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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장 “주님의 길로”
2026년 3월 1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3장 “주님의 길로” 찬송가 440, 442장그저께 읽은 출애굽기 32장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조급해진 백성들은 아론을 재촉해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론은 금을 모아 녹여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는 그 금송아지를 가리켜, 다른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한 야훼 하나님이라고 부른데 있습니다. 십계명 제2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심각한 범죄였습니다.오늘 읽은 33장은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두 차례나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슬퍼하면서 어느 누구도 장신구로 꾸미지 않았습니다. 근신하며 반성하였습니다.모세가 선택한 방법은 회막입니다. 정확히는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진 중앙에 있는, 법궤를 모시는 성막과 별개로 진 밖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9~11절 함께 읽겠습니다.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자 구름 기둥이 내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온 백성이 지켜보며 일어나 경배하였습니다.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임재입니다. 단지 지도자 모세 한 사람의 권위를 내세우는 장면이 아닙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당신의 계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여기서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관계 가운데 주님께 요청합니다. 13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13 이제 제가 정말 주님 눈에 든다면, 주님의 길을 제게 꼭 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제가 주님을 알아보고서 계속 주님 눈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이 겨레는 주님의 백성입니다.”모세의 요청은 분명합니다. 바로 “주님의 길”입니다. 막막한 광야 여정 가운데 가장 소중한 진리입니다. 동시에 지난 황금 송아지 사건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치명적인 무지입니다. 그들은 혼란과 공포 가운데 하나님의 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어리석은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우리 또한 저마다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다. 황량한 여정을 지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특별한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신비한 느낌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쌓아가는 꾸준한 교제입니다.그런 만남이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알려주실 줄 믿습니다. 때로 앞이 보이지 않고, 잘못된 길로 빠진 것 같고, 되돌아 가야할 것만 같은 답답한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죄악에서 구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 하루도 가장 합당한 길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기도자녀들과 친밀한 사귐을 이루시는 하나님모세가 회막에서 주님을 만나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 또한 날마다 하나님과 따뜻한 사귐을 이루기 원합니다. 온전한 묵상과 기도 가운데 주님의 길을 깨달아 알길 소망합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 길에서 어리석은 조급함과 욕심을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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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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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장 “금 송아지를 깨뜨리며”
2026년 3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2장 “금 송아지를 깨뜨리며” 찬송가 321, 322장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수백년간 대를 거쳐 익숙하게 살았던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낯선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광야 여정을 지나는 중입니다. 모든게 낯설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강력한 지도자 모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는 감감 무소식입니다. 처음 며칠간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떠올리며 진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공백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백성들은 점점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결국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에게 찾아갑니다.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든 위기 가운데 진면목을 드러냅니디. 블행히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아론은 금 귀고리를 모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본문 4절 함께 읽겠습니다.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이 장면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몹시 격노하신 끔찍한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을 제시한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종교를 믿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황금 송아지를 가리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야훼 하나님입니다. 관련해서 십계명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 제2계명이 적힌 출애굽기 20장 4절 읽어 드리겠습니다.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여기서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금지하신 우상은 무엇일까요? 시간 관계상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마침 지난 수요일에 말씀 드렸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주변 나라 종교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나무나 돌로 형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외입니다. 어떤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시내 산 밑에 남겨진 백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드신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몹시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우상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유한한 틀 안으로 제한했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의 뜻을 좁은 형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철저히 부정하는 심각한 우상 숭배입니다.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간의 얕은 생각으로 만유의 주님을 제한하지 않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진리는 교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경건은 형식에 갇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낯설게 대해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익숙한 편견을 내려놓고 광대하신 하나님의 복음 앞에 항복해야 합니다.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가 죄인을 향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생생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붙잡고, 내 인생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분명히 다짐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을 물리친 하나님의 생생한 의지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알게 모르게 내가 만든 금송아지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둬둔 우상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무한히 넓은 사랑으로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기도만유의 주 하나님한낱 금 송아지로 주님의 영광을 제한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들을 통해 저희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틀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가두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광대하신 주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하시며 드넓은 진리를 품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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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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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장 “안식을 지키라”
