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2026년 3월 9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25장 “만나시는 하나님” 찬송가 430, 433장
시내산에서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출애굽기 25장부터 그들에게 성막과 각종 기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증거궤’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혹은 ‘법궤’라고도 부릅니다. 흔들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려주며 용기를 불어넣는 게 증거궤입니다. 증거궤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이자 생생하게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입니다.
시내산의 하나님 체험은 세월이 지나면 과거로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붙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이 산에서 내려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이 머물 성막을 마련하고, 그 성막 안에 주님이 특별히 계실 특정한 장소인 증거궤를 준비했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와 돌판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 광야 길에서 주님께서 함께 하신 은혜를 상징합니다.
법궤는 조각목, 즉 나무로 만들고 겉은 순금으로 둘러쌌습니다. 옆면에는 금고리를 만들어 붙여서 채를 끼워 운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동 가능한 상태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광야 여정 중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한 곳에만 고정적으로 머무르며 사람에게 ‘보러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과 함께 다니시며 삶에 임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증거궤의 핵심은 덮개입니다. 20~22절 읽겠습니다.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법궤 위를 덮는 뚜껑을 가리켜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그곳을 두 천사가 날개를 높이 펼쳐 덮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속죄소에 앉아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증거궤 덕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영 한가운데 있는 성막에서 더불어 거하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의 척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증거궤를 모셔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장막입니다. 원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끔 대제사장만 허락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막았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가 드러났습니다.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의 고정된 장소에서 몇 백년 동안 계시던 하나님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우리를 만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를 떠돌던 성막에 있던 증거궤가 시간이 흘러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머물렀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분명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어 당신의 인격으로 증거궤라는 물건을 대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을 더욱더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인간의 지식과 느낌과 상관없이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인생의 광야 여정을 신실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동행하는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날마다 사랑으로 저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증거궤 위 속죄소에 임재하셨듯이 성령님께서 지금도 저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경험과 느낌을 넘어서는 주님의 임재를 항상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이끄는 출애굽기 읽기』(서울: 디사이플, 2018) 27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