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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26절 “참된 복과 빛”

2026-10-27
새벽 묵상

2026년 10월 2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마태복음 5장 1~26절 “참된 복과 빛”, 428장


지난 주에 읽은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야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는 평범한 어부들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이들을 고치셨습니다.


이어지는 5장부터 7장까지는 흔히 ‘산상설교’라 부르는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앉으시자 제자들이 나아왔습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모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세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참뜻을 친히 풀어 주십니다. 그 첫마디가 바로 ‘팔복’입니다. 조금 길지만 3~10절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여기서 ‘복이 있다’는 말은 단순히 운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맛보기 시작한 사람이 마음 깊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복 있다고 부르신 사람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세상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의지할 데라고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이사야 61장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실 거라는 예언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3절과 10절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현재형으로 선언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기에, 형편은 여전히 고단해도 하나님 나라는 이미 그들의 것입니다. 동시에 위로와 기업과 하나님을 뵙는 일은 미래형으로 약속하십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룩한 역설입니다.


따라서 팔복은 ‘이렇게 해야 복을 받는다’는 조건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선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 은혜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난과 슬픔의 자리에 계시다면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자리가 바로 주님께서 복을 선포하시는 곳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긍휼히 여기고 화평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여기서 흥미로운 변화가 있습니다. 팔복은 ‘~하는 자’라는 3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11절에서 갑자기 “너희”로 바뀝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원어에서 이 ‘너희’를 일부러 강조합니다. 바로 팔복의 사람들, 가난하고 애통하며 박해받는 그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력해서 얻는 자격이 아닙니다. 은혜로 주어진 정체성입니다. 지난 주에 읽은 4장 16절은 갈릴리를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그 큰 빛이신 예수님께 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그러니 그 빛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산 위의 동네가 멀리서도 보이듯 드러납니다. 16절은 그 빛이 “착한 행실”로 드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나를 자랑하는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그 착한 행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형제를 향한 분노를 내려놓고,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빛을 비추라는 당부입니다.


우리 정배교회도 중미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빛의 근원은 가장 가난하고 애통한 자리인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교회가 “빛의 여정”을 주제로 예배당을 정돈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활의 빛을 품고 오늘 하루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복 있는 자녀로 불러주시는 주 하나님

빈손으로 나아온 저희에게 먼저 복을 선포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난과 슬픔의 자리에서도 이미 저희 것이 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큰 빛이신 주님을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긍휼과 화평의 착한 행실로 하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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