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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6장 “원망의 방향”
2026년 2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6장 “원망의 방향” 찬송가 242, 246장출애굽기 15장 앞부분은 홍해를 건넌 감격을 찬양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쓴 물을 마시고 금세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물을 단물로 바꾸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합니다. 금세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원인은 먹을거리였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고기와 떡을 그리워했습니다. 제국의 풍요가 안겨준 부스러기를 추억하였습니다. 사실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광야의 척박한 환경에서 부실한 먹을거리를 먹으면 누구나 당연히 화려한 음식을 그리워합니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자체를 후회하고 원망했습니다. 애초에 이렇게 나올게 아닌데 괜히 모세가 자기들을 구해내어 배고파 죽을 지경에 몰아놓았다고 투덜 거렸습니다. 광야의 자유보다 제국의 억압을 더 높게 평가하였습니다.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이집트의 우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낫다는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약속합니다. 바로 메추라기와 만나입니다. 메추라기는 시나이 반도 일대를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하나님은 저녁에 바람을 통해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메추라기 고기를 먹으며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이슬처럼 만나를 내리시어 탄수화물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먹이셨다고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주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8절 함께 읽겠습니다.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하나님은 백성의 원망에 반응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고기와 떡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냉정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백성의 원망이 단지 그들 눈 앞에 있는 지도자들에게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토대를 부정한 불신앙입니다.살아가며 누구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특히나 고된 광야 여정을 지나며 굶주림을 겪을 때 너무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그 자체를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삶의 근본적인 신뢰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악에서 구하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된 걸음 끝에 마침내 다다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오늘도 또다른 만나와 메추라기로 우리를 먹이시고 이끄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건네시는 사랑의 손길로 말미암아 불평을 덜어내고 다시금 힘차게 인생의 여정을 이어가시길 축원합니다.기도날마다 사랑으로 먹이시는 하나님인생의 고된 여정을 지나며 원망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님의 사랑과 구원 자체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광야를 덮은 메추라기와 만나와 같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며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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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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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5장 “치료하시는 주님”
2026년 2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5장 “치료하시는 주님” 찬송가 285, 286장마침내 낯선 여정을 떠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놓인 상황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성경이 기록한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거대한 이집트 제국이 몰락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위대한 구원 한복판에 있던 이스라엘은 주님께 찬양 드렸습니다.하지만 잠깐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자마자 낙원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광야를 걸었습니다. 삼일동안 무겁게 걸음을 옮기며 타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겨우 샘물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이때, 이스라엘 백성의 감정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애쓰고 노력해서 이집트를 탈출한 게 아닙니다. 전적인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런 다음 메마른 광야로 내 던져졌습니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비록 노예로 살았으나 적어도 먹을 것은 풍족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덥고 거친 길을 떠돌며 노예만도 못한 힘겨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그들을 과연 누가 함부로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과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25절 함께 읽겠습니다.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이스라엘의 거센 원성을 들은 지도자 모세는 주님께 해결책을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한 나무를 가리키며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독성이 사라지고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가리키다.’입니다. 흥미롭게도 가리키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라>는 ‘가르치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를 “한 나무를 가르치시니”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어떤 나무를 가리키고 가르치신 것은 단순히 쓴물을 고치시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백성이 불평하는, 눈 앞에 있는 원인을 고치시려는 뜻이 아닙니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라는 교훈입니다. 관련해서 이어지는 26절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26절 함께 읽겠습니다.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하나님은 율법을 지킨 백성에게 이집트 사람이 앓았던 질병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당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특히나 심각한 병으로 신음하고 있거나 그런 가족을 곁에 두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동시에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다시금 유념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막 광야로 나섰습니다. 수백년간 대대로 익숙하게 살아왔던 화려한 이집트 제국을 떠났습니다. 전혀 다른 황량한 땅을 떠돌며 지내야 합니다. 무척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마라를 지납니다. 쉴 새 없이 쓴물을 마십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씀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백성은 굳게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진정 치료하십니다. 몸과 마음의 가장 깊은 목마름을 말씀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광야 여정 전체를 아우르는 복음입니다.오늘도 우리는 광야를 향해 나아갑니다. 어떤 모래 바람이 덮칠지 모릅니다. 어떤 곤충의 독에 쏘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기에 누구나 다치고 베이고 쓴물을 들이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잠잠히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안에 담긴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품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말씀인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붙잡고 담대하게 걸음을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광야를 지나는 백성을 마라를 거쳐 엘림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로 목을 축이고 그늘에 쉬게 하시는 그 주님은 우리의 치료자 이시기 때문입니다.기도치료하시는 주님하루하루, 저마다의 광야 길을 지나는 자녀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마라의 쓴물에 괴로워하고 원망하는 저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스스로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 선언하시는 주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합니다.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지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치유를 누리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말씀이 몸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치유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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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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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4장 “구원을 보라”
