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2026년 2월 1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11장 “용서의 여정을 떠나며” 찬송가 217, 218장
아홉 가지 재앙이 지나갔습니다. 이집트 온 땅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순히 생명과 재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제국의 정신을 떠받들고 있던 그들의 종교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예들이 섬기는 야훼께서 참 하나님이심이 드러났습니다. 이집트가 숭배했던,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이 결국 헛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모든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로 향합니다. 앞선 아홉은 기나긴 서론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11장은 그 절정을 앞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본격적인 재앙을 앞두고 파라오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파라오를 비롯해 이집트의 모든 종과 가축의 장남이 모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 온 이집트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파라오의 마음은 완악하여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와 같은 엄중한 장면을 앞두고 뜬금없어 보이는, 의아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이스라엘이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줍니다. 바로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은과금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출애굽 상황은 매우 긴박합니다. 빵 반죽이 부푸는 걸 기다릴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 와중에 보석을 요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이집트에서 벗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이 필요해서일까요? 가나안으로 떠나는 여비가 부족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만나와 이스라엘로 먹이시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이집트의 화려한 금은보화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스라엘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보석을 받아가야 할까요? 그 이유를 신명기 23장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무거운 명령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수백년 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며 가혹한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분노가 차오르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에서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나고 곧 가나안으로 떠나야 하는, 실제 노예 생활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몸은 이집트 밖으로 벗어났을지라도 증오를 품고 있다면 여전히 그 마음은 미움에 사로잡힌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원한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에게 받은 보석의 의미가 그러합니다.
값진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노예로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와 굴욕감을 떨쳐내는 매우 적절한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들의 증오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보석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연약한 인간은 분노와 원망으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거듭 ‘용서’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미움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마치 원수에게서 사과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자기를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환하게 열린 미래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평화의 주 하나님
열 번째 재앙을 앞둔 엄숙한 순간, 파라오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기 전 온 백성에게 하신 명령에 귀 기울입니다. 주위에 사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요구한 보석의 의미를 헤아려 봅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저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용서를 본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의 미움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이루시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문헌: 조너선 색스 『랍비가 풀어내는 출애굽기』(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12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