그만큼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지 벌을 피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벌벌 떨기만 한다면 그건 건강한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그 전에 주님의 드넓은 사랑을 먼저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에 반응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사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따스한 사랑으로 품으실 줄 믿습니다.기도참 사랑의 주 하나님어느샌가 주위를 둘러싼 모압 여인들을 발견합니다. 죄악으로 유혹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경배하게 하려는 탐욕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저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살아가며 복음의 길을 걷는 신실한 자녀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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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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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4장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2026년 6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4장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찬송가 383, 384장민수기 22장과 23장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모압 왕 발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주술사 발람은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에 두려워 하였습니다. 발락의 기대와 달리 도리어 이스라엘을 향해 축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발락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발람에게 저주를 요구했습니다. 오늘 읽은 24장은 세 번째 제단을 쌓은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여줍니다. 이때, 브올산 꼭대기에 선 발람의 시선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분명 저주를 위해 고용된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광야의 먼지 속에 흩어진 무리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5, 6절 함께 읽겠습니다.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발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치 물 가의 백향목 같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은 전혀 아닙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 이곳저곳을 돌며 너무나 지친 상태입니다. 지금과 같은 목욕이나 미용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험한 여정을 지나며 땀과 먼지로 얼룩진 몰골입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그들을 향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람의 찬탄은 단지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겉모습 때문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편과 상황과 무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가득히 비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비루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었기에 물가의 나무들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무려 세 번이나 축복을 쏟아내는 발람에게 결국 모압왕 발락은 크게 분노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사로잡힌 발람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여기서 발람은 훗날 이스라엘에게서 나올 한 별과 한 지팡이를 언급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별은 광야에서 죽어가는 구세대가 아니라 약속의 땅에 발을 내디딜 새로운 백성을 향해 떠오르는 희망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계속해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숨을 거두는 심판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신실하신 구원을 마침내 이루십니다. 단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이룰 자손들을 향해 이루실 놀라운 계획을 선언하였습니다.우리 역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안에 있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별이자 지팡이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는 참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위한 찬란한 뜻을 펼치고 기어이 완성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보낼 하루는 그 구원을 향한 소중한 과정입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자녀로 빚어가시는 손길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신실한 품 안에 안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은혜로우신 주 하나님사람들이 비웃더라도, 심지어 스스로 자신을 초라하게 여길 지라도, 그런 저희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아름답게 세워 가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찬란한 별과 지팡이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오늘 저희를 위한 신실한 언약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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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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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3장 “진실하신 하나님”
2026년 6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3장 “진실하신 하나님” 찬송가 413, 419장어제 읽은 민수기 22장은 이스라엘이 자기들 땅을 침범하자 두려워하는 모압 왕 발락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인정받는 주술사인 발람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합니다. 발람은 망설임 끝에 결국 발락에게로 향합니다. 발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신앙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만큼 단호하고 엄중하게 발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23장은 그 다음에 일어난 장면을 보여줍니다. 모압 왕 발락으로서는 몹시 기대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렵게 모신 발람이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를 퍼붓길 기대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제단을 마련하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엉뚱한 소리를 외칩니다. 7, 8절 함께 읽겠습니다.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권력자의 어떤 치밀한 계획도 결국 하나님의 뜻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발람을 붙잡은 주님의 다스림을 함부로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사람을 결코 세상이 저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지 않은 사람을 악인이 꾸짖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이 시대 진정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악한 사람들의 공격을 당합니다. 심장을 흔들리게 하는 악담을 듣기도 합니다. 지치고 주눅 들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그 어떤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더욱 담대하시길 소망합니다. 예상과 다른 발람의 예언에 발락은 당황해 합니다. 화를 내며 다른 곳으로 옮겨 두 번째 제단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드러난 주님의 성품을 주목해야 합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하나님은 거짓말 하지 않으십니다. 관련해서 민수기 1장에 기록된 인구 조사를 떠올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별과 모래와 같은 자손”이 생생히 이루어진 결과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겪은 수많은 좌절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분명히 이루셨습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 진실한 사랑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안에 놀라운 은혜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가장 위대한 복음입니다. 이런 진리는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세상의 거짓을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시련에 무너지지 마시길 바랍니다.그 대신, 오늘 하루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마음에 품고 참 평화를 누리고 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진실한 언약의 주 하나님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저희를 날마다 지켜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저주와 악담도 결코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참되신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광야 같은 인생 길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팔에 안겨 참된 쉼과 위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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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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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2장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2026년 6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2장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찬송가 198, 200장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있었던 매우 흥미로운 사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분명 고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 외부의 침략 등 괴롭고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22장은 이스라엘 역시 주변 다른 나라들에게 상당한 위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입니다. 