2026년 3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1장 “안식을 지키라” 찬송가 337, 338장오늘 본문을 묵상하기 전에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를 벗어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성소와 성막과 제사장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평소 일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회막의 각종 기구를 정교하게 만든 브살렐과 오홀리합에 대한 기록이 출애굽기 31장 11절까지 이어집니다.그런 다음 성막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요한 내용을 하나님은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그들이 지켜야 할 여러 규칙 중 하나가 아닙니다.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이러한 안식일을 통해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7절 읽겠습니다.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사실상 13절을 반복하는 구절입니다. 종종 설명 드린대로 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 낭독하는 걸 귀로 듣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배려하기 위해 중요한 내용을 살짝 바꾸어서 반복해 외쳤습니다. 1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 날 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육일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휴식을 취하셨을까요? 사람들처럼 피곤하셨기 때문일까요? 기운을 차리려 그러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창조의 원리를 분명히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마침 지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주라는 성전의 중심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주님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고 섬겨야 합니다. 이러한 소명에 응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이 바로 안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을 설명하는 본문의 기록은 무척 냉혹합니다. 안식일에 일을 해서 이날을 더럽힌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주의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강조법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식을 강조하실까요?안식이라는 일상 속 여백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폭력적인 욕망을 향해 맹렬히 내달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제도가 정착되기 전 힘을 가진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했습니다. 상대가 적절한 휴식과 쉼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몰아 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억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옥죄기도 합니다. 내가 달리고 손을 뻗은 만큼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걸 움켜쥘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무모한 열정으로 자기를 무너뜨리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내어주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능력과 지식만을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저주와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쉼을 누리고 그분의 뜻을 묵상할 때 우리를 살리는 참된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 길 속에 하나님과 관계가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안식의 여백을 이루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안식의 주 하나님백성들을 향해 안식을 거듭 명령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저마다의 욕망을 따라 굵은 붓으로 인생을 그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쉼을 지키길 다짐합니다. 저희를 향해 주님께서 그려가실 여백을 비우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삶 속에 구체적으로 임하시는 손길을 기대하며 안식의 여정을 이어가길 소망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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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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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0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위하여”
2026년 3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0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위하여” 찬송가 287, 288장출애굽기 30장은 성막과 제사와 관련한 여러 규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설교하기에는 좀 난감합니다. 하나로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 마음에 담을 몇 가지 내용을 다시 찾아보며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먼저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11~16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불해야 할 성전 속전에 대해 언급합니다. 새한글 성경은 좀 더 직관적으로 “목숨값”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0세 이상 성인 남성은 1/2세겔을 바쳐야 합니다. 이 돈을 통해 성막을 유지하고 제사를 진행하는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돈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쉽게 잊히는 진리입니다.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물질을 항상 기적적으로 채우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의도하신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적지만 마음을 모아 헌금하여 그 헌금을 통해 실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담임 목사로서 이번 기회에 조금 부담스러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로 헌금입니다.저는 성도님들의 생활에 무리가 될 정도로, 마음이 힘들 정도로 헌금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혹시 그런 분 계시다면 적극 돌려드릴 겁니다. 동시에 교회가 건강하고 생기있게 운영되도록 꾸준한 헌금 생활을 당부 드립니다. 물론 투명한 재정 운영이 그 전제입니다. 이를 위해 더욱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다음으로 37~38절 읽겠습니다.37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38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34~38절은 성막 안에서 피우는 향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좀 낯설 수 있지만 동방 정교회나 성공회 등 다른 교파에서는 예배 가운데 적절히 향을 사용합니다. 그 근거가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후각으로 경험하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전인적인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에 피울 향을 조제하는 상세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여러 향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서 만든 후에 증거궤 앞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향이 “지극히 거룩하다.”라고 엄중하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단호하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는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분명 하나님께 바쳐야 할 향이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맡고 싶어서 향을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냄새를 맡으려고” 만드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심판을 선포 하셨습니다. 자칫 별것 아닌 것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을 두고, 다른 죄악 못지 않게 무게를 실어서 말씀 하셨습니다.우리 또한 가만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만족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봉사와 섬김이 주님을 향하기 보다는 자기 만족은 아닌지 되 짚어 봐야 합니다. 물론 너무 겁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만족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태만보다 낫기도 합니다. 다만 헌신의 방향을 다시금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는 순전한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그런 우리 모두에게 오늘도 주님께서 아름다운 향기로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아름다운 임재로 날마다 함께 하시는 주 하나님성막에 관한 여러 규정 중 속전과 거룩한 향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회막 봉사를 위해 이스라엘 성인 남자 모두가 속전을 드린 모습을 발견합니다. 저희의 헌금 생활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정하신 균형을 이루는 헌신을 예물에 담길 소망합니다. 거룩한 향기를 사람이 맡기 위해 만들지 말라는 경고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영광을 가로채지 않게 하시고, 항상 자신을 살펴 겸손히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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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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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9장 “주님께 드리는 향기”
