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8절 “이곳은 그곳이 아닙니다”
2026년 4월 5일, 부활주일
정배교회 주일예배, 목사 정대진
마가복음 16장 1~8절 “이곳은 그곳이 아닙니다”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먼동을 헤치는 세 여인
이른 새벽입니다. 안식 없는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아직 십자가에 피가 흥건히 배어있던 그날, 그 무엇도 세상에 참된 쉼을 주지 못했습니다. 세 여인은 도무지 가시지 않은 슬픔을 끌어안고 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걸었습니다. 길에는 여전히 눈물 머금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정확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당시 중동 지방은 극도의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지녔습니다. 여성을 업신여기고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 존중하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한없이 품어 주셨습니다. 복음서에 담긴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드넓은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형편이 허락하는 데로, 예수님의 생활과 사역을 묵묵히 도와드렸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열두 명으로만 제한 할 수 없습니다. 이들과 구별되는 “여성 제자들”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 역시 그들 중 일부였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그 깊은 슬픔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지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인자한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따뜻하게 건네신 손길을 더 이상 잡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십자가를 지고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언덕 위를 오르던 예수님의 뒷 모습이 여전히 눈 앞에 아른 거립니다. 나무에 메달려 절규하며 위치던 음성이 귓가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그야말로 경악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들을 공감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분께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와 억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국의 반역범으로 처형당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받고 버림받은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게다가 가슴 아프게도 예수님의 시신은 변변하게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헌신으로 십자가에서 내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중동 특유의 동굴 무덤 안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장례를 마무리하길 원했습니다. 그분을 향한 자신들의 마지막 섬김을 다하길 바랐습니다. 얼마 없는 돈을 어렵게 모아 향기 나는 기름을 구했습니다. 새벽 동이 터 오르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옮겨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돌 덩어리처럼 무거운 죽음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면서도 막상 도착했을 때, 자기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는 염려에 사로잡혔습니다. 사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판단입니다. 무덤 입구 앞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연약한 여인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옮길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자기들의 걸음이 헛수고일 수 있다는 답답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녀들의 행동과 근심 가장 깊은 곳에 깔려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마음 속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죽은 예수님의 시체가 있는 무덤으로 가고 있다.”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숨을 거두셨기에 죽음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위한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 목숨을 잃으셨기에 무덤 앞에 놓인 커다란 장애물 걱정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결코 바뀌지 않을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이 나아가는 주님의 무덤은 그 뼈저린 현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고통과 절망의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음침한 무덤으로 향하는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어둡기만 했습니다. 도무지 뒤집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거운 현실 앞에 자기들이 너무나 연약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공간에서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마침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4~6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마침내 세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을 목격합니다. 지금껏 계속 걱정했던 커다란 돌문이 저만치 굴러가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갔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지고 장난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제자들이 남몰래 훔쳐간 걸까?’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추스르며 조심스럽게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매우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누워계시던 바로 그곳 오른 편에 흰 옷을 입은 천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여인들은 커다란 충격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들을 향해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동안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매우 정확하고 명료하게 요약한 말입니다. 그들에게 그곳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비참하게 숨을 거둔 예수님의 시체가 썩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주님의 무덤은 한없는 절망과 어둠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장소였습니다.
천사의 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이렇게 알려줍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죽음으로 가득했던 무덤이 이젠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죽임 당하신 채로 어두컴컴한 동굴 한 복판에 누워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무덤은 비워졌습니다. 참 생명과 희망의 공간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 곳’은 더 이상 ‘그 곳’이 아닙니다.” 새벽 일찍 그들이 찾아간 예수님의 무덤은 분명 위태롭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아픔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이젠 더 이상 그들이 생각했던 “그 곳”이 아닙니다. 감히 상상 못할 놀라운 구원과 희망의 공간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전한 현실 너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너무나 놀랍고 찬란한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절기를 보내며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생명을 향한 믿음을 다시금 곱씹어 묵상하고 고백합니다. 그러한 부활 신앙은 살아가며 마주하는 절망의 공간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늘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힘겹게 했던 장소의 겉모습이 화려한 낙원으로 한순간에 돌변하지 않습니다. 혹은 고통을 대하는 마음 상태가 바뀌었다는 단순한 심리 변화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결코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순식간에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황하며 놀라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도 지키지 못할 정도 였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마음의 그늘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렇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어느 곳에서나 따사로이 품어 안아 주십니다. 우리가 비틀거리며 발 내딛는 그 모든 어두운 공간들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진리를 온 마음 다해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껏 지나왔고, 앞으로 지나가야 할 온갖 암흑의 장소를 부활의 찬란한 등불 아래 전혀 다르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곳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마음 아픈 일들이 계속 찾아옵니다. 눅눅한 땅을 밟고 지나야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모든 “이곳”을 진정한 희망의 땅으로 변화시킨다는 부활의 복음을 항상 담대히 붙잡으시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빈 무덤을 언제나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 저편에서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그 눈길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살아가며 때때로 돌 무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육중한 무게를 지닌 돌덩어리는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습니다. 무덤 안 쪽 깊은 곳에서부터 인생의 고약한 악취가 풍겨옵니다. 하지만 그 모두는 한 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 곳”은 더 이상 “그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십자가의 복음을 고백해도 잔인한 현실을 목격합니다. 두터운 슬픔과 아픔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잔인한 질문들을 계속 건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킨 부활 생명이 우리가 마주하는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창조의 질서를 회복시키시는 온전한 뜻을 끝내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에나 함께하심을 분명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어둠에 갇힌 이들을 향해 참 생명과 희망의 빛을 전하는 사명을 충직하게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종교 개념이 아닙니다.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꾸는 신비입니다.
때때로 저마다의 거친 언덕을 오를 때, 당장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고 힘들 때, 온갖 상처가 나를 찌르고 무릎 꿀릴 때, 부활절에 울려 퍼진 말씀에 더욱 귀 기울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그곳이 아닙니다.”
기도
참 생명과 희망의 하나님
이른 새벽 주님의 무덤으로 향하던 세 여인처럼 때때로 힘겨운 발걸음을 이끌고 어둠의 공간으로 향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를 둘러싼 절망이 제아무리 깊고 쓰라릴지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 모든 암흑은 마침내 찬란한 빛으로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아득한 절망 속에 괴로워하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소서. 무너지지 말고 힘차게 일어나 살아낼 용기와 희망을 부활의 복음을 통해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이상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않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