2026년 2월 2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4장 “구원을 보라” 찬송가 484, 486장노예들이 사라진 제국에는 황량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집트 궁궐 안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 땅을 벗어났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순간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대로 끝낼 수 없습니다. 위대한 제국이 노예들과 그들의 신에 의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파라오는 최정예 부대를 소집하였습니다. 특별하게 제작한 병거 육백대를 포함해 온 나라의 병거와 장교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마침 이스라엘 백성의 앞은 홍해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속임수로 제국을 기만했는 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압승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명예를 회복하고 파라오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이 상황을 이스라엘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요? 그들 역시 파라오의 판단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현실 인식입니다.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에는 당대 최신 무기들이 살기를 품고 맹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거칠게 요동하는 말 발굽 소리에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을 쏟아냅니다. 대체 뭐 하러 우리를 구해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13~14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앞서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자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주님께서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파라오가 마음을 바꾸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쫓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홍해가 갈라진 이적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28~29절 읽겠습니다.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거칠게 넘실거리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던 바다가 힘을 잃고 갈라졌습니다. 그 사이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넜습니다. 파라오가 그토록 자랑했던 군대는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승리를 자신하며 오만했던 그들이 오히려 물살에 파묻혀 사라졌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이 어떠한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는 방법은 원래 있던 길을 넓히는 게 아닙니다. 기대했던 탄탄대로로 이끄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절망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사망을 코 앞에 둔, 어둠 그 자체로 몰아 붙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너무나 무심하게 보입니다. 가혹하고 잔인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 스스로 철저한 고립 속에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깊고 깊은 절망에 휘감겨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죽음을 가르고 길을 내셨습니다. 악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할 참 승리와 희망의 명료한 상징을 보여주셨습니다.우리 역시 홍해 바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뒤에는 이집트 병거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모든 게 다 끝난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잠잠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바다를 가르십니다. 기도참되신 구원의 주 하나님오늘도 홍해 앞에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채 그저 두려워 떨며 눈물만 흘립니다. 그런 저희를 향한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히 주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다를 가르시는 권능의 오른팔을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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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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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3장 “먼 길을 나서며”
2026년 2월 1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3장 “먼 길을 나서며” 찬송가 430, 433장출애굽 여정을 나선 이스라엘은 또 다른 민족적 과업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파라오와 이집트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새로운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향해 기대를 거는 수많은 백성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낙관 혹은 비관입니다. 이제 그들이 누릴 자유와 언젠가 다다를 가나안 땅의 풍요를 언급하며 그들의 가슴을 더욱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제 광야에서 헤쳐가야 할 난관을 경고하며 백성의 마음가짐을 강하게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영역을 언급합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모세는 가나안 땅에서 처음 얻은 짐승의 첫 새끼를 바치는 예식을 알려줍니다. 열 번째 재앙 때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재앙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거듭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바로 신앙 전수입니다. 자녀들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거듭 일깨워야 합니다. 이미 앞서 12장에서 유월절 규례를 정하며 분명히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자유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를 이어 함께 기억하는 교육입니다. 여기에 담긴 심오한 진리를 1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새한글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17 파라오가 백성을 내보내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땅을 거쳐 가는 길로 이끌지 않으셨다. 그 길이 가깝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전쟁에 말려들면 나온 것을 후회하여 이집트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하시고 지름길로 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에 휘말려 후회하며 이집트로 되돌아갈 것을 우려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백성이 흔들릴 겨를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심을 견고하게 세우면 되지 않으실까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굳센 용기로 사로잡으면 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지 않으시고 왜 그들의 연약함 그대로 내버려 두시며 긴 시간을 돌아가게 하셨을까요?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 본성에 개입하지 않고 긴 시간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당신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고 배반할 권한까지 주셨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고 우리가 미숙함과 두려움을 안고 이겨내며 인생 여정을 슬기롭게 지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이미 정답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이야기를 듣고 또 전하는 데 있습니다. 길을 나서기 전, 자녀들을 향한 신앙 전수를 거듭 강조한 이유입니다. 기억이 우리를 살립니다. 모든 사람은 연약하기에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힙니다. 길을 멀리 돌아가고 심지어 이집트에 다시 들어가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백성을 죄악에서 구하시려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명심할 때, 비록 흔들릴지언정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항상 마음 깊이 품어야 합니다. 복음 만이 우리에게 참된 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혼탁한 인생의 모래바람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선명히 기억하며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생명의 길을 열고 보이시는 주 하나님끊임없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저희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기다리시는 놀라운 사랑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깊은 뜻을 마음에 품고 신뢰하며 하루하루 나아갑니다. 믿음과 구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또한 들려주는 복된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혼탁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인생의 기준으로 붙잡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07~113, 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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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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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장 29~51절 “주님의 밤”