2026년 3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9장 “주님께 드리는 향기” 찬송가 213, 214장오늘 읽은 29장은 제사장을 세우는 절차를 기록합니다. 그 핵심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백성을 위해 제사를 집례하는 그들은 우선 자신들을 위해 제사합니다. 이를 통해 제상의 핵심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제물을 태운 연기입니다. 25절 다시 한번 더 읽겠습니다.25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번제는 제물을 다 태우는 제사입니다. 구약 제사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입니다. 번제를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부릅니다. 흥미롭게 우리말과 비슷하게 “올라가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성전 제단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제물을 태운 연기가 하나님의 코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번제의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행위보다 그 제사를 주님께서 받는 게 더 중요합니다. 방금 읽은 25절을 보면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부분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화제”입니다. 주님께서 향기롭게 맡으시는, 제물을 태운 연기입니다. 정확하게 제물 가운데 불사르는 부분 또는 그것을 태우는 제사 방법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제물이 구분되는 걸 발견합니다. 제물 중에서 태워서 올라가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몫인 ‘화제’가 있고 나머지 제사장과 백성의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부분을 사람들이 가져가면 안 됩니다. 거룩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를 명심하며 매우 신중하게 주의해야 합니다.그런데 화목제의 경우 제물에서 태우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물 드린 사람이 온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서 고기를 나눠 먹습니다. 사람들 입장에서 유익이 큽니다. 반면에 모두 타서 연기가 되는 ‘화제’는 눈 앞에 사라집니다. 당장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 눈에 보이고 입에 들어가는, 태우지 않고 사람들이 먹는 고기와 다 태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 중 무엇이 중요할까요? 두말할 것 없이 불로 태워진 제물이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코에 향기로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제사의 본질입니다. 제사 드리는 백성이 거듭 유념해야 할 진리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습니다. 당장은 배를 채우는 고기가 좋아 보입니다. 사실 자연스럽습니다. 분명 의미가 있고 그 역시 거룩한 제사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제사를 통해 더욱 본질적인 가치를 확인합니다.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건 보이지 않는 연기입니다.우리가 예배 가운데 거듭 고백해야 할 복음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당장 눈 앞의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런 본능을 억지로 누르라는 말도 아닙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상의 모든 삶은 거룩하고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눈부신 가치를 지닙니다. 아끼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이 여기에서만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 다는 진리를 마음 깊이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품고 때때로 바보같이 져주고 참고 손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탐욕에 흔들려 맹목적으로 내달리지 않고 미련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까닭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렇게 하셨습니다. 화려한 왕관이 아닌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시어 우리를 이 시대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습니다.오늘 하루 맡겨진 소명에 응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참 진리를 살아내고 전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저희 삶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주님께서 제사 중에 기쁨으로 맡으시는 향기는 금세 사라지는 연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당장 눈 앞의 현실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저희 삶이 주님 앞에 온전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참된 복음을 그윽한 향기로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3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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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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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8장 “맨발의 제사장”
2026년 3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8장 “맨발의 제사장” 찬송가 420, 421장출애굽기 28장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 어떤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옷은 전부 일곱 가지입니다. 숫자 7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옷의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제사장의 옷에 관련한 율법이 무척 까다롭게 많이 적혀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사장 의복은 화려한 패션이 아닙니다. 멋지게 꾸며내기 위해 입는 옷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게 목적입니다. 제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사장은 자기 모습을 감추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관련하여 오늘날 목회자들이 예배를 집례할 때 가운을 입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목사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중세 가톨릭 시대 때 지나치게 화려했던 사제의 의복 대신 검소한 의복으로 바꾼게 시작입니다. 가운을 입지 않고 정장을 입게 되면 자칫 목회자의 정장과 넥타이 등에 시선을 뺏겨 예배에 방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가운을 안 입는 목사님들의 의도를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기회에 개혁교회 예배 전통에 따라 예배의 경건을 위해 가운을 입는 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관련해서 주목할 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사장 의복에 관해 온갖 규정을 세세하게 정했습니다. 심지어 속옷에 대한 기록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하며 꼭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건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바로 신발이나 양말입니다. 제사장은 맨발로 제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멋지게 꾸미려고 했다면 화려하고 멋진 신발을 신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굳이 불편하고 초라하게 맨발로 서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사람들 눈에 보기에 몹시 이상합니다. 