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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장 3~9절 “살아있는, 살아갈 희망”

2026-04-12
정대진 목사

2026년 4월 12일, 부활절 둘째주일

정배교회 주일예배, 목사 정대진

베드로전서 1장 3~9절 “살아있는, 살아갈 희망”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위험한 희망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살인 누명을 썼습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한 절망 그 자체입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은행 부지점장으로서 촉망받았던 금융 실력으로 교도소장의 눈에 들었습니다. 비자금을 관리하는 대가로 여러 편의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가 관리하던 교도소 도서관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P가 기증 물품으로 도착합니다. 전축에 음반을 올려놓고 듣다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대담한 행동을 합니다. 간수를 화장실에 가두고 교도소 방송 시스템을 켜고 마이크를 올렸습니다. 삭막한 회색 교도소 안에 아름다운 아리아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입니다. 미처 못 보신 분들을 꼭 감상하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결국 앤디는 2주간 독방에 갇혔습니다. 


징계가 끝나고 동료들과 식사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죄수 한 명이 그에게 교도소 전체에 음악을 튼 행동이 ‘독방에서 2주나 보낼 가치가’ 있었는 지 물었습니다. 앤디 ‘쉽게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죄수가 ‘말도 안 된다’며, ‘일주일이 1년 같은 힘든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앤디는 ‘모차르트 선생님과 함께’ 있었던 덕분에 순식간에 흘렀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다른 죄수는 놀리듯이 독방에 축음기도 함께 넣어줬냐고 물었습니다.


앤디는 자기 머리와 가슴을 각각 가리키며 이렇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음악은) 이 안에 있어요. (가슴을 가리키며) 이 안에도 있죠. 그게 음악의 아름다움이에요. 이걸 뺏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음악에 대해 그렇게 느껴본 적 없나요?” 그 이야기를 듣자 앤디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레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젊었을 때 하모니카를 불긴 했지. 하지만 흥미를 잃었어. 여기선 별로 의미가 없었거든.” 그 말을 들은 앤디가 대답합니다. “여기가 가장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잊어버리지 않게 해주니까요.” 레드가 물었습니다. “잊어버려?” 여기부터는 대본대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앤디: 세상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들이 있다는 것을요. 마음 속 그 어떤 건 아무도 뺏지 못하고 손댈 수 없다고요. 나만의 것 말이에요.

레드: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앤디: 희망이요.

레드: 희망? 이봐 하나 알려줄까?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어. 이 안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좋아.


“희망은 위험한 거야?”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레드가 남긴 명대사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우리를 둘러싼 세상살이를 살펴보면, 섣불리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찬란한 개념에 “고문”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결합해 만든 단어입니다.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는 수험생, 취업에 실패하는 청년 혹은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의 고뇌를 표현한 말입니다.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더 나은 내일을 꿈꿉니다. 지금 애써 노력하며 계획하는 일들이 그럴듯하게 잘 풀리길 바랍니다. 병이 빨리 낫길 기도합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거나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희망이 눈부시게 꽃을 피우기 보다는 사정없이 짓밟힐 때가 더 많습니다. 그게 이른바 ‘희망’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잠시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금세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안겨주는 대상이 바로 희망입니다.


베드로의 절망

사도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거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그의 인생을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처절한 절망의 연속입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이라는, 상당한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님께 인생을 걸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힘겹게 지냅니다. 하지만 언젠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왕좌에 오를 걸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을 멋지게 몰아내고 일등 공신으로 부와 권력을 움켜쥘 날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하셨습니다. 왕궁이 아니라 십자가에 오르시고, 화려한 승리가 아니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로서는 지금까지 희생하며 고생한 모든 게 헛수고라는 선언입니다.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을 거칠게 붙잡고 흥분하며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서 산산조각 난 소망의 파열음을 듣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고 감람산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그 식사의 의미를 알지 못 한 채 큰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요동치는 마음을 담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어린 여종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님의 예고대로 세 번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맹세했습니다. 베드로의 인격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깊고 깊은 절망입니다. 그 순간 어떤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품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희망은 로마 제국의 강력한 힘과 유대 지도자들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그저 위험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살아있는 희망

하지만 베드로는 시간이 흘러 위대한 사도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절망에 빠진, 고난받는 교회를 위로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입니다. 그는 여기서 “희망”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본문 3절 함께 읽겠습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산 소망”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소망은 사람들이 막연히 품은 기대가 아닙니다. “위험한 희망”이나 “희망 고문”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망을 가리켜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날에 대한 맹목적 소원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온 우주를 압도하는 죽음과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단지 몸으로 겪는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 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엄청난 수치와 모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놀라운 낮아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혐오스러운 짐승 취급당하는 형벌입니다. 사람들이 마주하는 그 어떤 암흑도 주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와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위대한 생명과 희망을 보이셨습니다. 풍성한 긍휼로 아들을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일깨워 주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 만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은 크고 한결같은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반드시 다시 살아납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산 소망”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살아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법 형태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닙니다. 혹은 낡은 유물처럼 과거에 멈춰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역동성을 뜻합니다(박창환·김경희,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48: 베드로전·후서/유다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6), 44-45.).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녀들이 품은 강력한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 가슴 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하늘에 있는 유산 그리고 보호하심