2026년 2월 1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2장 29~51절 “주님의 밤”마침내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온 이집트를 향한, 최후의 결정적인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모든 장남의 생명을 빼앗으셨습니다. 가장 높은 권력을 지닌 파라오의 왕자부터 감옥에 갇힌 비천한 사람의 아들까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들의 첫 수컷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예고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집트 온 땅에 “큰 부르짖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호흡이 멈춘 아들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우는 소리가 집마다 울려 퍼졌습니다. 그 싸늘한 공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에 어두운 죽음이 가득 들어 찼습니다. 완연한 패배와 절망이 이집트를 덮쳤습니다. 그날 밤 결국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릅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아홉 재앙에도 완고하게 지켰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얼른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생각에는 다소 의아할 수 있습니다. 장남을 잃은 게 몹시 슬픈 일은 맞지만 패배를 선언할 정도로, 나라에 직접적인 위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는 감히 상상 못할, 훨씬 더 깊은 충격과 공포입니다. 유교 문화와 조금 비슷하게 그 때 사람들에게 장남은 단지 ‘첫 번째 아들’이 아닙니다. ‘계승’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가축의 장남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했던 화려한 종교와 문명의 파산을 선언합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섬기는 주 하나님의 찬란한 승리가 드러났습니다. 32절에 보면 심지어 파라오가 모세를 향해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합니다. 완벽한 패배 선언 입니다. 파라오 뿐만 아닙니다. 모든 이집트 사람이 두려워 떨며 이스라엘에게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앞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금과 은을 안겨 주었습니다.마침내 이스라엘은 출애굽 여정을 떠납니다. 무려 430년에 걸친 노예 생활이 끝났습니다. 무거운 속박과 억압의 사슬이 끊어졌습니다. 성인 남자만 60만명이 되는 거대한 무리가 가나안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민족들도 동참했습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42절 함께 읽겠습니다.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새한글 성경으로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42 그날에 '여호와께서 밤을 지새우며'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다. 이는 여호와의 밤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대로 깨어서 지켜야 할 밤이다.성경의 저자는 위대한 해방의 여정을 시작하는 감격적인 순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사실을 명확히 서술하였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영웅적인 지도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아닙니다. 백성의 하나된 힘으로 성취한 결과도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께서 앞장서 이뤄내신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밤을 지새우며’ 행하신 구원입니다. 한 마디로 “야훼의 밤”, “주님의 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이 밤을 해마다 깨어 지켜야하는 이유입니다.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십자가와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영원한 죽음과 저주를 이겨낼 힘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몸소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성목요일, 고난의 밤을 거쳐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찬란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여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온갖 위기와 시련을 뚫고 가까이 오시어, 앞장서 나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대대로 기억하며 인생의 걸음을 주님께 맡기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능력의 주 하나님밤을 지새우며 이집트 땅에서 백성을 데리고 나오신 모습을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를 죄악에서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위대한 구원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감격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너져 내릴 이집트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깊고 깊은 밤을 지날 때, “주님의 밤”을 기억하며, 어둠을 헤치고 영광의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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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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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장 1~28절 “첫날을 기념하라”
2026년 2월 1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2장 1~28절 “첫날을 기념하라” 찬송가 250, 251장출애굽기는 1장부터 시작해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위기에 처했던 모세가 이집트 공주에게 극적으로 구해졌습니다. 이집트 왕실 교육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친어머니 요게벳 품에서 자라 자기 민족 정체성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로 쫓겨나 비천한 목자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긴 했지만 오히려 거부를 당했습니다. 마침내 아홉가지 재앙이 연달아 몰아치며 거대한 제국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전개입니다. 출애굽기를 소재로한 영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이제 마지막 열 번째 재앙과 홍해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 이적 등 화려하고 신비로운 구원 사건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극적인 순간에 불쑥 출애굽기는 이야기의 흐름을 멈춥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장르인 ‘율법’을 제시합니다. 현란한 장면에 주의를 뺏기기 전에 꼭 해야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분명히 명심해야할 핵심을 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본문 2~3절 함께 읽겠습니다.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하나님은 먼저 ‘유월절’을 제정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열 번째 재앙, 즉 장자의 죽음을 피하고 이집트를 떠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집의 문 양쪽 기둥과 위쪽 가로대에 발라야합니다. 그렇게 하면 재앙이 그 피를 보고 지나갈 겁니다. 그렇게 ‘넘어 감’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날이 유대인 달력의 새해 첫 날입니다. 마침 다음 주에 설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1월 1일을 한 해의 첫 날로 여깁니다. 또한 음력 기준으로 첫 날을 설날로 기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그 날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이날로 시작하는 첫 달을 ‘아빕월’로 부릅니다. 이러한 달력을 통해 출애굽 사건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대림절로 교회력을 시작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어느 기준에 두는가가 너무나 중요하기 합니다. 당연히 현실의 달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에 충실한 게 마땅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의 시간을 신실하게 이끄심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서 유월절 규정을 그 한 날의 규칙으로만 그치지 않고 매년 기념해야할 율법으로 세우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6~27절 함께 읽겠습니다.