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1~15절 "엘 벧엘, 벧엘의 하나님"
2026년 7월 12일, 정배교회 주일예배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35장 1~15절 "엘 벧엘, 벧엘의 하나님"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1)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2)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어떤 접속사
‘그리고,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성경은 생략했지만 구약 원문에는 본문 1절이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우리말에는 ‘그리고’와 ‘그러나’의 차이가 명확합니다. 반면 한 글자인 히브리어 접속사는 뜻이 명쾌하지 않습니다.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삶의 모호함과 모순을 드러냅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접속사를 기준으로 앞뒤 단락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직전 사건을 유심히 확인해야 합니다. 그 때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의 가족이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입니다. 막내딸 디나가 그곳 추장의 아들 하몰에게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오빠들이 사악한 꾀를 내어 세겜 남자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금세 거대한 공포가 야곱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막 낯선 땅에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원래 살던 주민들과 원만히 잘 지내야 합니다. 거창한 명분을 떠나 가족 전체의 생존이 걸린 일입니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들이 혈기를 못 이겨 끔찍한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복수는 시간문제입니다. 세겜 성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평소 가깝게 지낸 다른 부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 그 즉시 모든 게 끝장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또 다른 뼈아픈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아들들의 거친 반항을 겪었습니다. 족장이자 아버지로서 자기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한 인간의 존재가 완전히 곤두박질치며 추락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불행 가운데 지쳐 쓰러진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마치 문장과 문장을 잇는 접속사처럼 끈끈하게 곁에 머물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저마다의 세겜에서 무너져 내린 우리에게도 말을 건네십니다. 삶의 모든 아픔을 뚫고 들려오는 말씀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도망자의 밤
본문 1절 함께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이유도 함께 덧붙입니다. 벧엘은 지난날 그가 주님께 예배한 곳입니다. 주님은 단순히 특정 장소로, 물리적인 이동을 명령한 게 아닙니다. 벧엘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눈부신 은혜를 야곱이 회복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 벧엘과 함께 언급한 시간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입니다. 그가 지난날 경험했던, 또 다른 공포와 절망입니다. 그 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모의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치밀한 준비한 계획이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금세 두려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에서가 분노하며 동생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냥으로 단련한, 풍채 좋은 근육질 몸은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손에 잡힌다면, 마치 토끼나 노루 같은 사냥감처럼 야곱이 피를 흘릴 게 분명했습니다. 리브가는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야곱을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유복한 족장 아들에서,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밤을 맞이합니다. 그를 둘러싼 자연이 암울한 처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정체 모를 섬뜩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언제 맹수가 덮칠 지 모릅니다. 강도떼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설령,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에 무사히 도착한다 할지라도, 어머니 바람처럼 그곳에서 안전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야곱이 베고 누운 돌덩어리의 딱딱하고 싸늘한 촉감이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온갖 염려가 그의 내면에 엄습합니다. 그의 눈가에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돌베개를 축축이 적셨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수없이 돌이켜 보며 자책했을 겁니다. 그렇게 그는 번민과 절망 속에 지쳐 잠들었습니다.
돌연히 내려오시는 하나님
하지만 야곱은 그 때, 꿈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바로 하늘에 닿은 ‘계단’입니다. 조금 의아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에서 야곱이 본 게 ‘사닥다리’라고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 조금 아쉬운 번역입니다. 관련해서 이라크에서 발굴한 “지구라트”를 참조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약 4,000년 전에, 아브라함 고향이기도 한 도시 “우르”에서 달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만든 신전입니다. 꼭대기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습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하늘과 연결된 계단을 가리키는 단어는 지구라트처럼 당시 주변 종교 신전에 있는 계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지구라트의 계단은 인간이 신에게 닿으려고 스스로 쌓아 올린 교만의 결과입니다.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만든 바벨탑 이야기는 그러한 어리석은 욕망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야곱의 꿈에 등장한 계단은 정반대입니다. 인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시는 길입니다.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공간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차디찬 돌베개에 기대 누운 비참한 도망자에게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그 계단을 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꼭대기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는, 영혼 가장 깊은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십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언약하셨던 복을 다시 선언 하셨습니다. 그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은혜를 선언하십니다. 바로 언제 어디서나 야곱과 함께 하시는 ‘임재’입니다.