마치 누군가 창피를 주기 위해 벌을 세운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발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의복과 장식구를 착용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사장의 의복이 보여주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제사장이 옷에 착용한 각종 보석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지 자기를 포장하는게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는 사실입니다.이렇게 오늘 본문이 기록하는 제사장 복장 규정은 얼핏 지금 우리와 크게 관련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성막 대신 교회에 와서,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섬길 소명을 받았습니다.그러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까요? 권위를 내세우고 화려하게 꾸미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주위 사람을 위해 맨발로 서야 합니다. 땅의 거친 질감을 느껴야 합니다. 발 위로 덮쳐오는 열기와 냉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놀라운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시대 가장 낮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온갖 핍박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셨습니다.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오늘 하루도 맨발의 제사장으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거룩하신 주 하나님저희를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인도할 때 입을 옷의 상세한 규정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아무런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제사장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본받아 맨발의 소명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2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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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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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2026년 3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찬송가 430, 433장시내산에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출애굽기 25장부터 그들에게 성막과 각종 기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증거궤’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혹은 ‘법궤’라고도 부릅니다. 흔들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려주며 용기를 불어넣는 게 증거궤입니다. 증거궤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이자 생생하게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입니다.시내산의 하나님 체험은 세월이 지나면 과거로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붙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이 산에서 내려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이 머물 성막을 마련하고, 그 성막 안에 주님이 특별히 계실 특정한 장소인 증거궤를 준비했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와 돌판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 광야 길에서 주님께서 함께 하신 은혜를 상징합니다.법궤는 조각목, 즉 나무로 만들고 겉은 순금으로 둘러쌌습니다. 옆면에는 금고리를 만들어 붙여서 채를 끼워 운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동 가능한 상태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광야 여정 중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한 곳에만 고정적으로 머무르며 사람에게 ‘보러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과 함께 다니시며 삶에 임재하기를 원하셨습니다.증거궤의 핵심은 덮개입니다. 20~22절 읽겠습니다.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법궤 위를 덮는 뚜껑을 가리켜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그곳을 두 천사가 날개를 높이 펼쳐 덮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속죄소에 앉아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증거궤 덕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영 한가운데 있는 성막에서 더불어 거하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의 척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믿었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증거궤를 모셔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장막입니다. 원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끔 대제사장만 허락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막았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가 드러났습니다.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의 고정된 장소에서 몇 백년 동안 계시던 하나님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우리를 만나셨습니다.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를 떠돌던 성막에 있던 증거궤가 시간이 흘러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머물렀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분명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어 당신의 인격으로 증거궤라는 물건을 대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을 더욱더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인간의 지식과 느낌과 상관없이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인생의 광야 여정을 신실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동행하는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날마다 사랑으로 저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증거궤 위 속죄소에 임재하셨듯이 성령님께서 지금도 저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경험과 느낌을 넘어서는 주님의 임재를 항상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27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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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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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4장 “어떤 식사”
2026년 3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4장 “어떤 식사” 찬송가 446, 447장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번과 달리 모세 혼자만이 아닙니다.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장로 70명도 같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하는 것은 모세 혼자입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물론이고 백성을 대표하는 많은 장로를 당신 곁으로 이끄셨습니다.그러자 모세는 백성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3절과 7절은 이때 이스라엘이 반복한 외침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입니다. 출애굽 여정을 시작하며 광야를 지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말씀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루는 다짐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는 백성에게 거듭 깨우쳐 주었습니다.그런 다음 모세는 장로들과 함께 시내산에 오릅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10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뵈었다. 그분의 발아래는 사파이어 타일을 깔아 놓은 것 같았고 맑은 하늘과 똑같았다. 11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치려고 그의 손을 펼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뵙는 가운데 먹고 마셨다.상상만 해도 너무 황홀한 광경입니다. 마치 사파이어로 만든 타일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푸른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사모하는 광경입니다. 동시에 떠올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정작 하나님과 마주한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감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주님의 존재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11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라는 말에는 이와 같은 보편적인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본래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구약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방금 읽은 데로 모세와 동행한 무리는 하나님을 뵙는 가운데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식사 교제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확인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별명을 아십니까? “먹보에 술꾼”입니다.