모압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많은 무리의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침략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압 왕 발락은 특단의 대처를 마련합니다.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발락은 모압 지역의 가장 유명한 점술가인 발람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옛날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술을 하는 사람에게 막강한 권위를 부여하였습니다. 모압 왕으로서는 최선의 조치였습니다.점술가 발람은 갈등을 느낍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그가 결코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모압 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은 신하들을 보내 발람을 설득합니다. 실갱이가 이어지다가 발람은 그들과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납니다. 하지만 다음날 신비로운 일을 겪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가 발람을 가로 막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전날 주님의 말씀과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정답을 파악하긴 힘들지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술사 발람을 모압 왕 발락에게로 보내신 이유는 그가 당신의 올바른 말씀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발람은 겉으로는 순종하면서도 속에는 모압이 제시한 금은보화에 눈이 멀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그의 본심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발람이 보지 못한, 칼을 든 천사를 그가 탄 나귀가 알아보고 피하려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을 다친 발람이 나귀를 죽이려 하자 천사가 가로막는 동화같은 상황을 거쳐 마침내 모압 왕에게 도착했습니다. 성대하게 자기를 맞아주는 발락에게 발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모압 왕이 화려한 보화를 제시하며 주술사를 부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가 신의 권위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말을 그가 대신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만을 선포하겠다고 합니다. 발람에게 대단한 결심과 의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발람의 다짐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따른다면,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본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호흡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루하루 일상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말씀을 맡은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분노와 저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늘 하루, 주어진 소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만유의 주 하나님공포에 싸여 누군가를 향해 저주를 쏟아부으려는 모압 왕 발락에게서 저희를 발견합니다. 용서와 사랑 보다는 소리 높여 악담을 외치려는 연약함을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거듭 명령하신대로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영혼 깊이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이신 참 사랑이 입술과 삶을 통해 흘러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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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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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1장 “쳐다본즉 살더라”
2026년 6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1장 “쳐다본즉 살더라” 찬송가 252, 254장민수기 20장은 미리암과 아론의 죽음이라는 출애굽 1세대의 죽음을 보여줍니다. 그 혼란의 시기 갈증으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은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자체를 부정하며 악담을 내뱉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는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지팡이를 휘둘러 반석을 쳤습니다. 그 결과 물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모세에게 가나안 진입이 금지 되는 엄중한 심판이 내려졌습니다.이어지는, 오늘 함께 읽은 21장은 앞에 펼쳐졌던 이스라엘의 갈등과 혼돈을 바탕으로 합니다. 먼저 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이 아닙니다. 단지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훈련하고 다듬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돌아가게 하신 바탕에는 분명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으로 세워가시는 중요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편하게 머무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떠나 이동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는 당장의 감정과 욕구가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질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원망을 쏟아내며 은혜로 주신 양식인 ‘만나’를 두고 ‘하찮은 음식’이라고 폭언을 내뱉었습니다.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험한 길을 돌아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에 이르는 엉뚱한 길로 등 떠밀어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게 하찮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이끄시어 만나로 먹이심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뱀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은 곧바로 회개하였습니다. 주님은 백성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살릴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8~9절 함께 읽겠습니다.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하나님이 제시하신 해결책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담긴 주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선 시선을 높이 하늘에 두게 하셨습니다. 눈길을 땅에만 두고 지금 내 문제에만 골몰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올려다 보며 하나님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복잡한 고행이 아닌, 그 단순한 순종으로 그들을 고치시고 회복하셨습니다.때로 불뱀에 물린 순간이 찾아옵니다. 거친 인생 길에 후회와 상처로 몸부림 치곤 합니다. 그때, 하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정확하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 눈길의 차이가 삶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탄식하며 당신을 우러러보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저희 모든 인생이 주님께서 선하게 이끄시는 구원 여정임을 고백합니다. 때로 원하지 않는 길로 돌아갈 때 원망을 쏟아내는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눈길을 하늘에 두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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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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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장 “말씀을 거스를 때”
2026년 6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20장 “말씀을 거스를 때” 찬송가 212, 213장민수기 20장은 한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미리암입니다. 단순히 모세의 누나인 것을 넘어서는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여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4절에 보면 아론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역시 단지 모세의 형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막중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물론 둘 다 흠결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출애굽 1세대를 이끈 든든한 기둥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본문은 이러한 세대교체 시기 밀어닥친 혼란을 보여줍니다. 4, 5절 함께 읽겠습니다.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이스라엘은 갈증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광야를 지날 때 물이 부족하다면 불평을 쏟아낼 겁니다. 문제는 악담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에 답긴 하나님의 은혜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끄시는 광야를 ‘나쁜 곳’이라고 폄하 했습니다.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두고 푸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끄시고 돌보신 주님의 섭리 자체를 무시하는 악담을 쏟아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는 우연이 아닙니다. 고난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런데 모세 역시 평정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해서 물이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뿜어져 나온 결과는 같습니다. 사실 모세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닙니다. 그냥 반석을 향해 외치나, 지팡이를 휘두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행동의 깊은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의 능력을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마치 자신의 지팡이에서 나오는 ‘마술’로 전락시켰습니다. 홍해를 가를 때 그리고 아말렉과 전투에서 이길 때를 비롯해 출애굽 여정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는 위기 가운데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자기 감정과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준엄한 심판 선고를 받았습니다.이러한 모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공격을 당할 때, 사방으로부터 우겨 싸임을 당할 때 누군가의 참 인격과 신앙이 드러납니다. 그때 모세처럼 섣불리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혹은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잘못된 방법으로 나를 높이고자 해서도 안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발걸음을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타는 목마름에, 억울한 원성에 지나치게 마음 상하고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신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를 때 진리의 맑은 생수가 우리 영혼을 적실 줄 믿습니다.기도생명의 근원이신 주 하나님살아가며 극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여러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느낍니다. 신음이 어리석은 원망을 거쳐 악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잠잠히 말씀에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헛된 감정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십자가 복음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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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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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9장 “정결하게 하는 손길”