베드로는 이러한 산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4절을 새한글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4 또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가 받을 ‘상속’을 알려줍니다. 개역개정성경은 ‘유업’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지파와 가문별로 받은 땅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롭고 기름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숱한 침략을 당하고 오염되었습니다. 각종 재해와 돌림병을 겪었습니다. 단지 가나안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 들떠 기대하며 얻은 실체가 이러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금은보화도, 기세등등한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썩고 더럽혀지고 시듭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유한한 소망과 명백히 대조되는 살아있는 희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을, 하늘에 있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눈부시게 찬란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 바라고 구해야 할 희망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희망으로 얻은 유업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산 소망이 하늘에 있다면, 지금 이 땅에서 부딪히는 현실과 무슨 상관일까요? 당장 가정과 직장에서 겪는 너무나 복잡한 관계 문제들 그리고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을 그냥 덮어두고 하늘만 바라보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관련해서 5절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보장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가운데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시간일까요? 주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시는 텅 빈 순간일까요? 아닙니다. 방금 읽은 5절이 분명히 알려줍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호하심”을 뜻하는 헬라어는 군사용어입니다(박창환·김경희,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48: 베드로전·후서/유다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6), 47.). 적의 공격에 맞서 성을 지키는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자녀들을 덮쳐오는 그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하게 지켜 보호하여 주십니다. 용맹한 군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성벽 위에 서서 적을 노려보듯이,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눈길로 우리를 살피십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이 사실 허무하게 들립니다.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는 인생의 숱한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가난으로, 때로는 관계로 수없이 아픈 순간을 지납니다. 


금을 제련하듯이

따라서 성도가 경험하는 고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며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혹은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 받는 형벌도 아닙니다. 그 모든 여러 가지 시험으로 때로는 잠시 근심하지만 마침내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ppt off 금을 연단하듯이 우리를 더욱 빛나고 가치 있게 하는 소중하고 자연스런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미국 네바다주 북동쪽 칼린 지역에서 금광석을 대량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몹시 특이한 성질을 지녔습니다. 일반적인 금광석과 달리 1,500배로 확대해도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너무나 작은 알갱이로 흩어져 있는 금입니다. 시간이 흘러 1980년대가 되어 마침내 그 금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계발했습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선 수 톤이나 되는 거대하고 단단한 광석을 기계에 밀어 넣고 고운 가루가 되도록 완전히 산산조각을 냅니다. 그런 다음 맹독성 용액을 붓고 엄청난 열과 압력으로 녹여버립니다. 거기에 아연 가루를 섞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작디작은 금들이 서로 뭉쳐서 나옵니다. 쿵쾅거리며 사정없이 암석을 내리치는 거친 진동과 굉음과 열기 그리고 화학 작용으로 뿜어내는 역한 냄새가 뒤엉킨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했습니다. 철저히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온 우주에 이보다 큰 아픔과 어둠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암흑을 거쳐 부활의 여명이 밝았습니다. 베드로가 산 증인입니다. 실패하고 초라한 인생이었습니다. 스승의 뜻을 거부하고 저주하며 배신했습니다. 로마 반역범의 제자로서 수많은 위협과 위기를 겪었습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당시 사람들의 귀에 말도 안 되는 위험한 헛소리를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로 인해 목숨까지 내놓을 상황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이 베드로를 위대한 부활의 증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전서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도 없이 깨지고 짓밟히고 부서집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독극물에 녹아내리듯 완전히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나라는 존재는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는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철저히 무력하고 비참함 감정에 휩싸입니다. 누구나 살아오며 한 번쯤은 그런 사건이나 상황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그런 시련을 지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지난날 혹은 현재의 고통으로 괴로울 때,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슬픔은 우리를 금보다 더 눈부신 존재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쓸모없는 돌덩어리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영혼 깊숙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십니다. 우리를 불로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련하십니다. 거칠고 힘겨운 시간을 지나 영롱한 조각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십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은혜를 누립니다. 온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든 사람이 그토록 꿈꾸고 바랐던 궁극적인 명예입니다. 베드로 시대 성도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며 겪었던 모든 핍박에 대한 완벽한 보상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분명히 주어질,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무지 숨 쉴 수 없이 답답하고 괴로울 때 도리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두움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그 너머에 있는 밝은 빛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대로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절망 속에 허덕일 때 오히려 살아있는 희망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드러난 산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둠과 절망과 죽음을 딛고 일어나 살아갈 믿음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 희망

설교를 시작하며 소개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는 마침내 탈옥을 성공합니다. 그와 가장 친했던 레드도 시간이 흘러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40년간 감옥에서 지내다가 사회에 적응하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범죄를 저질러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레드는 문득 예전에 앤디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앤디는 만약 레드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벅스톤이라는 지역에 있는 목초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큰 떡갈나무가 서 있는, 긴 돌담 밑에 있는 흑요석 덩어리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래 묻힌 것을 꺼내 보라고 앤디는 비장한 표정으로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레드는 앤디가 들려준 이야기대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눈에 띄는 검은색 돌덩이 아래에 상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레드에게. 당신이 이걸 읽는다면 감옥에서 나왔다는 뜻이고, 여기까지 왔다면 조금 더 멀리 갈 수도 있겠죠. 내가 말한 동네 이름, 기억하죠? 제 사업을 도와줄 좋은 친구가 필요해요. 체스판 준비하고 당신을 기다릴게요.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가 당신을 잘 발견하길 바라고, 건강하길 빕니다.

당신의 친구, 앤디가.”


희망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울한 감옥 살이에서 벗어나 탈출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꾸며낸 허상이 아닌, 하나님이 안겨준 희망은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무겁고 힘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아픔을 넘어서게 합니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수렁에서 일으켜 회복시키십니다. 깊고 깊은 고통을 찬란하게 빚어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온 우주에 드러난, 하나님의 크고 한결 같은 사랑에 안기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살아갈 희망을 누리고 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마음 다해 축원합니다.



기도

크고 한결같은 사랑의 주 하나님.

세상은 헛된 꿈을 꾸다가, 희망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산 소망을 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유업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성벽처럼 둘러싸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길 구합니다. 

부서지고 녹아내리는 것 같은 시련 속에서도, 저희 안에 감춰진 보배를 발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으며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있는, 살아갈 희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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