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식욕이 많으셔서 허기를 채우시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 밥상에 함께 둘러 앉은 사람들입니다. 지위와 평판과 무관하게 차별 없이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식탁에 막중한 의미를 부여했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경악스런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통한 나눔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성찬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스한 식탁으로 죄인을 부르시고 먹이십니다. 그렇게 받은 초대를 주위와 나누길 바라십니다. 친숙하고 내게 도움을 줄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웃, 싸늘한 냉대를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온기를 전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자리가 눈부신 청옥이 깔린, 주님이 임재하시는 현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사랑으로 다가오시어 만찬을 여시는 하나님시내산 위에 오른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잔치를 여신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함께 하신 숱한 식탁을 마음에 새깁니다. 정배교회 예배가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격적인 초대를 감사로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따뜻한 나눔과 섬김을 본받아 실천하는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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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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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3장 “우리도 그들처럼”
2026년 3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3장 “우리도 그들처럼” 찬송가 295, 298장어제 본문인, 22장 2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구절이 오늘 읽은 23장에도 나옵니다. 9절 함께 읽겠습니다.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거의 비슷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반복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돌보아야 할 가장 소중한 이웃이 있습니다. 바로 “이방 나그네”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게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만이 아니라 모세 오경 전반에 걸쳐 여러 곳에서 이를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이방인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심지어 오경을 넘어 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핵심인 레위기 19장은 이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레위기 19장 33~34절,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33 너희 땅에서 나그네가 너와 함께 머물러 살고 있을 때, 그를 억누르지 마라. 34너희와 함께 나그네로 살고 있는 사람을 너희 가운데 있는 토박이처럼 여기고, 너 자신처럼 사랑해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는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다.우리가 쉽게 지나치지만 율법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을 매우 엄중하게 가르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난민 문제를 통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이방인들은 철저한 약자입니다. 심각한 무력함과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이들을 보호하라는 성경 말씀은 단지 윤리와 복지 차원이 아닙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또한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유념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과거 경험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사회에 가장 천대 받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늘 명심하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최고 랍비를 역임한, 세계적인 율법학자 조너선 색스의 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너희도 한때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에 나그네의 마음을 잘 안다. 너희가 인간이라면, 그들도 인간이다. 그들이 인간보다 못하다면, 너희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때 너희를 대신하여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이자 가장 강력한 제국과 싸웠던 것처럼, 너희도 마음속의 증오심과 싸워야 한다. 나는 너희를 세상의 전형적인 나그네로 만들어서 너희가 나그네의 권리를 위해 싸우게 했다. 너희 자신의 권리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위해 말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누구든, 피부색이나 문화의 결합이 어떻든, 그들이 너희의 형상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듯,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충분히 강력한 답은 단 하나뿐이다. 왜 이방인을 미워하지 말아야 할까? 그 이방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성경의 가장 핵심 위치에서 왜 거듭 이방인을 사랑하고 돌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그네로 상징되는, 가장 약하고 초라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지를 선명히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오늘 하루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 모양의 나그네들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너무 부담 갖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보다 낮은 지위에 있고 어린 사람을 대할 때 조금 더 배려하시길 바랍니다. 식당이나 카페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기도나그네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이방인 신세였던 시절을 기억하듯이, 저희가 본래 연약한 죄인이었음을 돌아봅니다. 죽음에서 구하시고 자녀 삼으신 놀라운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곁에 있는 외롭고 지친 이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감싸안는 따뜻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며 전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2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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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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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2장 “율법의 세심한 손길”
2026년 3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2장 “율법의 세심한 손길” 찬송가 299, 300장“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잘 드러납니다. 며칠간 함께 읽었듯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온 우주를 가득 채욱 하나님의 꿈이 장엄하게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삶의 구체적인 순간 속에 함께 하십니다. 율법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막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이루어야 할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몸에 익혀야 할 삶의 언어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법의 형태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본문에서 확인합니다. 26~27절 함께 읽겠습니다.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을 발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경제 거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빌리고, 담보로 옷을 맡기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현실적인 경제 활동을 금지하지 않으십니다. 무작정 손해 보고 베풀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자연스런 금전 거래를 인정하십니다.