2026년 6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9장 “정결하게 하는 손길” 찬송가 250, 251장현대사회는 ‘죽음’을 사람들로부터 멀리 치워둡니다. 시체를 가까이하는 것은 가족이 숨을 거두었을 때, 장의사가 말끔하게 수습한 다음입니다. 시신은 영안실을 거쳐 화장터 혹은 묘지로 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평생 몇 번 겪기 힘든 사건입니다. 하지만 옛날 서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나 척박한 광야를 지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숨을 거둔 이들을 위한 장례를 수시로 경험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시체를 멀리해야 합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칠일 동안 더러운 상태라는 선언을 듣습니다.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지극히 가까운 현실을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신을 만진 건 단순한 위생 관념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비상 상황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죽음이 진영 내부로 침투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차단하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영원히 부정하다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에 담긴 율법의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을 깨끗하게 다시 회복하십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정결하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을 새롭게 하는 은혜의 통로를 건네십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시신으로 더럽혀진 사람에게,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섞은 물을 뿌립니다. 그가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으면 그날 저녁에 정결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정결한 사람’입니다. 더러운 사람은 또 다른 부정한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깨끗한 사람만이 더럽혀진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회복의 손길을 내밀 수 없습니다.예수님이 그러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잠깐은 율법 기준으로 정결하다고 판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러저러한 죽음의 현실 가운데 부정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다릅니다. 영원히 정결하십니다. 그렇기에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습니다.내 연약함과 부정함을 겸손히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그런 우리를 구하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고 숨을 거두신 놀라운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깊고 깊은 절망에서 일으켜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신다는 진리를 마음 깊이 품어야 합니다.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과 가정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마치 시체와 같은 악취를 풍기는 모든 악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주위를 생명으로 물들이시길 바랍니다. 어둠에 사무친 이들에게 은혜의 손길을 건네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하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품으시어 죽음을 넘어 참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때때로 저희는 죽음을 가까이 합니다. 탐욕이 썩은 악취를 풍깁니다. 분노로 누군가를 노려봅니다. 불평으로 주위를 어지럽힙니다. 그런 저희를 위해 아무런 죄 없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위대한 복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은혜를 힘입어, 어둠에 둘러싸인 이들에게 생명의 손길을 건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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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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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8장 “소금 언약”
2026년 6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민수기 18장 “소금 언약” 찬송가 393, 397장오늘 함께 읽은 민수기 18장은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응답입니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죽어가는 구세대’와 ‘소망의 신세대’ 사이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반역으로 얼룩진 구세대는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8장의 ‘거룩한 질서’를 통해 살아남은 신세대가 더 이상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선 성소의 거룩함을 지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를 명확하게 구분하셨습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2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섬기며 백성의 죄를 담당합니다. 나머지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제사장들을 도와 일을 합니다. 제사장들과 달리 지성소의 기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얼핏 차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에는 동시에 책임의 무게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한쪽이 우월한 게 아닙니다. 각자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오늘날 교회에 구약의 직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중요한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각자 맡은 사명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목회자로 다른 누군가는 항존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교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맡은 봉사도 각각 다릅니다. 이를 두고 시기하거나 경계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각각 부르심의 자리와 책임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소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거룩하게 부름받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는 다른 지파들과 다른, 치명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나안에서 땅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땅이 없다는 것은 경제적 생존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더 놀랍고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19절 함께 읽겠습니다.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옛 서아시아 사람들에게 소금은 단순히 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는 시대에 음식이 썩지 않게 보존하는 매우 중요한 재료입니다. 땅은 가뭄이나 메뚜기 떼나 전쟁으로 언제든지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금 언약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줄”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위해 제사를 통해 직접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토지’를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아무런 재산 없이 이상만을 좇아 살라는 뜻도 전혀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모으는 것 자체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삶을 이끄는 궁극적인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참된 소금 언약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사랑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놓은 현실에 넘어지지 않고 새롭게 일어날 힘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우리를, 주님께서 소금과 같은 은혜로 지켜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신실하신 주 하나님.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은 차별이 아닌, 각자 소중한 소명임을 깨닫습니다. 맡겨진 사명이 클수록 책임 또한 무거움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역할을 남들과 어리석게 비교하지 않고 충실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언약으로 오늘 하루도 지켜 돌보심을 고백합니다. 때로 삶이 지치고 흔들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에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 희망으로 굳게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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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