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모세는 훗날 있을 상황을 가정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 딸이 유월절을 지키는 이유를 묻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그 때 자연스럽게 첫 번째 유월절날 있었던 구원 사건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라고 합니다. 이 역시 유월절을 새해 첫날로 지키는 이유와 같습니다. 영원히 반복하며 이어가야 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전하는게 자녀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에 담긴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복음만이 개인과 가족과 나라를 참으로 살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구원을 새롭게 마음에 품고 삶의 여러 재난을 딛고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구원의 주 하나님.유월절이 이스라엘 달력의 시작이듯이, 주님께서 저희를 죄악에서 구하신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되길 소망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인생 여정을 이어가는 근본을 이루길 구합니다. 날마다 삶의 온갖 재난에서 구하시는 주님의 손길 아래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복음 이야기를 감격으로 듣고 전하는 가정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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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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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2026년 2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찬송가 217, 218장아홉 가지 재앙이 지나갔습니다. 이집트 온 땅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순히 생명과 재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제국의 정신을 떠받들고 있던 그들의 종교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예들이 섬기는 야훼께서 참 하나님이심이 드러났습니다. 이집트가 숭배했던,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이 결국 헛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이 모든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로 향합니다. 앞선 아홉은 기나긴 서론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11장은 그 절정을 앞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본격적인 재앙을 앞두고 파라오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파라오를 비롯해 이집트의 모든 종과 가축의 장남이 모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 온 이집트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파라오의 마음은 완악하여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본문은 이와 같은 엄중한 장면을 앞두고 뜬금없어 보이는, 의아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이스라엘이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줍니다. 바로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과금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출애굽 상황은 매우 긴박합니다. 빵 반죽이 부푸는 걸 기다릴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 와중에 보석을 요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이 필요해서일까요? 가나안으로 떠나는 여비가 부족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만나와 이스라엘로 먹이시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이집트의 화려한 금은보화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스라엘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보석을 받아가야 할까요? 그 이유를 신명기 23장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무거운 명령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수백년 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며 가혹한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분노가 차오르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에서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나고 곧 가나안으로 떠나야 하는, 실제 노예 생활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몸은 이집트 밖으로 벗어났을지라도 증오를 품고 있다면 여전히 그 마음은 미움에 사로잡힌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원한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에게 받은 보석의 의미가 그러합니다. 값진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노예로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와 굴욕감을 떨쳐내는 매우 적절한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들의 증오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보석을 받게 하셨습니다.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연약한 인간은 분노와 원망으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거듭 ‘용서’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미움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마치 원수에게서 사과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자기를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환하게 열린 미래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기도평화의 주 하나님열 번째 재앙을 앞둔 엄숙한 순간, 파라오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기 전 온 백성에게 하신 명령에 귀 기울입니다.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요구한 보석의 의미를 헤아려 봅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저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용서를 본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의 미움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이루시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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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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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0장 “거짓을 가둔 어둠 그리고 빛”
2026년 2월 1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10장 “거짓을 가둔 어둠 그리고 빛” 찬송가 95, 96장열 가지 재앙이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너무나 견고한,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이집트 제국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가 온 땅을 덮고, 먼지가 이로 바뀌고, 파리가 들끓었습니다. 이어서 가축들이 심한 전염병으로 죽고, 사람들과 동물에 재가 들러붙어 악성 종기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과 함께 우박에 쏟아져 사람과 동물과 채소들을 덮쳤습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읽은 9장까지 기록된 재앙들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목적입니다. 단지 이집트의 왕과 백성들을 괴롭히고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화려한 문명과 삶을 떠받드는 이집트 우상숭배를 향한 심판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높여 찬양하는 그들의 신이 얼마나 거짓된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게 재앙의 이유입니다. 그 흐름 가운데 메뚜기가 온 땅을 덮었습니다. 이미 우박으로 이집트가 황폐해진 이후입니다. 햇빛을 가릴 정도로,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메뚜기 떼가 나타났습니다. 우박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푸른 잎을 메뚜기가 갉아먹고 사라집니다. 막중한 재산 손해 뿐만 아니라 신의 확고한 저주를 드러내는 너무나 두려운 상황입니다. 파라오가 벌벌 떨며 모세와 아론을 급하게 불러 용서를 구할 정도입니다.이제 다음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압도적으로 거대한 재난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이집트 온 땅을 피로 물들이는 잔혹한 사건이 일어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홉 번째 재앙은 얼핏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암흑’입니다. 21~23절 함께 읽겠습니다.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이집트 온 땅이 어둠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집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오직 한 곳,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에만 영롱한 불빛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재앙과 달리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별거 아닌 일로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숨 막힐 것 같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이집트가 섬기는 수많은 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태양신 ‘라’(혹은 ‘레’)이기 때문입니다.