다만 나의 돈을 빌리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라고 강조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의 겉옷은 전재산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는 외투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외모를 치장하는 패션이 아닙니다. 밤에 잘 때는 싸늘한 광야의 추위를 막아줄 이불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가 겉옷을 맡기면서까지 돈을 빌렸다면 그만큼 가난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어 밤이슬을 피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언급을 덧붙입니다. 27절 후반부를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줄 것이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선포하신 야훼 하나님은 이 땅에서 멀리 떨어져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밤새 부르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십니다. 그 고통과 설움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것은 또한 말씀을 받아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명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장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주님은 자녀들이 하루하루 맞이하는 현실을 존중하십니다.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고결한 존재로 살수 없습니다. 생을 이어가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여러 거래를 합니다. 그러다보면 때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다투기도 합니다. 치졸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자연스럽고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와 마주 보는 사람들 역시 주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겪는 삶의 여러 어려움에 공감해야 합니다. 특히나 마치 옷 한 벌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지경에 놓인,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주목 하십니다. 이를 명심하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주님의 마음과 뜻을 세심하게 헤아리며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디테일에, 세심한 손길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따뜻한 얼굴로 세상을 비추시는 하나님율법을 선포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담으시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무궁한 영광이 인생의 단면에 고루 스미고 있음을 믿습니다. 외롭고 아픈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탄식을 들으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저희의 신앙 또한 가장 구체적인 배려와 섬김으로 피어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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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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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1장 “참으로 자유로운 종”
2026년 3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1장 “참으로 자유로운 종” 찬송가 212, 213장어떤 나라가 성숙하고 발전했는지 그렇지 않은 지를 파악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는 ‘노예’가 있는 지 여부입니다. 인권을 박탈 당하고 가혹한 학대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분명 병들었습니다. 따라서 노예, 혹은 종 이라는 존재는 오늘날 우리 기준에서는 당연히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옛 사회에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예가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노동을 전담하는 계층이 사라진다면 나라 안의 여러 곳이 삐걱거리게 됩니다. 커다란 혼란에 직면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새롭게 나라를 일굴 이스라엘에게 닥친 곤란한 모순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러하였듯 사람들을 함부로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금지하는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예 자체가 없는 건 현실적으로 곤란합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제시해 주십니다. 부득이 종을 고용할 수 밖에 없는 필요는 인정하시되, 그 종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본문 2, 3절 함께 읽겠습니다.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같은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부릴 경우를 가정합니다. 그가 6년간 일했다면 일곱째 해에는 이유를 묻지 않고 풀어줘야 합니다. 종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계급 사회나 노예의 아내 또한 노예입니다. 칠년 째 해에 노예 부부 두 사람을 한꺼번에 풀어준다면 주인으로서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럼에도 좋아줘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 구하신 하나님의 해방을 백성들이 실천하는 제도입니다.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자녀를 낳은 경우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와 자녀들을 두고 아버지 혼자만 떠나야 합니다. 만약 가족과 함께 하길 원한다면 그대로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관련 절차를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5~6절 함께 읽겠습니다.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여기서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종이 자유를 포기하고 남아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상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화 농장에서 채찍질 당하던, 미국 흑인 노예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날 회사의 좋은 상사 혹은 사장님과 비슷합니다. 고용관계이지만 신뢰를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굳이 독립할 필요 없이 계속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종도 사랑하는 주인 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길 원했습니다.그럴 경우 종의 주인은 재판장의 보증 아래 종의 귀를 송곳으로 뚫습니다. 자신의 종이 되었다는, 몸에 새긴 선명한 상징입니다. 주인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드러내는 분명한 증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이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노예입니다. 진실로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종입니다.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지 않고 몸소 상처 입으시고 죽기까지 죽음에서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깊이 복음의 흔적을 새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섬김의 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모든 인생을 주관하실 줄 믿습니다.기도저희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억압으로 가득한 현실 가운데 해방의 길을 열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가운데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인을 사랑한 종이 송곳으로 귀를 뚫어 상처를 남기듯 저희 영혼에도 십자가의 흔적을 새기길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하는 것이 참된 자유인의 삶이라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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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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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사랑의 규칙”
