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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1장 “주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2026-07-28
새벽 묵상

2026년 7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신명기 11장 “주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찬송가 382, 383장


며칠전 함께 읽은 신명기 10장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 사랑의 실천으로 나그네를 먹이고 입히라고 명령합니다. 그들 또한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비참하고 힘겨웠던 순간이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11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임하는 공간인, 가나안 땅에 대해 말씀합니다.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모세는 이스라엘이 떠나온 이집트 땅과 앞으로 들어가 살 가나안 땅을 대조합니다. 둘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풍부한 물을 끌어올려 나라 곳곳에 물길을 설치했습니다. 역사적인 문명의 바탕입니다. 반면 가나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입니다. 물을 풍부하게 모아두기 어렵습니다. 몹시 살기 불편합니다. 늘 불확실함과 불안함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모든 한계가 오히려 가나안 땅을 복되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겸손히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해해서 적용하시면 안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중요한 삶의 도구입니다. 성실히 일해 모은 돈을 저축하는 게 나쁜게 아닙니다. 부유함 자체를 정죄해서도 아닙니다. 반대로 궁핍한 삶을 억지로 좋은 것처럼 꾸며내서도 안 됩니다. 가난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재물을 추구하는 것의 위험을 깨닫고 경계해야 합니다. 돈에 인생을 걸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소유를 손에 쥐고 다스리심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임하는 궁극적인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의 눈”입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즉 언제나 주님의 눈이 그 땅에 함께 있습니다. 비를 흡수할 수 없어 물을 충분히 모을 수 없는 땅입니다. 이집트에서처럼 풍요롭게 살 수 없습니다. 때로 갈증과 가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행복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언제나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나안은 낙원이 아닙니다. 주님의 눈길이 기적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 흉년이 찾아오고 외적이 침입합니다. 그 외에도 온갖 아픔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언제나 살펴보시기에 그 모든 삶의 고난이 마침내 은혜의 결실을 맺습니다. 가나안이 진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시선이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른 새벽에서 밤 늦게까지, 주일에서 토요일까지, 매월 첫날부터 월말까지, 그리고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언제나 사랑으로 자녀들을 지켜 돌보십니다. 다만 그 사랑법이 연약한 우리의 기대와 어긋날 뿐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눈을 들어 주님과 시선을 맞추시길 바랍니다. 가나안은 더 이상 중동 특정 지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이 참된 가나안입니다. 우리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을 주님이 지켜보십니다. 온갖 눈물과 아픔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합당한 은혜로 날마다 이끄십니다. 그 눈길을 믿음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따스한 은혜로 가득하신 주 하나님.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나아갑니다. 비를 흡수하는 땅을 살아갑니다. 무작정 많이 움켜쥐려는 탐욕과 불안을 내려놓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봅니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인생길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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