이집트 백성은 태양의 지배를 받는다는 자부심에 취해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절반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였습니다. 그토록 찬란한 태양이 노예들이 섬기는 신 야훼에 의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태양신 따위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이 전능한 존재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고 그들의 자녀들을 함부로 죽이는 이집트의 권력과 문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벌을 내리십니다. 지금 우리는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우리 주위와 세계 곳곳에는 또 다른 태양신과 파라오가 존재합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게 현혹하는 물질 문명, 영원할 것만 같은 견고한 기득권, 사람들의 맹목적 열광 아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 보기에 아무리 찬란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어둠으로 거짓을 덮으십니다. 그 이면에 숨 쉬는 악한 폭력을 준엄하게 벌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참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온 우주를 향해 발하시는 진정 아름다운 광채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 빛이 오늘도 우리를 감싸안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영광에 안겨 현란하게 번쩍이는 거짓을 물리치고, 어둠 속에 고요히 빛나는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참 빛이신 주 하나님온 이집트가 어둠에 잠겼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곳에만 밝게 빛났던 그 빛을 마음에 새깁니다. 태양신의 거짓 광채와 그 안에 벌어졌던 폭력을 벌하신 주님의 공의를 바라봅니다. 억울하게 흘린 눈물을 보시고 신음에 응답하며 행하신, 놀라운 구원을 사모합니다. 거짓으로 빛나는 어둠이 아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어둠을 뚫고 다가온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 빛을 품고 전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 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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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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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9장 “말씀을 두려워하여”
2026년 2월 1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9장 “말씀을 두려워하여” 찬송가 545, 546장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시기 위한 재앙들이 그 땅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시작은 나일강 물을 피로 바꾼 이적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개구리, 이, 파리 재앙이 이어졌음을 어제 읽은 8장이 알려줍니다.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앞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 강물을 피로 바꾸고, 개구리를 불러 모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흉내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작은 벌레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파라오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였습니다.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은 이어서 몰아닥친 재앙을 묘사합니다. 먼저 가축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키우는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심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성경이 굳이 각 동물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 시대에 매우 중요한 목축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이적은 생활에 큰 불편함을 주는 것에 멈추었습니다. 이제는 직접 생명에 위협이 다가왔습니다.또한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축과 이집트의 가축이 정확하게 구별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집에는 병으로 죽어가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키우는 동물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파라오가 직접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재앙을 보내는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그 주님이 반드시 당신의 백성을 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은 재앙 가운데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악성 종기 재앙에 이어 하나님은 우박을 예고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습니다. 단지 심판만이 목적이라면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굳이 미리 경고하셔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배려하십니다. 19~21절 함께 읽겠습니다.19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내일 이맘 때, 커다란 우박이 쏟아질 겁니다. 맞으면 목숨을 잃는 무시무시한 우박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을 알려줍니다. 왕궁에서 모세의 경고를 들었던 파라오의 신하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여호와의 말씀을 두지 아니하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예고대로 종과 동물을 집 안으로 들인 사람들은 화를 면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무시하고 밖에 내버려두면 불덩이와 함께 쏟아지는 우박을 맞았습니다.따라서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무시하는가? 입니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됩니다. 현실 속에서 우박 재앙과 같은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따라도 삶의 여러 재해를 겪기도 합니다. 신앙을 단순히 재난을 피하는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온전히 경외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실한 날개 아래 품어주실 줄 믿습니다. 때로 비바람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펼치시는 권능의 품 안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안전을 얻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역사의 마지막에 진정 생명과 승리를 거둘 줄 믿습니다. 그날을 향한 소망을 기대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기도말씀하시는 주 하나님말씀을 경외하며 경고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시한 사람들에게는 죽임이라는 매우 다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저희를 살리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복음만이 거친 세상 속에 저희를 보호하는 진정한 피난처이심을 고백합니다. 재앙으로 가득한 현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살림의 손길을 붙잡고 일어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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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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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8장 “하나님의 권능”
2026년 2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8장 “하나님의 권능” 찬송가 67, 68장출애굽기 7장은 열 가지 재앙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조용히 파라오를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나일강물을 검붉은 피로 바꾸셨습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국에 번영을 안겨준 생명의 근원이 죽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자연이 변한 게 아닙니다. 나일강이 상징하는 이집트 종교의 허상이 드러나고 야훼 하나님의 권능이 솟아오른 사건입니다.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아론이 이집트의 물 위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올라와 이집트 제국 전역을 덮었습니다. 단순히 징그럽다거나 생활이 크게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개구리는 다산의 축복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수많은 개구리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집트는 개구리 모양의 “헤케트”를 생명과 다산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섬겼습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에 의해 개구리가 통제 불능의 거대한 혼란을 안겨주는 것을 목격하며 그들의 신앙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음으로 티끌이 이가 되었습니다.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 땅에 먼지를 치자 일어난 일입니다. 