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2026년 2월 2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17장 “나의 깃발이신 하나님” 찬송가 354, 357장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감격적인 출애굽 이후 힘겨운 광야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마라의 쓴물과 굶주림을 겪었습니다. 오늘 읽은 17장 1~7절에는 목마름으로 인한 갈등을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 고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쟁입니다. 그전에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실제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야만적인 순간입니다. 게다가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단순히 군대와 군대의 대결이 아닙니다. 신(神)과 신의 싸움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처음으로 치르는 이방 민족과의 전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로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목숨을 걸고 창과 칼을 움켜쥐는 상황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맡겨진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전투 현장으로 향합니다. 바로 산꼭대기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루실 놀라운 구원을 확연히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모세는 모든 혼돈을 헤치고, 처참한 현실을 넘어 지팡이를 치켜들었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아말렉 군대를 강력히 제압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지팡이를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곧 피로감을 느낍니다. 두 팔이 부들거렸습니다. 차츰 팔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 이스라엘의 기세도 조금씩 꺾이기 시작합니다. 동행했던 아론과 훌이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돌을 가져와 모세가 그 위에 편하게 앉게 했습니다. 양쪽에서 각각 모세의 손을 하나씩 붙잡아 올렸습니다. 덕분에 모세는 해가 질 때까지 양팔을 치켜들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이날 모세의 행동을 주술적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마법 도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본질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날, 전쟁터에서 하나님께서 무얼 하셨는지, 그걸 통해 백성들에게 확고하게 알려주고자 한 진리가 무엇인지, 또한 그 진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 답을 알아가기 위해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15~16절 함께 읽겠습니다.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는 아말렉과 싸워 감격스러운 승리를 거둔 후 제단을 쌓고 예배했습니다. 그런 다음 ‘야훼 닛시’라는,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은 나의 깃발’이라고 뜻입니다. 깃발은 혼란한 전투상황 속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병사들이 응시해야 할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인생의 전투 속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눈길을 고정해야합니다.
‘야훼 닛시’ 하나님은 그렇게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신실하게 함께하십니다. 때때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고된 전투에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깃발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응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그 말씀 따라 참된 승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루어 나가길 축원합니다.
기도
‘야훼 닛시’, 나의 깃발이신 주 하나님
주님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광야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패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의 현실이 너무나 쓰라립니다. 비참합니다. 아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처절한 전쟁터에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진정한 승리의 길로 이끄셨음을 믿습니다.
그 믿음 따라 행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듬고 역사의 비극에 희생당한 이들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승리의 허상을 물리치고 진정한 승리를 진리 가운데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구원 깃발을 펼쳐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