2026년 3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20장 “사랑의 규칙” 찬송가 435, 438장어제 읽은 19장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께 언약을 받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지금까지 출애굽기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각종 율법 조항이 나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딱딱한 규칙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근본 바탕을 주목해야 합니다. 2절 함께 읽겠습니다.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스스로 소개하십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그들이 종살이 하던 이집트 땅에서 구하고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 즉 ‘야훼’라는 당신의 인격이 ‘너의 하나님’이라는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뜻합니다. 단순하지만 매우 깊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율법의 존재 목적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까닭은 싸늘한 굴레로 사람들의 목을 조르려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에게 이루신 구원의 의미를 거듭 곱씹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 안에 속해 있음을 깨닫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정신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무엇보다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출애굽기가 소개하는 첫 번째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핵심을 담은 삶의 원칙입니다. 첫 계명인 3절 함께 읽겠습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십니다. 주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신의 모양을 한 여러 허상이 있을 뿐입니다. 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은 때로 주님 대신에 돈과 권력을 숭배하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나머지 계명들처럼 우상을 만들지 않고, 주님의 이름에 담긴 인격을 높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의 날을 지킬 수 있습니다.십계명은 하나님과 관계된 종교 개념만 나열하지 않습니다. 삶의 구체적인 규칙도 나머지 여섯 개 계명에 넣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인 17절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17 이웃의 집을 넘보지 마라. 이웃의 아내든, 남자 노예든 여자 노예든, 소든 나귀든, 이웃의 것은 무엇이라도 넘보지 마라.앞서 나오는 부모 공경, 살인 금지, 간음 금지, 도둑질 금지, 거짓 증언 금지, 이들 계명은 모두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마지막을 장식하는 열 번째 계명은 ‘시기심’, 즉 내면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와 관련한, 영국 최고 랍비 조너선 색스의 해석을 저는 동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모든 죄의 시작인,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남들이 지닌 것을 부러워하고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오늘 내가 누리는 소소한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최선을 주셨습니다. 지금 서 있는 위치, 주위를 둘러싼 환경, 곁에 있는 사람들. 이 모든 게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참으로 자녀답게 자라가게 하시는 은혜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물론 당장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오고 원망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걸 선으로 바꾸십니다.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오직 나를 위한 찬란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자녀들에게 사랑을 담아 열 가지 계명을 말씀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길 구합니다. 주님 외에 다른 허상을 물리치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에서 주신 놀라운 은총을 고백하는 성숙한 믿음을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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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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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장 “선물 받은 정체성”
2026년 3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9장 “선물 받은 정체성”출애굽기는 놀라운 구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최강의 군대와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수백년 간 노예로 있었던 백성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신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얼마나 헛된 존재인지를 폭로하셨습니다. 그 결과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습니다.너무나 흥미진진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된 이유입니다. 출애굽 여정에 참여한 백성들 역시 흥분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물론 광야 길은 험난합니다. 하지만 감격에 겨워 이집트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기대와 소망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본질에서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자기들의 욕망으로 하나님의 뜻을 덮을 위험이 많습니다.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릅니다. 출애굽의 이유와 목적을 정확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언약이 선포된 산의 이름을 따서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4~6절 함께 읽겠습니다.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사실을 생생한 표현으로 알려주십니다. “애굽 사람에게 행한 일”과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신 것입니다. 결국 둘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집트에서 고난 받던 백성을 전적인 은혜로 구하신 손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억압과 폭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주님은 그런 당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 시킵니다. 세계가 모두 주님께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 아닙니다.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집트를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구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무언가 하실 일이 있으셨습니다. 그러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이 꿈꾸신 뜻과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온 우주 가운데 구별된 민족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분명 하고자 하실 일들을, 이 세상 속에 이루길 바라시는 사명을 앞서 감당할 존재입니다. 오래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온전히 회복하고 완성하는 꿈을 이룰 사람들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져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만을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새로운, 참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비록 홍해를 건너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또 다른 독수리 날개 위에 올라탔습니다.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소명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온 세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연히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룰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하루도 부르심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시내산 자락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모세를 올라오게 하신 장면을 읽었습니다. 그들과 맺은 위대한 언약을 저희 마음에도 새깁니다. 저희가 누구이며, 왜 구원을 받았는지를 늘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긍심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소유이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한 삶으로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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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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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8장 “크신 하나님”