최근에 나온 새한글 성경은 여기서 ‘이’ 대신 ‘모기’로 번역하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집트의 모든 티끌이 작은 벌레 떼로 변하여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동물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이 세 번째 재앙의 특징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이신 이적을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흉내 내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들자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출 7:11~12). 심지어 모세와 아론처럼 물을 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출 7:22).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를 불러 모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출 8:7)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뭔가 다른 상황이 펼져 졌습니다. 출애굽기 8장 18~19절 함께 읽겠습니다.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이번에도 이집트 왕궁 소속 마술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흉내 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태양과 나일강을 움직였던 그들이 정작 작은 벌레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자기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이적과 마주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완벽한 권능에 압도당하며, 파라오 앞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우 놀라운 역설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존재로 당신의 완전한 전능을 드러내시어 이집트의 거짓 능력을 폭로 하셨습니다. 파라오의 마술사들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하나님을 흉내 냅니다. 화려하고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고 자랑하거나 위협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마법사들이 제 아무리 눈부신 영광을 자랑한다 한들 주님의 빛 앞에 금세 사라집니다. 그들이 어떻게든 기적을 꾸며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이신 가장 온전한 능력을 바라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은 거대하고 찬란한 성과와 업적으로 자기를 드높이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처절한 죽음과 희생으로 부활의 능력과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위대한 겸손으로 세상의 오만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지극히 작음으로 주님의 진정한 크심을 깨달으며 재앙을 이겨내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전능하신 주 하나님하나님의 권능이 지극히 작은 벌레를 통해 드러난 사건을 발견합니다. 거창한 이적을 흉내 낸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정작 먼지를 이로 바꾸지 못한 모습에서 이 세상의 거짓을 확인합니다. 겸손히 낮아지는 가운데 비로소 다다르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화려한 욕망이 그려내는 허상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참 구원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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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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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2026년 2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찬송가 93, 94장출애굽기 6장은 이집트를 벗어나는 위대한 여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주도하신다는 위대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세의 쓰라린 좌절을 함께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완고하게 닫혀 있습니다.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 모세는 자기 입이 둔하다며 거듭 한탄합니다. 단지 신체 일부의 약함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막중한 사명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고백하는 장면 합니다.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일으켜 세워 본격적으로 출애굽 여정의 문을 여십니다. 당신의 권능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먼저 아론을 통해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키는 이적을 일으켰습니다. 파라오의 마술사들 역시 지팡이로 뱀을 만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뱀들은 이스라엘의 뱀에 잡아 먹혔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야훼 하나님이 마냥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얼마 되지 않아 온 이집트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파라오가 나일강에 나타날 때 그에게 전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십니다. 17~18절 함께 읽겠습니다.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하나님은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뱀으로 만들었던 그 지팡이를 들고 나일 강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일강을 비롯해 다른 강과 운하와 모든 호수가 피로 바뀌었습니다. 단지 물이 피로 변했다는 신비로운 화학적 변화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먹을 물이 없어 괴로움에 빠진 것도 이 이적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단순히 거대 자연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신성합니다. 이집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찬란한 문명을 지탱하게 한 원천입니다. 그런데 그 나일강이 노예들의 신에 의해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신이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그토록 자랑했던 화려한 번영이 한순간에 허약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근본을 뒤흔드는 경악스러운 사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 열 가지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성의 탄식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졌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내미시는 살림의 손길은 허공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 시대 가장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과 체계 속을 헤집고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떠받드는 화려한 문명을 뒤집고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러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반역범을 처형하는 틀이 부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고 고백한다면, 오늘날 우리 앞의 이집트 제국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파라오가 내세우는 나일 강이 무엇인지는 올바로 가늠해야 합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을 거세게 움직이게 하는 탐욕의 실체를 가리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게 하는 눈부신 무언가입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많은 돈이, 다른 누군가에는 드높은 명예가 그러합니다.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물을 피로 바꾸십니다. 과연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검붉은 피로 생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향해 삶의 중심을 고정하며 제국의 풍요를 넘어 천국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나일강을 피로 바꾸신 하나님기세등등한 파라오의 오만이 강물과 함께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저희 삶의 참된 풍요는 나일강과 그 강을 다스린다고 외치는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파라오의 다스림이 아닌 주님의 통치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온전히 깨닫고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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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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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2026년 2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찬송가 324, 325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5장은 모세가 파라오에게 백성의 구출을 요구한 후 벌어진 파장을 알려줍니다. 파라오는 불쾌해하며 이스라엘이 게으르다고 질책하였습니다. 