그 장면을 창세기 28장 11~15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좀 길지만 화면 보시면서 새한글 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11 어떤 곳에 다다랐는데, 해가 져서 거기서 묵어가기로 했다. 그곳의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그곳에 누웠다. 12 꿈을 꾸었는데, 아, 땅 쪽으로 계단이 놓이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아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13 게다가, 이럴 수가, 여호와께서 그 곁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다.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자 이삭의 하나님이지.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너의 후손에게 주마. 14 너의 자손이 땅의 흙먼지처럼 불어나고, 동서남북으로 널리 퍼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이 너와 너의 후손 덕분에 복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마. 너에게 말한 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버려두지 않으마.”
우선 11절에 보면 야곱이 ‘어떤 곳에 다다랐다.’고 기록합니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곳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그가 애쓰고 노력해서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단락에서 히브리어 감탄사 무려 네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느낀 경이로움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정리하자면 야곱은 가장 위험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마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그는 감격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금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거대한 문화와 체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야훼 신앙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이제 겨우 3대에 이른 가족 종교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특별한 출생 과정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생히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만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마지막 문장을 원문에서 곧바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것을 몰랐다.” 1인칭을 연달아 두 번 반복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자기가 정말 몰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치명적인 무지함을 처절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깨우침을 안겨 줍니다. 내가 정말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 계심을 참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고, 내 슬픔과 억울함 만을 호소하는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 대신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이미 내 안에 머물러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이 그동안 집요하게 세운 인생 계획과 욕망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태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나그네 길을 계속 걸어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돌베개를 세웠습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부으며 주님을 예배했습니다. 원래 ‘루스’로 불리던 그 땅 이름을 ‘벧엘’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뜻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입술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들으시고 보살피신 그 하나님께로
그 후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삶은 여전히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아들들이 세겜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제 온 가족이 어떤 끔찍한 고초를 겪을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인생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은 접속사를 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앞서 1절을 함께 묵상했듯이, 단순히 ‘벧엘’이라는 특정 장소를 언급한 게 아닙니다. 그곳에서 도망자 신세로 드렸던 예배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습니다. 예배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야곱은 과거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날 밤의 냉기와 허기와 피로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극심한 절망과 두려움이 다시금 가슴 깊이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압도하는 주님의 찬란하고 따스한 생명에 휩싸였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가족 모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3절을 화면 보시면서 새번역 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3 이제 우리는 이 곳을 떠나서, 베델로 올라간다. 거기에다 나는, 내가 고생할 때에 나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내가 가는 길 어디에서나 나와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신,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치고자 한다.
