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구원과 임재”
2026년 10월 21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마태복음 1장 “구원과 임재”, 85장
미리 말씀 드린바와 같이 오늘부터 마태복음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마침 지난 9월 6일에 같은 본문으로 주일예배 설교를 했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그 핵심을 이 시간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을 비롯해 신약성경을 시작하는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계보”로 번역한 말은 ‘기원’, 즉 무언가의 근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족보를 가리킵니다. 그러면서 마태는 여러 이름을 나열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 14대, 포로기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를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매우 정교한 구성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얼마나 다윗처럼 강력한 존재인지를 뒷받침하는 힘 있는 조상들만을 언급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네 여인을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시킵니다. 바로 다말, 라합, 룻, 밧세바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족보에 여성의 이름이 오르는 것부터가 드문 일입니다. 거기다 이 네 명 모두 하나같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오히려 이 이름들을 족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 이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이름을 품기 합당한 삶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한 이름을 알려 줍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약혼한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고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럼에도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녀가 낳을 아기의 이름을 지어 정식으로 자녀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요셉으로서는 너무나 큰 어려움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순종하며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백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람들에게 불릴 이름을 천사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얼마든지 특별한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가장 평범한 이름을 선택하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참 사람이 되신 것과 같은 결단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뻔한 것으로 가장 놀라운 은혜를 이루셨습니다.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천사의 설명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바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라는 말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약속한 구원은 사람들이 기대한 구원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백성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당장 해결하기 원하는 삶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을 새롭게 하십니다.
여기서 또 다른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을 더욱 생생히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거듭 곱씹어야 할 생명의 진리입니다. 그 복음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 마음에 새기며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족보 속 네 여인과 같은 비참한 인생 속에 동행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위대한 구원을 마침내 이루십니다. 그 믿음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는 하나님.
저희의 죄를 구원하시고, 인생 한복판까지 걸어 들어오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앞에 무릎 꿇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