더욱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무척 마음이 상하고 지쳤습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하나님은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출애굽 사건을 누가 주도하는지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바로 하나님 당신입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모세가 괴로워하는 핵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막중한 사명을 이끌 책임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주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의 강한 손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이유를 다시 강조하며 설명하십니다. 5, 7절 함께 읽겠습니다.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하나님께서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지난날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길 바라셨습니다. 그들과 신실한 관계를 이루기 바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몸소 앞장서 이루십니다. 너무나 눈물 겹도록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합니다. 9절 읽겠습니다.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찬란한 언약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변화를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길 바랐을 겁니다. 출애굽 여정을 향해 비로소 힘차게 걸음을 내디딜 거라 예상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버겁고 괴로웠기 때문입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심하게도 모세를 더욱 몰아 붙이십니다. 11절에 보면 주님은 모세에게 파라오에게 다시 가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가 파라오에게 시도한 결과 이스라엘은 가혹한 노동 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로 인해 모세는 백성의 거친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파라오의 왕궁을 향해 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로서는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입니다. 출애굽기 6장의 마지막 절인 30절은 자기는 입이 둔한 자라며, 파라오가 말을 들을리 없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미 그가 떨기나무 앞에서 부름 받았을 때 하소연한 내용 그대로입니다.이처럼 본문은 하나님의 찬란한 언약 그리고 이와 명확히 대비되는 싸늘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경험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녀들과 따스한 관계와 사귐을 이루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직면하는 것은 내 처절한 한계와 주위 사람들의 냉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한계를 넘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당신의 방법으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소 열어가시는 놀라운 구원의 여정을 기대와 소망으로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기도구원의 주 하나님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언약을 바라봅니다. 저희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사랑의 관계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거칠고 어둡기만 합니다. 분노에 가득찬 이스라엘과 폭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파라오를 마주하고는 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거쳐 주님께서 앞서 나아가시며 이루시는 구원을 믿고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권능의 손길을 붙잡고 맡겨진 사명을 잠잠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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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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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2026년 2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찬송가 321, 322장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으로 나아갑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광야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파라오는 당연히 거절 하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왕이면서 동시에 신 입니다. 그의 앞에 노예로 부리는 백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신, 야훼를 거론하며 예배하도록 풀어달라는 말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 이집트의 주요 국가 건축 사업의 노동력입니다. 그들이 일을 멈춘다면 국가 경제는 한순간에 멈춥니다. 파라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엄중한 대응으로 권위와 기강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노동 감독관들과 현장 책임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편의를 배제하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숫자로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이집트 관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라오의 지시를 전달합니다. 노동 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세졌습니다. 짚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구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전과 같은 양의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현장 책임을 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라오에게 간청합니다. 왜 이렇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노예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하는 지 이유를 여쭈었습니다.그러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훼께 예배 하도록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이집트 관리들에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평가를 반복합니다. 바로 ‘게으름’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이 나태해져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무례한 요구를 감히 자신에게 했다며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물러서지 않고 앞서 내린 노동 조건과 강도를 그대로 이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 책임자들은 너무나 무거운 마음으로 왕궁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마침 그들 앞에 모세와 아론이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일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둘을 향해 거침없이 쏘아 붙이며 말합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이스라엘 책임자들이 격분하며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혹한 상황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의 처지여도 당연히 두 사람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멀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이 당장 처한 현실의 어려움에 괴로워할 겁니다.그런데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추가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행동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야훼께서 살피고 판단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두 사람의 행동을 두고 벌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게 아닙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야훼를 여전히 경배합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파라오의 뜻을 따릅니다. 이집트의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였습니다.너무나 놀라운 장면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엄숙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알게모르게 이 시대의 파라오를 경배하며 이집트의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사건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상황에 잠잠히 호흡을 다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감정과 이익에 철저히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구원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더욱 신뢰하고 동참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권능의 주 하나님삶의 시련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정작 파라오의 뜻에 충실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했던 잘못을 뉘우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을 마음에 품고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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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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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2026년 2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찬송가 382, 383장어제 읽은 출애굽기 3장은 쓸쓸하게 장인의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성에게 전할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되어갈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을 통해 환하게 열릴 미래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세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낼 사명을 거부하였습니다. 