여기서 야곱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눈물겨운 신앙 고백을 남깁니다. 벧엘로 찾아오신 주님, 엘 벧엘의 하나님은 그가 고생할 때에 간구를 들어주시고, 가는 길 어디에서나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셨습니다. 야곱은 지난날 돌베개를 세워 예배하며 하나님께 구한 기도가 20년 세월 동안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생생하게 깨달았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인생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힘겹고 지칠 때마다 주님은 그에게 분명 응답하시고 동행하셨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은혜를 돌아보며 다시금 벧엘로 나아갑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은 야곱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겨울 때 드리는 탄식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곁에 계시며 돌봐 주십니다. 야곱과 함께하신 엘벧엘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펼치시는 은혜입니다. 거듭, 진심으로 깨닫고 붙잡아야 할 소중한 복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본문은 충격적인 사실 또한 알려줍니다. 4절을 보면 야곱의 가족은 많은 이방 신상과 장식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그들의 내면에 하나님을 밀어낸 증거입니다. 그 대신 우상이 유혹하는 탐욕과 헛된 풍요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더욱 정확히는 ‘나’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더 이상 주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기 감정과 어리석은 욕망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의 아들들은 돌이킬 수 없는 폭력과 죄악을 저지르고, 공동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어느샌가 내 손과 영혼에 움켜쥐고 있는 각종 신상과 귀고리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내 삶을 움직이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돈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도한 권력일 수 있습니다. 혹은 무리하고 조급하게 집착하는 성과입니다. 우리 역시 야곱처럼 그 모두를 세겜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허무한 탐욕을 넘어 참된 은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전환
이렇게 야곱은 벧엘을 향하는 위대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근심에 사로 잡합니다. 어린 아이와 여성을 포함한 많은 무리가 멀리 이동할 때는 언제나 외부 공격에 취약하기 마련입니다. 야곱 가족이 외적의 칼과 창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5절 함께 읽겠습니다.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가족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겁을 먹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주변 성읍 사람들이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공포의 전환이자 두려움의 반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결과입니다. 지난날 벧엘에서 도망자 야곱을 구하신 주님이 여전히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시련에서 구하시고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야곱은 평생 두려움과 싸웠습니다. 자기를 쫓아오는 장인 라반을 무서워했습니다. 얍복 강가에서는 형 에서의 복수를 두려워했습니다. 매번 야곱이 겁을 먹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겜 떠나 벧엘로 향하자 모든 게 변했습니다. 야곱이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이젠 그를 두려워하며 도망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무엇에 압도되어 공포에 떨고 계십니까? 혹시 지금 저마다의 세겜 한복판에서 무서움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예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진정 경배해야 할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삶의 방향을 바로 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때, 주님은 두려움의 대상을 완전히 바꾸십니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진정 두려워할 걸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벧엘의 하나님
이어서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마침내 야곱은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 이름을 ‘엘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지난날 주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했던 장소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곳에서 나타나신 하나님, “벧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는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지극히 초라하고 비참했던 자신에게 찾아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분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야곱에게 또다시 응답하시고 돌보셨습니다. 앞서 얍복 나루에서 새롭게 주신 이름 ‘이스라엘’을 거듭 언급하십니다. 그가 더 이상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다 스스로 무너진 ‘야곱’으로 살아가지 않는다고 알려주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난날,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남기신 약속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무수히 많은 땅과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위기를 겪으며 그저 자기 가족들이 잘 살아남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살아 숨 쉽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자녀들에게 참된 은혜가 생생하게 빛납니다.
계단의 실체이신 예수님
이 모든 이야기는 신약에 이르러 완전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창세기에 기록된, 벧엘에서 꾼 야곱의 꿈을 언급하셨습니다. 이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은 돌계단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을 잇는 참된 계단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진정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온 우주를 뒤덮는 공포를 물리치는 참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깊은 밤 싸늘한 돌베게를 베고 누울 때, 여러 모양의 세겜을 지나며 두려워 떨 때, 쉽게 좌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고생할 때에 간구를 들어주는 주님. 가는 길 어디에서나 항상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시는 주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헛된 자아와 욕망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세겜을 떠나 벧엘을 향해 날마다 묵묵히 발걸음 옮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 여정입니다.
물론 그 길에 여전히 많은 아픔이 놓여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분명 설움에 사무쳐 눈물 흘릴 날이 찾아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에 순종하여 세겜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벧엘의 하나님.
깊은 밤 돌베개를 베고 스산하게 잠들던 도망자 야곱에게, 온 가족에게 닥친 위기 가운데 두려워 떨던 야곱에게, 따스한 임재로 다가오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또한 저희의 모든 실패와 좌절 가운데에도 항상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어리석은 아집과 교만을 물리치길 원합니다. 공허한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온 마음을 열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생할 때에 간구를 들어주시고, 가는 길 어디에서나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신 벧엘의 하나님께 예배하는, 참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