2026년 2월 2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8장 “크신 하나님” 찬송가 79, 80장마침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때 반가운 얼굴이 모세 앞에 나타납니다. 바로 장인 이드로입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과 광야의 여러 위험을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노출 시킬 수 없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처가에 맡겼습니다. 상황이 안정되자 가족들이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모세는 장인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드로는 그 모든 큰 은혜에 놀라며 이렇게 찬송합니다. 10~11절 함께 읽겠습니다.10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이드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지신, 야훼 주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이드로는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신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자기가 지금껏 섬겨왔던 다른 우상을 비롯한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을 마주하였습니다.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드로가 그 전까지 지녀왔던 종교를 완전히 버렸을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온전히 받아들였을까요? 성경에서 그런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방금 읽은 11절을 봐도 그는 야훼 하나님을 여러 신들 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길 뿐 유일신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그런 이드로를 대하는 모세의 태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억지로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라고 해서 장인의 말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24~26절 함께 읽겠습니다.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26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사위 모세가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던 이드로는 값진 조언을 건넵니다. 백성 가운데 능력과 인격을 갖춘 일꾼을 세우라고 권합니다. 그들을 적절히 조직하여 모세가 지나치게 많은 일에 얽메이지 말고 지도자로서 가장 본질적인 업무에 충실하라는 권면입니다. 이를 통해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라고 해서 직통계시에 의존해 얼렁뚱땅 일을 처리하는게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조직 운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또한 모세가 이방 종교 제사장인 장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소중한 지혜를 발견합니다. 바로 열린 태도와 경청입니다. 당연히 진리의 순수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을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혼합주의와 다원주의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드로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듯이 우리도 귀를 넓게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님의 손길은 무한히 넓은 우주를 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은 종교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넘어섭니다. 따라서 편협한 시각을 내려놓고 세상 속을 자유롭게 거니시길 바랍니다. 교회 밖을 향해 시선을 두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소중히 여기면서 동서양의 여러 고전과 사상에도 관심을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만남과 나눔을 통해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더욱 풍성히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본을 보인대로 교회와 세상, 진리와 상식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개인과 가족과 교회를 더욱 건강히 가꾸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광대하신 주 하나님이방 제사장 이드로의 입술에서 주님을 향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크고 위대하신 은혜와 구원을 높여 찬양합니다.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건강한 상식과 지혜를 갖추기 원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견고하게 지키면서도 교회 밖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슬기롭고 건강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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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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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2026년 2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찬송가 354, 357장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감격적인 출애굽 이후 힘겨운 광야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마라의 쓴물과 굶주림을 겪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 1~7절에는 목마름으로 인한 갈등을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 고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쟁입니다. 그전에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실제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야만적인 순간입니다. 게다가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단순히 군대와 군대의 대결이 아닙니다. 신(神)과 신의 싸움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처음으로 치르는 이방 민족과의 전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목숨을 걸고 창과 칼을 움켜쥐는 상황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맡겨진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전투 현장으로 향합니다. 바로 산꼭대기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루실 놀라운 구원을 확연히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모세는 모든 혼돈을 헤치고, 처참한 현실을 넘어 지팡이를 치켜들었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아말렉 군대를 강력히 제압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지팡이를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곧 피로감을 느낍니다. 두 팔이 부들거렸습니다. 차츰 팔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 이스라엘의 기세도 조금씩 꺾이기 시작합니다. 동행했던 아론과 훌이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돌을 가져와 모세가 그 위에 편하게 앉게 했습니다. 양쪽에서 각각 모세의 손을 하나씩 붙잡아 올렸습니다. 덕분에 모세는 해가 질 때까지 양팔을 치켜들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이날 모세의 행동을 주술적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마법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본질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날, 전쟁터에서 하나님께서 무얼 하셨는지, 그걸 통해 백성들에게 확고하게 알려주고자 한 진리가 무엇인지, 또한 그 진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 답을 알아가기 위해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모세는 아말렉과 싸워 감격스러운 승리를 거둔 후 제단을 쌓고 예배했습니다. 그런 다음 ‘야훼 닛시’라는,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은 나의 깃발’이라고 뜻입니다. 깃발은 혼란한 전투상황 속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병사들이 응시해야 할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인생의 전투 속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눈길을 고정해야합니다.‘야훼 닛시’ 하나님은 그렇게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신실하게 함께하십니다. 때때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고된 전투에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깃발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응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 말씀 따라 참된 승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루어 나가길 축원합니다.기도‘야훼 닛시’, 나의 깃발이신 주 하나님주님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광야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패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의 현실이 너무나 쓰라립니다. 비참합니다. 아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처절한 전쟁터에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진정한 승리의 길로 이끄셨음을 믿습니다.그 믿음 따라 행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듬고 역사의 비극에 희생당한 이들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승리의 허상을 물리치고 진정한 승리를 진리 가운데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십자가에서 구원 깃발을 펼쳐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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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