특히나 백성들에 대한 염려를 드러냈습니다.그러자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를 믿게 할 이적 세 가지를 보여주십니다. 우선 목자로서 사용하는 도구인 지팡이를 땅에 던져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뱀의 꼬리를 잡자 도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어보니 악성 피부병에 걸려 손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넣자 본래대로 손이 나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일 강 물을 퍼다가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할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그럼에도 모세를 덮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불신했습니다. 지난날 그가 받은 상처의 깊이를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을 이끌기에는,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언변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토로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모세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공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창조주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모습과 상태를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한 창조의 능력을 모세를 향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물러섰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과 동행을 말씀 하셨습니다.결국 모세는 사명을 받아들입니다. 장인 어른께 인사를 나누고 가족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원래는 가축을 돌보던 노동 도구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평범한 일상의 상징을 능력의 통로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지극히 뻔한 삶에 창조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마침내 이집트에 도착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았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모세 그토록 우려했던 상황과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모세는 백성의 불신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여정 내내 모세를 어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양면이 있습니다. 모세와 처음으로 대면한 백성의 첫 번째 반응은 ‘믿음’과 ‘경배’였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근거를 주목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신 행동입니다.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오시고,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눈물을 살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자녀들이 짊어진 한계와 약점 또한 너무나 잘 아십니다. 권능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건네시는 창조의 손길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창조의 주 하나님이집트로 돌아가 백성을 구할 사명을 연거푸 거부하는 모세에게서 저희의 약함을 발견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창조의 능력을 더욱 온전히 바라고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 삶 깊숙이 찾아오시어 고통의 눈물을 살피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마다의 이집트에서 벗어나 구원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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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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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2026년 2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찬송가 320, 321장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무심결에 광야 서쪽,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향했습니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모세가)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출 3:1)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평소 하던 데로 자신이 가축을 몰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여 당신께로 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만남은 신비로운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불에 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영롱한 불꽃을 계속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모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정말 가야 할 곳으로 발길을 잡아 당겼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이때, 그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요? 무척 황당했을 겁니다. 혈기 왕성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 그가 이미 시도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그는 고통받는 동족을 구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파라오를 피해 도망쳐 광야로 떠났습니다.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무기력한 80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세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 와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도무지 따를 수 없었습니다.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과 ‘못 갑니다.’라고 거부하는 모세 사이의 실랑이가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불쑥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단순히 몇 글자로 이루어진 명칭이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주님의 인격을 마주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14절 함께 읽겠습니다.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해당 구약 원문은 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래’ 의미로, “나는 있는 자로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있을 자이다.”라는 뜻입니다. “되어 가시는 주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 안에 적극적인 구원 의지와 계획을 담으셨습니다. 그 이름이 모세를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되어가시는 하나님’과 마주하고 그 이름을 부르며 모세는 자기 자신과 직면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지난날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처절한 좌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결코 인생의 낙오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동적인 미래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활짝 열린 앞날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 절정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길로 하나님께서 나아가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참 인간이 되시어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이와 같은 주님의 권능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과거의 아픔과 오늘의 한계를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찾아오시고 일꾼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장 합당한 사명을 맡기시고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기도되어가시는 주 하나님초라한 일상 가운데 지친 발걸음으로 양 떼를 이끌던 모세에게 먼저 찾아와 알려주신 거룩한 이름을 마음 깊이 품어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이 되어 가시리라 약속하신 위대한 은혜를 바라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셨음을 믿습니다.그 믿음 따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 가운데 엄습하는 그 어떤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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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